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파룬궁 수련생 양선(揚善)
【정견망】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지 이미 27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광범위한 파룬궁 수련생들은 시종일관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사실을 명확히 설명해 왔다. 내가 있는 지역의 파룬궁 수련생들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수많은 대중은 진상을 명백히 안 후 각기 다른 정도의 복보(福報)를 받았다. 반대로 일부 사람들은 중공의 거짓말을 믿고 공산 사당(邪黨)의 바짓가랑이를 죽어라 붙잡고 놓지 않다가, 결국 그 당의 순장품이 되면서도 알지 못했다. 이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인가!
아래 글은 우리 집 두 인척의 실제 상황이다. 이를 써내어 아직까지도 여전히 중공을 바짝 따라 달리는 소수의 사람에게 하루빨리 낭떠러지에서 말 고삐를 잡아매고 머리를 돌려 파룬따파(法輪大法) 편에 서서,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가·악·투(假·惡·鬥)’를 버리고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는 것은 자신에게 책임지는 것이자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다량(大亮, 가명)은 내 큰시누이의 아들(외조카)로, 쉰 나이에 이미 우리 이 일대에서 널리 알려진 천만장자가 되었다. 그의 재물이 샘솟듯 쏟아진 비결은 무엇일까?
중공의 정치 깡패 두목 장쩌민은 99년 중국 대륙에 우주 대법을 파괴하는 요사한 바람(妖風)을 일으켜 온 신주(神州) 대지를 휩쓸었다.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모두 탄압을 받아 정부 관원과 공안 경찰의 박해 대상이 되었다. 나는 파룬따파 속에서 지대한 혜택을 입고 사지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은사(恩師)님을 배반할 수 없었고 반드시 정의를 펴야 했기에,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 이로 인해 난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떠돌게 되었다.
그때 집 건물이 이미 낡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두 친척은 한뜻으로 우리에게 새 집을 지으라고 했다. 큰시누이 남편은 힘을 보태겠다며 발벗고 나서서 준비를 도왔고, 작은시누이는 돈을 보태겠다며 부족한 돈은 전부 내놓겠다고 했다. 친척들이 이처럼 우리가 집을 짓는 것을 지지해 주니 우리는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했다.
그해 나는 살며시 집으로 돌아와 집 지을 준비를 했다. 나와 남편은 다른 마을에 있는 큰시누이 집에 가서 시누이 남편과 집 짓는 몇 가지 일을 상의했다. 당시 시누이 남편은 이미 칠순을 앞둔 노인이었지만 온 마음으로 우리를 도우려 했다. 그러나 세월은 속일 수 없는 법이라, 그는 자신이 연로하여 집을 짓는 것은 큰일이자 마음 쓰고 신경 써야 하는 일인데, 걱정되는 것은 만에 하나 감당하지 못할까 봐 또 다른 도우미가 한 명 더 있다면 마음이 놓이겠다고 했다.
우리가 마땅한 사람을 찾고 있을 때 외조카 다량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우리가 집을 지으려는 상황을 알게 된 후 즉시 태도를 밝히며 말했다. “저와 저희 아버지가 함께 지어드릴게요. 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시지만 저는 젊으니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은 문제없어요. 안심하고 지으세요.”
다량의 지지 하에 우리는 집 짓는 자재를 구입하기 시작하고 시공 인원을 모집했다. 다량은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를 데리고 남쪽 마을 북쪽 동네로 다니며 미장공 반장을 연락해 주었고, 그 혼자서 철근 반장, 콘크리트 반장을 찾아가 협상하기도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집 시공을 시작했을 때 나는 경찰에 붙잡혀 현지 구류소에 갇혔다. 큰시누이 남편이 친히 나에게 이불과 짐을 가져다주었고 내게 돈도 좀 남겨주었다.
내가 악명 높은 마삼가(馬三家) 노동교양소로 납치된 후, 큰시누이 남편은 남편과 아이와 함께 나를 면회하러 왔고 또 내게 돈을 좀 남겨주었다. 그는 손자를 보았다며 아이가 아주 예쁘게 생겼다고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게 내게 말했다. 나는 그를 위해 기뻐하며 “당신같이 좋은 사람은 좋은 보답을 받을 겁니다”라고 격려했다.
