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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확한 상태를 개변하는 것’에 대한 얕은 인식

약매(若梅)

【정견망】

우주 정법은 표면으로 빠르게 추진되고 있으며, 이는 또한 ‘거센 파도가 모래를 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래는 걸러지고 금만이 남을 수 있다. 표면으로 갈수록 좋지 않은 물질은 더욱 나빠지지만 능력은 오히려 작아지며, 이때 신적(神跡)이 나타나는 일도 점점 많아진다. 수련 중의 각종 부정확한 상태도 두드러져 나타나는데, 어떤 동수는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불법적으로 구금당하며, 어떤 이는 병업(病業) 가상(假象)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지역은 밖으로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동수가 각기 다른 정도로 감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부정확한 상태를 개변할킬 수 있을까? 거시적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수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사부님과 법을 믿는 마음(信師信法)이 에누리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는 주로 업력을 소멸하는 문제와 구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부분에서 나타난다. 다음은 개인적인 현재 층차에서 이해한 이 두 방면에 대한 얕은 인식이다.

1. 업력 소멸

어떤 사물의 본질을 밝히려면 그 근원부터 시작해야 한다. 업력에는 새로 지은 업력과 과거의 업력 두 종류가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업력에 관한 가르침을 92곳에서 주셨으니 가히 그 비중이 매우 크다. 어떤 행위가 업력을 만드는가? 나쁜 일을 하는 것, 개인의 분투로 억지로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것, 친척의 죄과를 대신 감당하는 것,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것,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것, 누군가를 괴롭힌 것, 사법(邪法)을 연마한 것, 점을 치는 것(남의 점을 봐주거나 자기 점을 보는 것), 살생, 기를 훔치는 것, 사람 마음의 집착,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것, 법에 있지 않은 각종 일사일념(一思一念), 당문화(黨文化) 등등이다. 심지어 사람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업을 짓는 것이어서 먹고 자고 행하며 사람 사이의 사회적 행위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업을 짓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사람은 이전에 나쁜 일을 하여 생긴 업력(業力) 때문에 병이나 마난(魔難)이 조성된다.”라고 하셨고, “그에게 병이 있고 모든 불행이 조성되는 근본원인은 업력으로서, 그 흑색물질의 업력장(業力場)이다.”라고 하셨다. 대법제자에게 있어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한다면 새로 짓는 업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생생세세의 윤회 속에서 사부님의 보살핌 아래 모두 업을 소멸한 후 전생(轉生)했으므로 남은 것도 이미 매우 적다.

가장 간단한 소업(消業) 방식이 바로 연공이다. 특히 가부좌할 때 다리가 아픈 것은 흑색 물질을 백색 물질로 전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신체상에 나타나는 각종 ‘통증’은 모두 좋은 일이다. 나는 원래 가부좌를 한 시간만 하고 끝냈으나, 지금은 스스로 아픔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버티다가 다리를 내리도록 요구하고 있다. 단체 법공부를 할 때 결가부좌를 하면 왼쪽 무릎이 거의 지면에 닿는 느낌이 든다.

다음으로 고생 중의 고생을 겪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든지 그는 겪는 고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며 빚을 다그쳐 갚는다고 여기는데, 그는 바로 이런 생각이다.”라고 하셨다. ‘고생을 낙으로 삼음’은 수련의 표준이다. 사람이 이 물질 신체를 가진 이상, 우리 이 육신은 고생을 겪고 생로병사를 초탈하며 명리정구(名利情仇)에서 뛰어 나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절반의 업력을 소멸해 주셨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의 심성(心性)을 제고하고 업력을 전화하며 공(功)을 자라게 하는 데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소업의 관건은 심성을 제고하는 데 있다. 심성을 제고하려면 반드시 법을 잘 배워야 하고, 진지하게 법을 공부하며 대법에 동화되어야 한다. 심성이 제고되면 또한 “일거사득(一舉四得)”(《전법륜》 제4강)할 수 있다!

