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무진(無塵)
【정견망】
1. 모순이 생긴 원인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삼일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먹을 수 없었다. 어쩌다 한 점 먹어보려 하면 배가 아프거나 몸에 맞지 않았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니 자연스러움에 따르기로 하고,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지장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면서 동수들로부터 자주 질문을 받게 되었다. 왜 고기를 못 먹느냐, 너무 극단적으로 가는 것 아니냐, 혹시 어떤 사람마음(人心)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대법제자가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는데, 예전에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것 아니냐, 극단으로 흐르거나 유별나게 굴지만 않으면 된다는 등의 이야기도 들었다.
회사 동료 수십 명과 함께 식사할 때 다들 고기를 먹는데 나만 먹지 못하니, 새로 온 동수들이 내가 고기 없이 채소만 먹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며 자주 물어보곤 했다. 나중에는 남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아 내가 무엇을 먹는지 거의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가족 동수가 갑자기 말했다. “당신은 왜 아직도 고기를 못 먹어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고기 먹는 문제를 말씀하실 때 ‘어떤 사람은 1개월ㆍ2개월ㆍ3개월을 지속해야 하며, 반년이 될 수도 있는데, 극히 특수한 정황이 아니면 1년을 초과하지 않아 다시 먹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고기는 이미 사람의 음식 중 주요 부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잖아요. 당신은 벌써 몇 년째 못 먹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어떤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요.”
가족의 이런 책망 섞인 말투를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큰 소리로 되물었다. “내가 채식하는 게 당신에게 해를 끼쳤어? 당신 수련에 영향을 줬어? 당신 생활에 지장을 줬냐고. 당신에게 부담을 준 적 있어? 나처럼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강요했어? 아니잖아!”
가족 동수는 내가 화를 내자 그냥 해본 소리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더 화가 나서 반문했다. “그냥 해본 소리라고? 내가 채식한 지 몇 년인데 당신은 아직도 그 소리를 하고 있잖아. 한집에 살면서 이토록 오래되었는데 왜 나를 용납하지 못해? 왜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 거야? 도대체 나더러 뭘 먹으라는 거야?”
그날 아침 큰 소리로 다툰 뒤 나는 집을 나왔다.
2. 자신을 찾다
나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와 가족 동수 모두 법을 얻은(得法) 지 2, 30년이 된 노제자들인데, 어떻게 이런 일로 다툴 수 있단 말인가? 표면적으로는 내 생활 습관이 주변 사람들과 다르지만,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기에 그동안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 자신에게 자주 물어보았다.
“나는 반드시 나의 식습관을 고수해야 하는가? 조금의 융통성도 발휘할 기회가 전혀 없는가?” 대답은 아니었다. 대법제자는 결국 생사까지도 내려놓아야 하는데, 무엇을 먹느냐는 문제는 내게 있어 내려놓을 수도, 바꿀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다만 현재는 이렇게 습관이 되어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반드시 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왜 화가 나고 마음이 움직였을까? 나는 누군가 내가 법 위에 있지 않다거나 수련에 문제가 있다고 의구심을 갖는 것이 내가 건드려지면 안 되는 지점임을 발견했다. 근원을 추적해 보니, 수련 초기에는 상인 중의 명(名), 이(利), 정(情)을 내려놓는 것이 쉬워 보였고 결연했다. 그것은 내가 생사를 벗어나 윤회를 초월하는, 질적으로 도약한 더 높은 층차의 생명 귀숙(歸宿)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수련 중의 명예와 이익에 집착하기 시작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동수들이 내 수련 상태를 칭찬하는 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자만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나는 공부를 많이 하고, 연공을 부지런히 하며, 심성이 높고, 남들과 따지지 않는 등 좋은 수련인의 형상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는 마치 어떤 종교 단체가 종교적 형식 자체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할 뿐, 실제 모순 속에서 심성을 제고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좋은 소리만 듣다 보니 가끔 내 수련 상태에 대한 의구심이나 내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비판과 제안을 들으면 즉시 불쾌해졌다. 