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천우를 관통하는 재학으로 만세에 모범이 된 제갈량 (3)

——초선차전(草船借箭)과 차동풍(借東風)

고춘추(古春秋)

【정견망】

제갈량이 아내의 도움으로 발명한 목우(木牛)와 유마(流馬). 명대 사람이 그린 《공뭉출산도(孔明出山圖)》. (공유영역)

동오 명사들과 설전

유비가 장판에서 패해 하구(夏口)로 물러나고 조조의 대군이 압박해오자 동오(東吳)에서는 위아래로 투항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제갈량은 손권과 동맹을 맺어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홀로 노숙을 따라 강을 건너갔으나 동오의 명사(名士)들로부터 갖은 비난과 문책을 받았다. 제갈량은 태연자약하게 초인적인 담력으로 설전을 벌였고, 도도한 변설로 동오의 명사들을 굴복시켰다. 결국 손권을 설득하여 손·유 동맹의 국면을 형성했다.

제갈량과 설전을 벌인 자들은 동오의 장소, 고옹(顧雍) 등 문무 명사 20여 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높은 관을 쓰고 정중히 앉아 있었다. 제갈량은 그들과 일일이 대면하며 성명을 물었다.

장소 등은 제갈량의 풍채가 수려하고 기개가 드높은 것을 보고 필시 유세하러 온 것임을 짐작하여 먼저 질문을 던졌다.

장소는 제갈량이 융중에 은거할 때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유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물었다.

제갈량은 “제 한평생이 적어도 그 정도는 되게 하겠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소는 “유예주(劉豫州 우비)가 삼고초려 끝에 선생을 얻자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하다고 했으나, 지금은 원래 차지하던 형주조차 조조에게 빼앗겼으니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라고 비꼬았다.

제갈량은 “제가 보기에 형양(荊襄 한수 상류)을 취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지만 다만 유예주께서 인의를 실천하시는 명주(明主)라 유표의 땅을 차마 빼앗지 못했을 뿐입니다. 또한 유종이 나이가 어려 아첨꾼들의 말을 듣고 투항해 조조가 득세한 것일 뿐입니다. 얼마 전 유예주께서 강하에 주둔한 것은 더 큰 모략을 위한 것으로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소는 “만약 그렇다면 이는 선생이 관중과 악의에 비긴 것이 말과 행동이 어긋난 것이오. 모두 알다시피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패자가 되게 했고 악의는 약소국인 연나라를 도와 제나라 70여개 성을 차지하도록 도왔으니 이 두 사람은 모두 세상을 구제하고 나라를 다스릴 재능이 있었습니다. 선생께선 자신을 관중, 악의와 비겼으며 마땅히 천하 백성을 도와 해로운 것을 제거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적들을 쳐서 없애야 할 것이오. 하지만 실제로 유예주는 선생을 얻기 전에는 그래도 천하를 누비며 남의 성을 빼앗아 차지하고 있었는데 선생을 얻게 되자 오히려 조조의 공격을 받아 갑옷을 벗어버리고 창을 내던지고 도처로 도망다녔소. 신야를 버리고 번성으로 달아났고 당양에서 패해 하구로 달아남으로써 심지어 머물 곳조차 없게 되었소. 유예주는 어찌하여 선생을 얻기 전보다 얻고 나 후만 못한 것이오? 관중과 악의라면 이렇게 했겠소?”라고 말했다.

諸葛亮(大紀元製圖)
제갈량(에포크타임스)

이에 제갈량은 어이 없어서 웃으며 말했다.

