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억만(次憶曼)
【정견망】
【전전세(前前世)·홍진에 빠진 거문고 스님】
북송 태조 개보(開寶) 연간, 항주 영은사(靈隱寺)에 괴짜 스님이 한 명 있었다. 다른 승려들이 목어를 두드리며 경전을 읊을 때, 그는 유독 초미금(焦尾琴 거문고 끝부분이 검게 그을린 것)을 안고 뒷산에 숨어 거문고를 탔다.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지면 산새들조차 가지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노방장 스님이 머리를 흔들며 탄식했다.
“혜각(慧覺)아 혜각아, 네 전생이 당나라의 이구년(李龜年)이라도 되느냐? 이토록 음률에 빠 있으니, 정과(正果)를 이루기는 어렵겠구나.“
과연 혜각 스님은 임종하기 전 거문고 줄을 꽉 쥔 채 눈을 감지 못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 거문고 통 안에서 갑자기 여인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린 사미승들이 겁에 질려 경전을 외우자, 노방장 스님이 합장하며 말했다.
“집착이 너무 깊으니, 내세에 고통을 받겠구나.”
【전세·평생을 망친 재녀】
북송 인종 경력(慶曆) 연간에 거문고 스님이 환생해 소주(蘇州) 자수장인 집안의 딸로 태어나 문인(文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처자는 용모가 청수했으나 유독 바느질에는 취미가 없었고, 날마다 서원에 몰래 가 강의를 듣곤 했다. 열여섯 나이에 시를 지어 온 성(城)을 놀라게 하니, 마침 길을 지나던 대문호 구양수(歐陽修)도 “만약 사내아이였다면 반드시 장원을 했을 것”이라며 칭찬했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에는 여성이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었다. 문인은 스물여섯에 폐병에 걸렸고, 임종 직전 《시경(詩經)》 반 권을 쥔 채 놓지 않으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내세가 있다면… 반드시 글을 읽어 뜻을 밝히리라…”.
그녀가 숨을 거둘 때, 책장 위의 ‘청청자금(青青子衿)’ 네 글자 위로 뜻밖에 눈물 자국이 배어났다.
【금생(今生)·전생을 찾다】
문인이 죽은 지 7년 후, 강서 수수(修水)의 황(黃)씨 가문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벽에 걸린 서화를 응시했고, 세 살 때 돌잡이에서는 곧장 붓으로 달려갔으며, 다섯 살에는 갑자기 《논어(論語)》 한 권을 통째로 외웠다. 이 아이가 바로 황정견(黃庭堅)이다.
스물여섯 세에 그는 진사(進士)에 급제했다. 하루는 현령으로 있을 때 매번 낮잠만 자면 푸른 채소(청경채)를 먹는 꿈을 꾸었는데, 깨어나서도 입안에 채소 향이 남아 있었다. 직감에 따라 그는 부근의 한 집을 찾아갔는데, 한 노부부가 탁자 위에 청채면(푸른 채소 국수) 한 대접을 공양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황정견이 물었다.
“어르신, 왜 청채면을 공양하고 계십니까?”
노부인은 “제 딸이 스물여섯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매년 기일마다 아이를 제사 지내고 있지요”라고 대답했다.
황정견이 “그 방에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부인은 “그러시지요” 했다.
황정견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매우 익숙한 느낌을 받았고, 방구석에 있는 큰 상자를 보고 물었다. “여기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부인이 말했다. “제 딸이 생전에 책 읽기를 좋아하고 수행을 하며 평생 시집을 가지 않았는데, 이것은 아이의 책입니다. 영감이 살아생전 아이의 선택을 매우 존중하여 그녀가 죽은 후에도 손대지 않았지요. 최근 몇 년 새 영감도 세상을 떠났고 나 역시 손대지 않았습니다.”
황정견이 “열쇠를 주시면 안을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부인은 “열쇠를 아이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정견은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단번에 기억해 냈다.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의 문장들은 그가 금생에 쓴 것과 기본적으로 모두 같았다! 심지어 진사에 급제할 때 쓴 문장까지 똑같았다!
‘서도금생독이치(書到今生讀已遲, 이번 생에 책을 읽으려 하니 이미 늦었구나)’라는 구절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자녀가 글공부할 재목이 아니라면 억지로 공부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며, 전생에 아이가 다른 업종에서 왔을 수 있으니 반드시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황정견은 목숨을 걸듯 글을 읽어, 자주 밤을 새우느라 기름등잔 불에 소매가 타서 구멍이 나기도 했다. 친구들이 “너는 한 번 보면 잊지 않으면서 왜 그리 고생하는 척하느냐?”라며 놀리자, 그는 촛농에 덴 손등을 만지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들은 모르네, 나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두 생의 책을 읽고 있는 것이라네.”
