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양회는 매일 집에서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며 바느질을 했고, 때로는 마을 여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손님으로 맞이하기도 했다.
물론 겉으로는 무사히 한가해 보였지만, 사실 모든 걸음은 여러 신과 상의한 후에 행한 것이었으며 무사지사(無事之事)를 하는 것이었다.
점차 장가만 여자들은 양회가 한가해지자 차림새가 정말 특별히 단정하고 유해졌으며, 언행에 풍운(風韻)이 넘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양회의 화장, 의복, 자태 등은 점차 장가만 여자들의 유행이 되었다.
모두들 그녀를 따라배우기 시작했다.
우선 그녀의 화장법을 배웠다.
여기서 양회의 생김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역사적으로 서왕모의 외모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녀는 신(神)이기에 상황에 따라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기로 고대 여자의 관상에 대한 미적 기준은 둥근 것을 복(福)으로 치고, 윤택한 것을 귀(貴)로 치며, 평화로운 것을 미(美)로, 균형 잡힌 것을 단(端)으로, 곧고 바른 것을 장(莊)으로 삼았다.
원윤(圓潤), 대칭(對稱), 평정(平整)은 동양 여자의 생김새를 가늠하는 세 가지 표준이다.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는 한 마디 말이 있다. 사람의 관상은 상당 부분 그 생명의 특징과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만약 한 민족의 미적 기준에 왜곡이 생겨 더 이상 천도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 또한 변이되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지금 중국의 미적 기준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여위고 뼈대만 앙상한 모습으로 변한 것 같다. 남녀를 불문하고 각진 것을 추구하며, 이른바 개성 있거나 매력적이라고 하는 모습, 혹은 퇴폐적이거나 냉담한 것, 사납고 쿨한 것,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모습들을 추구한다.
제각기 취향이 다르고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중화민족 본래의 전통적인 미적 기준을 저버려서는 안 되며 다시 일으켜야 한다.
먼저 골격과 각진 부분에 대해 말해 보자. 제3자 입장에서 우선 남자를 보자. 남자는 각진 것이 준수한가, 아니면 둥글고 포동포동한 것이 준수한가? 당연히 각진 남자가 더 준수해 보인다. 높은 콧날, 칼로 새긴 듯한 윤곽, 헌칠한 몸매를 가진 남자는 확실히 준수해 보인다.
음양의 관점에서 보면 남자가 각진 것으로 아름다움을 삼는다면, 여자는 가지런함(平整)을 아름다움으로 삼아야 음양의 도에 부합한다. 각진 것은 양강(陽剛)과 활력을 대표하고, 가지런함은 온유함과 한가함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양회의 이목구비는 매우 가지런했다. 그녀가 사법천신이었을 때 “온화한 얼굴에 영기가 서려 있다”라는 시 구절로 묘사된 적이 있다. 그녀는 본래 상냥(和藹)한 얼굴인데, 여기서 애(藹)라는 글자는 무성한 숲과 나무를 뜻하며 무성함을 의미한다. 여자는 곤(坤)이자 대지이기에 당연히 상냥함을 아름다움으로 삼아야 한다. 대지에 나무가 울창해야 대지가 아름다운 법이다.
지금 사람들은 애(藹)를 나이 든 사람을 형용하는 말로 여기지만, 사실 인상이 선하고 커다란 포용상(包容相)과 승재상(承載相)을 갖추고 있다면 모두 상냥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포용력이 있어 보일까? 얼굴이 넓고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게 펴져 있으면 선해 보이고 포용력이 느껴진다. 언행 사이에도 웃음 띤 목소리가 온화하게 배어 나온다.
하지만 보라. 여자의 얼굴 중앙에 콧날이 너무 높고 골격이 강하면 그렇게 넓어 보이지도 시원스럽지도 않다. 각이 지거나 높은 것은 모두 모이는 상이기에, 펴지고 넓은 것과는 반대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그림(古畵) 속의 시녀도를 보면 모두 평평한 얼굴인데, 가지런함을 미로 삼았기 때문이다.
옛 그림 속 여자의 코를 관찰해 보면 높음을 강조하지 않고 오직 곧음(直)만을 강조한다. 반면 남자를 그릴 때는 더 높게 강조한다. 중국화가 사의(寫意) 위주라 할지라도 남녀의 음양 차이는 이렇게 체현된다.
농담 삼아 말하자면 동양 여자들이여, 더 이상 콧대를 세우지 말고 각이 질 정도로 살을 빼지 마라. 우리 동양 여자는 대지처럼 시원스럽고 넓으며 정숙해야 한다.
