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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사》 흰 구름 날아가는 곳에서 청산을 보다

섬섬

【정견망】

이끼 흔적 밟으며 얼룩진 길 가노니,
흰 구름 날아가는 곳에서 청산을 보네.
모르겠구나, 속세 티끌 나그네 중에
물외(物外)의 한가로움을 아는 이 몇이나 될지.

踏破苔痕一徑斑,白雲飛處見青山。
不知浮世塵中客,幾個能知物外閑。

당대(唐代) 시인 허굉(許宏)의 이 시 백운사(白雲寺)는 읽을수록 꽤 의미심장하다. 시 전체에서 백운사의 구체적인 위치를 설명하지 않았고, 시인이 실제로 절에 도착했는지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어쩌면 시인의 마음속에서 백운사는 반드시 도달해야 할 종점이 아니라, 하나의 여정이자 지향점이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내면의 동경(向往)과 초탈이다.

“이끼 흔적 밟으며 얼룩진 길 가노니”라는 구절은 시인이 홀로 산에 오르는 정경을 묘사한다. 산길의 이끼 흔적이 얼룩덜룩한 것은 분명 오랫동안 지나다닌 사람이 없음을 뜻하며, 오직 시인의 발걸음만이 정적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는 백운사가 깊고 그윽한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암시하며, 아울러 절이 이미 황폐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찰의 종소리나 경쇠 소리도 없고, 신도들이 왕래한 흔적도 없다. 시인이 길을 따라오는 동안 마주한 것은 세속의 향불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였다.

“흰 구름 날아가는 곳에서 청산을 보네.”

이 구절은 특히 공령(空靈)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흰 구름이 날아가는 곳은 두 가지 층위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시인이 높은 곳에 서서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흐르는 것을 지켜보다가, 구름 그림자가 열리고 닫히는 사이로 멀리 청산을 바라보는 것이다. 둘째는 흰 구름으로 백운사를 암시하여, 절이 낭떠러지 높은 곳에 있어 마치 구름 위에 있는 듯하고 구름을 따라 날아갈 듯한 모습을 부각시킨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실재에 가까운지 깊이 따질 필요는 없다. 바로 이러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의상(意象)이 시의 경지를 더욱 그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르겠구나, 속세 티끌 나그네 중에
물외(物外)의 한가로움을 아는 이 몇이나 될지.”

이 구절에서 시인은 산속의 맑고 적적한 것에서부터 인간 세상을 돌아보며 깊은 질문을 던진다. 티끌 세상(塵世)에서 분주히 살아가는 사람들 중 과연 몇 명이나 물욕(物慾)에서 진정으로 초탈하여 “물외(物外)의 한가로움”을 체득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물외란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명리에 대한 집착을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 속 정경에서 미루어 볼 때 시인이 본 것은 아마도 황폐한 산의 고찰일 가능성이 크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생존 자체도 본래 어려울 텐데도 시인이 굳이 이 길을 향한 것은, 아마도 마음속 번뇌와 세상의 나른함을 떨쳐버리고 깊은 산의 맑고 고요함 속에서 잠시나마 안식을 찾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높이와 시야 속에서 시인의 시야는 탁 트여 있다. 먼 산이 눈앞에 있고 흰 구름이 곁에 있으니, 시인이 이를 통해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수행의 길일 수도 있고 인생의 행방일 수도 있으며, 이런 것들은 모두 독자 스스로 느끼고 깨달을 따름이다.

허굉의 생애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 작품은 주로 산행의 그윽함을 탐구한 것이 많고 벼슬길의 공명에 관한 것은 적다. 그는 아마도 관직에 몸담은 사람이 아니라 산천을 유람하며 본성에 따라 다니는 여행자에 가까웠을 것이다. 자못 명대의 자유로운 여행가 서하객(徐霞客) 과 같은 정신이 엿보인다.

시 속에서 흰 구름을 흠모하는 마음은 옛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한운야학(閑雲野鶴)의 비유와도 맞닿아 있다. 그것은 명리에 얽매이지 않고 오고 감이 자유로운 생명의 상태이며, 주로 구름처럼 떠도는 승려나 나그네를 가리킨다. 명리를 가볍게 보면 얻고 잃음도 가볍게 볼 수 있고, 내려놓을 줄 알면 심경(心境)이 자연히 맑고 밝아진다.

많은 문화 전통 속에서 인생은 하나의 여행으로 간주된다. 고인(古人)은 “적선(謫仙)”이라는 설이 있는데, 마치 사람이란 천상에서 쫓겨나 티끌 세상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다고 보았다. 만약 여정 중에 방향을 명확히 인식하고 집착을 내려놓아 명리에 끄달리지 않는다면, 생명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대법이 널리 전해져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다. 사람이 이곳에 온 것은 법(法)을 얻기 위함이니, 세간의 모든 것을 가볍게 보고 명리의 속박을 받지 않아야만 인생이 크게 자재해질 수 있다. 나아가 기연(機緣)이 있어 법을 얻어 원만(圓滿)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