내가 석방되어 돌아온 후 집은 옛 모습이 새 모습으로 바뀌어 한 채의 새롭고 아름다운 큰 집이 눈에 들어왔다. 약 2미터 높이의 붉은 담장 마당은 우리 이 농가 작은 마당을 유독 장관이고 아름다우며 눈부시게 장식해 주었다.
남편은 흥미진진하게 나에게 집을 지은 전체 개요를 들려주었다. 남편은 “큰고모부가 꼬박 반년을 뛰어다니셨어. 비바람이 치든 날이 흐리든 다 오셔서 내가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셨고 부족한 것은 모두 챙겨주셨지. 때로는 집의 채소를 가져다가 나와 아이에게 먹이기도 하셨어. 비 오는 날에는 자전거를 타지 못하시니 걸어서 오셨는데, 한 발자국씩 진흙탕을 밟으며 오시는 게 정말 쉽지 않았지. 외조카도 자재 사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부족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샀고, 부르면 언제든 왔으며 필요한 물건은 제때 사 와서 일을 지체하지 않았어. 우리 집 플라스틱 섀시 창문은 그 애가 친히 골라 산 건데, 내 돈이 부족한 것을 보고 또 우리에게 4000위안을 보태주었어. 이 아이는 참 좋은 아이야. 나를 도와 그렇게 많은 일을 챙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갑을 털어 우리 집에 돈까지 보태주었으니 말이야.” 이 말을 듣고 나는 남편에게 이처럼 좋은 친척이 있다는 것에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내가 돌아온 이튿날 큰시누이와 고모부, 외조카가 축하금을 가지고 나를 보러 왔다. 큰시누이는 나를 도와 한 상 가득 요리를 만들었고 식사하는 동안 우리는 집안이야기를 나눈 후 내가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말해주었다. 그들이 알아들은 후 외조카는 중공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고 큰시누이와 고모부는 아무것도 가입한 적이 없었다. 그들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내 신체에서 일어난 천지개벽의 변화를 통해 이미 파룬따파가 사람을 구하는 좋은 공법임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큰고모부는 심성이 선량해서 평생 남을 돕기를 좋아했기에 십여 개 마을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매우 높은 성망을 누렸다. 그는 농사를 잘 짓고 재물을 얻는 도리가 있었으며 천하의 친구를 널리 사귀어, 자기 집이 훗날 빈곤에서 벗어나 부유해지는 좋은 기초를 다졌다. 그는 장사를 할 줄 알았고 가축을 경영하는 능력과 풍부한 경륜을 갖추고 있어 나귀와 말을 매매하는 일련의 성공 경험을 쌓았다. 개혁개방 후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솜씨를 크게 발휘하여 그의 집 살림은 날로 번창했다.
십 년 동안 아들 다량은 아버지의 본업을 이어받아 말 장사를 시작했다. 시작할 때는 겨우 십여 마리를 들여왔지만 조금씩 눈덩이처럼 굴리며 발전해 나갔다. 이삼십 마리에서 사오십 마리로, 육칠십 마리에서 백여 마리로, 다시 백여 마리에서 이백 마리로 늘어나며 장사는 갈수록 흥성했다.
다량은 동업자들과 함께 신강, 내몽고 목축지 초원에 가서 망아지를 사 왔고 집에 도착한 후 살을 찌워 두 달 만에 우리를 나서 도축장에 팔았다. 말 한 무리면 꽤 쏠쏠한 돈을 벌 수 있었다.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며 해마다 한 무리씩 사고 한 무리씩 키우고 한 무리씩 팔면서 그의 집은 현지의 벼락부자(暴富) 가정이 되었다.
요 몇 년 동안 다량은 말을 구입할 때 자주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차량을 압송해 돌아왔다. 그는 또 푸른 대초원의 무한한 풍경을 인터넷에 올려 네티즌들이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다량도 한번 난을 겪은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어느 날 그의 집 말 무리가 갑자기 미쳐 날뛰었다. 말을 먹이던 다량은 말 한 마리에 부딪혀 넘어졌고, 순식간에 말 무리는 진영이 어지러워져 화살처럼 광란하며 달렸다. 야생마처럼 질주하는 말 무리가 그의 몸 위로 몇 바퀴씩 날듯이 달려 지나갔고, 그는 무력하게 땅에 엎드려 도저히 일어날 기회가 없었다. 현장에 있던 많은 고향 사람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목구멍까지 차올라 그를 위해 손에 땀을 쥐었다. 어떤 사람은 “이번에 다량은 끝장났군”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다량이 죽지 않더라도 가죽 한 꺼풀은 벗겨져야 할 걸”이라고 했다.