다음으로 원윤(圓潤)함을 보자. 지금 사람들은 옛날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포동포동한 것이 집안에 돈이 있고 배불리 먹는다는 증표였기에 원윤을 아름다움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어느 시대든 빈부 격차는 있었다. 지금 중국 대륙에도 여전히 수입이 매우 낮은 사람이 수억 명에 달하지 않는가? 대륙 산골 마을의 부녀자와 아이들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데, 왜 지금 대륙은 원윤함을 미로 삼지 않는가?
원윤함은 여자의 복과 귀함의 체현이자 정태적인 아름다움(靜態美)이다.
요즘 여자들은 헬스를 강조하며 근육을 키우기도 한다. 만약 여자가 온몸에 근육을 만든다면 신체에 가해지는 손상은 남자보다 훨씬 크다.
운동은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노화를 앞당긴다. 여자의 월경은 대사를 돕기 위한 것인데, 여자는 체력적으로 큰 대사량을 감당하기 어렵기에 자연스럽게 월경을 통해 대사를 돕는 것이다.
여자는 기본적으로 스스로 한 몫의 대사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고강도 운동까지 더하면 두 몫의 대사를 하게 되어 노화가 빨라진다.
그래서 원윤한 여자가 늙는 것이 더디고 젊어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고요함(靜)을 좋아해 신체 세포 분열이 그렇게 빠르지 않기에 자연히 젊은 것이다.
연예인들은 매일 운동하며 몸매를 관리하는데 왜 젊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그들은 과학 기술을 이용한 것이며 이는 커다란 부작용을 동반한다.
(물론 수련인은 예외다. 수련인은 다른 방식을 통해 본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원윤한 여자는 보기에 안정감이 있고 조급하지 않아 정태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여자는 대지(大地)인데, 대지가 안정되지 못하고 늘 움직인다면 그것은 곧 지진이 아니겠는가? 이것들은 모두 심성과 대응한다. 심성이 천도에 부합하고 높다면 덕을 쌓게 되지 않겠는가? 덕을 많이 쌓으면 자연히 얼굴에 복이 가득한 상이 나타나게 된다.
양회 역시 원윤한 생김새였다. 또한 양회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매우 대칭적이고 균형이 잡혀 있었다. 상정(上庭), 중정(中庭), 하정(下庭)의 비율이 거의 같았고 눈매도 매우 대칭적이었다. 살구씨 모양의 눈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으며, 눈썹은 길지도 짧지도, 굵지도 가늘지도 않았고 미간의 간격도 적당했다. 코는 높지 않지만 곧았고, 입은 크지 않았으나 입술 윤곽이 분명했으며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너비가 같았다.
대칭미는 고대에 미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표준이었다. 대칭과 균형은 보기에 정돈되어 보인다. 정돈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지럽지 않음을 의미한다. 어지러움은 바르지 못한 상태이며, 그에 대응하는 올바른 상태가 바로 정돈됨이다.
옛날 남녀는 모두 대칭미를 소중히 여겼다.
또한 이목구비가 대칭되고 정돈되려면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있는데, 바로 곧음(直)과 바름(正)이다. 곧지 않고 바르지 않으면 대칭을 이룰 수 없다. 원은 곧지 않지만 바르기에 대칭을 이룬다.
이야기꾼의 평서(評書)를 들을 때 정면(正面) 인물이 등장하면 그의 외모를 비직구정(鼻直口正, 코는 곧고 입은 반듯함)이라고 묘사하는데, 이는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 대륙 사람들은 얼굴을 매우 비대칭적으로 만든다. 눈은 비정상적으로 크게 하고 이마는 툭 튀어나오게 하며 턱은 매우 좁고 뾰족하게 만든다. 눈이 너무 크면 상정이 넓어 보이는데 하정은 매우 좁게 만드니, 보기에 가분수 같고 경박하여 명이 짧은 상이다.
지금 사람들은 무질서한 미(淩亂美)를 논하기도 한다. 임대옥은 이상은의 시 구절인 “시든 연잎 남겨두어 빗소리를 듣네”를 좋아했다. 파손되어 어지러운 연잎이 비에 두들겨 맞으며 내는 기묘한 소리가 시인의 감성을 위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파손과 어지러움에 대해 감상할 수는 있지만, 생명 그 자체로서 누가 그 파손되고 어지러운 연꽃이 되고 싶겠는가?
이런 것들은 괴멸(壞滅)의 표현이다. 평정(平整)하고 직정(直正)한 것이야말로 생명의 왕성한 모습이다.
동양 여자의 얼굴은 윤곽이 원윤하고 평정하며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균형 잡힌 것이어야 외유내강하고 정선(貞善 곧고 선량)함이 공존하는 생명의 본색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동양의 전통 심미관에는 깊은 내함이 있으며, 한 조항 한 조항마다 깊은 도리가 담겨 있다.