어떤 동수는 신체에 병업 가상이 나타난 후 심성을 닦는 데 공을 들이지 않고 아주 긴 시간 동안 발정념(發正念)만 한다. 발정념이 효과가 없는가? 물론 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불법신통(佛法神通)은 법을 실증하는 데 쓰는 것이지 당신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첫 번째다. 두 번째로, 발정념은 소위 말하는 그 ‘병’에 대해 절대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 마치 양방 치료처럼 표면만 치료할 뿐이다. 수련인에게는 근본적으로 다른 공간의 그 ‘영체(靈體)’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일파조(一把抓)” 식의 처리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어떤 동수는 침을 맞으러 가기도 하는데, 이미 맥과 혈이 없어진 상태에서 어디에 침을 놓겠는가! 발정념은 주로 우리의 사상 업력을 제거하고 정념(正念)을 일으키며 구세력의 간섭을 부정하는 것이다. 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마난은 자연히 소멸된다.

사람이 세간법(世間法) 수련을 벗어날 때는 업력이 없으며 신체는 완전히 고에너지 물질로 전화된다. 그때는 주로 심성의 제고뿐이다.

2. 구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함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우주 대법이며, 사부님께서 정법하러 오셨으니 무소불능하시다. 그런데 왜 수련인에게 여전히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며 구세력이 우리를 교란할 수 있는가? 구세력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왜 존재할 수 있는가? 법에서 알 수 있듯이 개괄적으로 말하면 우주의 위에서 아래까지 층층이 20%의 신이 있다. 우주가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마지막 ‘멸’에 들어설 때 그들은 자기를 보존하려 했다. 그들이 정법에 참여했는데, 그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기에 각 대법제자마다 반(盤)을 하나씩 배치해 자신들이 파멸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그들은 괴멸(壞滅) 시기의 신이기에 그들의 지혜 또한 괴멸 시기의 지혜일 뿐이다. 만약 그들의 배치대로 정법한다면 그것은 탕만 바꾸고 약은 바꾸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구세력 스스로는 자신들이 배치한 것이 가장 좋으며 우주 창생을 구하고 돕는 것이라고 여긴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참여는 정법의 장애가 되었고 정법을 교란하는 마(魔)가 되었지만 그들 자신은 이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부님께서는 왜 그들을 손 한 번 휘둘러 없애버리지 않으시는가? 내가 이해하기로 첫째는 만약 다 없애버린다면 누구를 구하겠는가? 정법이란 바로 바르지 않은 모든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주에 상생상극(相生相克)의 이치가 제약하고 있으므로 교란은 필연적이며, 구세력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또 다른 어떤 세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생상극의 이치를 언급하니 10여 년 전 법리적으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우주의 모든 것은 다 진선인(眞善忍)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진’ 속에도 진선인이 있고 ‘선’ 속에도 진선인이 있으며 ‘인’ 속에도 진선인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魔)’도 진선인이 있는가? 어느 날 《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을 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보았다.

“真(쩐)ㆍ善(싼)ㆍ忍(런)은 모든 일체 일체의 우주의 특성이고 우주의 법은 바로 真(쩐)ㆍ善(싼)ㆍ忍(런) 중에서 나온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법은 더욱더 복잡해지며 요구가 더욱 많고 더욱 커지는데 마치 피라미드와 같다. 이 대법은 우주 중의 중생에게 부동한 층차의 생존환경을 개척해 주었고 부동한 층차의 불ㆍ도ㆍ신과 인간 그리고 마(魔)와 기타 중생을 창조하였는데 천(天)ㆍ지(地)와 일체 물질을 포함한다.”

