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해변.
“신랑 신부님, 컨디션 조절하세요! 즐겁게 웃으시고요! 신랑님이 신부님을 공주님 안기 하세요! 자!”
왕묘가 안으려 시도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신부님이 뚱뚱하지도 않은데, 다시 한번 해보세요.”
다시 해보았지만 역시 들리지 않았다.
“됐어요, 자세 바꿔요.” 소요가 말했다.
사진작가가 소요에게 말했다.
“신부님, 포즈 한번 잡아보세요!”
소요가 막 손을 올리자, 사진작가와 보조가 배를 잡고 박장대소하며 웃어댔다.
“하하하하! 하하하…”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 그들이 왜 웃는지 몰랐다. 사진작가가 말했다.
“하하하 신부님! 이리 와보세요! 방금 찍힌 것 좀 보세요 하하하…”
소요가 다가가 방금 찍힌 영상을 보니 이러했다.
방금 소요가 손을 치켜들자 왕묘가 무의식적으로 목을 움츠리고 눈을 감으며 피하는 모습이 찍혔는데, 그 모양새가 무척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웠다.
소요가 왕묘를 보며 물었다.
“내가 평소에 너를 구박이라도 했니? 손만 들어도 그렇게 겁을 먹게.”
왕묘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아니야. 방금 딴생각을 좀 했어.”
“좋아요, 계속합시다!”
“신랑님 허리 쭉 펴세요! 꼿꼿하게!”
촬영 중간 휴식 시간에 보조와 사진작가가 대화를 나누었다.
“저 둘은 젊은 연인 같지가 않네요?”
“너도 저 둘이 서로 미워하는 노년의 원수 부부 같니?”
“맞아요! 노년의 원수 부부! 서로 꼴도 보기 싫어하는!”
“화면 속에서 신랑이 구부정할 때는 꼭 할아버지 같고, 신부는 동안인데 웃을 때면 가끔 강렬한 자애로움, 할머니 같은 느낌이 나.”
“특히 둘이 마주 볼 때 신랑 눈에는 냉막함이, 신부 눈에는 무정함이 가득해요.”
“소개로 만난 모양인데, 내가 가서 물어볼게.”
보조가 다가가 그들에게 물었다.
“두 분은 소개로 만나셨어요, 아니면 연애 결혼이세요?”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소개요.” (소요)
“연애요.” (왕묘)
보조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심지어 이 대답조차 통일되지 않네요, 하하.”
“자! 계속합시다!” 사진작가가 외쳤다.
사진작가가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신랑님,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결혼을 다 알아버린 듯한 무력감과 절망감이 느껴지면 어떡합니까? 그러지 말고 기운 좀 내세요. 부인이 얼마나 예쁩니까! 이런 여자가 일생을 당신에게 맡겼다는 건 남자로서 얼마나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입니까! 그녀를 돌봐주고 잘해주고 싶은 충동이 있어야죠, 남자 특유의 여자를 보호하려는 욕구 말입니다…
신부님은 신랑에게 압박감뿐만 아니라 멸시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은 높은 위치에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보여요. 그런데 그 강인함 때문에 불편함을 감추려다 보니 근육이 긴장해서 이완되질 않네요. 늘 긴장하고 부자연스러워요. 그러니 마음을 편히 먹고 즐거워하세요. 신랑이 당신에게 얼마나 잘합니까! 말도 잘 듣고…”
사진작가의 조언을 거친 뒤에야 두 사람은 조금 즐거워진 듯 보였다.
“어깨에 기대는 동작 갑시다!”
왕묘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소요의 어깨에 툭 얹었고, 소요도 자연스럽게 가만히 받아주었다.
사진작가가 웃으며 촬영하며 말했다.
“신랑님 이 동작 아주 숙달됐네요, 하하하.”
대부분의 장면을 다 찍고 이제 거대한 바위 위에 서 있는 원경 세트 하나만 남았다.
사진작가는 찍은 사진들을 훑어보며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었지만, 점차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마지막 세트입니다, 자! 신랑 신부님 거대 바위 위에 서서 바다 건너편을 보세요. 건너편은 금문도(金門島), 즉 대만(臺灣)입니다.”
