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기점을 파악하고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말라

동림(東琳)

【정견망】

일을 할 때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不拘小節)은 일종의 지혜이지만, 결코 자신을 방종하는 구실은 아니다. 진짜 의미는 어떤 일을 하든 모두 근본을 잡아야 하며, 지엽적인 것 때문에 가장 중요한 목표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명대(明代)의 문인 손지울(孫枝蔚)은 아들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처음 고서를 읽을 때는 절대 책을 아끼지 말아라. 책을 너무 아끼면 반드시 (책장) 높은 곳에 얹어두게 된다. 곧바로 동그라미를 치고 점을 찍으며 읽는 것이 옳으니, 책 한 권을 보다가 닳아 버리면 한 권을 더 사면 그만이다. 책을 아끼는 것은 힘이 있는 집안(부유한 집안)에서 책을 소장하는 자들이나 하는 일이니,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은 이를 본받을 겨를이 없다. 비유하자면 찻잔과 밥공기가 분명히 옛 가마에서 구워낸 진귀한 것임을 알아 아껴야 마땅하되, 가난한 집에 오직 이 그릇뿐이라면 갈증과 굶주림을 참아가며 보물처럼 소장해 둘 셈이냐? 자식아, 마땅히 이 이치를 알아야 한다.”

손지울은 처음 고서를 읽기 시작할 때 절대 책을 과도하게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을 너무 아끼다 보면 흔히 책장 높은 곳에 보관만 하고 차마 들쳐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마땅히 읽으면서 동그라미를 치고 점을 찍으며 주석을 달아, 진정으로 책 속으로 읽고 들어가야 한다. 설령 책 한 권이 낡아지고 망가지더라도 다시 한 권을 사면 될 일이다.

그는 책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은 본래 부유하고 책을 소장할 능력이 있는 집안에서나 하는 일인데, 가난한 집안에서 무슨 여력으로 이를 본받겠느냐고 했다. 이것은 집안의 찻잔과 밥그릇이 분명 오래된 가마의 귀한 자기(瓷器)임을 알아 아껴야 마땅하겠지만, 만약 집에 이 그릇밖에 없다면 아깝다는 이유로 차라리 굶주림과 갈증을 참아가며 모셔두고만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아들아 너는 마땅히 이 이치를 알아야 한다.

중국인들은 흔히 “만 권의 책을 독파하면 붓을 들었을 때 신이 내린 듯 글이 써진다(讀書破萬卷,下筆如有神)”라고 말한다.

여기서 “파(破)”는 본래 만 권의 책을 돌파하고 꿰뚫는다는 뜻이지, 책을 찢어지게 읽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책을 읽을 때 책을 언제나 새것처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에 집착하여 감히 들쳐 보거나 사용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도 한다.

어릴 적 학교에 다닐 때 우리 주변에는 서로 다른 유형의 동급생들이 있었다.

어떤 학생은 교과서를 유독 아껴서 책 표지를 싸고 때가 묻을까 봐 조심조심 다루었다. 학기가 끝날 때쯤 되면 책이 거의 새것과 같았다.

반대로 어떤 학생은 교과서를 도구로 여겨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심지어 친구에게 던지며 책에 마음대로 낙서를 하기도 했다. 학기가 끝날 때 책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고 쪽이 떨어져 나가거나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부류에 속했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자주 들쳐보았으며 필요한 필기도 해두었다. 학기가 끝났을 때 책은 비록 조금 낡았지만 여전히 온전하고 깨끗했다. 이러한 마모는 고의로 훼손한 것이 아니라 성실히 공부한 흔적이었다.

분명히 학업 성적에 진짜 영향을 주는 것은 책을 얼마나 새것처럼 보존했느냐가 아니라, 진짜로 머릿속에 읽고 들어갔느냐이다.

만약 책을 들쳐보고 필기하는 것을 아까워한 결과 책은 새것이지만 지식은 배우지 못했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진정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은 흔히 성실하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며, 많이 실천하는 사람이다.

책의 가치는 사람이 지식을 얻도록 돕는 데 있지, 단순히 소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만약 오로지 형식에만 집착하여 그것의 진짜 용도를 무시한다면, 이는 근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쫓는 격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 제7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를 설명하는데, 벌레가 있다고 해서 우리는 목욕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모기가 있다고 해서 우리 모두 밖에 나가서 자리를 찾아 살 수도 없으며, 또한 양식도 생명이 있고 채소 역시 생명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목을 졸라매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을 수는 없다.”

이 단락의 법은 우리에게 한 가지 이치를 알려준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만물을 아끼는 것 자체는 틀리지 않았으나, 만약 이 때문에 극단으로 치달아 심지어 정상적인 생활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진정한 법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수련인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식량을 아끼며 약한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모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어느 한 방면에 집착하여 몇 달 동안 목욕을 하지 않아 온몸이 재투성이에 퀴퀴한 냄새를 풍긴다면, 이것은 당연히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다.

같은 이치로, 사람이 처세하고 일을 할 때 세부 사항에 공을 들이는 것은 본래 좋은 품성이다. 하지만 사소한 지엽적인 것에 얽매여 오히려 근본에 영향을 주거나 심지어 더 중요한 일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경중과 완급을 잃은 것이다.

진정한 지혜는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일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주(主)된 것고 부차적인 것을 분명히 나누고 근본을 파악해,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지 않고 근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쫓지 않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