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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신구(新舊)의 충돌, 선악의 충돌은 중생의 부동한 태도를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세상은 단지 이 한 공간의 표현에 불과하다. 전에 내가 여러분에게 말했듯이, 나는, 대법제자가 수련을 잘하고 못함은 중생을 구도하는 힘(力度)을 결정하며, 또한 세간에서 정법에 협력하는 것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했다.”【1】

현재 층차에서 깨달은 것은, 대법제자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바른가 사(邪)한가는 다른 공간 수많은 중생의 생사존망과 직결된다. 인간세상의 이치와 다른 공간의 이치는 반리(反理)이며 인간세상에는 정리(正理)가 없다. 그렇기에 수련할 수 있는 것이며 사람이 이 미혹 속에서 수련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고유한 관념과 변이된 물질은 모두 정법 중에서 제거해야 할 것들이다. 생각 속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한 생각이나 발상은 사실 자신 공간장의 서로 다른 층차와 서로 다른 물질이 반응한 결과다. 정(正)과 사(邪), 선(善)과 악(惡)은 시시각각 도처에서 자신이라는 이 소우주 안에서 부딪히고 있다.

인체는 하나의 소우주이며 이 우주 중에는 층층의 생명이 있다. 대법제자는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으로 돌파해 나가는데, 법으로 바로잡히지 않은 생명은 구우주의 변이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러한 변이된 요소들이 정법의 충격을 받는다면, 구우주의 특성을 지닌 생명들은 법에 의해 순간적으로 해체되고 도태될 것이다. 수련 중에 겪는 모순 역시 다른 공간에서 바로잡혀야 할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대법은 우리의 주원신(主元神)을 제도하므로 모든 것은 이 인간세상의 주체가 결정한다. 정념(正念)인지 악념(惡念)인지, 선량인지 사악인지, 생각이 일단 나오면 즉시 층차가 정해지며 다른 공간 생명의 위치도 결정된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는 자신을 잘 수련한다는 전제하에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지, 1999년 이전의 개인 수련 상태가 아니다. 지금은 중생 구도와 법을 실증하는 것을 제1위로 삼는다. 사상 속의 염두(念頭)는 단순히 개인의 이른바 발상이 아니라 사실 한 층차의 체현이며, 엄숙하게 말하면 생명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다. 삼계는 정(情)으로 가득 차 있고 미혹의 공간이기도 하다. 삼계의 모든 것은 허환(虛幻)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바른 이치가 없기에 이곳의 모든 것은 다른 공간과 상반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으로서,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매 개인은 세상에서 상당히 긴 한 단락 역사과정을 모두 걸어지나왔다. 이 세간의 이치는 반대로 된 것으로, 당신이 보아 좋은 것이 그쪽에서 보면 나쁜 것이다. 당신이 맡은 냄새가 향기로운 것이면 그쪽에서 맡은 것은 구린 것으로, 어떤 것이든 모두 반대로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련하자면 매우 어려우며 정념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바로 이렇기 때문에 비로소 그런 사람마음이 반영되어 나올 수 있다. 잘한 사람은 곧 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잘못한 사람, 내심(內心)을 향해 찾지 않는 사람은 곧 반대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한 것은 단지 수련인뿐만이 아니라 속인 역시 이렇다는 것이다.”【2】

현재 층차에서 깨달은 바에 따르면, 대법제자는 삼계라는 이 정 속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며 삼계라는 허환의 공간에 미혹되어서도 안 된다. 육신이라는 이 주체(主體)는 삼계에서 가장 큰 분자로 구성되어 있기에 삼계의 요소에 오염되고 잠겨 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생각으로 느끼는 이러한 정보들은 모두 분자 공간에서 온다. 좋은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즐겁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기쁘며, 자아의 위사(爲私)한 관념에 부합하면 만족한다. 만약 이것들이 “자아”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고통스럽고 소극적이며 원망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사람의 관념이 바른 이치에 대항하는 것이다. 수련인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수련의 길을 안배하신다. 마음을 바로잡으려 할 때 바르지 않은 요소가 나타나는데, 이때 법에 대조하여 자신을 찾고 법으로 이러한 바르지 않은 요소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정념이 나올 때 패물(敗物)은 곧 해체된다. 구우주의 특성을 가진 요소가 없어지면 다른 공간의 대응하는 생명은 법에서 동화되어 구도된다. 이것이 바로 일념에서 선악이 나뉘고 정념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오늘 아침 남편과 함께 아침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 약간 불쾌한 일이 있었다. 첫 번째 불쾌함은 주차 문제였다. 나는 차를 시장 길가에 세우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자고 주장했지만, 그는 듣지 않고 차를 시장 안쪽까지 몰고 들어갔다. 비록 시장에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이 느릿느릿 걷고 있어 불편했고, 나중에 사람이 많아지면 차를 빼기도 힘들 상황이었다. 그가 직접 차를 몰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불쾌함은 차에 타는 일이었다. 내가 숙주나물을 사러 갔을 때 그는 나에게 알리지 않고 차를 숙주나물 가판대 옆으로 바로 몰고 왔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한 줄 전혀 모른 채 나물을 사고 나서 원래 주차했던 곳으로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아주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 보니 차가 바로 앞에 있었다. 그가 나를 불렀는데 내가 듣지 못하자 그는 기분이 상해 불쾌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쳐다보았다. 차에 올라탄 후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창피하게 왜 저렇게 큰 소리로 원망 섞인 말투를 내뱉어 남들이 보기에 안 좋게 만드는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것이 우연이 아니며 나의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을 제거하기 위함임을 생각하고 심성을 지키려 노력했다. 나한(羅漢)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개의치 않으려 했다. 겉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듯했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편함이 있었는데, 그것이 아마 자아의 뿌리였을 것이다. 잠재의식 속에서 대항하며 앞으로는 기분 잡치는 일이 없도록 다시는 그와 함께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관을 잘 넘기고 심성을 지키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에게 이런 방식은 옳지 않으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나는 스스로 아주 높은 자세를 취하며 그를 원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의로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내 예상과 달리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분명 그의 잘못인데 왜 조금도 반성하는 기색 없이 도리어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의 이치는 수련에서 통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이치가 있는 듯 보이나 사실 다른 공간의 이치는 상반된다. 만약 사람의 이치로 가늠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길을 걷는 것이며 법의 표준으로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신(神)과 사람은 일념(一念)에 달려 있고 선악(善惡)이 인과를 결정한다.

현 단계에서 짧은 소견이니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년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