대만?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었다. 맞다, 건너편은 대만이었다.
왕묘와 소요는 바위 위에 서서 약속이나 한 듯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어? 건너편을 바라보는 저 모습 좀 보세요! 화면이 이렇게 조화로웠던 적이 없었는데!”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보며 의외라는 듯 말했다.
보조도 화면 속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하루 종일 찍었지만 이렇게 조화로운 모습은 처음이에요. 저 눈빛 좀 보세요, 대만을 바라보는데 마치 고향을 그리는 듯한 정이 서려 있어요.”
사진작가는 넋을 잃고 화면을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야. 저기엔 그들이 갈망하지만 닿기 어려운 태초의 모습이 담겨 있어.”
“마지막 한 장!”
“찰칵!”
“끝!”
……
웨딩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번개와 천둥이 치는 폭우 내리는 밤이었다.
해 저물 녘, 소요가 물건을 사러 나갔다가 골목길에서 취객 두 명에게 가로막혔다.
그중 한 명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미녀님, 정말 예쁘시네!”
다른 한 명이 말했다.
“미녀님, 연락처 좀 줘요.”
진한 술 냄새를 맡은 소요는 겁이 나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급히 고개를 숙인 채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간 소요는 취객들을 따돌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뜻밖에도 그 두 사람은 그녀를 미행하고 있었다. 다시 어느 지점에 이르자 취객 하나가 그녀를 가로막으며 음흉하게 말했다.
“예쁜 아가씨, 겁내지 마. 난 그냥 연락처가 알고 싶어서 그래.”
취객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자 순간 어린 시절의 공포스러운 기억이 엄습했다. 겁에 질린 소요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기 시작했고, 뛰면서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왕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에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통화 중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너무나 무서웠던 그녀는 다급한 마음에 바닥에 떨어진 날카로운 사기 조각을 주워 손에 꽉 쥐고 집을 향해 달렸다.
그녀는 달리면서 계속 왕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통화가 안 될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갔고 사기 조각을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취객들이 계속 뒤를 쫓아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취객들은 이미 따돌렸고 그녀의 뒤를 쫓는 것은 그녀 자신의 공포였다.
마침내 집 앞에 도착해 그녀는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
왕묘가 문을 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너… 왜 이렇게 문을 두드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고는 큰 소리로 따져 물었다.
“너 뭐 하고 있었어?! 내가 전화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왜 안 받은 거야?!”
왕묘는 멍한 얼굴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
“너 왜 또 그래? 나 방금 전화 좀 썼어.”
“어떻게 내가 너를 필요로 할 때마다 넌 이것저것 딴짓만 하니?! 내가 평생 너를 필요로 할 일이 몇 번이나 된다고!”
“말이 안 통하네, 병이야.”
“밖이 그렇게 캄캄하고 내가 나간 지 한참 됐는데 넌 내가 걱정도 안 되니?”
왕묘는 입을 다물고 다시 묵묵히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말 좀 해봐! 왜 말을 안 해? 나를 조금이라도 걱정해본 적 있어?”
왕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챙그랑!” 컵을 내던지는 소리가 났다.
“말하라고!”
“챙그랑!” 또 컵 하나가 박살 났다.
하지만 왕묘는 집을 다 때려부순다 해도 너와는 말 한마디 섞기 싫다는 태도였다.
소요는 바닥에 앉아 눈물을 흘렸고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왕묘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말이 없었다.
소요가 입을 열었다.
“왕묘, 만약 어느 날 내가 밖에서 나쁜 놈한테 욕을 당하고 죽는다면, 네 속마음도 네 얼굴처럼 아무런 파동이 없을까?”
‘욕을 당한다’는 말에 왕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천천히 그녀를 보았다.
“넌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묻지 않는구나.”
“방금, 무슨 일 있었어?”
소요는 손에 쥔 사기 조각을 펼쳐 보이며 방금 있었던 일을 말했다.
왕묘는 소요의 손에 난 핏자국을 보고 눈동자에 강렬한 후회와 죄책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소요는 보지 못했다. 지금 그녀는 새로 찍은 웨딩 사진 속 왕묘의 성의 없는 가짜 웃음을 보며, 돌연 쌓였던 원망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웨딩 사진을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치며 울면서 말했다.
