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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동을 말하다

문원(文遠)

【정견망】

《사기(史記)》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황제(黃帝)는 소전(少典)의 아들이고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신령했고, 젖먹이 때 이미 말을 할 줄 알았으며, 어려서 생각이 두루 미치고 빨랐고, 자라서는 도탑고 민첩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총명했다.”

중화 문명의 시작은 바로 이 태어나면서부터 신령했던 영아의 울음소리 속에서 정식으로 그 서막을 열었다. 5천 년 동안 신주(神州) 대지에는 너무나도 신기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중에는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던 어린이들이 역사 속에 짙고 무거운 한 획을 남긴 경우도 적지 않다.

황제가 “태어나면서부터 신령했고, 젖먹이 때 이미 말을 할 줄 알았다”는 이러한 신기한 현상을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자면, 그저 그의 위대함을 부각하기 위한 지나친 미화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현상은 유독 그 한 가지 사례만이 아니다.

당대(唐代)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친구 원진(元稹)에게 보낸 서신 속에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겪은 한 가지 일이 서술되어 있다. “내가 태어난 지 6, 7개월 되었을 때, 유모가 나를 안고 글자가 적힌 병풍 아래에서 놀다가 ‘없을 무(無)’ 자와 ‘어조사 지(之)’ 자를 가리켜 보여준 적이 있었네. 내가 비록 입으로는 말을 하지 못했으나 마음으로는 이미 묵묵히 기억했다네. 나중에 누군가 이 두 글자를 물어볼 때면, 비록 백 번 천 번을 시험하더라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에 오차가 없었다네.” (《전당문(全唐文)·여원구서(與元九書)》) 겨우 6, 7개월 된 백거이가 뜻밖에도 이미 글자를 알아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백거이의 천재성은 조숙함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북송 시기 유명했던 신동 방중영(方仲永)의 그러한 천부적 재능은 사람을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대대로 농사를 짓던 집안의 이 아이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종이나 붓을 본 적도 없었고, 글을 배울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울면서 종이와 붓을 달라고 조르더니, 아버지가 빌려다 주자마자 방중영은 곧바로 시 한 수를 짓고 자신의 이름까지 적어 넣었다. 그의 아버지는 크게 놀랐고, 그 후 무엇이든 가리키며 시를 지으라고 하면 방중영은 즉시 거침없이 시를 써내려갔으며,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이 재능을 펼쳤다.

글을 전혀 배우지 않은 어린이가 어떻게 글씨를 쓸 줄 알게 되었을까? 더욱 불가사의한 점은 그의 시에 담긴 문채와 철리가 모두 뛰어났다는 사실이다. 현대인의 해석에 따르자면 십중팔구 이를 사기극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송대(宋代)의 대문호이자 정치가인 왕안석(王安石)이 기록해 남긴 것이므로 신뢰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초당사걸(初唐四傑) 중 왕발(王勃), 낙빈왕(駱賓王), 양형(楊炯)은 모두 이름난 신동들이었다. 낙빈왕은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일곱 살 때 천고에 전해지는 유명한 시 《영아(詠鵝)》를 지었다. 왕발은 더욱 대단하여 불과 대여섯 살에 논리성과 문필이 뛰어난 문장을 지을 수 있었고, 아홉 살 때는 대유학자 안사고(顏師古)가 주석을 단 《한서(漢書)》의 오류를 지적해 내기까지 했다. 한편 양형은 아예 신동과(神童科) 과거 시험에 급제했으니, 국가가 공인한 신동이었던 셈이다. 역사에서 만약 이들이 남종 제(齊)나라 양(梁)나라 시대 이래 화려하고 나약한 문풍을 뒤바꿔 놓지 않았다면, 당대 시문(詩文)의 그 장엄하고 거대한 기상을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선(詩仙) 이백(李白) 역시 신동이었다. 그는 “다섯 살에 육갑(六甲)을 외웠고, 열 살에 제자백가를 섭렵했다.” 여기서 육갑이란 연월일을 계산하는 역학(曆學)이고 백가는 제자백가의 저술을 말하니, 어린 시절 이백이 학습한 내용의 광범위함과 방대함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백이 열다섯 살에 지은 《명당부(明堂賦)》는 이미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어깨를 견줄 만했다.

