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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빚을 받으러 온 생명이 더 고달프다

대법제자

【정견망 2026년 06월 13일】

중국 전통문화에서 윤회전생(輪回轉生)의 관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정사(正史)든 야사(野史)든 간에, 그 안에 기재된 이름과 성이 분명하고 고증 가능한 사례들은 그야말로 대단히 많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통문화의 토양 속에 깊이 뿌리내린 인과응보의 사상 체계도 형성되었다. “인연이 없으면 모이지 않고, 빚이 없으면 오지 않는다(無緣不聚,無債不來)”,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고, 빚을 졌으면 돈으로 갚는다(殺人償命,欠債還錢)”와 같은 민간 속담들은 옛사람들의 도덕관념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하는 천도(天道)의 법칙을 담고 있다. 옛사람들은 “머리 석 자 위에 신령이 있다(舉頭三尺有神靈)”고 믿으며,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천리의 감찰 아래에 있어 어떤 악행도 결국 처벌을 받을 것이고, 어떤 선행도 결국 보답을 받게 된다고 보았다.

그 윤회응보의 이야기들 중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빚을 받아내려는(讨债) 생명들이 있다. 어떤 생명은 너무나도 큰 원한을 짊어지고 분노에 가득 차서 윤회전생마저 포기한 채, 몇 생 동안이나 빚진 자를 뒤쫓으며 목숨을 빼앗아 보복할 기회를 노리기도 한다.

또 어떤 생명은 아예 빚진 자의 집에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 태어나, 스스로 장애를 갖거나 평생 병상에 누워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빚진 자에게 정신적·육체적 이중 고통을 안겨주려 한니다. 심지어 빚진 자의 집에 태어난 후, 이번 생에 스스로 업력(業力)을 지을지언정 먹고 마시고 놀아나며 온갖 방법으로 빚진 자의 재산을 탕진한 뒤 목숨을 버림으로써 그 집안을 패가망신하게 만드는 이도 있다. 내가 본 것은 인과윤회 속에서 빚진 자가 그에 상응하는 처벌과 응보를 받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빚을 받으러 온 이들 역시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 어떤 이는 병고에 시달리고, 어떤 이는 요절을 겪으며, 어떤 이는 새로운 업을 짓게 된다.

어쩌면 인간의 이 층차(层次)와 경지에서는, 너무나 큰 억울함과 참혹한 상처를 입었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빚을 받아내려는 것이 생명 스스로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련을 시작한 후 깨달았다. 빚진 자가 악보(惡報)를 받는 것은 자업자득이지만, 채권자 역시 내려놓지 못하는 원한과 복수심 때문에 사실은 더욱 고달프다는 것을 깊이 체득하게 되었다. 사실 천도는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설령 피해자가 원한을 내려놓고 손을 떼더라도, 천리는 더욱 정확하게 악을 행한 자를 처벌하는 동시에 피해자에게 보상해 준다.

사부님은 《전법륜(轉法輪)》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교 중에서는 말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바로 업력윤보(業力輪報)다. 당신이 그에게 빚을 졌으면 그는 당신을 찾아와서 빚을 받아갈 것이며, 더 많이 받아 가면 다음번에 그가 다시 당신에게 갚아준다. 아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거꾸로 되는데, 바로 이렇게 돌아오고 돌아간다.”

내가 깨닫기에는, 생생세세의 윤회 속에서 우리 역시 끊임없이 빚진 자와 빚을 받는 자의 역할을 번갈아 맡아왔다. 만약 늘 남이 자신에게 빚진 것만 기억하고 원한을 지우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빚을 갚고 빚을 받아내는 속에서 얽히고설켜 영원히 이리저리 윤회하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기억하기에 한동안 가족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사이다 소설(복수극)’을 즐겨 보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고 목숨을 잃었다가 다시 환생하여 복수하는 내용이었다. 왜 사이다(爽) 소설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소설의 마지막에 가해자였던 나쁜 자들이 더욱 참혹한 응보를 받으면서 사람들에게 보복 후의 쾌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나는 경각심이 들었다. 왜 나 역시 무심코 들으면서 통쾌한 느낌을 받았을까 하고 안으로 찾아보니, 내 안에 아직 제거되지 않은 원한과 보복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구우주의 이치는 국한성이 있다. 그들은 “목숨은 목숨으로 갚고, 아주 작은 원한도 반드시 보복한다”는 것을 말하므로, 중생들은 결국 서로를 해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며 최후의 결말은 동귀어진하여 해체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시대가 도래했다. 새 우주와 옛 우주가 교체되는 속에서, 창세주께서는 중생을 자비로이 여기시어 모든 생명에게 영원한 희망과 전기를 가져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정법 중에서 일체 중생의 지난 과오를 탓하지 않으며, 오직 정법 중에서 중생들의 대법에 대한 태도만 볼 뿐이라고 늘 말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생명이든지, 역사상 얼마나 큰 잘못과 죄가 있든지 간에, 오직 정법에 대하여 반면(負面)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나는 그(그것)들을 모두 선해(善解)해 줄 수 있으며, 동시에 그(그것)들의 죄업을 없애버릴 수 있다.” (《정진요지 3》 <세간을 향해 바퀴(輪)를 돌리노라>).

이 역사의 관건적인 시기에, 모든 생명이 생생세세 쌓여온 은원과 원한을 내려놓고 중국공산당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하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마음으로 인정하여 진정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리며, 제자가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단오절을 평안하고 건강하게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