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話本先笙)
【정견망】
“존… 존주님, 설마…중독되신 건 아니겠지요?”
“중… 중독이라니? 저 사람들이 아주 진저리가 나니 모두 물러가게 하라!”
이때 유리비녀는 멍하니 환호하는 무리를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 유리비녀가 이 주인을 섬기기 시작한 후 무려 9조 겁(兆劫) 동안, 주인은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을 실어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님께서 설마 정말로 중독되셨단 말인가…….’
그녀는 삼계(森界)의 왕이자 중생의 희망이며, 그녀의 명(命)은 무량한 천체 속 무량한 중생의 명을 짊어지고 있다. 유리비녀는 더는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넋이 나간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안 돼… 아닐 거야… 주인님은 분명 농담하시는 거야… 중독되셨을 리 없어…….”
그때, 서슬 퍼런 호통 소리가 이 즐거운 분위기를 깨뜨렸다.
“유리비녀! 무엇을 생각하느냐? 저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라!”
이때 벽요의 얼굴에는 더 이상 평온함도 자애로움도 없었다. 두 눈에는 냉기가 감돌았고 말투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모든 이들이 법왕의 이 호통 소리에 얼어붙었고, 얼굴에 가득했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정신이 나갔다.
이어서 경악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고, 모두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 심지어 공기 속에도 예기치 못한 공포가 잠복해 있는 듯했다.
“하하하하! 으하하하!”
갑자기 주층천 허공에 대마두(大魔頭)가 하나 나타났다! 온몸이 핏빛으로 붉었고 등에는 박쥐 같은 날개가 달렸으며,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말할 수 없이 추하고 눈빛에는 흉측함과 교활함이 가득했다. 방금 크게 웃은 자가 바로 그였다.
“너… 너는 무엇이냐?”
이때 벽요는 마음이 몹시 번잡했고 원신(元神)이 자꾸만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억지로 눈을 뜨며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 대마두가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벽요에게 말했다.
“하하! 나 말인가? 나는 당신 이웃이라 할 수 있지! 삼계 바로 옆에 사니까. 자 미인이여, 우리 집에 놀러 가지 않겠나? 우리 집은 당신 이곳 삼계보다 훨씬 좋다오! 하루하루 이런 골치 아픈 일도 없고, 우리 집은 온통 즐거움뿐이라니까…….”
“대담한 마두놈아! 요망한 말로 우리 주님을 미혹시키지 마라! 당장 우리 삼계를 떠나거라! 그러지 않으면 나 연파가 너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
연파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마두를 노려보았다.
“쯧쯧쯧! 나는 삼계 법왕에게 말하고 있는데 당신이 말하고 있는데 저런 천한 노비가 끼어들다니, 이건 그가 당신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니오?“
벽요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억지로 눈을 뜨고 흐릿한 정신으로 말했다.
“연파, 물러나라!”
만약 예전의 벽요였다면, 어떤 사마(邪魔)가 감히 그 앞에서 이런 도발을 할 수 있었겠는가? 복룡장을 땅에 한 번 울리기만 해도 그것들이 벌벌 떨었을 것이다. 이제 모두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존주께서 정말로 부독산에 중독되셨다는 것을! 즉, 삼계에서 가장 지고무상한 왕이 더 이상 순정(純淨)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른바 ‘대마두’ 및 이번 삼계 천겁에 나타난 수많은 사마(邪魔)들은 지난 1조 겁 동안 삼계의 평행 공간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그러니 마왕이 벽요와 이웃이라는 말도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이전까지는 삼계가 있는 공간 주변의 부(負)적인 생명들이 이토록 사악하지 않았고, 정(正)의 생명이 줄곧 부의 생명을 제어하고 있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정(正)과 부(負)는 서로 의존하기 때문인데 우주는 줄곧 이러했지만 부(負)가 정(情)을 압도하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이번 천겁(天劫) 전까지는 감히 난동을 부리지 못했기 때문에 벽요도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뜻밖에도 그것들은 바로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그를 물러가게 하는군! 그래야지! 법왕은 법왕다워야지! 벽요 법왕이여, 보시오. 당신이 매일 이 삼계 중생들을 위해 얼마나 마음을 썼소? 그런데 저들을 보시오! 먹고 노는 것밖에 모르고, 당신 법왕은 안중에도 없지 않소!”
이 마두는 아주 교활했다. 벽요가 부독산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해진 틈을 타 이간질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마두의 가장 무서운 점은 단순한 이간질이 아니라, 벽요의 ‘불순한 점’이 어디에 있는지, 그녀의 심성이 어디에 누락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구절마다 벽요의 그 ‘누락’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벽요는 마왕의 말을 듣자 마음속에서 불평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라왔다.
‘나는 이 삼계의 당당한 법왕인데, 저들은 매일 향락에 젖어 있고 나는 저들을 위해 마음을 다 쏟고 있는데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걸까?!’
