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동궁으로 돌아온 후의 첫 만찬이니 당연히 정중히 대접해야 했다. 그리하여 묵묵은 이 진수성찬을 성호당(晟皓堂)에 준비했다.
성호당의 풍경은 매우 화려하고 우아했다. 이곳에는 여러 그루의 아름다운 산호가 흔들거리며 자태를 뽐내고 있어 몹시 매혹적이었다. 또한 이곳은 전 해역의 황금 분할점이며 빛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낮에는 태양의 광채가 비치고 밤에는 달의 청아함을 빌려올 수 있었는데, 여기에 물결의 움직임과 교차하는 빛과 그림자, 반짝이는 산호, 춤추는 인어까지 더해지니 참으로 보기 드문 절경이었다.
해질녘, 청허와 도도, 묵묵은 성호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빌려 도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와! 주인님, 저희 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세요.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네요. 시 한 수 읊고 싶어집니다.”
청허가 천천히 가효(佳肴 좋은 음식)를 씹고 있다가 도도가 시를 읊겠다는 말에 조금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시를 읊을 줄 알게 되었느냐. 좋은 일이구나.”
도도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헤헤, 남주에서 좀 훈도받았지 않습니까!”
청허가 물었다.
“이번 남주 여정은 전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고상한 것을 훈도받았단 말이냐?”
묵묵이 이어 말했다.
“주인님, 얼른 한 수 읊어보라 해보세요.”
청허가 고개를 끄덕이자 도도는 짐짓 엄숙한 체하며 읊었다.
“성호당 앞에서 좋은 음식 맛보니,
나와 주인님 기분이 최고라네.
산호와 인어 물결 따라 춤추나니
…
역시 집이 제일 편안하구나.”
묵묵은 옆에서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고, 청허는 다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구나, 아주 좋아.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도도가 말했다.
“그 이름이 뭐였더라. 묵묵, 그 풍류 넘치던 남신 이름이 뭐였? 우리가 남주에서 늘 시 읊는 걸 보았던 그 사람 말이야?”
묵묵이 말했다.
“아! 늘 연한 푸른색 장삼을 입던 그 잘생긴 남신 말이지. 그… 이름이 풍잠이었던 것 같아. 맞아, 풍잠.”
도도는 주인님이 풍잠이라는 이름을 듣자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을 살폈다.
묵묵도 이를 알아채고 얼른 기세를 몰아 말했다.
“맞아 맞아, 그 남신은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시도 잘 읊고 정말 재능이 넘쳤지.”
도도는 주인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도도가 다시 말했다.
“그거 아니. 듣기로는 그와 요진의 사이가 각별하대. 둘이 사적으로 자주 담소를 나누며 웃고 떠든다더라고.”
묵묵은 주인님이 이제 수저를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 것을 보고 계속 말을 이었다. “요진이 그를 여러 번 구해주기도 했다던데.”
이때 청허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엄숙하게 그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도도와 묵묵은 천연덕스럽게 무고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인님, 저희는… 저희끼리 이야기한 건데 왜 그러세요.”
청허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아, 미안하구나. 밥 먹자.”
묵묵이 이때 진지해지며 물었다.
“주인님, 수년 동안 정진하며 고되게 수련하셨는데, 이제 이 약수의 곤경에서 벗어나셨습니까?”
청허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도도 역시 진지하게 말했다.
“주인님,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정확하다고 하잖아요. 저희가 보기엔 주인님께서 아직 마음의 매듭을 풀지 못하신 것 같아요.”
청허도 흥미가 생겨 물었다.
“오, 너희가 보기엔 내 마음의 매듭이 어디에 있는 것 같으냐?”
묵묵이 말했다.
“제 생각엔 주인님의 매듭은 생각을 깊이하지 않으신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토록 모진 칼을 맞아야 했는지 말입니다.”
청허가 요진에게 칼을 맞은 이후 수년 동안, 감히 그의 상처를 이렇게 들춰낸 이는 없었다.
그래서 이 말은 다시 칼이 되어 청허를 찔렀다. 청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나 노기를 띤 안색으로 말했다.
“무엄하구나!”
겁에 질린 도도와 묵묵이 얼른 자리를 뜨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주인님,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청허는 애써 감정을 다스리며 손으로 미간을 짚었다. 이때 경월당(鏡月堂) 안은 정적에 휩싸였고 음악 소리도 멈췄으며, 인어도 감히 춤추지 못하고 산호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청허가 한참 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끝에 드디어 정서가 완화되었다. 그는 도도와 묵묵 앞으로 걸어가 천천히 그들을 부축해 일으켰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침전으로 돌아갔다.
