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話本先笙)
【정견망】
후회와 비통함이 교차하던 벽요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선혈이 ‘뚝… 뚝…’ 떨어져 주층천의 구름 사이로 떨어져 아래 층천(層天)으로 흘러 내려갔다. 그런데, 어라?
아래 층천의 거센 불길 중 일부가 꺼지는 것이 아닌가? 설마 법왕의 피가 불을 끌 수 있단 말인가?
눈물로 젖은 벽요의 눈동자에 섬광 같은 한 가닥 빛이 스쳤다. 자신의 핏방울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것을 본 것이다!
‘설마 내 피로 이 맹렬한 불을 끌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 순간 벽요에게 이보다 더 벅찬 일은 없었다.
“원숭아! 원숭아! 어서 보렴! 내 피가 닿는 곳마다 불이 꺼지고 있어! 모두 어서 와서 보아라! 우리 삼계에 살길이 열렸다!”
벽요는 아직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을 들고 아이처럼 기뻐하며 외쳤다.
아래를 내려다본 이들도 확인했다. 정말로 벽요의 피가 떨어진 곳마다 불길이 잦아들고 있었다!
갑자기 벽요가 몸을 일으켰다. 비록 봉관(鳳冠)과 하피(霞披)들은 불을 끄다 사라졌고 복룡장도 흙으로 돌아갔으며, 하얀 속옷에 검은 머리에 비녀 하나가 꽂힌 맨발 차림이었음에도 왕자(王者)의 기개는 추호도 줄어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벽요의 얼굴에 왕자의 위엄은 비록 줄지 않았지만 안색에는 수많은 창상(滄桑)을 겪은 듯한 초연함이 많아졌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뭇신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연파 곁에 조용히 앉아 섬섬옥수로 연파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며 지극히 부드러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연파야, 존주가 네게 면목이 없구나…….”
그 말에 연파는 눈물을 쏟아내며 한 마디도 잇지 못했다.
벽요는 다시 비천들 앞으로 다가와 미소 지으며 그녀들의 날개를 어루만졌고, 아름다운 봉황들 앞에서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았으며, 호법금강들의 갑옷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이때 모두는 직감했다. 법왕이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과 ‘작별’을 고하고 있음을.
갑자기 벽요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 자태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의 몸이 거대하게 커지더니 삼계의 뭇신들과 삼계의 구석구석을 굽어보았다. 그 눈빛은 여전히 자애로우면서도 위엄이 넘쳤다. 이어 그녀는 머리에서 유리비녀를 뽑아 날카로운 끝을 자신의 목으로 겨냥했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피를 다 쏟아 삼계의 불을 끄려는 이다. 피가 다 마르면 법왕은 돌로 변해 조각상으로 되는데 이는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안 됩니다, 존주님! 안 됩니다! 으허억…….”
뭇신들은 자신의 법왕이 죽으려 하자 앞다투어 통곡하며 만류했다.
벽요는 삼계 주층천 상공에 우뚝 서서, 아마도 마지막으로 자신의 세계와 자기 중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직 삼계와 중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쏟아낸들 무엇이 아까우랴! 비록 잠시 불순해졌을지언정, 정신이 깨어 있는 순간만큼은 중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업이 버릴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 왕으로, 그녀의 본성 깊은 곳에 영원히 남겨진 일념(一念)이었다.
벽요가 비녀를 쥔 손에 힘을 주고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날카로운 비녀 끝이 목을 찌르려던 그 찰나, 그녀의 손에 있던 유리비녀가 “펑!”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바람에 날리는 비녀 가루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제가 또 장난을 쳤네요! 저 유리비녀는 가루가 될지언정 존주님을 털끝만큼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영원히 떠납니다, 주인님!”
복룡장도 유리비녀도 모두 주인을 구하고 흙으로 돌아갔다. 이때 벽요는 가루로 흩어지는 비녀를 향해 절규했다.
“기다려라! 비녀야, 내가 곧 너희들을 따라가마!”
이어 벽요는 장창(長槍)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겨누었다…….
그런데 뒤이어 삼계에서 발생한 장면은 그 어떤 신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삼계(森界) 상공에서 아주 강력한 한 가닥 빛줄기가 직선으로 내리쬐었다. 그 강력한 빛은 더욱 멀고 먼 천체(天體)에서 온 듯 삼계의 구름층을 뚫고 만 장(丈)을 비췄는데 너무 밝아서 벽요조차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다.
이어서, 삼계 전체에 감로(甘露)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층천부터 제13층천까지 물을 주었다!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죽지 않으셔도 됩니! 대신선(大神仙)께서 오셨습니다! 대신선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셨다구요!”
유리비녀였다! 유리비녀가 어떻게 살아난 것일까? 누가 그를 구했을까? 보아하니 활기찬 오채신룡 한 마리가 하늘가에서 춤추듯 날아오고 있었다!