【효행으로 도를 증명】
이후 황정견은 관직에 올랐으나 자주 좌천되었다. 어느 해 겨울, 어머니가 병환에 들자 그는 당당한 대장부의 몸으로 얼어붙은 강가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의 요강을 씻었다.
동료들이 등 뒤에서 그를 비웃었다. “듣자 하니 그 자가 전전세에는 스님이었고 전생에는 재녀였다더니, 이번 생에는 하인이나 할 짓을 하는군.”
황정견은 그 말을 듣고도 성내지 않고 요강을 반짝이게 닦으며 말했다.
“그대들이 무얼 알겠는가! 나는 전생에 부모님께 탕약 한 번 달려 올릴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생에 요강을 씻을 수 있으니 복이로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문인이 죽을 때 부모가 관 옆에서 통곡하다 기절하던 정경을 그는 꿈속에서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윤회의 종장】
숭녕(崇寧) 4년, 예순 나이의 황정견은 광서 의주(宜州)로 유배되었다. 임종 전, 그는 꿈속에서 문인 처자가 배꽃이 만발한 무덤가에 앉아 글을 읽고 있고, 그 뒤에 거문고를 안은 혜각 스님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고, 산 가득 피어 있던 배꽃은 순식간에 하늘을 메운 시고(詩稿)로 변했다.
지금 수수 황씨 사당에는 기이한 비석이 하나 있는데, 전면에는 ‘시서전가(詩書傳家)’라 새겨져 있으나 후면에는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문양이 은은히 나타나 있다. 전하는 바로는 청명절에 비가 내릴 때 비가 비석에 떨어지면 다음과 같은 세 줄의 글귀가 나타난다고 한다.
“거문고는 전전생을 그르쳤고[琴誤前前生]“
“책은 전세의 빚을 갚았네[書償前世債]“
“그릇을 씻어 금생에 보답하니[滌器報今生]“
“오늘에야 예전 인연 잇는구나[今朝續前緣]”
그러므로 사람들은 누구나 ‘소황(蘇黃, 소동파와 황정견)’으로 병칭되는 그를 부러워하지만, 그가 대대로 수련해 온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속세를에 빠져 탐한다면 계속해서 윤회하게 될 것이다……
【후기·예전 인연을 잇다】
“옛날 왕씨와 사씨 집 대청 앞의 제비가(舊時王謝堂前燕)
평범한 백성의 집으로 날아드네(飛入平常百姓家)”
[역주: 이 작품은 이 시구는 당나라 후기의 유명한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지은 〈오의항(烏衣巷)〉이라는 시의 핵심 구절이다. 여기에는 한 시대의 정점을 찍었던 최고 권문세가의 몰락과 세월의 무상함이라는 역사적 내력이 담겨 있다. 우선 왕(王)과 사(사)는 동진 조정의 권력을 장악했던 당대 최고의 두 귀족 가문인 낭야 왕씨(琅邪王氏)와 진군 사씨(陳郡謝氏)를 말한다.
왕씨 가문은 동진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서성(書聖) 왕희지와 정승 왕도 등을 배출한 가문인다. 한때 “왕씨와 사마씨(황족)가 천하를 공유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제보다 더한 권세를 누렸다.
사안, 사현, 사령운 등 사씨 가문은 전진(前秦)의 100만 대군을 단 8만 명으로 격파한 ‘비수대전’의 영웅 사안과 사현, 그리고 산수시의 대가 사령운을 배출한 가문이다.
‘오의항(烏衣巷)’은 남경에 있는 거리 이름인데 동진(東진) 시기 왕씨와 사사 가문의 자제들이 검은 옷(烏衣)을 입고 거주했던 곳이라 하여 ‘오의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대 최고 상류층의 화려한 저택들이 모여 있던, 그야말로 권력과 부의 상징과도 같은 동네였다.
그러나, 동진이 멸망하고 남북조 시대를 거쳐 수·당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화려했던 귀족 사회는 전쟁과 정권 교체 속에서 흔적도 없이 몰락했다. 수백 년이 지난 당나라 때 유우석이 옛 동진의 수도였던 금릉(지금의 남경)을 방문해 오의항을 찾았을 때, 과거의 웅장한 저택들은 사라지고 평범한 백성들이 사는 퇴락한 골목이 되어 있었다. 시인이 이 모습을 보며 깊은 탄식을 남긴 것이다.]
황정견은 관장을 혐오하여 생전에 말하길, 만약 내세가 있다면 평범한 백성 가문에 태어나 지극히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싶다고 했는데, 이 역시 일종의 진실한 체현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평안함이야말로 곧 하나의 행복이다.
여러분은 이 황정견이 지금 우리 인간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의 심결(心結, 마음의 매듭)이 아직 풀리지 않았고, 성왕(聖王)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를 맞추어 한 단락 전설적인 이야기를 연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생에 황정견의 인연이 正果로 돌아가, 인간 세상에 온 보람이 헛되지 않기를 축원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