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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돌아갈 뜻 – 유우석의 《서새산회고》를 읽고

청풍

【정견망】

왕준(王濬)의 누선이 익주(益州)에서 내려오니,
금릉(金陵)의 왕기(王氣)가 암연히 걷혔구나.
천 길 철쇄는 강바닥에 가라앉고,
한 조각 항복 깃발이 석두성(石頭城)에 솟았구나.
인간세상 몇 번이나 지난 일에 상심했던가,
산 모습은 예나 제나 차가운 물줄기를 베고 있네.
이제 온 세상이 한 집안인 때를 만났으니,
옛 보루에는 쓸쓸히 갈대꽃만 가을을 알리네.

王濬樓船下益州,金陵王氣黯然收。
千尋鐵鎖沉江底,一片降幡出石頭。
人世幾回傷往事,山形依舊枕寒流。
今逢四海爲家日,故壘蕭蕭蘆荻秋

이 시는 당시(唐詩) 중에서 아주 유명한 편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성어인 “사해위가(四海爲家 사해가 한 집안)”가 들어 있다. 원래는 봉건 제왕이 사해를 차지하고 전국을 통치함을 가리켜 제업(帝業)의 홍대함을 자랑하거나 국가의 통일을 가리켰다. 나중에는 뜻이 사방에 있어 정처 없이 떠돌며 어디든 집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먼저 창작 배경을 살펴보자. 이 시는 유우석이 824년(당 목종 장경 4년)에 지은 것이다. 그해 유우석은 기주(夔州 치소는 지금의 중경 봉절) 자사에서 화주(和州 치소는 지금의 안휘 화현) 자사로 전임되어 강을 따라 동쪽으로 부임하던 중, 서새산(호북성 대야현)을 지나며 감회가 일어 이 시를 지었다.

앞 네 구절은 서진(西晉)이 오(吳)를 멸망시킨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며 국가의 통일이 역사의 필연임을 나타냈다. 서기 280년(서진 태강 원년), 진 무제 사마염은 왕준(王濬)에게 명해 거대한 전함인 누선(樓船)으로 구성된 서진의 수군을 이끌고 강을 따라 내려가 동오(東吳)를 토벌하게 했다. 시인은 바로 이 역사적 사실을 제제로 삼았다.

시의 앞 네 구절은 전쟁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말을 정제되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것이 주요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며 단지 도입부일 뿐이기에 여기서는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겠다.

다음은 서새산을 묘사한 대목이다.

“인간세상 몇 번이나 지난 일에 상심했던가,
산 모습은 예나 제나 차가운 물줄기를 베고 있네.
이제 온 세상이 한 집안인 때를 만났으니,
옛 보루에는 쓸쓸히 갈대꽃만 가을을 알리네”

이 작품은 명대(明代) 양신(楊愼)의 “청산은 예나 제나 그대로인데, 석양은 몇 번이나 붉게 물들었던가(青山依舊在,幾度夕陽紅)”라는 구절과 매우 흡사하지 않은가? 저자는 여기서 세상일의 변천을 감탄하고 있다.

여기서 사해위가(四海爲家)는 이 시의 시안(詩眼 시에서 관건이 되는 단어나 구절)으로, 국가 통일의 의미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층차의 감회를 담고 있다. 군사적 요충지인 서새산이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듯이, 현재는 국가가 통일되어 있지만 이후에 또다시 주인이 바뀌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러한 반복적인 윤회 속에서 개별적인 인간으로서 어디든 집이 될 수 있겠지만, 과연 어디가 진정하고 영원한 귀숙(歸宿)인가?

유우석은 당시 유명한 시승(詩僧)인 교연(皎然), 영철(靈澈)의 훈도와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이로 보아 그의 근기가 상당히 괜찮았음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그가 세상사의 변천 속에서 귀의(歸意)하려는 마음을 품었다는 점이다. 다만 이를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더 큰 시야에서 보면 인간 세상은 커다란 무대이고 세상일은 단지 윤회의 반복일 뿐이며, 자신은 그저 그 속의 과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반본귀진(返本歸眞)이야말로 인간이 된 진정한 목적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그의 다른 시에서도 표현되었다.

참소하는 말이 파도처럼 깊다고 말하지 말고,
좌천된 객이 모래처럼 가라앉는다고 말하지 마라.
천 번 만 번 걸러내는 수고로움이 비록 힘들지라도,
미친 모래를 다 불어내야 비로소 금이 드러나리라.

莫道讒言如浪深
莫言遷客似沙沉
千淘萬漉雖辛苦
吹盡狂沙始到金

​여기서 특히 뒤의 두 구절이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데, 표면적인 의미는 결백하고 정직한 사람이 비록 한때 소인배에게 모함을 당하거나 좌천되는 불운을 겪더라도, 고난을 다 겪고 나면 그 가치가 마침내 발견된다는 뜻이다. 마치 진흙과 모래를 다 씻어낸 뒤 번쩍이는 황금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사실 저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수련(修鍊)이란 바로 큰 파도가 모래를 씻어내는 과정이며, 마지막에 남는 것이야말로 진금(眞金)이라는 점이다.

미국에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안배되어 있었고, 그가 살던 소위 마을은 거대한 세트장이었다. 다행히 그는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을 발견하고 탈출했다. 사실 인간 세상도 고층 공간(高層空間)에서 보면 거대한 연극 무대에 불과하다. 돌아가려는 마음인 귀의(歸意)를 품고 뛰쳐나갈 생각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총명한 사람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불성(佛性)의 체현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