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열(欣悅)
【정견망】
반쪽 창엔 석양빛 비치고 주렴엔 가을바람,
작은 연못가 정자로 대나무 오솔길 통하네.
붉게 취한 단풍잎은 가을빛 속에 물들고,
두세 줄 기러기는 석양 속을 날아가네.
半窗殘照一簾風,小小池亭竹徑通。
楓葉醉紅秋色裏,兩三行雁夕陽中。
주숙진(朱淑真)은 호가 유서거사(幽棲居士)이며 송나라의 유명한 여성 시인이자 사인(詞人)으로 당송(唐宋) 이래 전해지는 작품이 비교적 많은 여류 문인 중 하나다. 그녀는 본관이 흡주(歙州)이며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녀의 남편은 말단 관리였는데 두 사람의 뜻과 취향이 맞지 않아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못했고, 주숙진은 이로 인해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전설에 따르면 주숙진이 세상을 떠난 후 부모가 그녀가 생전에 쓴 원고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고 한다. 후인들이 그녀의 흩어져 유실된 작품들을 모아 정리하여 《단장시집(斷腸詩集)》과 《단장사(斷腸詞)》로 엮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소위 ‘단장(애간장이 끊어짐)’이라는 말은 그녀 일생의 은은한 한과 비애를 요약해 주는 듯하다.
관리 집안에서 태어난 주숙진은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재주가 뛰어나고 감정이 섬세해서 본래 더 넓은 인생의 무대를 가졌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한 결혼과 억압된 생활 환경은 마치 보이지 않는 감옥처럼 그녀의 마음을 속박했고, 그녀의 붓끝에서 나온 많은 작품들에 지워지지 않는 애수를 물들이게 했다.
주숙진의 재능은 이청조(李清照)에게 뒤지지 않으나, 다만 두 사람의 인생 역정과 정신적 기질이 달랐을 뿐이다. 이청조의 작품은 소녀 시절의 명쾌하고 생기 넘치는 면모를 지니는가 하면 만년(晩年)에 나라를 잃은 슬픔 뒤의 통렬한 비애도 담고 있다. 반면 주숙진의 시사(詩詞)는 은은한 한과 고독, 무력감에 더욱 짙게 둘러싸여 있다.
이 작품 《대경만성(對景漫成)–풍경을 마주하고 흥에 겨워 짓다》은 언뜻 보면 무심하게 풍경을 읊은 것처럼 보이지만, 청려(淸麗)하고 자연스러운 화면 뒤에 시인의 내심 깊은 곳의 초조함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반쪽 창엔 석양빛 비치고 주렴엔 가을바람,
작은 연못가 정자로 대나무 오솔길 통하네.”
석양의 남은 빛이 반쪽 창문을 비추고 미풍이 가볍게 주렴을 흔들고 있다.
창밖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진 작은 오솔길이 연못가의 작은 정자로 이어져 있다.
짧은 두 구절 속에서 시인은 석양, 주렴, 미풍, 연못가 정자, 대나무 오솔길 등 여러 중첩된 경물(景物)을 그려냈다. 화면의 층차가 풍부하면서도 조금도 덧붙인 느낌이 없다. ‘반창’과 ‘주렴’은 시선이 닿는 범위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경물에 함축적이고 깊은 의미를 띠게 한다. ‘소소지정(작은 연못가 정자 小小池亭)’과 ‘죽경통(대나무 오솔길 통하네 竹徑通)’은 화면을 특별히 정교하고 청아(淸雅)하게 만든다.
시인이 동경하는 것은 아마도 물가에 임하여 바람을 들을 수 있는 작은 정자 하나,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대나무 오솔길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창밖의 정자는 눈앞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시인의 정신세계 속에서는 마치 아득하게 닿을 수 없는 곳처럼 여겨진다. 그녀는 오직 주렴 너머로 석양을 바라보며 정자로 통하는 길을 볼지언정,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삶을 진정으로 걸어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붉게 취한 단풍잎은 가을빛 속에 물들고,
두세 줄 기러기는 석양 속을 날아가네.”
단풍잎은 가을빛 속에서 술에 취한 듯 붉게 물들었고, 두세 줄 기러기는 긴 허공을 스치며 점차 석양 깊은 곳으로 날아가고 있다.
‘붉게 취한’이란 취홍(醉紅) 두 글자는 특히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그것은 서리를 맞은 단풍잎의 농염한 색채를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단풍잎에 가을빛에 취한 듯한 생명의 자태를 부여했다. 대열을 지어 멀어지는 기러기는 고요한 화면에 운동감을 더해주고 독자의 시선을 뜰 안에서 아득한 하늘로 이끌어 준다.
단풍잎은 가을바람 속에서 마음껏 펼쳐질 수 있고, 기러기는 긴 하늘을 날아오르며 먼 곳으로 달려갈 수 있지만, 시인은 오직 반쪽 창문의 남은 석양 아래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이로 보아 시 속에서 반드시 구구절절 슬픔을 읊는 것은 아닐지라도, 곳곳에서 떨쳐내기 힘든 고독함을 느끼게 한다. 경물이 더 트이고 더 자유로울수록, 오히려 시인의 현실 처지 속에서 느껴지는 구속과 억압을 더욱 여실히 비춰준다.
물론 이 시는 우선 청려하고 맑은 가을날의 작은 풍경일 뿐이며, 모든 경물이 반드시 시인의 신세에 대한 기탁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숙진의 인생 역정과 그녀의 일관된 창작 스타일을 결합해 보면, 우리는 여전히 이 평온함 속에서 아스라한 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호소하지 않고 감정이 석양, 가을바람, 붉은 잎, 귀향하는 기러기 속에 조용히 스며들게 함으로써 더욱 함축적이고 여운이 남게 한다.
이 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시인이 경물을 다루는 깊은 공력에 있다. 전체 작품은 단 네 구절에 불과하지만 창문, 주렴, 바람, 연못, 정자, 대나무 오솔길, 단풍잎, 가을빛, 기러기 떼, 석양 등의 무수한 이미지들을 품고 있다. 이토록 풍부한 내용이 비좁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비추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성글고 촘촘함이 알맞고 동정과 정교함이 조화로운 가을날의 화폭을 구성하고 있다.
반쪽 창문의 석양에서 한 겹의 가을바람으로, 그윽한 연못 정자에서 대나무 숲 오솔길로, 다시 붉게 물든 단풍잎에서 석양 속의 기러기 떼로 시인의 시선은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향하고 시경(詩境) 또한 좁은 뜰에서 광활한 하늘로 점차 확장된다. 경물은 끊임없이 펼쳐지는데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이러한 공간적 대비야말로 어쩌면 이 시에서 가장 음미할 만한 곳일지도 모른다.
재주가 뛰어난 시인이 생활 환경의 억압때문에 자신의 생명과 재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한 것은 당연히 비극이다. 만약 주숙진이 그녀를 더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환경 속에서 살 수 있었다면, 그녀의 작품은 아마도 더욱 밝고 트인 면모를 보여주었을 것이며 그녀의 인생 역시 또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부모들에게도 일정한 시사점을 준다. 아이에게 좋은 물질적 조건을 제공해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해와 존중, 정신적 포용 역시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진정한 교육은 아이를 부모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빚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천성과 재능을 발견하도록 돕고, 이러한 천성과 재능이 자유롭게 자라날 공간을 허락해 주는 것이다. 어떤 생명은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지를 뻗을 수 있는 하늘 한 조각이 부족할 뿐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