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颜丹)
【정견망】
중국 고대에 호랑이에 관한 기록이 시작된 이래로, 호랑이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람을 잡아먹은 일은 수없이 발생했다. 하지만 호랑이가 이토록 흉맹함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는 예로부터 “호랑이도 제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전해 내려왔다. 이는 야수성이 가득한 호랑이도 제법 인성(人性)이 통한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사실 호랑이는 인성이 통할 뿐만 아니라 선악을 구별할 줄도 안다. 믿기지 않는다면 아래의 몇 가지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른바 “백 가지 선행 중에서 효가 으뜸(백선효위선·百善孝为先)”이라 했으니, 지극한 효심과 선한 염두를 품고 있으면 호랑이를 만나도 호랑이가 길을 비켜 가기 마련이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단연 진(晉)나라 때의 ‘양향구부(楊香救父·양향이 아버지를 구하다)’일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 양풍(楊豐)은 하남 남향현(옛 현의 이름)의 주민이었다. 어느 날, 그는 14세 된 딸을 데리고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맹렬히 덤벼들어 그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딸 양향은 이 광경을 보고 맨손으로 호랑이와 육탄전을 벌였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두 손으로 호랑이의 목을 움켜쥐었다.
십 대의 어린 소녀가 어떻게 호랑이를 이길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기이하게도 호랑이는 몸을 빼내더니 더는 사람을 물지 않고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이렇게 하여 양풍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한 태수(太守)가 이 일을 조정에 올렸고, 황제는 이를 알게 되자 즉시 조서를 내려 양향의 집 앞에 정문(牌坊·정려문)을 세워 그녀의 효행을 표창하도록 했다.
당(唐)나라 초년에는 허탄(許坦)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10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가며 약초를 캤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산속에서 호랑이에게 물리자, 그는 즉시 큰 소리로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깊은 산중이라 구하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에 그는 바닥에 있는 나무 막대기를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호랑이를 향해 휘둘렀다. 그 호랑이는 크기가 거대했으나, 결국 허탄에게 얻어맞고 달아났다. 그의 아버지 역시 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훗날 이 일은 황궁에까지 전해졌다. 태종(太宗) 황제는 이 이야기를 듣고 즉시 말했다. “허탄은 어린 나이임에도 목숨을 걸고 아버지를 구했으니, 이러한 효심은 참으로 기특하다. 짐이 그를 표창하겠다!” 수년 후, 황제는 허탄을 문림랑(文林郞·문관 28계급 중 종9품 상)으로 발탁하고 포목 50필을 하사했다.
송고종(宋高宗) 재위 시절, 성도(成都)의 진사 장혜중(章惠仲)은 구사일생의 일을 직접 겪은 적이 있었다. 그가 과거 시험을 보러 서울로 갈 때 본래 누이동생의 남편(매제)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러나 배가 삼협(三峽)에 이르렀을 때 강물에 뒤집혔고, 매제는 구하지 못해 익사하고 말았다. 진사에 급제한 후, 그는 사천의 정연현(井硏縣) 주부(主簿)로 발령받았다. 한 번은 고향으로 돌아가다 삼협을 지나게 되었는데, 집에 있던 남동생마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하루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배를 타지 않기로 결정하고, 발이 빠른 말을 구해 산을 넘는 지름길을 택했다.
만주(萬州)를 지날 때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그가 한창 말을 달리고 있는데 말이 갑자기 넘어지면서 그를 산벼랑 아래로 내던졌다. 다행히 벼랑이 높지 않아 그는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이때 호랑이 한 마리가 다가와 그의 머리카락을 물었다. 그는 온몸에 기운이 없어 그저 호랑이에게 도리를 따져 말해보기로 했다.
그는 말했다. “너도 영성이 있는 동물일 테니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것이다. 나에게는 여든이 되신 어머니가 계시는데, 어머니는 2남 1녀를 두셨다. 내 매제는 지난해 강에서 죽었고 동생은 올해 집에서 죽었으니, 이제 나만 남아 겨우 미약한 봉록으로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다. 만약 네가 오늘 나를 잡아먹으면 내 어머니는 의지할 곳이 없어진다. 네가 머리를 물었으니 어머니께서 어떻게 살아가시겠느냐?” 호랑이는 이 말을 듣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남송(南宋) 경정(景定) 연간, 호북 영주(옛 지명)의 한 마을에 땔나무를 베어 생계를 유지하는 남매가 살고 있었다. 매일 나무를 베고 나면 두 사람은 길을 나누었다. 누나는 일부 땔나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밥을 지었고, 남동생은 마른 땔나무를 가지고 시장에 나가 팔아 연로하신 어머니를 봉양할 돈을 마련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막 나무를 베어 마쳤을 때 호랑이의 표적이 되었다. 사나운 호랑이가 끈질기게 쫓아오자 남동생은 급히 나무 위로 올라갔으나, 호랑이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때 호랑이 뒤에 있던 누나가 덥석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채며 큰 소리로 외쳤다. “호랑이야, 차라리 나를 먹어라! 내 남동생은 먹지 마라. 내 남동생이 죽으면 누가 어머니를 봉양하겠느냐!” 호랑이는 이 말을 듣고 그녀를 돌아보더니, 동생을 놓아주고 몸을 돌려 떠났다.
또한 주태(朱泰)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태어난 해는 알 수 없으나 줄곧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집안의 노모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벤 마른 땔나무를 메고 백 리 밖의 시장까지 가서 팔아야 했다.
어느 날 아주 늦은 시간까지 숲에서 나무를 베고 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그에게 다가와 그를 등에 들쳐업고 가기 시작했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나를 잡아먹는 것은 상관없으나, 내 어머니가 연로하시니 돌볼 사람이 없으면 어찌한단 말이냐!” 호랑이는 이 말을 듣자마자 주태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홀로 떠나갔다.
고을 사람들이 이 일을 전해 듣고는, 그의 효심이 천지를 감동시킨 것이라 여겨 너도나도 돈을 내어 그를 도와주었다. 보아하니 효심이 있는 자는 모두 신(神)의 비호를 받는 듯하다. 오직 신만이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로 하여금 야수성을 거두고 살심(殺心)을 내려놓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호회(虎薈)》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6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