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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연심 (40): 사람마음이 귀신을 불러들여

요연(了緣)

【정견망】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사람 마음이 귀신을 불러온다”(《정진요지 3》 〈각성하라〉)라는 구절을 빌려 이번 편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수련 중의 우여곡절과 마난, 험난한 장애들 중 사람 마음(人心)이 불러오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수련 중에는 언제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이지(理智)를 제1순위에 두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이지만 살아있다면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고, 들뜬 사람 마음을 억눌러 머릿속을 맑은 상태로 둘 수 있다. 그러면 사태에 직면해도 당황하지 않고 온갖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위급한 순간에도 이 초심(初心)을 지켜내고 심성(心性)을 안정시킨다면 지혜가 열릴 것이다. 험난한 지경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중생 구도에 모든 것(생명 포함)을 바칠 수 있다는 자비심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머릿속이 정념(正念)으로 가득할 때 사람 마음의 집착은 용광로에 떨어진 나무 찌꺼기처럼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며, 신(神)의 상태가 된다. 이때 비로소 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평소 머리에 새긴 법(法)과 주의했던 수련 체득을 통해 신이 갖춰야 할 사유가 성숙했다면, 이제 신의 능력을 현실에서 실천해 보라! 천하를 뒤바꾸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오직 일념(一念) 사이에 달려 있다.

삼계 내의 모든 것은 지구를 포함해서, 표면적으로 보기에 사악의 주무대인 듯하다. 박해가 20여 년이나 지속되고 있으며, 공산 사령(邪靈)은 여전히 신주(神州) 대지를 휩쓸고 있다. 겉보기에는 정법제자들이 박해 속에서 매우 수동적으로 수련하며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운 듯하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른바 ‘난(難)’이라는 것은 법리에 대한 인식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험난’이란 것은 자신의 사람마음을 명확히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상의 ‘지연’은 사상 속에 여전히 사람의 습관적인 사유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법공부를 하는 것은 신성(神性)의 사유를 배우는 것이고, 수련에서 닦는 것은 신의 자비이다. 신의 사유로 중생을 자비롭게 대하는 것은 모든 제자가 종국에 성취해야 할 상태다.

그러므로 신의 사상으로 본다면 온 우주는 모두 대법제자의 주무대이며, 삼계를 포함하는데, 지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박해 또한 정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 세상은 우주 정법의 시험장이며 미래 신(神)의 발원지이자 신우주의 탄생지다. 미래 신기원(新紀元)의 모든 것이 이곳에서 완성되고 갱신될 것이다. 사명을 띠고 온 구우주의 신들은 정법 중에서 모든 바르지 못한 요소를 바로잡아 쇠를 단련해 강철로 되는 과정을 거쳐 신우주의 신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사람에서 신(神)으로 탈바꿈하는 핵심 단어는 사상(思想)이다. 사상을 어떻게 전환하느냐는 법공부 중에 체득할 것이다. 내 글은 그저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뿐이며, 우리 모두 한 사부님께 배웠어도 생각하는 바는 각기 다를 수 있다. 현재 내 생각에 가장 이득인 것은 인과(因果)에 물들지 않는 것인데, 물론 진상을 알리는 것은 예외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자신이 배운 법리를 출력하는 것일 뿐이며, 사람을 구도하는 일은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사부님께서 인과를 대신 짊어지신다. 제자는 이 기회에 인연을 마무리 짓고 빚을 청산하며 위덕을 쌓을 뿐이다. 적게 바치고 지극히 많이 얻는 셈이다. 오성(悟性)이 좋다는 것은 사부님과 법을 믿는 기초 위에 세워진다. 믿음(信)은 우주 에너지를 잇는 통로라 할 수 있는데,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신념(信念)이라야 법의 위덕을 나타낼 수 있다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법에서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원만(圓滿)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굽지 않은 이 길은 바로 창궁(蒼穹)에 직접 도달하는 사다리와 같다. 신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당신이 법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릿속 가득한 사람의 사상을 신(神)의 사상으로 승화시켜 신이 닿는 곳을 생각하고 신이 하는 바를 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적(神跡)을 행하는 것이다. 사람의 사상이 모두 신의 사상으로 전환될 때 수련 과정을 다시 보라. 그것은 매 한 차례가 인과의 훈련이며, 모든 업(業)을 단련하고 정제해서 나를 위해 쓰는 과정이다.

