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석양이 지려 하자 지나는 이 드물고,
이끼 푸르게 덮여 길마저 분간하기 어려워라.
만 그루 대숲에 소나무 그림자 어우러지고,
산바람 불어와 온창 가득 구름이구나.
夕陽欲下少行人,
綠遍苔茵路不分。
修竹萬竿松影亂,
山風吹作滿窗雲。
살도자(薩都刺)는 자가 천석(天錫), 호는 직재(直齋)로, 원조(元朝)의 유명한 시인이자 서화에 능통했다. 그의 조상은 서역(西域) 사람이며, 안문(雁門)에서 태어났다. 원 태정 4년(1327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응봉한림문자(應奉翰林文字), 남대어사(南臺禦史), 진강녹사사다루가치(鎭江錄事司達魯花赤), 강남행대시어사(江南行臺侍禦史), 회서북도경력(淮西北道經歷) 등의 관직을 지냈다.
살도자는 글씨와 그림에 모두 능했고, 특히 해서(楷書)에 뛰어났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를 ‘안문의 재자(雁門才子)’라 불렀다. 그러나 그가 가장 칭송받은 것은 역시 시(詩)였다. 그의 시풍은 맑고 곱고 날아갈 듯 뛰어났으며, 웅건하고 호매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산수 경물을 묘사하고 그윽한 정취와 멋을 자라내는 주옥같은 명편들이 적지 않았다. 전해지는 회화 작품은 많지 않으나, 《엄릉조대도(嚴陵釣台圖)》가 현재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시 《도과찬선암(道過贊善庵) – 찬선암을 지나며》은 비록 분량은 짧지만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정이 담겨 있다. 시인은 오직 석양, 이끼 낀 오솔길, 빼어난 대나무, 소나무 그림자, 그리고 산바람이라는 몇 가지 평범한 경물만을 골라 청아하고 그윽하며 아늑하고 아스라이 몽환적인 느낌의 산사(山寺) 저녁 풍경을 잘 그려냈다.
“석양이 지려 하자 지나는 이 드물고,
이끼 푸르게 덮여 길마저 분간하기 어려워라.”
석양이 막 지려고 하며, 산길에는 이미 지나는 이가 드물다. 푸른 이끼가 양탄자처럼 오솔길에 가득하여, 길이 주변의 풀과 나무와 거의 한데 어우러져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여기서 ‘길을 분간하기 어렵다(路不分)’ 함은 단순히 날이 저물어 어두워진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하게는 산길에 오가는 이가 드물고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나 원래의 작은 길이 거의 다 덮여 버렸음을 뜻한다. ‘지나는 이 드물고(少行人)’와 ‘길을 분간하기 어렵다(路不分)’는 서로 호응한다. 오가는 사람이 희박하기에 길이 점차 이끼에 덮인 것이며, 그 아스라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산길은 찬선암 주변 환경의 그윽함과 고요함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만 그루 대숲에 소나무 그림자 어우러지고,
산바람 불어와 온창 가득 구름이구나.”
암자 밖에는 만 그루의 곧고 뻗은 대나무가 꼿꼿이 서 있고, 대나무 가지와 소나무 그림자가 서로 뒤섞여 어우러진다. 한 차례 산바람이 훅 불어오자, 대나무 그림자와 소나무 그림자가 바람 따라 너울거려 창가에 비치며 마치 한 조각 흘러가는 구름처럼 변했다.
‘어지러울 란(亂)’ 자 하나로 본래 정지해 있던 화면에 문득 변화가 일렁이고, ‘불어올 취(吹)’ 자 하나로 산바람, 대나무 그림자, 소나무 그림자가 창 안의 사람과 연결된다. 산바람은 본래 형체가 없지만, 너울거리는 나뭇잎과 흔들리는 빛과 그림자를 빌려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시인은 직접 바람 소리를 쓰지도 않았고, 구름이나 안개를 묘사하지도 않았다. 대신 창가에 가득 너울거리는 대나무 그림자와 소나무 그림자를 흩날리는 구름으로 비유해 상상해 낸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매우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회화적 정취를 자아낸다.
이 시의 앞 두 구절은 ‘고요함(靜)’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석양은 지고 행인은 드물며 이끼 낀 길은 찾기 어렵다. 뒤의 두 구절은 태세를 바꾸어 ‘움직임(動)’을 쓴다. 산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일만 대나무가 흔들리고 소나무 그림자가 창에 가득하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를 비추어(動靜相映), 전체 화면이 청아하고 고요하면서도 삭막하거나 단조롭지 않게 만든다.
이 시는 겉보기에는 단지 찬선암 주변의 산림 풍경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지만, 실상 그 속에는 청아하고 그윽한 경계(境界)에 대한 시인의 찬미와 동경이 흘러나오고 있다. 시 속에는 다투는 아우성도 없고 세속의 번잡함도 없다. 오직 석양과 이끼 낀 길, 꼿꼿한 대나무와 소나무 그림자, 그리고 숲을 뚫고 불어오는 산바람뿐이다. 시인이 굳이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은일(隱逸)을 일부러 표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로 하여금 이 안온하고 여유로운 마음가짐 속에서 온갖 분쟁을 멀리하고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삶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진정으로 고명한 풍경시는 반드시 심오한 이치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눈앞의 경물을 그저 극진하게 써내기만 해도 독자를 어떤 경계 속으로 이끌어 들일 수 있다. 《도과찬선암》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적막한 네 구절은 청아하고 담백한 한 폭의 산수화 같기도 하고, 고요한 마음의 경지로 통하는 창문 같기도 하다. 창밖에는 대나무 그림자와 소나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고, 창안에는 세속의 번잡함을 잠시 잊어버린 고요한 마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