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동탁이 대신들을 핍박해 황제를 폐위시킨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황제는 황제가 아니요, 왕은 왕이 아니로다”라는 예언이 완전히 응험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아마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만약 역사가 하늘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면, 왜 하필 한말(漢末)은 4국이나 5, 6국이 아닌 ‘삼국’이 병존하는 설정이어야 했을까? 왜 이전 왕조들처럼 폭군이나 혼군이 나타나 평범하게 끝내지 않고, 권신이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는 현상을 반복하며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 했을까?
삼국이 전하는 삼재(三才)
저자가 《삼국연의》를 신전문화(神傳文化)의 각도에서 썼다면, 모든 일에는 정해진 수(定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어떤 문화를 남길 것인가’라는 목적이 있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삼국’이 출현했다는 것은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의 개념을 명확히 정립하고 운용하기 위함이다. 이 개념을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인지시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우주관을 잊지 않게 하고, 후세의 제왕장상(帝王將相)과 현재명사(賢才名士)들이 천지에 대한 경외심과 감사함을 간직하며 함부로 무법천지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삼국이 ‘천지인’ 삼재의 내함을 대표한다는 점은 《연의》에서 제갈량의 말을 통해 전해진다. 유비의 ‘삼고초려’ 이야기는 이러한 개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제갈량은 초려를 나서기도 전에 이미 천하가 셋으로 나뉠 것을 알았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온전하게 기억하든 그렇지 않든, 최소한 삼국이 각자 가진 우세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조조는 ‘천시(天時)’를
점거했고, 유비는 ‘인화(人和)’를 가졌으며, 동오는 ‘지리(地利)’를 얻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제갈량은 삼국이 각자 가진, 하늘이 안배한 돌출된 요소를 천지인 삼재의 개념에 따라 구분했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에서 각자가 가진 우세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삼재가 반드시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는 문화관을 전달하고 있다. 이는 일찍이 힌트를 준 것과 같다. 이 세 나라는 비록 각자 서로 다른 우세를 지녀 잠시 병립하고 대립하는 국면이 나타날 수 있지만, 결국 오래갈 수는 없다. 오직 천지인 세 가지 조건이 하나로 합쳐져야만 중원의 통일을 완성할 수 있으므로, 세 나라는 결국 모두 멸망하게 된다. 어느 나라의 군주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며, 이 땅을 최종적으로 통일할 천명(天命)이 없었다.
삼국의 출현은 천지인 삼재가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안 되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대업(大業)을 이룰 수 없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본 제갈량의 큰 재능과 지혜이며,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전쟁 상태와 대업을 이루려는 욕구에 부합하여 삼재의 문화적 실질을 설명한 것이다. 이 역사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웅대한 문화관을 광범위한 일반 백성들에게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 이러한 삼국의 역사가 있었기에 삼재의 내함은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질 수 있었다.
유비와 조조 모두 통달한 천명관을 지녀
이 천지인 삼재의 문화는 송대(宋代)에 이르러 《삼자경(三字經)》에 정식으로 기록되어 학동 교육의 교과서 내용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오천 년 정통 문화는 언제나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는 문화였으며, 사람들은 그로 인해 천의(天意)에 순응하고 천명을 알며 도의를 엄격히 지켜 감히 어기지 못했다. 이러한 심태 하에 사람의 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며, 성공과 실패는 모두 천명에 맡겼다. 유비와 조조, 이 책에서 묘사된 두 대립적인 영웅은 비록 많은 세부 사항이 역사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나, 어떻게 묘사되든 그들은 모두 통달한 천명관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조조가 의롭게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했을 때 스스로 이것이 천의임을 인정했다. 또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백만 대군을 잃고 결국 화용도로 패주할 때, 도망치는 도중 제갈량의 매복에 여러 번 걸려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음에도 여전히 호방하게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여러분이 생각해보라. 만약 천명과 생사의 정해진 수를 깊이 믿지 않았다면, 어찌 백만 대군을 잃은 승패를 이토록 담담하게 대할 수 있었겠는가. 일반인이라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다시 유비를 보면, 제갈량이 유비에게 조조의 두터운 은혜를 입은 관우에게 화용도를 지키게 한 원인이 조조의 운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고 천상이 그러하기 때문이며, 자신은 천의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고했다. 그래서 일부러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도록 안배하여 천의에 순응하는 동시에 관우의 의거(義擧)를 성취하게 하고, 이전에 조조가 관우를 후대한 은혜를 갚게 했다. 이때 유비는 활연히 깨달아 적수 조조를 제거할 가장 얻기 어려운 기회를 놓아준 제갈량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고인(古人)이 천지에 대해 가졌던 경외심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천명관이 없고 세간의 역사가 천상(天象)의 연화(演化)이며 사람마다 각자의 명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득실과 성패를 매우 무겁게 보아 진정한 영웅호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천명을 아는 것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달하게 된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역대 제왕을 보좌하여 나라를 세운 명신과 어진 재상들은 모두 속인이 아니었다. 특히 제1대 제왕의 스승으로 간주되는 상조의 현상(賢相) 이윤(伊尹), 즉 지난번 노식이 언급했던 태갑 왕을 폐위할 자격을 갖춘 승상은 그 지혜가 제갈량보다 낮지 않았을 것이다. 삼국 중의 제갈량은 우리가 말했듯이 거의 그의 역할과 같았다. 왕을 보좌할 큰 재능을 가진 이들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며, 일찍이 자신의 천명을 명확히 알고 천하의 대세에 통달해 있었다. 모든 일은 단지 천의에 따라 행한 것일 뿐, 결코 인간 세상의 공명이나 이록을 무겁게 보지 않았으며 제왕의 자리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사욕이 전혀 없는 큰 재능을 가진 이라야 제왕을 폐위하거나 세우는 일을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황제가 황제가 아닌 수십 년의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
그러면 두 번째 문제는 동탁이 소제를 폐한 후 권신이 헌제를 협박하는 역사가 정식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물론 조조의 실제 역사는 천자를 받들어 제후를 호령한 것이겠지만, 여기서는 소설 속에서 예술적으로 가공된 문학적 형상을 다루는 것이므로 구분하지 않기로 한다. 우리는 단지 이 역사가 매우 특수하다는 점만을 말하고자 한다. 분명 영제(靈帝)라는 혼군이 붕어한 후 곧 한조는 끝났어야 했는데, 유독 동탁부터 시작하여 여러 차례 권신의 교체를 겪으면서도 말대 천자인 한헌제(漢獻帝)는 실제로 실권이 없었다. 이는 제왕의 빈 이름만 남겨둔 채 수십 년 동안 황제가 황제가 아닌 역사를 유지한 것과 같다.
천하에 정해진 주인이 있다고 말하자면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없는 것과 같고, 없다고 말하자면 명분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게다가 그는 본래 천자가 총명하고 아무런 과실이 없었으며 혼용하거나 포학하지도 않았다. 이런 제왕의 손에서 끝나기까지 32년이 지속되었으니, 이러한 역사의 안배는 정말 특수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의외라고 느끼게 한다. 역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도 곤혹스러워하며, 이 때문에 한헌제의 처지를 매우 동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시 천의로부터 사람의 이치로 돌아가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모두 풀리고 나면 동탁이 황제를 폐하는 장회 이후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4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