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동탁의 천자 납치와 천도, 그리고 제후들의 이심전심
동탁은 여포가 패배하는 것을 보고 심복인 이유(李儒)의 계책을 받아들여, 천자와 낙양 백성들을 장안으로 강제 이주시키기에 이르렀다. 동탁은 낙양의 부유한 집안들을 몰살해 재물을 빼앗고, 황제의 능묘를 파헤쳐 금은보화를 도굴했다. 떠나기 전에는 황궁 전체와 번화했던 도성 낙양을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주 과정에서 백성들은 모진 학대와 모욕을 당해 죽은 자가 셀 수 없었으니, 그 패륜적인 죄악이 극에 달했다. 조조는 여러 제후가 낙양에 입성한 뒤에도 시종일관 동탁을 추격했으나, 겨우 1만 명의 군사로는 여포의 15만 대군을 대적할 수 없었다. 결국 매복에 걸려 잔병 500명과 함께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치는 참패를 당하며 이번 의로운 거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손견(孫堅)은 불탄 궁궐을 정리하던 중 우물 안에서 사라졌던 전국옥새(傳國玉璽)를 발견했다. 그는 미래의 제왕이 될 천명(天命)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고, 옥새를 감춘 채 강동으로 돌아가 앞날을 도모하기로 결심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원소가 옥새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손견은 대중 앞에서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원수가 되었고, 손견은 군사를 이끌고 강동으로 돌아갔다. 원소는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서신을 보내 손견을 가로막고 옥새를 빼앗으라고 했다. 이 일로 유표와 손견 사이에도 원한이 맺혔다. 제후들은 이때부터 저마다 딴마음을 품고 각자 흩어졌다.
각자 주군을 섬기는 단계로 접어들어
이 대규모 국적(國賊) 토벌 봉기가 끝난 후, 역사는 본격적으로 제후들이 각자 정치를 펼치며 서로를 겸병하는 천하 분열의 단계로 진입했다. 즉, 이때부터 각지 제후들이 앞다투어 전쟁을 벌였으니, 어떤 이는 염치도 없이 땅을 빼앗고, 어떤 이는 현상 유지에만 급급했으며, 어떤 이는 미래의 중원 주인이 되고자 했다. 유비는 물론 한실의 부흥을 위함이었다. 요컨대 이러한 단계는 천하의 유능한 의사(義士)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주군을 선택하게 했으며, 마침내 세 세력으로 나뉘는 삼국 시대를 형성하게 했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각 집안의 유능한 신하와 무장들이 저마다의 주군을 섬기는 특징으로 변모했다. 의리의 기점이 ‘각자 주군을 섬기는 것’으로 전환되었다가, 훗날 세 나라가 진(晉)에 의해 멸망하고 새로운 천하의 주인이 정해지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헌제(獻帝)라는 황제의 명분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이 단계에서 한실(漢室)을 수호하고 헌제를 보필하는 것은 주류는 아니었을지라도 하나의 필연적인 충의(忠義)였다. 이 두 가지 충의의 기점이 공존하며 각자의 도리를 연기(演義)하는 역사가 바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원소와 공손찬의 다툼, 조운의 주군 선택을 보다
제후들이 분열하여 각자도생(各自圖生)한 뒤 벌어진 첫 번째 전투는 원소와 공손찬(公孫瓚)이 기주(冀州)를 다툰 원한에서 비롯되었다. 원소는 기주를 발판 삼아 방대한 물자를 확보해 앞날을 도모하고자 공손찬을 속여 기주를 공격하게 했으며, 장차 땅을 절반씩 나누기로 약속했다. 이에 공손찬이 군사를 일으켰다. 본래 기주 목(牧)이었던 한복(韓馥)은 원소 가문의 문생(門生)이자 옛 부하로, 공손찬 곁에 유비 삼 형제가 돕고 있다는 사실에 겁을 먹고 당황한 나머지 원소에게 기주 관리를 부탁했다. 이는 원소의 계책에 걸려든 것으로, 원소는 단 한 명의 군사도 쓰지 않고 기주를 가로챘다. 한복이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원소는 기주를 독차지하기 위해 약속대로 땅의 절반을 요구하러 온 공손찬의 친동생을 살해했다. 이로 인해 공손찬이 복수를 위해 원소에게 죄를 묻는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에서 공손찬은 번번이 원소에게 패했으나, 여기서 《삼국연의》의 유명한 영웅 조운(趙雲)이 등장한다. 조운은 공손찬이 참패하여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두 번이나 나타나 전세를 역전시켰다. 하지만 공손찬의 신뢰와 중용을 받지 못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귀한 인연을 완성해 주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공손찬을 돕던 유비가 조운을 만나 서로를 깊이 알게 된 것이다.