악업(惡業)은 갚아야 하고 선업(善業)도 매듭지어야 한다. 특히 악업은 천 가지 얼굴을 가진 요괴보다 분별하기 어렵다. 당신을 해치려는 자는 먼저 당신의 신뢰를 얻어야 일을 꾸밀 수 있고, 독약도 꿀물에 타야 마실 수 있는 법이다. 이처럼 당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이 반드시 진짜 좋은 것은 아니다. 정(情)에 빠진 사람은 정의 즐거움만 구할 뿐 정의 날카로운 칼날은 보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정이 양날의 검임을 알면서도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한다. 결국 악업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낚아챈다. 먼저 달콤함을 주고 나중에 고통을 주어도 사람들은 매번 그 뒤를 쫓는다. 명리정구(名利情仇)와 비환이합(悲歡離合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은 그저 겉모습만 바꾼 것일 뿐인데, 기억력이 좋지 못한 당신은 여전히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악업도 끈질기지만 선업(善業) 앞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부드러운 칼이 사람을 죽이는 데 더 무서운 법이다. 안락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조건 없이 잘해주면 즐거움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잊게 된다. 자신의 사명조차 잊은 채 사람들 속에 미혹되면 그 죄업의 결과는 더 심각해진다. 우리가 사람의 사상으로 신을 생각할 수는 없지만, 신의 사상으로 사람을 보고 만물을 통찰하며 미세한 곳에서 대도(大道)를 체득할 수는 있다.

사유의 주파수가 높아지면 진상이 저절로 드러난다. 타인의 꿀맛 같은 유혹이 나에게는 비소(砒霜)와 같은 독임을 알게 되어 지뢰를 밟지 않으니 길이 순탄해진다. 이른바 인간의 삼관(三觀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우주관(宇宙觀)으로 승화시키면 사람과 각자(覺者)의 차이와 높낮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신의 사상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리(法理)로 생각하라. 법공부를 마치고 경서를 덮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어지러운 홍진(紅塵)이야말로 수련인이 마음을 닦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사상은 영원히 사람마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지만, 신의 사상만이 한계를 돌파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觀念轉 敗物滅)”(《홍음》〈신생〉)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요컨대 수련인의 한마음[一心]이 흔들리지 않으면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오공은 바로 이 대목에서 손해를 보았다. 필마온(弼馬溫)이 품계도 없는 말단 관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사람마음이 폭발하고 마기(魔氣)가 치솟아 상을 엎고 일을 때려치웠다. 화과산에 돌아오자마자 귀왕(鬼王)이 찾아와 절을 하고 독각대왕(獨角大王)이라 칭했는데, 이는 이번 마변(魔變)이 사람마음으로 인해 빚어진 자아도취의 모노드라마(獨角戲)임을 예시한다. 명백한 사람은 연극을 보지만, 미혹된 원숭이는 연극에 빠져 있다. 모두가 이 배치가 틀림없이 진행되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다. 마성을 다 끌어내어 오지산(五指山) 아래서 서서히 갈고 닦게 하려는 것이다. 어차피 당승 저쪽도 연극에 들어갈 시간이 필요하니, 날을 가는 것이 나무 베는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마음이 귀신을 불러들여 찾아온 속도가 너무 빨랐다. 오공에게 말을 기르게 한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뜻(意)을 기르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원숭이는 큰 임무를 맡게 될 자각(自覺)이 전혀 없었다. 마음속에는 오직 명리(名利)뿐이었다. 관직의 혜택이 명리라고 여겨 비단옷 입고 고향 가기만을 바랐는데, 진상을 마주하자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가 분노하여 뛰쳐나가자 귀왕(鬼王)이 나타나 오공에게 황포를 입히고 깃발을 들어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 칭하도록 부추겼다. 치켜세워 파멸시키려는 자들이 나타났고 반역의 명분도 생겼으니, 이제 원숭이에게 그만한 담량이 있는지를 지켜볼 일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