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약미
【정견망】
《서유기》 제56회에서는 손오공이 비파동(琵琶洞)에서 당승을 구출한 후 서천으로 가다 길을 막는 강도 무리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손오공이 금고봉을 휘둘러 강도 몇 명을 때려죽이자, 이 일로 사제들 사이에 불화의 틈이 생긴다.
“손대성(孫大聖)은 불만스러운 마음을 품고, 팔계와 사승 또한 질투하는 뜻이 생겨 스승과 제자가 겉으로는 따르나 속으로는 어긋나니” 결국 당승은 긴고주를 열 번 넘게 외우며 손오공을 쫓아내기로 결심한다.
“손대성은 번민하며 공중으로 솟구쳐 화과자 수렴동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동굴의 작은 요괴들이 비웃을까 두려워… 구름을 내려 말 앞에 서서 말했다.
‘사부님,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는 다시는 살생하지 않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일일이 받들며 기필코 서천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당승은 그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은 채 말을 멈추고 긴고주를 앞뒤로 뒤섞어 스무 번 넘게 외웠다. 대성이 땅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고 금고아(金箍兒)가 살 속으로 한 치나 파고들 정도가 되어서야 주문을 멈추고는 말했다.
‘돌아가지 않고 또 와서 나를 괴롭히느냐?’
행자는 오직 ‘외우지 마십시오! 외우지 마십시오! 저는 머물 곳이 있습니다만, 제가 없으면 사부님께서 서천에 가지 못하실까 걱정될 뿐입니다’라고 빌었다. … 하는 수 없이 다시 근두운을 타고 공중에 올랐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스님이 내 마음을 저버렸으니, 나는 보타암으로 가서 관음보살님께 하소연해야겠다.'”
이것이 바로 진짜와 가짜 행자(眞假行者) 사건이 나타나게 된 원인이다. 당승이 서쪽으로 50리쯤 갔을 때 갈증이 심해지자 팔계와 사오정이 물을 구하러 갔고, 이때 가짜 행자인 육이미후(六耳獼猴)가 등장한다. 그는 당승을 때려눕히고 “푸른 담요 보따리 두 개를 손에 들고 근두운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후 사오정이 짐을 찾으러 화과산에 갔다가 가짜 행자 육이미후를 보고 진짜 오공인 줄 착각한다. 가짜 행자는 사오정에게 요괴들이 변신한 똑같이 생긴 취경팀과 백룡마를 보여주며 말한다.
“내가 이제 통행증명서를 다 읽어봤는데 내가 직접 서방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해 동토로 보내 나 혼자 공을 이뤄 남섬부주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교조로 받들게 하여 만대에 이름을 떨칠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육이미후는 이전의 요괴들과는 다르다. 이전 요괴들은 당승의 고기를 먹으려 하거나 전갈 요괴처럼 유혹하려 했지만, 이 가짜 행자는 서천에 가서 경을 구하고 만세의 공명(功名)을 이루려 한다. 이는 요괴의 소행이라기보다 사람 마음(人心)이 투영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사오정이 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자신으로 변한 원숭이 요괴를 때려죽인 후 남해 낙가산으로 보살을 뵈러 가니, 그곳에 진짜 손오공이 있었다. 손오공이 사오정과 화과산으로 가서 확인했으나 “두 행자가 한곳에 있으니 참으로 진위를 가릴 수 없었고”, “동굴 밖에서 싸우다 이내 공중에서 다투게” 된다. 그들은 남해 낙가산까지 싸워가며 관음보살의 혜안(慧眼)으로 진위를 가리고 사와 정(邪正)을 밝히고자 했다.
보살이 몰래 긴고주를 외우자 “둘이 동시에 아프다고 소리치며 머리를 감싸고 땅을 구르니” 구별할 방도가 없었다. 이에 천궁 영소보전으로 올라가니 옥황상제가 탁탑이천왕에게 조요경(照妖鏡)을 써서 분별하라 명했으나, “거울 속에는 두 손오공의 그림자뿐이며 금고아와 의복까지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서로 잡아끌고 싸우며” 서천(西天) 여래불 앞으로 가서 판가름을 내기로 한다.
마침 “사대보살, 팔대금강, 오백 나한, 삼천 게체, 비구니, 비구, 우바새, 우바이 등 여러 성중(聖衆)들이 칠보연화대 아래 모여 여래의 설법을 듣고” 있었다.