돌아온 후 청허는 묵묵이 했던 말, 즉 왜 칼에 찔렸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말을 세심히 곱씹어 보았다.
청허는 생각했다.
‘나는 줄곧 요진을 구하기 위해 그녀의 칼에 맞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왜 풍잠의 이야기가 나올 때 이토록 질투심이 생기는 것일까?
설마 내가 당시 단순히 요진과 공공(共工)의 싸움을 막으려 했던 것만이 아니었나? 풍잠에 대한 질투가 섞여 있었던 것인가? 요진이 나의 정적(情敵)을 구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내 내면에 여전히 커다란 악이 있는 것이니, 내가 그리 억울할 것도 없고 이토록 슬퍼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청허는 당시 자신의 심경을 몇 번이고 세밀하게 훑어보았고, 실제로 자신이 질투에 눈이 멀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요진이 공공을 죽이지 못하게 막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암중으로 요진을 뒤따르며 기회를 엿볼 수도 있었고, 필요하다면 요진이 먼저 공공을 제압하게 한 뒤 천제에게 넘기라고 권유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굳이 나를 찌르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설령 내가 막지 않았더라도 요진이 반드시 공공을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늘의 뜻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내가 왜 그리 긴장했단 말인가?’
청허는 또 가정해 보았다.
‘만약 요진이 구하려던 이가 풍잠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토록 어리석게 행동했을까? 아마도 훨씬 지혜롭게 이 일을 처리했을 것이다. 결국 사람을 구하려는 일념이 순수하지 못했기에 그 칼을 맞게 된 것이다.’
청허는 점차 깨닫게 되었고 내심도 훨씬 가벼워졌다. 더 이상 막다른 골목에서 헤매지 않게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요진은 본래 내가 매일 밤 그녀를 치료해준 것도 모르고, 내가 그녀에게 깊은 정을 품은 것도 모르며, 나 또한 표현한 적이 없다. 우리 둘은 대화조차 몇 번 나누지 않았으니 거의 부하와 상사의 관계일 뿐이다. 원수(帥)가 사람을 구하러 가는데 장수(將)가 가로막는다면 어디 이런 도리가 있는가?’
청허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몹시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서 “허허”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결국 정(情)이라는 한 글자는 한낱 가소로운 망념(妄念)이자 어리석은 마음일 뿐이로구!”
말을 마친 그는 마음을 비우고 다시 웃어 보였다.
한편, 요진은 요진대로 지난 몇 년 동안 아택이 왜 그토록 자신이 공공을 죽이는 것을 가로막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동안 공공은 줄곧 마족의 역량을 결집하며 마족을 부흥시키려 꾀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남주에 전쟁이 없었고 사주(四洲)도 비교적 태평했기에, 요진은 곤륜산에서 선악 상벌에 관한 일반적인 정무만 처리했을 뿐 공공을 염두에 두거나 개의치 않았다. 그리하여 공공과 마족은 다시금 소리 없이 강대해졌다.
드디어 공공은 참지 못하고 다시 천하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공공은 이번에도 남주부터 손을 뻗었다. 그의 요마귀괴(妖魔鬼怪)들이 다시 남주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는데, 사대주 중에서 남섬부주(南瞻部洲)가 가장 약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가장 미천한 생명인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요진은 남주의 난을 평정하라는 성지를 받았다.
요진은 수년 동안 입지 않았던 은색 갑옷과 설백색 망토를 꺼내어 출정 채비를 마쳤다. 그녀가 막 떠나려 하자 청란이 말했다.
“잠깐만. 아직 정곤유리검을 챙기지 않았잖아.”
요진이 말했다.
“그 검은 내가 봉인해 두어 꺼낼 수 없어요!”
청란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라고. 그럼 어떡하지?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 다른 무기라도 찾아봐!”
요진이 웃으며 말했다.
“수년 동안 싸우지 않았으니 마침 몸 좀 풀어야겠어요. 무기가 없어도 상관없어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구름을 타고 떠났다.
요진이 남주 지계(地界)에 이르니 덩치 큰 쥐 몇 마리가 곡식을 망치고 사람을 잡아먹는 등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요진은 땅으로 내려가 곡식을 해치던 쥐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대담한 쥐새끼들 같으니.”
쥐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웬 여장군인 것을 보고 우두머리 쥐가 물었다.
“너는 누구냐? 감히 우리 마족(魔族)에게 무례하게 굴다니! 우리 마왕이신 공공께서 네 가죽을 벗길 것이다!”
요진은 공공이 마왕이 되었다는 소리에 코웃음을 쳤다. 수년 동안 자취를 감추더니 몰래 마족을 재정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요진이 이어서 말했다.