마두는 벽요의 얼굴에 동요하는 기색이 보이자 즉시 말을 이었다.
“나는 법왕께 말합니다! 당신의 하루하루 일상을 한번 돌아보세요. 그 귀한 시간을 온통 홍묘정선전에 낭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합니까? 차라리 즐기는 당신 중생들만도 못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하려고 했습니까? 그럴 가치가 있습니까!”
벽요가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온종일 중생을 위해 애쓰느라 친구 하나 없었고, 평민의 삶을 체험해보려 해도 매번 변신해야 했으니 참으로 고달픈 삶이었다.
그 마두는 벽요의 마음이 조금씩 자신을 따르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역겨웠다. 또 무슨 수작인지 들어보자.
“에휴~ 가엾은 우리 법왕님!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당신은 얼마나 위대한 왕입니까! 가는 곳마다 무적이고 싸워서 이기지 않은 적이 없었지요! 그런데 당신의 삼계에는 여전히 당신을 도발하는 자들이 있더군요! ‘당신은 법왕 자격이 없다’느니 뭐라느니…….”
벽요는 이 말을 듣자 정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사실 중독된 중생들이 그녀를 욕할 때만 해도 마음이 조금 불편했을 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 체내의 부독산이 그 작은 ‘불편함’을 만 배로 증폭시켜 거대한 분노로 바꾸어 놓았다.
원숭이가 참다못해 대마두의 말을 끊었다.
“닥쳐라! 존주님, 저 마두의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듣지 마십시오! 중생들이 부독산 냄새를 맡고 정신이 나가서 그런 것이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닥쳐라!!”
벽요는 독 기운에 깊이 잠식되어 있었다. 그녀는 원숭이에게 크게 호통치며 복룡장을 땅에 내리쳤다. 그 분노와 원망의 기운이 어찌나 강했는지 현장에 있던 이들이 모두 대여섯 걸음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존경하는 나의 법왕님, 이리로 오세요. 이리로. 여기엔 당신을 화나게 하는 녀석들이 없답니다. 어서 오세요…….”
마왕은 손짓과 말로 정신이 혼미한 벽요를 유혹했다. 벽요가 막 발을 내딛으려 할 때, 연파가 갑자기 달려들어 무릎을 꿇고 그녀의 다리를 붙잡으며 울부짖었다.
“존주님! 제발 깨어나십시오! 가시면 안 됩니다! 저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당신께선 삼계의 지고무상한 왕이신데, 어찌 저런 미천한 것을 따라가려 하십니까. 이는 존주님의 신분에 큰 누를 끼치는 일입니다! 존주님!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현장의 모든 이가 무릎을 꿇고 법왕이 정신을 차리시길 애원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벽요의 행동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벽요는 노여움에 차서 연파를 발로 걷어찼고, 가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연파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나왔다!
“비켜라! 너희들이 정녕 내 주인이 되려는 것이냐?!”
삼계에 진정한 천겁이 닥쳤다.
이 마두는 벽요가 집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계(魔界)에 명령을 내렸다.
“모든 마들은 삼계를 공격하라! 삼계 중생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태워버리고 우리 마자(魔子)마손(魔孫)들이 이 삼계를 차지하자!”
순식간에 제13층천부터 주층천까지 검은 연기가 자욱해지고 불길이 하늘을 찔렀다!
정말로 다음과 같았다.
법왕의 심지(心智) 어지러워지니,
한순간 분노가 미친 물결 일으키네.
주를 잃은 뭇신들 통곡하나니,
이 겁난에서 벗어나기 어렵구나!
法王心智亂,
一怒起狂瀾。
眾神哭無主,
難逃此劫難!
다시 각념삼림으로 돌아가자. 연파는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나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다시 벽요의 다리 밑으로 기어갔다. 그는 벽요를 붙잡고 흔들며 그녀를 깨우려 애썼다.
이때 모든 신이 통곡하고 있었다.
연파는 벽요의 다리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존주님, 제발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이 연파가 간절히 빌겠습니다! 삼계가 이번에 정말 끝장나게 생겼습니다! 당신께선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옛날에 당신께서 어떻게 이 삼계를 개창(開創)하셨는지요! 당신께는 이토록 많은 자식 같은 백성이 있습니다…… 존주님! 존주님 당신의 중생들을 버리시면 안 됩니다! 지금 도탄에 빠져 있는 저들을 보십시오…….“
이때의 벽요는 이미 연파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복룡장에 의지해 비틀거리며 서 있었는데 여전히 원신이 여전히 있는 듯 없는 듯했다.