“넌 내 생사에 관심도 없지!”
이 행동에는 새로운 원한과 오래된 한이 섞여 있었다.
오래된 한이란 무엇인가? 소요가 평생 왕묘에게 입 밖으로 내지 못할 상처였다.
왕묘는 소요 손의 핏자국을 보더니 갑자기 자기 뺨을 미친 듯이 갈기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퍽, 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요는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서둘러 왕묘의 손목을 잡았다. 하지만 여자의 힘으로는 왕묘를 당해낼 수 없었다. 왕묘는 그녀를 밀쳐내고 계속해서 제 뺨을 세게 때렸다.
“너 미쳤어! 왜 이래?!”
소요는 그를 붙잡고 그는 자기를 때리며, 두 사람은 마치 몸싸움을 벌이듯 엉겨 붙어 새집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밖에는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그들은 몰랐다. 이때 하늘의 신들이 엄숙한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그만해! 내가 한 가지만 물어볼게!” 소요가 소리쳤다.
왕묘의 두 뺨은 붉게 부어올랐고 입가에선 살짝 피가 비쳤다.
그때 번갯불이 왕묘의 얼굴을 번쩍이며 비추자 그의 초라한 모습이 더욱 생생하고 뚜렷하게 드러났다.
“하나만 묻자. 이 지경까지 왔는데, 결혼은 언제 할 거야?”
하지만 왕묘는 툭 던지듯 말했다.
“그냥 네가 정해.”
참으로 멋진 “네가 정해”였다. 결혼 같은 일을 여자더러 직접 정하라고 하다니.
“허허, 하하, 하하하!”
소요는 웃으며 신혼집 안을 둘러보고 다시 말했다.
“그래, 이것들도 다 내가 정했지. 내가 스스로 못 할 게 뭐가 있겠어?”
소요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진지하게 왕묘를 보며 물었다.
“왕묘, 나를 사랑하긴 하니?”
왕묘는 눈과 코끝이 붉게 부어오른 채 이슬 맺힌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처녀를 보았다. 그의 팔이 자기도 모르게 올라갔고 손이 그녀의 어깨를 짚으려던 찰나, 갑자기 마음속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발톱이 그의 손을 꽉 붙잡는 듯했다. 수많은 번뇌가 머릿속을 스쳤다.
‘직장도 잃고 집도 수색당했어. 부모님이 나를 구하려다 유일한 저축마저 다 날렸지. 난 지금 고향을 등지고 떠도는 신세에 송사까지 걸려 있고, 공갈과 협박, 감시를 당하고 있어… 소요, 내가 무엇으로 너를 사랑하겠니?’
그는 순간 모든 감정을 숨기고 등을 돌린 채 소요에게 말했다.
“사랑까진 아니고, 고작해야 호감 좀 있는 정도지.”
소요는 왕묘의 뒷모습을 보았다. 창밖엔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번개는 격렬하게 나무를 꺾었고 빗물은 진흙과 섞여 세차게 흘렀다. 마치 왕묘와 함께한 지난 2년 같았다. 광풍폭우와 사면초가의 연속이었다.
너무나 썼다. 마치 7천만 년 전 그들이 함께 마셨던 그 포과주(匏瓜酒)처럼 썼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아직 이런 것들을 알지 못했다.
등을 돌린 왕묘는 소요가 컵을 던지는 소리를 기다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죽음 같은 침묵이 흐른 뒤, 가위로 “싹둑, 싹둑, 싹둑…” 하는 가느다란 소리만 들려왔다.
그가 홱 돌아보니 날카로운 가위가 웨딩 사진 속의 그와 그녀를 조금씩 갈라놓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그는 가위를 쥔 소요의 손목을 꽉 잡았다. 소요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계속 가위질을 했고, 그는 다시 그녀를 붙잡았으며 그녀는 힘껏 뿌리쳤다…
그들은 다시 몸싸움을 벌이듯 엉켰고 방은 또다시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늘의 신이 엄숙하게 삼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둘이 만든 태극마저 변형되었구나.”
