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성(必成)
【정견망】
오늘 사부님의 《정진요지》 〈법 중에 용해되자(溶於法中)〉 경문을 다시 읽었다. 이를 통해 ‘법 중에 용해된다’는 네 글자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기에 동수들과 나누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 용해되자〉에서 “사람은 마치 하나의 용기(容器)와도 같아 무엇을 담으면 곧 무엇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 십악(十惡)을 구비한 현실 사회에서 생존하기에 날마다,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좋지 못한 것들을 머리에 담게 된다. 오직 우리가 매일 법공부를 할 때만이 진정으로 마음속에 좋은 것을 담는 시간이며, 또한 우리가 법에 동화되고 법 속에 녹아드는 직접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일상생활로 들어가면 때로는 또 좋지 못한 것들이 담기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상태가 좋았다 나빴다 하는데, 사실 이러한 상태는 많은 경우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완전히 법 중에 녹아들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 합당한 비유는 아닐 수 있지만, 만약 대법을 끝없는 대해(大海)에 비유한다면, 많은 경우 우리는 단지 법으로 우리 신체의 표면을 적셨을 뿐 진정으로 법이 우리 신체 속의 매 미시적인 입자까지 녹아들게 하진 못했다. 혹은 무조건적으로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는데, 이는 사람에게 각양각색의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관념에 가로막혀 마땅히 법에 동화되어야 할 우리 자신의 일부분을 방해받곤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난이나 이른바 번거로움과 고험 등은 본래 우리가 제고해야 할 요소이며, 또한 우리가 그것을 제거하고 법으로 충실히 채워야 할 부분이자 법 속에 녹아들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후천적인 관념과 업력의 저항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늘 남겨두는 부분이 생기게 되며, 때때로 업력과 관념이 우리 대뇌를 점유하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에서 “내가 당신들에게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집착심을 많이 제거하여 사람의 각종 관념을 내려놓으라고 함은, 당신들에게 일부분만 갖고 가라는 것이 아니고, 원만하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많은 동수가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많은 경우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만 해낼 뿐 집착심을 많이 제거하고 사람의 각종 관념을 내려놓는 것은 해내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단지 표면상에서만 수련하는 것이 되어 백 퍼센트 그 속에 녹아들 방법이 없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하신 것은, 바로 우리가 그러한 집착심과 사람 속에서 형성된 각종 관념을 인식하여 심성(心性)을 제고하라는 것이다. 오직 이래야만 우리는 시시각각 자신의 정념(正念)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자신을 아무런 유보 없이 “법 중에 용해되게” 할 수 있다.
개인 인식이니 타당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8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