다시 이필(李泌)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일곱 살 때 궁궐로 부름을 받아 당 현종을 알현했다. 당시 현종이 재상 장열(張說)과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이필에게 ‘방원동정(方圓動靜, 네모와 원, 움직임과 고요함)’을 시제로 삼아 장두시(藏頭詩)를 지으라고 명했다. 그러자 이필은 생각지도 않고 즉각 대답했다.

네모남은 의로움을 행함과 같고,
둥글 원은 지혜를 씀과 같도다.
움직임은 재능을 펼침과 같고,
고요함은 뜻을 이룸과 같도다.

方如行義
圓如用智
動如逞才
靜如遂意

이 시는 격식과 기개 면에서나 삶의 연륜 면에서나 고묘(高妙)하다고 일컬을 만하다. 많은 성인이라도 이러한 안목과 문필을 갖추지 못했으니, 진정 이 천재 어린이의 머릿속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을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 신동들의 천부적 재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쩌면 한 가지 이야기가 그 내막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삼강식략(三岡識略)》의 기록에 따르면, 청대(清代)의 이위(李霨)는 전생의 경험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전생에 독서인(讀書人)이었는데 경서와 역사에 박통했으나, 안타깝게도 번번이 과거 시험에 낙방했다. 한 번은 이웃인 이(李) 씨의 집 문 앞을 지나다가 고래등 같은 저택을 보고 마음속으로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느 날 그는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던 중,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일어나 이 씨의 집으로 걸어갔다. 이때 방 안에서 여러 시녀가 출산을 앞둔 임산부를 수발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방 안의 들보 위로 올라가 구경했다. 이때 누군가 갑자기 그를 떠밀었고, 그는 임산부의 품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잠시 정신이 아득해진 후 깨어보니, 자신이 뜻밖에도 이미 한 명의 갓난아기가 되어 있었다.

당시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산모가 방 밖에 무슨 소리가 나느냐고 묻자 막 태어난 이위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눈입니다.” 이 한마디에 집안사람들은 모두 혼비백산했다. 다들 떠들썩해지며 무슨 상서롭지 못한 징조라 여겨 이위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 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아 이위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을 겪은 후 이위는 감히 다시는 말을 하지 못했고, 그렇게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계속 침묵을 지켰다.

한 친척이 “이 아이는 벙어리인데 길러서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말하자, 이위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처럼 입을 열자 또 한 번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후 이위는 학교에 들어갔는데 전생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유달리 총명하여 16세에 향시에 합격했고, 나중에는 관직이 호부상서에 이르러 강희제의 총애를 받았다. 만약 신동의 천부적 재능이 윤회할 때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역사상 신동들의 사적들이 모두 말이 되지 않겠는가?

또 다른 한 신동은 더욱 불가사의하다. 그의 이름은 원가(元嘉)로, 당 고조 이연(李淵)의 아들이다. 그는 남들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절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왼손으로는 원을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네모를 그리면서, 입으로는 문장을 암송하고, 눈으로는 양 떼의 숫자를 세고 있었으며, 마음속으로는 40자의 시를 구상하는 동시에 발가락으로는 붓을 끼워 5언 절구 한 수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필자는 한 손으로 원을 그리고 한 손으로 네모를 그리는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있으나, 머릿속에서 충돌이 일어나 하마터면 붓을 던져버릴 뻔했다. 그러니 ‘여섯 가지 일을 한 번에 나란히 거행’할 수 있었던 그가 진정 ‘신선동자(神仙童子)’라는 명성에 부끄럽지 않다 하겠다.

공자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최상이다(生而知之者,上也).” 태어날 때부터 아는 신동들은 마치 하늘이 인간 세상에 내려준 선물과 같아서, 인류로 하여금 조물주의 신기함과 심오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중화 문명은 바로 이러한 하늘에 대한 경건함과 겸허함 속에서 5천 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혹은 이 5천 년 문명 자체야말로 일종의 ‘천부적 재능(天賦)’일지도 모른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