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악
【정견망】

중국 역사에서 말은 인류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춘추시대 관중이 노마식도(老馬識途 늙은 말을 이용해 길을 찾음)를 이용했다는 기록은 훗날 경험 많은 사람이 상황에 익숙하여 일을 잘 처리함을 비유하는 성어로 인용되곤 한다. 역사 기록에는 위급한 상황에서 주인을 구한 말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다.
말은 매우 영성이 있는 동물로, 민간 전설에는 말이 샘물을 감지한 이야기가 여럿 등장한다. 후한의 광무제 유수(劉秀)가 왕망의 군대와 싸우다 패하여 병사와 말이 지쳤을 때 늙은 말 덕분에 수원지를 찾아 곤경을 벗어난 일이 있으며, 삼국시대 관우가 번성 전투에서 고립되었을 때 적토마가 발로 파내어 만든 맑은 샘물로 잠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 대륙의 산서(山西) 내원(來源)에서 호북, 북경의 창평(昌平)에 이르기까지 마포천(馬刨泉)이라는 이름의 유적과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양연소의 마포천 이야기는 현재 북경 창평구 주변에서 발생했다. 당시 이곳은 송나라와 요나라가 교전하던 전선이었다. 양연소가 작은 부대원들을 이끌고 요나라 접경 깊숙이 들어가 적의 동태를 살피던 중 여러 차례 요나라 정예 부대와 격전을 벌였으나, 비범한 무예로 위험에서 벗어나곤 했다. 한 번은 열배나 되는 적군에게 포위당해 사흘 밤낮을 싸운 끝에 승리했으나, 군사들에게는 약간의 마른 식량만 남았을 뿐 다른 물자와 물이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양연소는 병사들을 이끌고 대공촌(大工村)에 머물며 마을 사람들에게 물을 구하려 했으나, 그곳은 이미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 백성들도 물을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양연소는 백성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으려고 군대를 이끌고 마을 밖 산기슭의 퇴락한 고찰로 옮겨 휴식을 취하며 사람을 시켜 수원(水源)을 찾게 했다.
양가(楊家) 군사들이 사흘 밤낮을 사방으로 수색했으나 물을 찾지 못해 모두가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못한 처지가 되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나귀를 탄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 양연소를 보고 말했다.
“장군께서는 하늘의 별이 내려온 분으로 백성들의 수호신이시니, 저희는 밤낮으로 장군께서 연운 16주를 수복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 물 한 단지는 작은 성의이니 부디 받아 주십시오.”
양연소가 물단지를 받고 감사를 표했다. 자신도 몹시 갈증이 났지만 그 귀한 물을 사찰 뒤로 가져가 다른 장수와 병사들에게 먼저 나누어 마시게 했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에게 사례를 하려고 돌아보니 할머니는 이미 간 곳이 없었다.
의아해하며 대웅전으로 돌아온 양연소는 본존불(本尊佛)의 모습이 방금 전 할머니와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연소는 즉시 병사들과 함께 경건하게 신불(神佛)께 절을 올리며 은혜에 감사드리고, 사찰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했다.
정리를 마친 후 후원에 있던 백마가 갑자기 길게 울부짖더니 사찰 뒤편의 작은 언덕으로 뛰어올라 네 발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젖은 모래만 나오더니 점점 깊이 파내려가자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나왔다. 이를 본 양연소와 병사들이 힘을 합쳐 파헤치니 몇 자 못 가서 맑은 샘물이 솟구쳐 올랐다. 며칠 동안 물을 찾아 헤매던 양가군(楊家軍) 병사들은 크게 기뻐하며 충분한 식수를 얻었고, 마을 백성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가뭄의 재앙을 해결해 주었다.
훗날 현지 백성들은 신선이 내려준 샘물에 감사하며 성금을 모아 이 퇴락한 고찰을 중건했다. 동시에 양연소의 군마(軍馬)가 샘물을 판 이야기를 기념하기 위해 마을 이름을 마포천촌(馬刨泉村 말이 판 샘물이 있는 마을)으로 바꾸었으며, 양연소와 백마, 샘물에 얽힌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참고 사료:
《양가장목계영전설》, 베이징 미술촬영출판사 2015년 출판, 고설송 수집 정리
《양가장 외전》, 허베이 소년아동출판사 1986년 출판, 조운안 수집 정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