그때서야 진선인이 마를 조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휴스턴 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전반 우주는 모두 ‘真(쩐)ㆍ善(싼)ㆍ忍(런)’ 물질요소로 구성된 것으로 아주 높은 경지 중에서도 ‘真(쩐)ㆍ善(싼)ㆍ忍(런)’이다. 真(쩐)ㆍ善(싼)ㆍ忍(런) 중에서 좋음이 생겨날 수 있고, 아름다움이 생겨날 수 있으며, 慈悲(츠뻬이)가 생겨날 수 있고 또한 정반(正反) 두 가지 요소가 생겨날 수 있다. 그럼 ‘인(忍)’, 그는 참을 수 있는 것과 참을 수 없는 것을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법(法)이 아래로 갈수록 법리는 더욱 방대하고 복잡하며, 음양(陰陽), 상생상극(相生相剋)이 모두 ‘真(쩐)ㆍ善(싼)ㆍ忍(런)’에서 나온다. 매 층차의 경지 중에서 더욱 아래로 내려가 사람 이 일보까지 왔을 때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인류는 선과 악이 있고, 좋고 나쁨이 있으며, 또한 정(情)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이치는 또 거꾸로 되었다. 사람의 이치 중에 왕자치국(王者治國), 병정천하(兵征天下), 강자위영웅(強者爲英雄)이 출현했다. 인류는 반신문화(半神文化)가 있은 후, 더욱 복잡한 문화표현이 나타났는데, 인류사회에서 말하는 무슨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 등등 이러한 것들을 포함한다. 인류에게는 바른 법리가 없기 때문에 사람 또한 우주의 진법(真法)이 무엇인지 모르며, 진정한 좋고 나쁨과 시비를 똑똑히 가리지 못한다.”

내가 이해하기로 마(魔) 속에 포함된 것은 부진(不真), 불선(不善), 불인(不忍)이다. 한번은 꼬마 동수가 내게 물었다. “삼계의 이치는 반대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의예지신’도 반리(反理)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반리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정리(正理)다. 삼계 내에는 위사(爲私)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인의(仁義)를 지키려 하는지 아니면 출세하려 하는지, 남을 위하는 등은 모두 ‘나’를 중심으로 하며 조건이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가에서 말하는 ‘인(仁)’은 인애(仁愛) 즉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각종 정(情)이 포함되어 있다. 정은 더러운 것이며 수련 중에서 제거해야 할 집착심이 아닌가!” 석가모니, 예수, 노자 등은 단지 대법이 널리 전해지기 위한 문화를 다졌을 뿐이며, 대법은 우주를 원용(圓容)하고 우주 역시 대법을 원용한다.

다시 구세력에 대해 계속 탐구해 보자. 법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자기를 구하려 한다. 모든 방대하고 거대한 천체들이 삼계 내로 발을 하나씩 들이밀어 거대한 공간과 시간으로 사부님의 표면과 신체(神體)를 격리했다. 만약 사부님께서 공(功)을 삼계로 돌리신다면 그것은 마치 대공포로 모기를 쏘는 것처럼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우주 정법이 앞으로 추진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그들은 이 시간 차를 이용해 대법제자의 제고를 핑계로 중공 사당(邪黨)을 만들어 끊임없이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마난을 가중하고 전통문화를 파괴하며 당문화로 세인들을 세뇌했다.

사부님께서는 “그해의 예수, 석가모니 제자들을 그것은 모두 이렇게 박해했고, 그것은 모두 이렇게 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를 도와 수련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래 좋아, 당신이 안심하지 못하는구나, 좋다, 당신의 업력이 좀 많아지면, 당신의 업력을 모두 집중시켜, 다 그곳에 내던진다. “아이고, 내 병이 재발했다!””(《2019년 뉴욕 법회 설법》)라고 하셨다. 그들은 바로 이렇게 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세력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현재 층차에서 법에서 깨달은 것은, 하나는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계취계(將計就計)’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가? 간단히 말해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발정념과 안으로 찾기라는 법보(法寶)를 주셨다.

내가 깨달은 것은 구세력 층층 우주의 이 20%의 신들은 바로 위층을 이용해 아래층을 소멸하고 있으며, 자신들 위층에 또 신(神)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기에 스스로가 최고라고 여긴다. 사부님께서는 “지금까지 해오면서, 중생들도 구세력이 하려고 하는 일체는 모두 풀 수 없고 뿌리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보았다.”, “정법 중에서 더 위로 올라가면 구세력은 없어지고, 구세력의 배치와 관련 있는 일체의 요소는 없어져 흐지부지되고 만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라고 하셨다. 내가 이해하기로 그들은 뿌리가 없으며, 이것이 우리가 그들을 부정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법에서 닦아낸 정념이다.