“그만 좀 해!” 왕묘가 말했다.
소요는 가위를 놓았지만 쉰 목소리로 말했다.
“헤어지자.”
왕묘의 눈에 처음에는 경악이 스쳤고 이어 당혹감과 미망함이… 마지막에는 한 가득 슬픔이 고였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범벅이 된 채 창밖의 비바람 치는 세상과 먹구름 가득한 밤하늘을 보았다. 희망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신(神)이 말했다.
“이대로 가면 천지가 훼멸되겠구나.”
왕묘는 창밖의 혼탁한 천지를 보았다. 이때 그는 정말 내우외환 속에 살길이 전혀 없다고 느꼈다. 그가 담담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훼멸해버려, 지쳤어.”
신은 할 말을 잃었다.
…………
만약 우주의 인연이 ‘사랑’에서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사랑하지 않음’에서 끝날 것이며, 오직 ‘원용불멸(圓容不滅)하는 사랑’ 속에서만 순환할 수 있다.
‘사랑’은 인류가 영원히 피할 수 없는 화두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 남녀 간의 애정인가? 가족의 정인가? 혈연인가?…
그런데 이 말세(末世)에 왜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가? 가족들은 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가? 끈끈한 혈연으로 이어진 혈육들조차 여전히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성(成)·주(住)·괴(壞)·멸(滅), 우주와 생명은 왜 ‘멸’을 향해 가는가? 우리 모두가 조금씩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방(他)을 배려하는 것이다.
사실 이처럼 간단하다.
간단하기에 우주 속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알았으니, 그래서 “사람의 시작은 본성이 선하다(人之初 性本善)”라고 하는 것이다.
마치 저 하늘이 태어날 때부터 창생에게 끝없는 광명을 주는 것 같고, 저 땅이 태어날 때부터 중생에게 끝없는 자양분을 주는 것과 같다.
만약 모든 것이 늘 처음 같을 수만 있다면 정법(正法)은 필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패괴(敗壞)되어 가고, 서로 껴안았던 천지가 서로 등지는 음양(陰陽)으로 변했기에, 원래 징철(澄澈)하던 우주가 우리가 지금 보는 이 혼탁한 건곤(乾坤)으로 변한 것이다.
음양반배(陰陽反背)의 천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만물에는 영(靈)이 있고 천지 음양은 모두 생명이며, 모든 것은 ‘마음’이 촉성한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운행은 굳건하니 군자는 스스로 강해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自強不息)’는 것을 안다. 하늘의 첫째 책임은 ‘굳건한 운행(行健)’이며 ‘스스로 강함(自強)’이다.
‘땅의 형세는 유순하니 군자는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地勢坤 君子以厚德載物)’. 여기서 ‘세(勢)’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정지된 상태를 뜻하며 ‘행(行)’과 대응된다. 만물을 실으려면 너무 요동쳐서는 안 되며 반드시 고요함을 주요 직책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은 본질적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고달프고, 땅은 본질적으로 움직이지 않기에 한가롭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양면이 있다. 하늘은 고달프지만 주인이 될 수 있고, 땅은 한가롭지만 권력이 없어 말해도 소용이 없다.
성주괴멸의 시기에 괴멸의 때가 되자 천지의 심성이 비뚤어지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땅의 한가로움을 부러워하기 시작했고, 땅은 하늘의 권력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천지는 모두 신이다. 그들의 일념(一念)에 따라 온 우주가 움직인다! 그들 아래의 입자들은 그 둘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행동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자 천지의 위치가 바뀌기 시작했다.
천지의 위치가 바뀌는 것, 그것이 바로 음양반배의 시작이다.
사실 ‘하늘’이 끊임없이 한가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 이면에는, ‘하늘’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점점 더 지기 싫어하게 된 마음이 있다. 그는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했고 한 걸음씩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해갔다.
‘땅’이 끊임없이 권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 이면에도, 그녀가 ‘땅’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사명을 점점 더 이행하기 싫어하게 된 마음이 있다. 그녀 역시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했고 한 걸음씩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해갔다.
하늘이 창생을 사랑하지 않는데 땅을 사랑하겠는가?