갑자기 복룡장이 벽요의 손에서 빠져나가 땅 중앙에 우뚝 섰다. 지팡이 위 용두(龍頭)의 표정이 매우 복잡했다. 사람의 말로 표현하자면, 아주 ‘애틋하게’ 벽요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 눈빛 속에는 애틋함뿐만 아니라 굳건한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용의 코가 훌쩍거리더니, 깊고 단단한 눈동자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지, 지팡이야,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벽요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복룡장의 용두가 두 눈을 감더니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순간 각념삼림의 꽃과 나무들이 그 위력에 휘청거렸고, 숲 양옆의 호수에는 거대한 파도가 일었으며, 신들은 그 압도적인 힘에 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복룡장, 네가 미친 것이냐? 지팡이는 자신의 몸체를 휘둘러 온 힘을 다해 벽요의 등을 내리쳤다!
복룡장은 혼신의 일격을 가했다! 이 순간 벽요는 무의식적으로 법력(法力)을 끌어올려 몸을 방어했다. 두 거대한 힘이 격렬하게 충돌했고, 복룡장은 두 동강이 나 바닥에 떨어졌으며 벽요는 그 충격으로 부독산 한 사발을 크게 토했다!
벽요가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복룡장의 용두가 조각이 번개처럼 솟구쳐 오르더니 입을 크게 벌려 맑은 물을 내뿜었다! 맑고 깨끗한 홍묘가 벽요의 온몸을 끊임없이 씻어내리기 시작했다. 복룡장이 그녀를 도와 독을 씻어내고 있었다!
홍묘(洪淼)의 세례를 받자 벽요는 점차 시야가 맑아지고 머리가 청성해졌으며, 아득했던 원신도 다시 자리를 잡았다…….
벽요는 점차 정신이 돌아왔으나 용의 입에서 나오는 홍묘는 점점 줄어들었고, 반 토막 난 지팡이의 몸체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마침내 복룡장의 기운이 다하자, “콰당!” 소리를 내며 지팡이가 땅에 떨어졌는데, 그 소리는 그저 썩은 나뭇조각이 떨어지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아, 홍묘를 다 쏟아내고 지팡이는 흙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야 벽요는 완전히 깨어났다! 그녀는 눈앞의 풍경을 보았다. 중상을 입어 입가에 피가 묻은 연파, 숨이 끊어진 복룡장, 눈물로 범벅이 되어 넋이 나간 신들, 그리고 불길과 검은 연기로 가득 찬 삼계…….
눈 앞의 이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깨달은 그녀는 꿈에서 깬 듯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함에 잠겼다. 그러나 중생들이 큰 불길 속에 있었기에 슬퍼하고 후회할 여유조차 없었다!
자신을 구하느라 복룡장은 죽었고 홍묘도 다 말라버렸으니, 불길 속의 중생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의 ‘하광만장우(霞光萬丈羽)’를 벗어 던졌다. 이 우의(羽衣 깃털로 만든 신선의 옷)는 비할 바 없이 거대한 배로 변해 불길 속을 누비며 생명들을 태워 보호할 수 있었다.
삼계에 물이 없자 벽요는 ‘환채반란군(幻彩斑斕裙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치마)’마저 벗었다. 이 치마는 가는 비와 감로수로 변했다…….
이어 벽요는 봉관(鳳冠 봉황 모자), 보배 장화(寶靴), 팔찌 등 몸에 지닌 모든 물건을 불을 끄기 위해 던졌다. 법왕의 몸에 지닌 모든 것은 위력적인 법기였으나,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옷까지 벗어 던지는 경우는 없었다. 벽요에게는 이미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비록 법왕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음에도 삼계 중생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었다.
당당했던 삼계의 법왕 벽요는 이제 하얀 속옷 차림에 맨발로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리에 꽂힌 유리비녀 하나만이 남았을 뿐이었고, 그녀의 표정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녀는 모든 의욕을 잃고 뼈저리게 후회했다.
‘나는 왜 이토록 내 능력을 과신했는가? 왜 그리 독단적으로 부독산을 마셨단 말인가? 삼계의 천겁은 중생이 순정하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는데, 나조차 순정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삼계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생령(生靈)들이 도탄에 빠진 삼계를 보며 벽요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는 실로 애간장을 끊는 듯 비통했다.
모든 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법왕이 우는 것조차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 본 모습이 통곡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두들 이미 알았다.
‘삼계에 희망이 없구나…….’
순식간에 삼계는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
후회와 비통함이 교차하던 벽요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선혈이 ‘뚝… 뚝…’ 떨어져 주층천의 구름 사이로 떨어져 아래 층천(層天)으로 흘러 내려갔다. 그런데, 어라?
아래 층천의 거센 불길 중 일부가 꺼지는 것이 아닌가? 설마 법왕의 피가 불을 끌 수 있단 말인가? 이 신기한 광경을 벽요도 목격했다. 그녀의 눈에 다시 한 줄기 희망이 스쳤다.
그녀는 과연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피를 쏟아낼 것인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1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