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원신불멸을 체험하다

동북 대법제자

【정견망】

나의 운명은 참으로 좋았다. 스물세 살에 시집을 가 시부모님과 남편의 총애를 받았고, 시누이와 시동생들도 나에게 참 잘해주었다. 나는 기침과 천식을 앓아 몸이 좋지 않았는데, 시댁 식구들은 그런 나를 무척 배려해 주어 힘든 일은 시키지 않고 모두 남편을 도와 일하곤 했다.

시아버지는 나를 친딸보다 더 아껴주셨다. 집안의 농사일이나 잡다한 일들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도와주셨다. 그 모습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병이 도질 때면 시아버지는 늘 마차를 몰아 나를 진료소까지 데려다주셨다는 점이다. 마음이 너무 죄송해 때로는 아버지께 폐를 끼치지 않으려 혼자 몰래 진료소에 가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미 일흔이 넘으신 고령이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아시고는 결국 마차를 끌고 진료소까지 나를 마중 나오셨다.

시어머니는 수양이 깊은 분이었다. 내 성격이 좋지 못함에도 어머니는 나와 다투지 않고 나를 포용하며 선하게 대해주셨다. 매년 시어머니는 맛있는 만두를 빚어 나와 가족들을 불러 먹이셨고, 내 생일이면 달걀을 선물하며 축하해 주셨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기 전해에 병으로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때, 어머니는 매일 나를 보러 와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셨다.

기르시던 수탉 여덟 마리도 아낌없이 내놓아 차례로 잡아 나에게 먹이셨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가 시어머니의 생활을 보살펴 드렸는데, 시어머니는 무척 만족해하시며 내가 마음씨가 좋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2002년, 내가 박해를 받아 타향을 떠돌게 되었을 때 시어머니는 이미 78세 고령이셨고 연말에 지병이 재발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 시어머니와 겨우 짧은 만남만 가졌을 뿐이다. 2003년 초, 시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비보를 듣고 나는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 남편이 말해주기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매일 당신 이름을 부르며 울면서 찾으셨어. ‘너 어디 있느냐, 보고 싶구나. 돌아오너라, 우리 모녀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만 보자꾸나’ 하셨어. 곁에 있던 가족들도 어머니의 애달픈 목소리에 모두 울음바다가 되었어”라고 했다. 결국 시어머니는 한을 품고 떠나셨다. 당시 가족들은 나를 찾지 못했고 나 역시 돌아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어머니의 발인 날, 마을에는 나를 체포하려고 경찰차가 순찰을 돌았다고 한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나는 건강해져 약 한 알 먹지 않게 되었고 성격도 좋아졌다. 어머니는 내 모습을 통해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보셨고 나의 선량함을 느끼셨다. 그렇기에 임종의 순간까지 나를 그토록 잊지 못하셨던 것이다. 지금도 나를 기다리시던 시어머니의 그 마지막 말씀을 떠올리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남편은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했다. 결혼 후 몇 년 동안, 농사를 지어 번 적은 수입은 모두 내 병을 고치는 데 쓰였고 이로 인해 집안 형편은 매우 가난했다. 내가 몸이 약했기에 남편은 가정을 위해 많은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1997년 내가 대법을 얻어 몸이 건강해지고 약과 완전히 인연을 끊게 되자, 남편은 너무나 기뻐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파룬궁은 신공이다, 죽어가던 내 아내를 살려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대법을 홍보하는 것을 도왔고 연공하는 것을 지지해 주었다. 추운 겨울이면 남편은 우리 집에 법을 배우러 오는 수련생들을 위해 구들을 데우고 차를 따르며 정성을 다했다.

중공 강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고 내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남편은 집에서 100제곱미터가 넘는 큰 집을 짓고 마당까지 새로 단장해 두었다. 덕분에 내가 석방되었을 때 새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4~5년이라는 긴 박해 기간 동안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았음에도, 내가 돌아온 후 단 한 번의 원망도 하지 않았다.

지난 세월 동안 당의 공포 정치라는 압박 속에서도 남편은 줄곧 내 수련과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지지해 주었다. 집안일도 묵묵히 도맡아 하며 내가 법을 증명할 시간을 낼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내가 글을 쓸 때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남편은 조금의 불평도 없이 늘 내 활동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어떤 이들은 농담조로 “남편분이 전생에 빚을 얼마나 졌길래 아직도 다 못 갚는 걸까요?”라고 묻기도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사람의 원신은 불멸하며, 사람의 일생은 모두 신이 안배한 것이고 어떤 이들은 한 생에 그치지 않는다고 알려주셨다.

사부님의 말씀은 곧 법이다! 얼마 전 나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전생으로 돌아갔다. 그 생에서 나는 매우 유능하고 평판이 좋았다. 남편은 인물은 훤칠했으나 제멋대로였고, 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방탕하게 지냈다. 나는 남편을 위해 친정에서 가져온 돈으로 차를 사주며 짐을 실어 나르며 돈을 벌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벌기는커녕 그 차에 친구들을 태우고 다니며 먹고 마시고 노는 데만 열중했다. 그의 아버지(시아버지)도 그를 통제하지 못해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결국 본인이 직접 운전을 배워 살림을 돕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시고 위험할까 봐 말렸다.

나는 물고기 두 마리를 구워 아버지께 보여드리며, 어머니(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나가셨다가 돌아오셨는지 여쭈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셨다고 하자, 나는 어머니가 오시면 온 가족이 함께 물고기를 먹으려고 기다렸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나의 효심에 고마워하셨고, 고생을 마다치 않으며 알뜰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들과 일심동체로 살아가는 나를 기특해하셨다.

남편이 빈둥거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집안 형편은 매우 곤궁했지만, 나는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도리어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집안의 권한을 내놓으라고, 자기가 돈을 관리하고 주도권을 쥐어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내가 동의하지 않자 그는 나를 끌어당기며 “당신이랑 더는 못 살겠어, 법원에 가서 이혼하자”라고 말했다. 나는 “이혼을 하든 안 하든, 가서 법관의 판결을 받아봅시다”라고 답했다.

나는 남편을 따라 집을 나섰는데,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는 도망쳐 시어머니의 마당으로 달려갔다. 그의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는데, 마치 그를 응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소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우리 집 창가에는 깨끗하게 닦인 굽 높은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남편의 신발이었다. 본래 키가 작지 않은데도 굽 높은 신발까지 신다니, 나는 이 철저한 한량인 그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와 가정을 위해 마음 졸였다. 나는 가슴 가득 근심을 안은 채 꿈에서 깨어났다.

그 생의 남편이 바로 지금의 남편이며, 그 생의 시부모님이 바로 이번 생의 시부모님이었다.

나는 사람의 원신은 불멸한다는 것을 몸소 진실로 체득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