땅이 하늘을 사랑하지 않는데 창생을 사랑하겠는가?
여러분 생각해보라, 천지조차 사랑하는 능력을 잃었는데 이 세상이 잘될 수 있겠는가? 잘될 리가 없다.
당시 삼계의 모습은 다른 우주가 훼멸하기 직전의 모습과 비슷했다.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 둘은 삼계가 창세주께서 마지막 정법을 하실 때 쓰이는 곳임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거나 국면을 돌릴 수 없음을 보았을 때도 비교적 담담했으며 이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 둘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이 되었을 때는 머리가 씻겼기에 이 미혹 속에서 전혀 담담하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본 왕묘와 소요가 서로 지내는 모습인데, 이는 완전히 음양반배된 것이며 완전히 틀린 것이자 완벽한 반면교사(反面敎師)다.
그들 둘의 표현은 그들이 상계(上界)에서 미끄러져 내려올 때의 심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왕묘를 보면 온몸에서 ‘게으름’이 배어 나온다. 뼈저리게 게으르고, 행동이 게으르며, 언어가 게으르고, 책임이라곤 조금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곤경 속에서도 요진(瑤真)을 대신해 감당하고 위난에서 중생을 구하며 억울함을 당한 뒤에도 의연하게 솥을 들어 천상을 관찰하던 그 칭허(靑虛)가 아니다.
소요를 보면, 그녀는 여자지만 공감능력(同理心)이 전혀 없다. 이 ‘공감 능력’을 가볍게 보지 마라. 여자가 공감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매우 무서운 일이다. 그녀가 왕묘를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유일하게 할 수 없는 것이 왕묘를 이해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음(陰)이 양(陽)에게 주는 사랑의 으뜸은 바로 ‘이해’다.
음양이 제 위치에 있을 때 양이 주가 되고 음이 보완한다.
음의 직책은 양을 보완하고 양에게 협조하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보충의 책임을 다하겠는가?
마치 눈먼 사람이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으니 어찌 맞출 수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직 자기 자신만 보려 하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 능력이 없는 이면에는 그녀의 ‘자아(自我)’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소요처럼 그녀는 사실 왕묘 마음속의 고통을 본 적이 없고 그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지 못했다.
왕묘는 ‘나는 차라리 역경을 받아들일지언정 주동적으로 마주하고 해결하며 주동적으로 사랑을 베풀고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로 나타난다.
양이 음에게 주는 사랑의 으뜸은 책임인데, 그는 바로 그 책임을 가장 지기 싫어한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이면에는 ‘이기심[自私]’이 있다. 과도한 이기심은 남자를 안목이 짧아지게 만들고,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게 하며, 역경에 순응해 끝내 자기 자신을 잃게 한다.
소요가 생각하는 사랑은 왕묘를 위해 무언가 해주는 것이고, 왕묘가 생각하는 사랑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한 명은 ‘자아’ 속에서 자신에게 감동하고, 한 명은 ‘이기심’ 속에서 자신을 속이고 있다. 그러니 두 사람은 음양반배의 형상을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둘이 좋다면 상관없지 않으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안 된다!
땅은 하늘의 권력을 탐하지만, 땅이 주권을 갖게 된 뒤에 그녀는 사실 하늘의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으며 지려 해도 능력이 안 된다. 하늘은 땅의 한가함에 집착하지만, 하늘이 한가해진 뒤에 그는 사실 땅의 제약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땅보다 높기 때문이다! 마치 덩치 큰 사람이 낮은 집에 갇힌 것과 같아서 고개만 들면 벽에 부딪히고 압박을 받는다. 비록 한가해졌을지언정 그가 편안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여자가 많이 베풀수록 내면에 원망이 가득 차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당연한 결과다. 남자가 여자의 말에 무조건 순종할수록 내면에 억눌림이 가득 차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이는 음양의 구조가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많은 여자가 남자보다 높고 강한데, 여자가 집안의 주인이 되는 게 뭐가 안 되느냐’라고 할 것이다. 확실히 그러하다. 이 역시 음양반배의 천상이 초래한 것으로, 많은 여성의 원신(元神)은 남자이며 능력도 아주 강하다.
