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대법제자 청련(淸蓮)
【정견망】
1999년 ‘4.25’ 이날을 나는 매우 분명하게 기억한다. 비록 27년이 지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의 친척 동수 집은 법공부 소조였는데, 당시 매주 수십 명의 대법제자가 함께 모여 법공부를 했다. 법공부장에는 노인과 젊은이, 그리고 어린아이도 있었다. 친척 동수는 대법을 수련한 후 온갖 병이 다 나았고, 1무(畝)가 넘는 옥수수밭을 혼자서 다 수확할 정도로 몸에 힘이 넘쳐났다. 친척 동수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주변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모두 알려주었다.
‘4.25’ 사건 당시 친척 동수는 이미 60세가 넘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하북에서 북경으로 평화 청원을 하러 갔다. 돌아온 후 그녀는 “천진 대법제자들이 체포되어 전국 각지의 대법제자들이 자발적으로 북경 신방국(信訪局)에 청원하러 갔다. 현장에는 구호를 외치는 팀장도 없었고, 대법제자들은 모두 조용히 서서 책을 읽거나 연공을 했다. 밤늦게 일이 해결된 후에야 대법제자들은 조용히 떠났는데, 떠날 때 땅에 떨어진 쓰레기와 경찰이 버린 담배꽁초까지 주웠다”라고 말했다. 동수는 그날 하늘에 파룬(法輪)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했으며, 그곳에서의 아름다운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加持)하고 격려해 주신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신심이 생겼으며, 나 역시 북경에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 한마디를 하고 싶었다!
어느 날 향 정부와 파출소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더니, 한 소녀에게 밤낮으로 우리 집을 감시하게 했다. 나는 그 소녀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해주었고 그녀도 매우 공감하며 파룬궁을 수련하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튿날 나는 그들이 밥 먹으러 간 틈을 타서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현성(縣城) 소재지로 갔다가 다시 고비점(高碑店)시까지 갔다. 나는 시골 사람이라 멀리 나가본 적이 없어 북경으로 어떻게 가는지 몰랐고, 날이 어두워지려 하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사악은 내가 집에 없는 것을 보고 텔레비전, 녹음기 등 값나가는 물건들을 모두 가져갔고, 가져가지 못한 침대와 옷장은 구멍이 숭숭 뚫리도록 때려 부수어 놓았다. 그들은 내가 집에 돌아온 것을 보고 나를 구류소로 잡아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한 악경이 채찍으로 내 등을 모질게 때렸으나, 몸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해 모든 것을 감당해 주신 것이었다. 구류소에는 많은 대법제자가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보내주지 않자 우리는 단식을 시작했다. 5박 6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니 사악은 인명 사고가 날까 봐 겁이 나 상부 지도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결국 우리를 각 지역 향 정부에서 운영하는 세뇌반으로 보냈다. 사악은 본래 나를 세뇌하려 했으나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며칠 후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99년 ‘4.25’ 평화 청원에 참여했던 대법 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3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