벽요가 하계(下界)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그 거세던 불길이 전부 꺼져 있었다!
갑자기 삼계 상공에 수많은 천룡(天龍), 천마(天馬), 비천, 금강 등 수많은 신선들과 상서로움이 나타났고, 또한 지극히 듣기 좋은 음악이 울려 퍼졌는데, 보이는 것은 단지 그녀들이 여러 줄로 늘어서서 자비롭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벽요와 삼계의 생명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만 장에 달하는 광채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았고, 이때 그녀들의 머릿속은 온통 텅 비었다.
저 멀리 하늘 끝에서 청량한 천마(天馬)의 울음이 들려왔다! 순백의 깨끗한 천마 두 마리가 끄는 비할 바 없이 거대한 연방(蓮蓬)이 나타났는데, 셀 수 없이 많은 연꽃잎이 겹쳐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연꽃 주변에는 만(卍) 자와 태극(太極)이 그려진 오색 원반들이 회전하고 있었고, 원반 정중앙에도 만(卍) 자가 있었다.
그 연방 위에 거대한 부처님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쪽빛 머리카락에 성결한 하얀 가사(袈裟)를 입으신 그분의 자비와 위엄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뭇 신들은 이 거대한 부처님 앞에서 아주 작고 아주 작게 변했다…….
오직 막리 노인만이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쪽빛 머리! 백색 가사! 회전하는 원반! 성주(聖主)님이시다! 성주님께서 오셨다! 우주 만왕의 왕 무상왕(無上王)께서 오셨다!”
벽요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무릎을 꿇고 성주님께 절을 올렸다.
“벽요에게 죄가 있어 성주님의 수레가 강림하심을 몰랐나이다!”
성주의 연화방 곁에 있던 한 동자가 벽요에게 말했다.
“우주에는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법칙이 있고, 지금 우주는 이미 ‘멸(滅)’의 때에 이르렀다. 우주의 각 대천체(大天體) 체계가 이미 불순해졌으므로, 각 대천체 체계의 왕이 자신의 세계와 중생을 구하고자 한다면 성주님을 따라 내려가 윤회의 단련을 거쳐야 하는데 지구까지 가야 한다. 무수한 고생을 겪고 무수한 괴로움을 겪으며 심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정화해 처음처럼 순정해지고 우주 특성에 동화해야만 한다. 네가 다시 원만(圓滿)한 후에 너와 네 세계는 비로소 신우주(新宇宙)로 진입할 수 있고 신우주는 원용불멸(圓容不滅)하니 그때가 되면 영생할 수 있노라!”
뭇신들은 ‘지구’라는 두 글자를 듣자마자 마치 벼락을 맞은 듯했다! 그들이 보기에 ‘지구’는 우주의 쓰레기장이며, 비할 바 없이 더럽고 뭇마[郡魔]들이 날뛰는 아주 험악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지구에 갔던 신선이 다시 천국으로 돌아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성주(聖主)님의 저 무한한 자비와 무한히 위엄 어린 눈빛은 아홉 개의 태양보다 따스했고, 성주님의 백색 가사는 구름보다 더 성결했으며, 성주님의 쪽빛 머리카락은 만 리 창공보다 깊었다. 성주님 앞에서, 만왕의 왕 무상왕 앞에서 인류의 언어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성주님께서 입을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따라 세상에 내려가서 법을 바로잡겠느냐!”
이 짧고 단순한 몇 마디 말이 벽요의 귀에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만왕의 왕 무상왕과 눈빛을 교차하자 거대한 온기가 온몸을 관통했다.
벽요는 오른손을 들어 세 손가락을 펴고 맹세하듯 비할 바 없이 결연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제가 가고자 하나이다!“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던 삼계가 꽃향기 가득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름다웠고, 다치거나 죽었던 생명들도 모두 되살아났다!
참으로 너무나도 홍대한 자비였다!
삼계가 즉시 복구된 것을 본 벽요는 눈물을 쏟아내며 바닥에 엎드렸다. 두 팔과 얼굴, 입술을 땅에 바짝 붙이고 만왕의 왕 무상왕께 삼계에서 가장 경건하고 가장 숭경(崇敬)한 예(禮)를 올렸다.
예를 마친 벽요는 일어나 복룡장을 허리에 차고 유리비녀를 머리에 꽂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중생들을 향해 작별을 고했다.
“중생들아! 나는 간다! 내가 지구에서 단련해 원만해서 공을 이뤄, 반드시 우리 삼계를 원용불멸한 신우주로 이끌고 갈 것이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이어 벽요는 구소(九霄)로 날아올라 만왕의 왕 무상왕의 곁으로 갔고, 무상왕과 함께 아득히 먼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이쪽에 있던 삼계 중생들은 또 일제히 하늘끝을 향해 천둥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는~ 당신~이~ 오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위~대~한~ 왕~이~시~여!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시즌 1 종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1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