하지만 장가만(張家灣)의 한 가지 법도(法度)를 기억하는가? 여자가 남자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여자로서의 본분을 다한 뒤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되니, 이를 ‘하늘을 거스르는 죄(逆天之罪)’라 부르며 평생 고생하며 살게 된다.
세상의 여장부들에게 묻노니, 당신들은 강인함 너머로 당신의 남편을 이해하며 선량하고 부드럽게 대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아무 문제 없다.
다시 천도(天道)를 말하자면, 우주 공간의 한 행성이 궤도를 이탈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행성과 부딪히고 충돌하며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생명이 자신의 구조를 위반하고 자신의 구조 밖의 일을 억지로 하려 한다면, 그것 역시 천도(天道)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이는 ‘천지의 위치가 바뀌면 좀 어떠냐, 땅이 하늘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느냐? 하늘이 땅이 되면 안 되느냐? 어차피 둘이 원해서 바꾼 것인데, 땅이 원망하지 않고 하늘이 자기가 못났다고 생각지 않으며 그냥 누워 지내면 되지 않느냐’라고 할 것이다.
당연히 안 된다. 마치 물고기를 땅에서 뛰게 할 수 없고 새를 물속에서 헤엄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 굳이 하려면 그들을 죽여서 새로 태어나게 해야 한다.
게다가 음양반배는 이처럼 간단하지 않고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며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표현했을 뿐, 사실 훨씬 더 복잡한 일들을 초래했다.
예를 들어, 천지의 위치가 바뀜으로써 곧바로 ‘시공의 착오(時空錯位)’가 발생했다. 본래 동일 평면에서 만나야 할 두 선이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되고, 만나지 말아야 할 선들이 억지로 만나게 된다. 사람이 알기 쉬운 예를 들자면, 인류 공간과 생존에 직결된 몇몇 차원 및 시간이 엇갈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사람은 무더운 여름에 솜옷을 입고 혹독한 겨울에 런닝셔츠를 입게 된다. 사람은 극심한 더위와 추위를 느끼지만, 그의 사고는 그런 옷차림이 맞다고 말해준다! 왜냐하면 지금 당신의 몸은 여름에 있지만 사고는 겨울로 가버렸고, 현재 이 여름의 공간과 당신의 겨울 사고가 서로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울수록 옷을 더 껴입으려 하고 입을수록 더 더워지지만 어디가 틀렸는지는 알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간단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당신이 땅을 하늘로 만들고자 한다면 땅은 해체되어야 하고, 하늘을 땅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 하늘 역시 해체되어야 한다. 그 천지(天地) 사이의 층층 중생들까지 포함해 모두 끝장나는 것이다.
오직 우주, 천지, 만사만물이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와 각자 천도에 안주하고 각자의 궤도를 운행해야만 도태를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천지가 다 망가졌는데 우리가 어디 가서 천도를 찾겠는가?!
그렇다, 천지가 모두 안 되게 되었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인체는 하나의 소우주다. 그렇다면 이 소우주 역시 하나의 인체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삼계가 성주괴멸의 멸의 단계에 이른 것은 마치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기 직전인 것과 같다. 사람이 죽으려 할 때 어떤 상태인가?
많은 이들이 임종 시 속이 타는 듯한 열이 나는 증상을 보이는데, 중의에서는 이를 ‘음성격양(陰盛格陽)’이라 부른다. 안에서 음한(陰寒)한 사기가 극도로 성해져 양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이 죽으려 할 때 양기가 극도로 쇠약해지므로 음이 성하고 양이 쇠하여, 겉의 음이 순양(純陽)을 몸 밖으로 쫓아내 ‘진한가열(眞寒假熱)’의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 이 삼계도 인체와 같아서 말세에 이르러 마치 죽어가는 사람처럼 양기가 극도로 약해져 음성양쇠(陰盛陽衰), 음양반배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니, 실상은 우주가 생명의 끝에 다다른 것이다.
천지, 우주, 만물과 인간이 모두 생명의 끝에 다다랐으니 누가 구원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에게 알려주자, 오직, 오로지 파룬따파(法輪大法)만이 구원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8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