물론 모든 여자가 똑같이 생길 수는 없으며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겠으나, 단장중정(端莊中正), 평화온유(平和溫柔), 원윤풍운(圓潤風韻) 이 세 가지는 기본적으로 우리 동양 여자의 전통적인 미적 기준이다.
더 심오하게 말하자면, 서로 다른 신(神)들이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서로 다른 인종의 사람을 만들었기에 피조물인 인간은 마땅히 자신을 만든 그 신의 생명 특징을 지녀야 한다. 동양의 신이 동양인을 만들었으니 동양인은 동양 신의 외모 특징을 지녀야 한다. 당신은 그 신의 한 입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동양인이 멋대로 콧대를 높여 서양인처럼 만들고, 뼈를 깎아 턱을 여우처럼 뾰족하게 만든다면, 그런 사람이 여전히 그 신의 입자이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이미 당신을 만든 신의 특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을 만든 신은 매우 슬퍼하며 당신을 포기할 것이다.
(물론 수련의 기초가 없다면 이 단락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그냥 이야기로 간주하기 바란다.)
여자이기에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 더 강한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장가만 여자들 역시 화장을 통해 자신을 더 예쁘게 가꾸고 당시의 심미 표준에 부합하려 노력했다.
얼굴이 대칭되지 않는 이는 연지로 색을 조절해 삼정이 대칭되어 보이게 했고, 눈썹이 대칭되지 않으면 대칭되게 그렸다. 가급적 자신의 용모가 원윤하고 단정하며 평화로워 보이게 했다.
장우인과 양회의 집은 가난했지만 장가만 백성들은 부유했다. 집집마다 남편들이 넉넉한 봉급을 받았기에 아내들은 비교적 원윤하고 평온하게 지냈으며 의복도 화려했다.
왕의 부유함은 재물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나타난다. 장가만 백성들이 잘사는 것이 곧 장우인과 양회의 재산이다.
때때로 양회는 여자들만의 흥미로운 경기를 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보요경주 같은 것이었다.
머리에 보요를 많이 꽂고 걷기 시합을 하는 것이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 자세로, 머리의 보요를 가장 흔들림 없이 유지하며, 그러면서도 빠르게 걷는가를 겨루어 승자를 가렸다.
경기장 위에서 선녀 같은 여자들이 면사포를 쓰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걸어가는데, 몸짓은 우아하고 발걸음은 가벼워 정말 선녀들이 떠가는 듯 매우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이 경기는 여자들이 단정하고 우아한 자태를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여기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또한 차를 끓이고 꽃을 꽂는 일, 금기서화(琴棋書畵 고금 바둑 서예 그림), 산학(算學 산수)과 형학(形學 기하학) 등은 여자들이 평소 즐길 수 있는 취미였다.
드물게 자신의 본분을 다 배운 후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여자도 있었는데, 이 역시 가능했다. 다만 여자는 신체 구조상 힘이 약해 실제로 전장에 나가기는 어렵기에 대개 취미로 삼았다.
언행이 선량하고 온유하다면 어떤 능력을 갖추든 상관없다.
지금 사람들은 “여자는 재능이 없는 것이 덕이다”(女子無才便是德)라는 구절에 집착한다. 이 구절의 앞 문장은 “장부는 덕이 있는 것이 바로 재능이다”(丈夫有德便是才). 사람들은 이 한 구절을 보고 옛사람들이 여자를 차별하고 억압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속담이란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여자는 어떤 상황에서 남자를 대신하거나 능가할 수 있지만, 남자는 결코 여자를 대신할 수 없다. 남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천성적으로 세 가지 일, 즉 출산, 양육, 교육을 안고 온 것이다. 이미 고정된 세 가지 큰일이 있는데 여기에 다른 재능까지 갖추어 능력이 많아진다면, 그 일생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남자가 큰 재능이 있어 그것을 떨치게 되면 매우 화려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큰 재능을 가지면 그녀의 노고와 고생은 반드시 그 화려함보다 클 것이다.
“여자는 재능이 없는 것이 곧 덕이다”라는 말은 여자가 재능을 갖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재능 있는 여자들이 모두 더 힘들게 산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별다른 재능이 없는 여자라면 그것 또한 당신의 복이다.
문화가 파괴된 후 오늘날 사람들은 옛사람들에 대해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칠거지악 같은 것들이 교과서에 실려, 마치 고대 남자들이 인간 같지도 않게 여자들을 괴롭히기만 한 것처럼 묘사된다.
왜 고대 여자에게는 칠거지악이 있는데 남자에게는 없었을까?
