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죽(新竹)
【정견망】
여러분이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인가? 많은 이들에게 부모님 외에 스승[老師]에 대한 존경은 분명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른바 천지군친사(天地君親師)라 하여 고대 중국에서 선생님은 줄곧 상당히 높은 지위를 가졌으며, 선생님을 부르는 명칭 또한 역사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주대(周代)의 ‘사(師)’는 임금을 보좌하는 태사(太師)였다. 《상서(尙書)》에는 “소공(召公)이 보(保)가 되고 주공(周公)이 사(師)가 되어 성왕(成王)의 좌우에서 보좌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왕을 보좌한 주공단(周公旦)이 바로 ‘사(師)’였다. 이외에도 사는 백성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는 관리였다. 《주례(周禮) 천관 대재》에는 “셋째를 사(師)라 하니 어짐으로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고 했다. 정현(鄭玄)은 “사(師)는 제후의 사씨(師氏)로 덕행이 있어 백성을 가르치는 자이다”라고 주를 달았다. 이를 통해 보건대 백성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덕행을 중시하는 전통은 이미 주대부터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한명제(漢明帝) 유장(劉莊)은 자신의 스승인 환영(桓榮)을 매우 존경하여 즉위한 후에도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앉는 존귀한 자리에 앉게 했다. 나중에 이 일이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스승을 서빈(西賓) 또는 서석(西席)이라 부르게 되었다.
[역주: 원래 군신(君臣) 관계에서는 군주가 남면해 북쪽에 앉는 것이 정상인데 한장제는 스승을 공경해 신하가 아닌 손님으로 대우해 서쪽 자리에 앉도록 배치한 것.]
물론 선생님을 ‘사부(師傅)’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옛날에 태사(太師), 태부(太傅), 소사(少師), 소부(少傅)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예기》에 “태부와 소부를 세워 세자(世子)를 가르치는 일을 맡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 관리들의 직능은 태자를 가르치고 익히게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사부(師傅) 역시 아주 존귀한 호칭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사부는 공상(工商)이나 곡예(曲藝) 분야의 스승으로 변했고, 심지어 우리가 평소 인사하거나 길을 물을 때 성인 남성을 사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령 차 수리공 사부, 운전기사 사부, 장(張) 사부, 왕(王) 사부 등으로 불리며 매우 평범한 호칭이 되었다.
오대(五代) 시기에 새로운 칭호가 생겼다. 당시 명사인 장유동(蔣維東)이 형산(衡山)에 은거하며 학문을 가르치자 사람들이 그를 높여 ‘산장(山長)’이라 불렀고, 이후 산속 서원의 주강(主講) 선생을 산장이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가 현대 흔히 사용하는 라오스(老師)라는 호칭은 사실 송원(宋元) 시기 소학 교사를 부르던 명칭이었다. 물론 선생님(先生)이라 부르기도 했다. 선생의 본래 의미는 남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후생(後生)과 상대되는 말이며, 당연히 아는 것이 많아 남을 가르칠 수 있다는 의미다. 민국(民國) 시기에는 학식 있는 여성도 선생이라 불렀으나, 현재 중국에서 선생은 일반적인 남성에 대한 존칭으로 변했다. 다만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라오스(老師)를 선생님(先生)이라 부르는데, 사실 모두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앞서 말한 스승의 별칭은 모두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기술이나 덕행을 전수하는 선생을 뜻하지만, 모든 호칭 중에서 가장 친근하면서도 존경을 나타내는 것은 단연 ‘사부(師父)’라 할 수 있다. 이른바 하루를 선생으로 모셔도 평생을 아버지로 섬긴다는 말이 있다. 사부라는 단어는 우리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불(佛)이나 도(道)를 닦는 수행자들이 자신의 스승을 높여 부를 때도 주로 “사부”라 한다.
손오공(孫悟空)은 기개가 드높아 옥황상제를 알현할 때도 그저 가볍게 인사할 뿐이었으나, 자신에게 도를 전해준 보리조사(菩提祖師)에게는 무한한 존경을 표했다. 사부님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하자 손오공은 노군(老君)의 팔괘로에 갇히는 처지가 되어서도 사부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았다. 왜일까? 생사윤회를 초월하는 대도(大道)를 전해주고 수행의 길에서 마주하는 각종 의혹을 풀어준 그 은덕은 실로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치며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이다[師者,所以傳道、授業、解惑也。]”라는 한유(韓愈)의 이 말은 스승의 참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있어 비록 우리가 수많은 스승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들은 대개 지식만을 전수할 뿐, 도를 전하고 의혹을 풀어줄 수 있는 사부는 극히 드무니 이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우리도 가끔은 인생의 의혹을 풀고 인생의 길을 밝혀줄 명사(明師)를 찾고 싶다는 일념이 스칠 때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일념이 순식간에 지나가 문자 메시지 하나, 전화 한 통, 처리하지 못한 계약서 한 장에 금방 흩어져버리고 만다. 이것이 바로 절실한 유감이 아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