그렇다면 신체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는 것은 소업인가 아니면 구세력의 교란인가? 사부님께서는 《대뉴욕지역 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구세력의 교란인지 아닌지? 이에 대해 말하자면 자신이 자신의 가장 표면적인 신체를 개변시킬 때 여전히 일부분은 당신들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말하면 모두 그리 크지 않으며, 법을 실증하는 데는 그리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대단히 큰 곤란이 나타났을 때는 틀림없이 사악이 교란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발정념을 하여 그것을 깨끗이 제거해 버려야 한다! 오늘날 대법제자들이 한 것은 법을 실증하는 일이며 가장 신성하고 가장 위대한 일이다. 만약 당신이 대법 일을 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 관건적 시기에 어떤 일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교란이다.”

즉, 작은 불편함은 소업이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라면 어찌 구세력의 교란이 아니겠는가? 어떤 동수는 한결같이 소극적으로 감당하기만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법시기이며 사부님께서는 ‘7·20’ 이전에 법을 얻은 제자들을 이미 제자리에 밀어주셨고 어떤 난관도 설정하지 않으셨다. 왜 적극적으로 반박해(反迫害)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주셨다.

며칠 전 나는 ‘정(情)’의 교란을 받았다. 사정은 이랬다. 나와 남동생은 아홉 살 차이가 난다. 동생이 탁아소에 다닐 때 내가 동생을 업어 키웠고 유치원에 갈 때 손을 잡고 데려다주었으며 결혼할 때는 전력을 다해 뒷바라지했다. 집 수리부터 예물 비용까지 모두 내가 냈고 동생이 식당을 다섯 번 열 때 내가 다섯 번 모두 자금을 투자했다. 며칠 전 갑자기 올케에게 전화가 와서는 부모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1억 원을 갚지 못해 은행에서 집을 압류하려 한다고 했다. 또 동생이 남과 싸워서 상대방이 합의금 십만 위안을 요구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구속된다며(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내게 얼마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묻고 이혼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어머니도 울면서 형제간에 그럴 수 있느냐는 둥 말씀하셨다. 한때 이 일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으며 치통까지 생겼다.

집은 부모님 것이니 본래 내 지분도 절반이 있는데, 지금 그들은 집을 사유화한 것도 모자라 내게 대출금까지 갚으라고 한다.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대법제자에게 우연한 일은 없으니 반드시 세심하게 안으로 찾아봐야 했다. 왜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저토록 ‘당당’할 수 있는가? 내가 내 경제적 어려움을 말했을 때 사람들은 이해하기는커녕 왜 그렇게 ‘분노’하는가? 그리고 나는 왜 이토록 마음이 괴로운가? 마치 누구에게 빚이라도 진 것 같았다. 먼저 의존심을 찾았다. 의존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유능하고 능력이 있다는 표식이며, 존중받고 아첨받는 그 느낌을 즐기는 것이다. 다음은 질투심이다. 내가 집에 기여한 바가 가장 큼에도 어머니는 항상 남동생 편만 드신다. 그 외에도 명예심, 과시심, 체면심, 이익심, 맹목적인 자신감, 당문화 등을 찾았다.

동수도 내게 조언해주었다. “만약 당신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그것은 그들이 당신에게 빚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속인이 신(神)에게 빚을 진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나는 문득 눈이 번쩍 뜨였다. 정을 내려놓자 ‘화(火)’가 사라지고 치통도 나았다. 안으로 찾는 것이 참으로 좋다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본래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으나 구세력은 내 ‘정’이 일부만 제거된 것을 보고 “어머니가 또 와서 소란을 피우겠지”라는 한 생각을 이용해(당시 즉시 부정하지 못했다) 일을 한 단계 더 악화시켰다. 심지어 목숨을 담보로 압박해 왔다. 갑자기 마음이 허전해지고 심장이 쥐어짜듯 아팠다.