남녀의 차이 때문에 남녀의 “도장(道場)”이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 제도는 남자를 구속하기 위한 것인데, 남자의 도장은 집 밖인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의 도장은 집안에 있었기에 여자를 요구하는 가법(家法)이 있었던 것이다.
즉 남자는 밖을 주관하고 여자는 안을 주관하기에 남자는 사회의 구속을 받고 여자는 가정의 구속을 받는 것이다. 이는 남녀의 도장이 다른 것이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에도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형법(刑法)이 있었지만 이는 큰 죄를 지은 극소수의 여자에게만 해당했다. 보통 여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가법(家法)으로 다스렸는데, 여자는 본래 약하기에 배려해 준 것이다. 남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밖의 형법을 받아야 했는데 그것이 훨씬 더 무겁지 않았겠는가?
진시황 시기에 남자가 밖에서 음탕한 짓을 하면 아내가 그를 죽여도 무죄였다.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 역시 형법으로 다스렸다. 진시황은 육국을 통일한 대장부로서 온몸에 양강(陽剛)한 제왕의 기개가 넘쳤는데, 그가 여자를 얼마나 보호했겠는가!
양강한 남자일수록 약한 자를 보호하는 데 익숙하다. 음험하고 대장부다운 흉계와 기개가 없는 소인배들이나 늘 여자를 함정에 빠뜨리고 속일 궁리를 하는 법이다.
즉 사회의 남자들이 양강할수록 그 사회의 여자들에게는 더 좋은 일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 여자가 남자를 압도하고 남자보다 높아야 한다고 유도하며, 많은 부모가 딸의 이름을 “초남(超男 남자를 초월)”이니 “승남(勝男 남자를 싸워 이김)”이니 하고 짓는다. 사실 이는 목적지와는 정반대로 가는 길이다.
이 사회에서 남자가 양강하지 못할수록 속좁고 음험하며 인색해진다. 온통 여자에게 마음을 두고 궁리만 하게 된다. 요즘 보험금을 가로채려고, 처가의 재산을 탐내서, 혹은 아내의 재물을 탐내서 아내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거나 토막 살인을 하고 심지어 삶아 죽이기까지 한다는 보도가 즐비하지 않은가!
양강한 남자는 절대로 이런 마음을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양(陽)은 정념(正念)과 정기(正氣)를 뜻하기에 사악한 일을 행하지 않으며, 강(剛)은 의지가 굳건하여 욕망에 휘둘리거나 제멋대로 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남자들이 얼마나 음험(陰險)해졌는가? 음이 양을 억누를수록 양은 더욱 왜곡될 것이며, 양이 왜곡되면 어찌 음을 해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들이 양은 위에, 음은 아래에 나타낸 것은 음양이 각자의 직분을 다할 때 드러나는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그것이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거나 고대 남자가 여자를 억압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남녀는 본래 다름이 있고 예절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사람들이 또 하나 말하는 것이 고대 여자의 전족(纏足)이다. 이 전족은 나중에 흥기한 것이지 5천 년 문화가 “성주(成住)” 시기에 정해진 것이 아니다. 바로 “괴멸(壞滅)” 시기에 나타난 것이다.
여자 ‘전족(纏足)’에 관해서는 송조(宋朝)의 기록이 있다. 하지만 당시의 전족은 신체를 파괴하는 전족이 아니라 일종의 교정이었다. 송조의 전족은 발을 가늘고 곧게 싸매는 것이었지 발을 굽게 으스러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그 뒤 명조(明朝)에는 여자들이 전족을 하지 않았다.
청조(淸朝)에 이르러 여자들이 대규모로 파괴적인 전족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옛사람들은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매우 반대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하여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불효로 여겼기 때문이다.
청초의 강희제는 이러한 전족의 폐습을 매우 반대하여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전족과 소각(小脚)은 청 후기에 들어서야 성행하게 되었다.
사실 이 역시 괴멸(壞滅)이 머지않아 사람의 업력이 커지고 인간 세상의 음양이 뒤바뀌려 하니, 일부 난잡한 신[亂神]들이 이런 일을 안배하여 저열한 방법으로 여자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그러나 훗날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에 의해 수년 동안 커다란 멍에가 씌워졌고 수많은 중국 여성을 미혹시켰다. 이로 인해 역사를 모르는 수많은 중국인이 고대와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깊은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음양반배(陰陽反背), 예붕악괴(禮崩樂壞), 불투명한 역사와 불분명한 이념… 애석한 일이다.
음양은 반드시 바로 잡혀야만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
중화 전통문화 속의 음양 조화는 인간 세상이 천도(天道)의 운행에 부합하게 하여 사회를 안녕케 하려는 것이며, 이는 남자에게도 좋고 여자에게는 더욱 좋은 일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8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