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법제자
【정견망】
이전에 법을 얻은 지 몇 년 되었을 때, 대법 항목의 협조 업무를 맡기 전에는 늘 한동안 소업 상태가 있었는데, 법에서 이해하기로는 이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수련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이러한 소업 상태도 많이 완화되었다. 현재 협조 업무를 내려놓은 지 몇 년 되었는데, 이번 설 기간에 아주 오랫동안 기침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내가 도대체 어디서 틀렸는지, 사부님께서 내가 어느 부분을 바로잡기를 원하시는지 스스로 다시 살피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공부, 발정념, 진상 알리기라는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하셨다. 이번에 소업하는 중에 나는 이 세 가지 일에 근거하여 찾아보았다.
첫 번째 부분인 법공부다. 나는 법암기 소조에 참가하고 있기에 매주 고정적인 진도가 있는데, 외울 범위가 많아짐에 따라 나중에는 거의 《전법륜》만 읽어야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각지 설법은 법공부 소조나 대조(大組) 교류에 참가해야만 읽게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읽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비록 법 암기를 통해 대법의 더 깊은 내함(內涵)을 많이 체득하긴 했지만, 다른 설법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내용들을 내가 왜 확실히 해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수련 중에서, 바로 수련자가 언제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똑같은 심태를 유지하며, 로켓처럼 위로 올라가고, 정진 중에서 자신의 부동한 층차를 충실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부동한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각지 설법 12》 〈2013년 대뉴욕지역 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 《정진요지》 〈경지〉를 읽으니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慈悲心(츠뻬이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라고 하셨다.
이전에 나는 자신이 속인의 명리심이 아주 담백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아, 오히려 각자의 심태에 가깝다고 느꼈다. 늘 다른 사람들이 사소한 일로 싸우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왜 저러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련인이 수련하는 것은 사람의 일사일념(一思一念)임을 의식하게 되었다. 설령 겉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좋지 않은 생각이 생기거나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을 생각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과 한담하는 중에 무심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면, 미시적으로 파고들어 탐구해 볼 때 모두 위사(爲私)한 것으로 자신을 수호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초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악자(惡者)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사고는 일단 습관이 되면 많은 경우 스스로 무의식적이고 부지불각 중에 일어난다. 내가 일단 또 있어서는 안 될 생각이 머리를 들면 사부님께서는 나를 괴롭게 기침하게 하셨고, 나는 즉시 방금 내가 또 바르지 못한 생각을 내보내지 않았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서 나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질 때 시간이 흐르면 일종의 관념이 형성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것은 사실 일종의 사상업(思想業)이며, 이 사상업은 살아 있는 것이기에 일단 정념(正念)이 부족하고 법공부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주 쉽게 다시 튀어나온다.
생활 속의 사소한 일도 자신의 생각이 순정(純正)한지 검증할 수 있다. 어느 날 남편이 닭뼈로 탕을 끓이다가 밖으로 나갔는데, 탕이 심하게 끓는 것을 보고 나는 옆에 있던 완자를 넣었다. 남편이 집에 돌아와 보고는 크게 화를 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넣으려던 것은 다른 식재료였고 완자는 튀겨야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험악하게 욕을 하는 것을 보며 비록 말대꾸는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매번 저러네, 성질이 저렇게 나쁘니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지”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목이 불편해지며 기침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즉시 경각심을 가졌다. ‘안 된다, 수련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원래 내가 잘못한 것이니,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럼 내가 완자를 건져내자.’ 순식간에 남편의 기세가 꺾였고 나도 기침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수련인의 생각은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하며 우리가 수련해낸 공능이 구체적인 일을 하도록 지휘한다. 연공인이 정념을 수련해 이룬 후에는 일념이이면 곧 이루어지는데 어찌 엄숙하게 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재 매일 어떤 일이 있어도 각지 설법을 읽으려고 스스로 요구한다.
법 공부 태만하지 않으니
변화가 그중에 있도다
확고하게 믿고 움직이지 아니하니
과위가 올발라 연꽃으로 피어나네
(《홍음 2》 〈정진정오〉)
두 번째 부분은 발정념이다. 발정념 앞의 5분은 자신의 공간장을 청소하는 것인데, 종종 이 5분에 잡념에 빠지기 쉬워 자신의 좋지 않은 사상념두, 업력, 좋지 않은 관념과 외래 교란을 확실하게 잘 청소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사부님께서 주신 신통(神通)이 매일 자신의 공간장을 효과적으로 청소하지 못하게 된다. 시간이 오래되면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법공부를 한 후, 특히 단체 법공부를 마치고 다시 단체 발정념을 할 때 사상이 특별히 순정해지며 스스로 사상을 집중해 발정념을 잘하기 쉽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은 내가 발정념을 잘하는 것을 중시하자 주의식이 많이 맑아졌고,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즉시 바로잡는다. 또한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발정념을 하다가 눈을 뜨고 보니, 내 발정념 자세가 뜻밖에도 머리가 약간 앞으로 쏠리고 왼쪽으로 좀 기울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바닥이 넘어지거나 손이 합쳐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또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었다. 현재 매번 발정념을 잘할 수 있도록 스스로 요구하고 있는데, 비록 의식은 했지만 아직 완전히 잘 파악하지는 못했으므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
세 번째 부분은 진상 알리기다. 법을 얻은 초기에는 진상을 알리는 많은 항목을 했다. 편지 쓰기, 전화 걸기, 멀티미디어 메시지 보내기, 매체에 글 쓰기, 녹음, 인터뷰, 인터넷 진상 전파 등 매일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중에 협조인이 되어 대법 항목을 조직하고 조율하면서 박해 반대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정치인과 민의(民意) 대표들을 찾아 진상을 알려 박해 반대 활동 지지를 이끌어내고, 션윈을 홍보하고, 션윈 차모임(茶會)를 열어 내빈을 초청하고, 홍법 강좌를 열고, VIP를 관리하는 등등의 일을 했다. 항목 활동 중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매일’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느냐고 한다면 확실히 해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에게 의뢰심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임무를 완성하거나 어떤 항목을 성사시켜야만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러 가려는 마음이 있었고, 이러한 목적이 없으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 션윈 공연이 끝나면 진상 알리기의 공백기에 처하게 되었다. 진상을 알린다는 함의는 매우 넓어서 대법 수련자가 사회에서, 직장에서, 이웃 간에,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심지어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이 당신이 대법 수련자임을 알게 하고 대법이 좋다고 여기게 하는 것 또한 진상을 알리는 작용을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여전히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협조 업무를 내려놓았으니 다른 진상 알리기 업무를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이다. 수련 중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소업하느라 몸이 매우 괴로웠고 속인 가족들도 왜 의사에게 가지 않느냐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매일 해야 할 일을 잘하고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자 점차 이러한 잡음들은 사라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수련인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안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수련이라” (《홍음 3》 〈논쟁하지 말라〉). 나는 아직 부족함이 많고 바르게 닦아야 할 곳이 많지만, 사부님께서 늘 각종 방법으로 제자에게 수련을 늦추지 말라고 점오(點悟)해 주심에 매우 감사드린다.
얼마 전 몇 편의 교류 문장을 썼는데 동수가 계속 발표하라고 격려하며 동수들의 수련에 촉진 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원래 이것이 단지 내 수련 과정 중의 체득일 뿐이고 내가 현재 이 층차에서의 인식일 뿐이라 별것 아니며 써낼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평소 대면 교류를 할 때 늘 내 생각을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때로는 말이 직설적이거나 심지어 원융(圓融)하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 글로 쓰면 비교적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고, 또 쓰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이 깨달은 법리를 검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3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