말 무리가 마침내 광란의 질주를 끝내고 조용해졌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한 장면이 나타났다. 갑자기 다량이 단번에 땅에서 스스로 일어났는데, 신기하게도 몸에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것이었다. 다량은 “말들이 누구 하나 나를 밟지 않고 모두 내 몸 위로 날아서 지나갔어요”라고 했다. 모두 그를 위해 기뻐하며 그가 목숨이 길고 복이 많으며 행운이 크다고 말했다.
다량은 자기 집에서 말을 키울 뿐만 아니라 그의 여동생 집도 도와 말을 키우게 했다. 그의 여동생은 아들이 둘 있어 생활 압박이 매우 컸다. 현재 중국에 사는 농민들은 아들이 하나 있는 가정도 부담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학까지 키우고 졸업 후 차를 사고 집을 사며 장가들어 아이를 낳기까지 백만 위안이 없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하물며 아들이 둘 있는 가정의 값비싼 비용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다량은 여동생을 동정하여 원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몇 년 동안 그의 여동생은 그의 전폭적인 도움 하에 이 말 키우는 업종에 들어서서 몇 마리에서 수십 마리로, 지금은 역시 백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의 여동생 집 경제도 다량의 덕을 보아 발달하게 되었다.
다량의 아내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견뎌내며 다량과 함께 말을 키웠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전전긍긍하며 열심히 업무를 돌보았다. 다량의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남편과 함께 가게를 열어 사업이 번창하고 있으며, 다량의 아들은 외삼촌을 따라 선전으로 가서 발전하고 있다.
다시 큰고모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는 올해 이미 89세 고령이지만 귀도 먹지 않고 눈도 침침하지 않으며 정신이 맑고 안색이 건강하다. 그는 언제나 싱글벙글하며 지팡이를 짚고 아들의 말 사육장에 가서 말을 보기도 하고, 거리에 나가 고향 사람들과 집안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다량의 일가 사대는 생활이 원만하고 화기애애하다. 근본적인 것을 보자면 그와 그의 아버지가 선(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흑가(黑哥, 가명)는 남편의 고종사촌 형으로 이웃 마을에 산다. 내가 감옥에서 돌아온 후 그도 나를 보러 왔기에 내가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말해주었으나 그는 귀담아듣지 않고 반박하며 말했다.
“제수씨, 내가 정말 잘 권하겠는데 당신이 공산당과 맞서 싸우니 팔뚝이 허벅지를 비틀어 이길 수 있겠소? ‘영리한 사람은 눈앞의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하니 더는 파룬궁을 연마하지 마세요. 요 몇 년 동안 당신이 동분서주하다가 결국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소. 이제 돌아와 자유를 얻었으니 살림이나 잘 하시오. 절대 다시 들어가지 마시오. 지금은 공산당의 천하요. 우리 백성은 공산당의 말을 들어야 하오.” 나는 그가 공산당을 믿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잠시 말이 통하지 않아 향후 기회가 있으면 다시 그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그는 도박을 몹시 좋아해 자주 우리 마을 마작방에 와서 마작을 했다. 돈이 없을 때는 우리를 찾아와 돈을 빌렸는데 매번 200위안씩 빌렸고 며칠 지나면 우리에게 갚았다. 2년 동안 그는 반복해서 빌리고 반복해서 갚았다. 우리는 만날 기회가 많았기에 매번 내가 그에게 진상을 말해주었으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진상 자료를 주어도 받지 않았고 내가 진상을 말하기만 하면 그는 발을 빼고 떠나버렸다.
나중에 그는 돈을 빌리러 오지 않았다. 어쩌다 거리에서 그를 만나 내가 그와 인사를 건넨 후 몇 마디 말을 나누기도 전에 그는 서둘러 떠났다. 그는 내가 자기에게 진상을 말할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십 년 전 어느 날 밤, 그는 우리 마을에 마작을 놀러 왔다가 길에서 돌발적인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안타까워했는데 나이가 겨우 59세였다. 흑가의 급사는 가히 유감스러운 일인데, 그것은 그가 중공 악당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사인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5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