만약 천하에 정해진 주인이 있는 정상적인 시대의 충(忠)의 관점으로 이 이야기를 본다면, 조운이 처음에는 원소를 섬기다 버리고 공손찬에게 갔으며 나중에는 유비에게로 갔으니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진정한 충의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 이는 조운이라는 전형적인 인물을 빌려, 진정한 의사가 인의(仁義)로운 주군을 선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군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일반적인 충의를 경솔하게 받들지 않는 법이다. 일단 유비를 보필하기로 정한 뒤에는 결코 곁을 떠나지 않고 생사를 함께하며 후회하지 않았다. 즉, 천하에 정해진 주인이 없는 역사 단계에서는 천하 백성을 생각하는 인의로운 주군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의리임을 보여준다. 조운을 통해 바로 이러한 충의의 기본 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이런 시대를 만났을 때 어떻게 선택하고 판단하며, 어떻게 의리를 받들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자 함이다.
우리는 공손찬과 원소가 기주를 다툴 때 원래 주인인 기주 목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본다. 이는 명분 없는 싸움이며 오직 무력으로 땅과 물자를 빼앗으려는 행위였다. 원소는 기주 목이 자기 가문의 문생이었음에도 가련히 여기는 마음 없이 오히려 그 신뢰를 이용해 기주를 가로챘다. 기주를 얻은 뒤에는 신의를 저버리고 염치도 없이 동탁에게 죄를 씌워 공손찬의 동생을 죽이고 독점했으니, 실로 이익을 보고 의리를 저버린 소인의 표상이다. 이것이 조운이 원소를 떠나 공손찬에게 귀순한 이유였다.
그러나 조운은 훗날 이들 두 사람 역시 결국 동탁에게 굴복할 인물들임을 발견하고 크게 실망했다. 조운은 유비가 공손찬과 작별하고 평원으로 돌아갈 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제가 일찍이 공손찬을 영웅으로 잘못 보았으나, 지금 하는 짓을 보니 역시 원소와 같은 무리일 뿐입니다!”
유비는 그를 위로하며 “일단 몸을 굽혀 그를 섬기다 보면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오”라고 했다. 이 말은 유비 스스로 공손찬과의 친구 된 신의를 저버릴 수 없어 당장 조운을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기연(機緣)을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이로써 두 사람의 깊은 인연이 맺어졌다.
훗날 원술은 원소가 기주를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을 빌려달라 했으나 원소가 거절했고, 유표에게 군량을 빌려달라 했으나 유표 역시 거절했다. 그러자 원술은 형제간의 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단지 작은 이익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원수가 되었다. 그는 원소와 유표가 앞서 손견에게 옥새를 내놓으라고 압박하며 생긴 원한을 이용해 손견에게 원소와 유표를 치자고 제안했다. 단지 물자를 빌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형제에게 칼을 겨누려 했으니, 원소보다 더 이기적이고 무정하며 육친도 몰라보는 위인이다. 따라서 이 두 형제의 멸망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이는 각로(各路) 제후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형적인 불의(不義)의 극치를 보여준다. 손견은 원술의 요청에 따라 복수를 위해 유표를 공격하다가, 자신이 내뱉었던 맹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