“저의 주공이신 유예주께서는 전에 여남에서 패하자 잠시 유표를 찾아가 의탁하셨습니다. 당시 군사가 1천명도 안 되고 장수라고는 오직 관우, 장비와 조운뿐이었습니다. 유예주가 점거한 신야는 작은 성으로 백성도 적고 양식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저 잠시 머물 곳으로 여겼을 뿐 정말로 그런 작은 곳에서 일방을 쟁패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병장기도 부족하고 군량도 부족한 군대임에도 화공으로 박망을 불태우고 신야를 불태워 백만 조조 대군의 선봉대를 물리쳤고 하후돈, 조인이 놀라 간담이 서늘하게 했습니다. 제 생각에 관중과 악의의 용병술도 이보다 뛰어나진 못했을 겁니다.

다만 중과부적이고 일시적인 패배는 병가의 상사입니다. 과거에 한고조께서도 여러 차례 항우에게 패했지만 결국 해하전투에서 항우를 철저히 물리쳤는데 이는 한신처럼 진정으로 모략이 있는 영웅이 보좌한 결과입니다. 집 안에 앉아 천하를 논할 때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듯 거들먹거리지만, 막상 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전략을 짜야 할 때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야말로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장소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뒤이어 나선 우번(虞飜), 보즐(步騭), 설종(薛綜), 육적(陸績), 엄준(嚴畯), 정덕추(程德樞) 등도 제갈량의 거침없는 답변에 입을 다물고 부끄러워했다.

이때 장온(張溫)무장, 낙통(駱統) 등이 또 질문을 하려 하자 무장인 황개(黃蓋)가 갑자기 들어와 큰소리로 외쳤다.

“공명은 당세의 기재(奇才)인데 여러분들이 돌아가면서 그를 힐난하는 것은 손님을 공경하는 예가 아니오. 조조의 대군이 경계에 도달했는데 적을 물리칠 계책은 생각하지 않고 이곳에서 입씨름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이에 황개가 공명을 손권에게 인도해 정세를 분석해 유비와 연합하는 이해관계를 설명해달라고 청했다.

초선차전(草船借箭)

적벽대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일화는 제갈량이 초선(草船)으로 화살을 빌린 것이다.

정사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없지만 나관중은 《삼국연의》에서 아주 생생하게 묘사했고 중국 민간에서도 희극을 통해 널리 전해졌다.

초선차전(草船借箭)은 정사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나관중의 《삼국연의》에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으며 중국 민간에서도 연극 형식으로 널리 전해졌다. 양정정(楊靜亭)이 저술하여 청나라 도광 25년(1845년)에 발간된 《도문기략(都門紀略)》에 기재된 경성 황피반(黃皮班)과 방자반(梆子班)의 장기 공연 목록 중에도 ‘초선차전’ 등 삼국 관련 곡목이 있었다.

초선차전 이야기의 발단은 주유가 조조 군대와 수로에서 교전할 때 활과 화살이 가장 좋은 공방 무기라고 논의한 데서 시작한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화살 십만 대가 있어야 충분했다. 전황이 긴박하여 짧은 시간 내에 십만 대의 화살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 오나라 장인들의 능력으로는 이만큼의 화살을 만드는 데 적어도 열흘은 걸려야 했다.

주유는 제갈량의 지혜가 뛰어남을 알고 그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른 속도로 십만 대의 화살을 만들 수 있을지 조언을 구했다. 제갈량은 주유에게 사흘이면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주유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제갈량이 큰소리를 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침착하게 군령장(軍令狀)까지 작성하며, 만약 그때까지 화살을 다 내놓지 못하면 군법에 따르겠다고 했다.

제갈량은 화살을 만든다면서 장인은 찾지 않고, 노숙에게 배 스무 척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각 배에는 군사 서른 명씩 태우고 배 전체를 푸른 포장으로 덮은 뒤 짚을 가득 꽂게 했다. 제갈량은 노숙에게 자신의 계책을 비밀로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노숙은 제갈량을 위해 배와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했지만 그 속에 담긴 오묘한 도리는 알지 못했다.

제갈량은 사흘이면 십만 대의 화살을 준비할 수 있다고 했으나 첫날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날이 다가오는데도 화살 한 대 보이지 않자 모두가 제갈량을 위해 땀을 쥐며 걱정했다.