여래불이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두 한마음(一心)이로구나. 그런데 저것 보아라 두 마음(二心)이 서로 싸우며 오고 있구나.”
대중이 눈을 들어 보니 과연 두 행자가 천지가 떠들썩하게 고함을 지르며 뇌음 승경(勝景)까지 싸우면서 오고 있었다. 여래께서 가짜 행자의 내력을 밝히셨다.
“진짜 오공과 형상과 목소리가 같은 자는 육이미후(六耳獼猴)니라.”
가짜가 도망치지 못하고 여래의 황 금바리때(金鉢)에 갇혀 본래 형상을 드러냈고, “손대성이 참지 못하고 철봉을 휘둘러 단매에 때려죽였다.”
가짜 행자는 왜 나타났을까? 《서유기》 제58회에서 여래는 이미 이것이 “두 마음이 다투어 온 것(二心競鬥)”라고 짚어주셨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육이(六耳)’란 불교의 ‘육식(六識)’, 즉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을 은유하는 듯하다. 즉 인체 감각의 표층에 있는 ‘가짜 나(假我)’를 지칭한다. 반면 인체의 미시적 공간에는 사람의 ‘진짜 나(眞我)’, 즉 주원신(主元神)이 있다. 이는 마치 화씨지벽(和氏之璧) 표면의 돌껍질과 그 안의 순정한 보옥과 같습니다. 뭇신은 “모두 한마음”이기에 인간의 몸과 같은 “돌껍질”이 없어 사람마음의 교란이 없고, 신성(神性)이 밝아 미혹되지 않는다. 원작의 시에서 설명하듯 “사람에게 두 마음이 있으면 재앙이 생기고, 하늘 끝 땅끝까지 의심을 품게 된다”는 것과 같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세상 사람들은 후천적인 각종 관념을 지닌 사람몸을 가졌기에 감각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기 쉽다. 따라서 후천적 관념과 외부의 간섭 정보에 유도되어 선량한 본성이 가려지고 가짜 나와 진짜 나를 분별하기 어렵다. 《홍루몽》 제1회 견사은(甄士隱)의 꿈속 ‘태허환경(太虛幻境)’ 석패방 대련에는 “가짜가 진짜가 될 때 진짜 또한 가짜가 되고, 무(無)가 유(有)가 되는 곳에 유 또한 무가 된다[假作真時真亦假,無爲有處有還無]”고 했다.
세상일이 이와 같으니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화씨지벽》 이야기에서 변화(卞和)는 진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초나라 왕에게 두 발이 잘리는 대가를 치렀다. 이백은 시 《고풍·장주몽호접(莊周夢胡蝶)–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다》에서 “장주는 꿈에 나비가 되고 나비는 다시 장주가 되니, 한 몸이 변하고 또 변하나니 세상만사 참으로 아득하구나[莊周夢胡蝶,胡蝶爲莊周。一體更變易,萬事良悠悠。]”라며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우화를 인용했다.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 자신이 장주임을 잊었으나, 깨어보니 다시 장주였다. 그렇다면 이는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으니, 이를 일컬어 물화(物化)라 한다.”
소동파는 “인생은 거꾸로 가는 여관과 같고, 나 또한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다[人生如逆旅,我亦是行人]”라고 읊었다. 사람의 일생은 이처럼 진짜와 가짜, 실재와 환상이 뒤섞인 꿈과 깨어남의 분별 속에 처해 있다. 어떻게 해야 여기서 걸어 나올 수 있을까? 이것은 천고 이래 수많은 성현(聖賢)이 끊임없이 탐구해 온 인생의 근본 문제이다. 어떻게 사람마음(人心)에서 벗어나고, 수천 년간 굳어진 사람의 관념 속에서 고치를 뚫고 나올 수 있을까요?
진짜와 가짜 행자가 보여주는 것은 평범한 명리나 재색(財色)과 같은 사람 마음이 아니라, “부처님을 참배해 경을 구한다”는 겉보기에 당당하고 거룩해 보이는 사람 마음과 사람 생각이다. 그래서 더 깊이 은폐되어 있어서 분별하기 어렵다.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
단지 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인성의 순선(純善), 중정(中正), 중화(中和)의 심태를 견지하고 우주 특성의 인도에 따라 도덕 수준과 경지를 높여야지만 미몽을 깨고 광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나가니,
인간 세상 아닌 별천지로다. (이백 《산중문답(山中問答)》)”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