나는 수련인이니 계속해서 안으로 찾아야 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신기루와 같은 허황된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려 해왔다. 어떤 망념이 충족되지 않을 때 사람의 마성(魔性)이 드러나는 법이다. 나는 집안의 맏이로서 여덟 살 때부터 밥을 짓고 동생을 돌봤으며 각종 집안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철이 들자마자 이 집을 위해 헌신하고 분투했으며 내 마음속에는 오직 친정집뿐이었다. 정력이든 금전이든 아끼지 않았다. 부모님과 친척 친구들은 모두 나를 효녀라고 칭찬했고 심지어 동생조차 “누나는 엄마를 너무 버릇없게 만들었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정이 너무 깊어 구세력에게 빈틈을 보였고 모녀지간의 정을 이용해 박해를 당한 것이다. 속인들은 모성애가 위대하다고 찬양하지만 구우주의 위사(爲私)한 이치가 모든 것을 제약하고 있으니, 딸 또한 엄마 손안의 바둑돌에 불과할 뿐이다. 구세력의 배치를 인식하고 나자 홀가분하게 마음이 풀렸다. 우리에게는 생생세세의 어머니가 아주 많다. 오직 이 생명이 대법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남을지 말지가 결정될 뿐이다. 우리가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정진요지》〈불성무루〉)해야만 가족을 구할 수 있고 우리 세계의 중생이 되게 할 수 있으니 그것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길이다. 흉금을 넓혀 국면을 열고 용량을 확대해 더 많은 생명을 구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만나는 일은 모두 좋은 일이다. 이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법에서 인식해야 한다. 그저께 밤 모기에게 여러 군데 물려 크게 부풀어 올랐다. 예전 같으면 재수가 없다거나 짜증이 났겠지만, 지금은 기쁘다. 업의 빚을 갚은 것이며 ‘인(忍)’의 인내력을 증강시킨 것이니 긁지 않고 10분 정도 참으니 감각이 없어지고 작은 붉은 점만 남았다. 오늘 아침 창가에서 죽은 모기 한 마리를 보았는데, 인연 관계가 없다면 모기도 당신을 물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았다.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련 제고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내 주변의 한 노동수는 모든 면에서 정진했으나 얼마 전 불법적으로 6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일찍이 우리 소조에서 “내가 비록 12번이나 불법 납치당했지만 매번 정념으로 뚫고 나왔으니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조금 극단으로 간 것이 아닌가? 수련 중 누락된 부분이 무엇이기에 불법 납치를 당했는지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념’을 강조한 것이다. 무의식중에 자아를 실증했고 자각하지 못한 채 부족을 영광으로 여긴 것이다.

가장 뚜렷한 사례로, 침대에 누워 지내는 70대 동수는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남들이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평범한 외모일 뿐이다. 동수가 색욕심이라고 지적하자 화를 내며 참지 못했다. 이런 방면은 경계해야 한다. 높은 층차에 이르면 바로 선택이다. 신(神)을 선택하면 당신은 신이고, 사람을 선택하면 당신은 사람이다. 자신의 수련에 유감을 남기지 말자.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소중히 여기신다.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서 사람을 많이 구하자.

어떤 동수가 내게 어떻게 해야만 정진으로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웃으며 말했다. “하루 24시간 중 몇 시간이나 법에 있는가에 따라 당신의 정진 정도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먹고 자는 것은 이 육신이 속인 사회에서 생활하게 하기 위함이고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두 시간 남짓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22시간은 모두 그 두 시간을 위해 기초를 닦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법공부를 하든 발정념을 하든 연공을 하든 모두 그 두 시간의 사람 구함을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2015년 뉴욕법회설법》에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하나의 극본이며 구세력이 배치한 반(盤)이 어디로 돌아가느냐에 따라 사람에게 어떤 상태가 나타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용감하게 직면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법이 있고 곁에 사부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교란을 인식하고 관념을 바꾸며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만을 가야 한다. 모든 것은 순서가 있다.

마난에 직면하여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점을 요약해 보았다.

첫째,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한다.

둘째, 발정념으로 교란을 해체한다.

셋째, 안으로 찾는다.

넷째, “해내는 것이 수련이다”.

이 네 가지를 해낸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깨뜨릴 수 없는 힘을 갖게 되어 업력을 사라지게 할 것이며, 존재하는 부정확한 상태를 변화시켜 개인 수련을 제고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