셋째 날 한밤중에 제갈량은 조용히 노숙을 배 안으로 청했다. 노숙이 나를 불러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묻자 제갈량은 자신과 함께 화살을 가지러 가자고 말했다. 노숙이 의아해하며 어디로 가서 가져오느냐고 묻자 제갈량은 웃으며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제갈량은 긴 밧줄로 배 스무 척을 서로 연결하게 한 뒤 조조 군의 진영을 향해 나아갔다.

그날 밤, 큰 안개가 하늘을 뒤덮자 제갈량은 선단에 쾌속 전진을 명령했다. 선단이 조조 군의 진영에 접근했을 때 제갈량은 선단을 일렬로 배치하게 한 후 군사들에게 배 위에서 북을 치며 함성을 지르라고 명령했다.

노숙은 겁에 질려 제갈량에게 우리에게는 겨우 작은 배 스무 척과 삼백여 명의 군사뿐인데 만약 조조 군이 쳐들어온다면 우리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웃으며 조조가 이런 큰 안개 속에서 군대를 출동시키지 못할 것이라 보장하니 우리는 그저 배 안에서 술이나 마시자고 말했다.

강 위에서 북소리와 함성이 들리자 조조는 대장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했다. 장강 위에 짙은 안개가 자욱하여 적군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었기에, 적군이 상륙하는 것을 막고자 수군 궁수들을 보내 무차별 사격을 하게 했다. 조조 군은 약 만 명의 궁수를 강가로 보내 함성이 들리는 곳을 향해 맹렬히 화살을 쏘았다.

순식간에 화살이 빗방울처럼 제갈량의 선단을 향해 날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 위의 짚단에는 화살이 가득 박혔다. 그러자 제갈량은 선단을 돌려 화살을 맞지 않은 쪽이 조조 군을 향하게 했고, 그곳도 곧 화살로 가득 찼다. 배에 화살이 충분히 박혔다고 판단한 제갈량은 선단에 신속히 귀환할 것을 명령했다. 이때 안개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으며 조조 군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했을 때 제갈량의 선단은 이미 멀리 가버린 뒤였다.

제갈량의 선단이 오나라 군영에 도착했을 때 주유는 이미 오백 명의 군사를 보내 화살을 옮기려 기다리고 있었다. 수량을 확인해 보니 배 위의 짚단에는 십만 대가 넘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주유는 제갈량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으며 노숙은 선생은 참으로 신통하다며 어떻게 오늘 장강에 큰 안개가 낄 줄 알았느냐고 찬탄했다.

제갈량은 “장수로서 천문과 지리에 통달하지 못하고 기문(奇門)을 모르며 음양(陰陽)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도(陣圖)를 보지 못하며 병세(兵勢 군대의 세력)에 밝지 못하다면 그것은 평범한 재주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제갈량은 천상(天象)에 정통해 당일 장강 수면에 큰 안개가 낄 것을 알고 있었다. 안개를 교묘히 빌려 엄폐물로 삼고 고의로 조조 군을 놀라게 하여 힘들이지 않고 십만 대의 화살을 얻은 것이다.

차동풍(借東風)–동풍을 빌려오다

제갈량의 지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동풍을 빌린 이야기다.

사서 《강표전(江表傳)》의 기재에 따르면, 동오 군대가 조조 군을 화공(火攻)으로 공격할 때 실제로 “동남풍이 급하게 불었다”고 한다. 송원(宋元) 시대 이래로 민간에서는 제갈량이 바람을 빌기 위해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으며, 원나라 잡극 중에도 왕중문(王仲文)이 쓴 《칠성단제갈제풍(七星壇諸葛祭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린 사적은 정사에는 보이지 않으나 민간에서 널리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남풍을 빌린 이야기는 주유가 조조 군을 화공으로 공격할 계책을 세운 뒤, 문득 겨울에는 서북풍이 성행하고 동남풍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주유는 마음이 복잡해져 병을 핑계로 침상에 누웠다.