자신의 명리를 지키려는 그런 마음이 정확히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가족 동수와 지내면서 연령 차이, 법에 대한 이해의 차이, 신체 상태와 심성의 차이, 생활 습관의 다름 등으로 인해 나는 은연중에 가족 동수를 얕보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질투심이 불러일으킨 모순이었다. 내가 낮게 보던 가족 동수로부터 지적을 받자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내가 관용 어린 대우를 받지 못한다며 의문을 제기했을 때, 사실 나 또한 수년 동안 엄격한 잣대로 가족을 바라보며 가족 동수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이 생각났다. “지금의 사람은 도덕수준마저 비뚤어짐이 발생했다. 기사가 차를 빨리 몰았지만, 그가 일부러 사람에게 부딪치려고 했겠는가? 그는 본의 아니게 한 게 아닌가? 그러나 우리 지금의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만약 그에게서 돈을 좀 뜯어내지 않으면 이 구경꾼들조차 마음속으로 불만스러워한다.”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하며 깨달았다. 차에 치이는 큰 사고조차도 상대방이 무심코 한 일임을 고려해야 하고, 선의로 상대를 이해하여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생생세세의 업 빚을 갚고 이번 생의 선연(善緣)을 맺을 수 있다.
때로 우리는 회사나 사회에서 사람들과 지낼 때는 자신을 단속하며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정작 가정 환경에서는 느슨해지기 쉽다. 자신이 신(神)의 길을 걷는 사람임을 잊고, 수련을 통해 시종일관 신과 같은 자비로운 상태에 도달해야 함을 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私)를 닦아버리고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예전에 법공부를 하며 배웠던 내용이 떠올랐다.
“제자: 어떻게 하면 비로소 구세력의 배치를 진정하게 타파하여 사(私)로부터 걸어 나와 진정한 정법제자로 될 수 있습니까?
사부: 우주의 과거는 사(私)적인 것으로, 사람을 두고 말하면, 정말로 관건적인 시기에는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정법(正法)을 시작할 때, 일부 신들은 나에게 “당신만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 씁니다”라고 했다. 당신들이 들어도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대법이 육성한, 다른 사람을 위한 정법정각(正法正覺)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하지 않는다면 모든 생명은 역사에 따라 결속된다. 그러므로 한 생명으로서, 일할 때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관용을 표현할 수 있음은, 기점이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 수련자가 자신에게 사(私)적인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면 점차 그것을 극복하라. 인식했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 중에서 또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이 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며, 또한 자신이 이기적인지, 이기적이지 않은지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수련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반대로 늘 자신을 돌이켜보고 안으로 향해 찾을 것이다.”(《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
3. 가족 동수와의 연분을 소중히 여겨야
정법 수련의 긴 세월을 걸어오며 나와 가족 동수는 많은 일을 겪었다. 우리 둘 다 불법적으로 구금된 적이 있었고, 서로를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구출해 냈다. 병업관을 겪을 때는 서로 격려하고 발정념을 하며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갔다. 때로는 슬럼프에서 마난을 겪을 때면 생활 속에서 서로 돌봐주고 수련 속에서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서로 부축하며 이 30년 가까운 정법 수련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누적된 원한으로 인해 이번 생의 처신에서 마찰과 풍파가 끊이지 않았으나, 대법 안에서 수련한 뒤에는 과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함께 돌아갈 방향을 찾으며 수련의 성연(聖緣)을 맺게 되었다.
이번 모순을 통해 내가 숨겨두었던 집착심을 찾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수련 초기, 위사위아(爲私爲我)한 관념으로 운명을 바꾸려 했던 생각이 남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수련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 마음을 발견하고 점차 내려놓아 정법 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앞으로는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가족 동수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마음을 닦아버려 남은 길을 잘 걸어가고자 한다.
이상은 최근의 교류 체득이며, 부당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