“너희는 돌아가서 공공에게 전해라. 내가 마족을 멸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얌전히 마족의 지계에 머물러라. 감히 삼계를 어지럽히지 말아라.”
옆에 있던 작은 쥐가 말했다.
“두목. 저 여자는 무기도 없이 허풍만 떨고 있어요. 제가 생포해 오겠습니다. 이따가 술안주로 삼으시지요.”
말을 마친 작은 쥐가 요진을 향해 돌진했다. 요진은 여전히 가만히 서서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지켜보았다.
작은 쥐는 요진 앞에 도달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라. 무기를 가져왔네. 뒤에 긴 몽둥이를 세워뒀잖아.”
사실 그것은 요진의 호랑이 꼬리였다. 요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쥐에게 고개를 저으며 나직이 말했다. “몽둥이가 아니다. 네가 잘못 보았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진은 번개 같은 속도로 긴 꼬리를 이용해 쥐를 감아 올려 땅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쳤다. 이어 요진은 여러 개의 꼬리를 드러내 모든 뚱뚱한 쥐를 감아 올렸고, 땅에 메치고 다시 들어 올리기를 반복했다. 쥐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이때 요진은 제자리에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으나 쥐들은 이미 연신 항복하며 빌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요진은 긴 꼬리로 쥐들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내가 방금 돌아가서 공공에게 무엇을 전하라고 했느냐?”
쥐들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하자 요진이 다시 메치려 했다. 그러자 쥐들이 급히 말했다. “할머님,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공공에게 …라고 전하겠습니다.”
요진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기억력이 좋구나. 꺼지거라.”
말을 마치며 꼬리에 힘을 주자 쥐들은 하늘 밖으로 튕겨 나갔다.
쥐들은 헐떡이며 돌아가 공공을 찾아가 보고했다.
“대왕님. 남주에 아주 지독한 여편네가 나타나 저희를 이 꼴로 만들었습니다.”
공공은 반쯤 누운 채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쓸모없는 것들!”
쥐가 다시 말했다.
“대왕님. 그 여편네가 대왕님의 이름을 부르며 욕을 했습니다. 공공의 힘줄을 뽑고 가죽을 벗겨 술안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공공이 크게 노하며 말했다.
“흥. 가당치도 않구나. 어떤 여편네냐.”
쥐가 말했다.
“은색 갑옷에 흰 망토를 입었고, 키는 작지만 둥근 얼굴에 송곳니가 하나 있습니다.”
공공은 그 말을 듣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직이 말했다.
“요진이었구나. 천제가 진작에 평남원수 직을 박탈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왜 또 나타난 거지?”
공공이 다시 물었다.
“그녀가 또 무슨 말을 했느냐?”
쥐가 말했다.
“대왕님의 가죽을 벗기고 힘줄을 뽑겠다고 했습니다. 대왕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겠다고.”
공공이 격노하여 말했다.
“헛소리 마라. 그녀가 어찌 그런 천박한 말을 한단 말이냐.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의 가죽을 벗길 것이다.”
작은 쥐가 벌벌 떨며 말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자신이 마족을 전멸시키지 않기를 바란다면 얌전히 마족의 지계에 머물러 삼계를 어지럽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공공은 그 말을 듣고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나를 전멸시키겠다고. 요진아 요진아, 너는 머지않아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
쥐들을 던져버린 후 요진은 마족이 난동을 부리는 몇몇 곳을 더 찾아가 빈손으로 요마귀괴들을 청소했다. 남주의 하늘이 맑아진 후에야 요진은 돌아가 보고를 마쳤다.
요진의 법력으로 이런 요마귀괴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법기가 없는 상태라 조금은 힘에 부쳤다.
그리하여 요진은 구름을 타고 돌아가며 생각했다.
‘정곤유리검은 다시 쓸 생각이 없다. 그 보검을 쓰고 나면 다른 무기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빈손으로 다닐 수는 없으니 대책을 세워야겠다.’
요진이 구름을 타고 가다 어느 해역을 지나는데, 마침 커다란 고래가 수면 위로 솟구치며 물을 뿜어내는 장관을 목격했다. 그녀는 발아래 구름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물고기는 물을 빌려 떠오르고 나는 구름을 빌려 날아오르니, 천지간에는 만물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이 있구나. 내가 싸울 때도 이 천지의 힘을 빌릴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천지 사이의 평범한 물건들이 모두 나의 법기가 될 수도 있겠어. 물을 빌려 뜨고 구름을 빌려 날아오르는 것이 가능하다면, 만물을 법기로 변화시키는 수물화기(隨物化器)도 가능하지 않을까. 돌아가서 깊이 연구해 봐야겠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2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