노숙이 공명에게 주유의 병을 진찰해 달라고 청하자, 공명은 종이 위에 열여섯 자를 비밀리에 적었다. “조공을 깨뜨리려면 화공을 써야 마땅하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으나 오직 동남풍만이 부족하구나.[欲破曹公,宜用火攻;萬事具備,只欠東風]”

이 글귀가 주유의 속마음을 꿰뚫자, 주유는 마음속으로 제갈량을 신인(神人)이라 감탄하며 제갈량에게 방도를 마련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공명이 말한다. “소생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일찍이 기이한 분을 만나 기문둔갑(奇門遁甲) 천서(天書)를 전수 받아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습니다. 도독께서 만약 동남풍을 원하신다면 남병산(南屏山)에 편평한 대를 하나를 세우고 이를 칠성단(七星壇)이라 부르십시오. 높이는 구 척으로 하여 삼 층으로 만들고, 백이십 명의 인원을 써서 깃발을 들고 둘러싸게 하십시오. 제가 단 위에서 법(法)을 펼쳐 사흘 밤낮 동안 큰 동남풍을 빌려 도독의 용병을 돕고자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주유가 말했다. “사흘 밤낮까지는 필요 없고 단 하룻밤이면 대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교전 형세가 눈앞에 닥쳤으니 부디 조금도 지체하지 마십시오.”

공명이 말했다. “11월 20일 갑자일에 바람을 빌기 시작하여 22일 병인일에 바람이 멈추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주유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몸을 일으켜 건장한 군사 오백 명을 보내 남병산에 단을 쌓게 하고, 백이십 명을 뽑아 깃발을 들고 단을 지키며 명령을 기다리게 했다.

공명은 11월 20일 갑자일 길한 시간에 목욕재계하고 도포를 입은 채 맨발에 머리를 풀고 단 앞으로 나아갔다. 단을 지키는 장수와 병사들에게 분부하기를 “함부로 위치를 이탈하지 말라. 서로 소곤거리지 말라. 함부로 말을 섞지 말라. 대경실색하여 소란을 피우지 말라. 명을 어기는 자는 베리라!”라고 하니 모두가 명을 받들었다. 공명은 천천히 단에 올라 방위를 살피고 향로에 향을 피우며 물그릇에 물을 붓고 하늘을 우러러 조용히 빌었다. 공명이 하루에 세 차례 단을 오르내렸으나 동남풍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주유 일행은 모두 중군 장막 안에서 동남풍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개 등은 이미 불을 지를 배 스무 척을 준비해 두었고, 조조의 진영 안에는 주유가 보낸 내응자 감녕 등이 수군 도독들을 붙잡고 진영 안에서 매일 술을 마시며 단 한 명도 강가로 나가 정탐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사방은 동오의 병마가 물 샐 틈 없이 에워쌌고 장수들은 저마다 주먹을 불끈 쥐며 명령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날 밤, 날씨는 맑았으나 미풍조차 불지 않았다.

주유가 노숙에게 말했다.

“공명의 말이 참으로 허황하구려. 한겨울에 어디서 동남풍이 온단 말이오?”

노숙이 대답했다. “제 생각에 공명은 헛된 말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삼경 무렵이 되었을 때 갑자기 바람 소리가 울리고 깃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주유가 장막 밖으로 나가보니 깃발 끝이 정말로 서북쪽을 향해 나부꼈고, 순식간에 동남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주유는 경탄하며 말했다.

“이 사람은 천지의 조화를 빼앗는 법과 귀신도 측량할 수 없는 술(術)을 지녔으니, 그 신기묘산(神機妙算)은 사람이 따라갈 수 없구나.”

(계속)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b5/16/5/25/n793067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