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비 개고 구름 흩어지니, 온 강에 밝은 달 비치네.
잔잔한 바람에 물결 잦아드는데, 조각배 한 잎.
한밤의 마음, 삼생의 꿈, 만 리의 이별,
답답하여 뱃창에 기대어 잠시 잠을 청하네.
雨晴雲散,滿江明月。
風微浪息,扁舟一葉。
半夜心,三生夢,萬裏別,
悶倚篷窗睡些。
노지(盧摯)는 자가 처도(處道) 또는 신노(莘老), 호는 소재(疏齋), 또 다른 호는 호옹(蒿翁)이며, 원대(元代) 탁군(涿郡) 사람이다.
원 세조(世祖) 지원(至元) 5년(1268년) 진사로, 염방사(廉訪使), 한림학사 등의 직위를 역임했다. 그의 시문은 유인(劉因), 요수(姚燧)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유노(劉·盧)’, ‘요노(姚·盧)’로 불렸으며, 백박(白樸), 마치원(馬致遠), 주렴수(珠簾秀) 등과도 두루 교류했다.
노지의 저서로는 《소재집(疏齋集)》,《문심선결(文心選訣)》,《문장종지(文章宗旨)》 등이 있으나 안타깝게도 대부분 산실되었고, 현재는 산곡(散曲) 120여 수가 남아 있다.
이 작품 《절절고(節節高)·제동정녹각묘벽(題洞庭鹿角廟壁)》은 저자가 실의에 빠졌을 때 지은 것이다. 곡(曲) 전체가 비가 그치고 날이 개며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밝아오는 풍경으로 시작되지만, 행간마다 지울 수 없는 우수가 감돈다. 눈앞에 펼쳐진 강 가득한 밝은 달은 시인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천지를 더욱 텅 빈 듯 광대하게 비추어주어 그의 내면적 고독과 무력감을 한층 더 부각시킬 뿐이다.
“비 개고 구름 흩어지니, 온 강에 밝은 달 비치네.
잔잔한 바람에 물결 잦아드는데, 조각배 한 잎.”
비는 이미 그쳤고 구름도 점차 흩어져 둥근 달이 강면을 가득 비춘다. 미풍이 서서히 멎고 물결이 평온해지니, 드넓은 동정호 위에는 오직 조각배 한 잎만이 조용히 떠돌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것은 맑고 고요한 달밤의 풍경화이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헛헛하고 적막해 보인다. “잔잔한 바람에 물결 잦아드는데”라 하여 천지간에는 실낱같은 소리조차 없는 듯하고, “조각배 한 잎”은 시인의 작고 외로우며 의지할 곳 없는 처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아득한 강과 하늘 사이에서 한 잎의 외로운 배는 바로 그가 이 순간 몸을 의탁한 곳이자, 그의 방황하는 처지와 적막한 심경을 진실하게 그려낸 것이다.
노지는 일찍이 높은 관직에 몸담았으니, 상식적으로 본다면 삶이 여유롭고 기개가 자유로워야 마땅했다. 그러나 관직은 인생의 번뇌를 없애주지 못할뿐더러, 생명의 깊은 곳에 자리한 의혹을 풀어줄 수도 없었다. 세속 사람들이 현달(顯達)하다고 여기는 것이 어쩌면 내면의 진정한 귀착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실의와 쓸쓸함은 밤이 깊고 고요할 때면 여전히 남몰래 고개를 드는 법이다.
“한밤의 마음, 삼생의 꿈, 만 리의 이별,
답답하여 뱃창에 기대어 잠시 잠을 청하네.”
한밤의 시각, 천지가 고요한 가운데 시인은 홀로 뱃창에 기대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낮 동안의 번잡한 일들이 잠시 물러난 자리에서, 마음 깊은 곳의 상념들은 유독 선명해진다.
‘삼생(三生)’은 불가(佛家)의 용어로 전생(前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을 이른다. ‘삼생의 꿈’은 인생이 꿈과 같음을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생명이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흘러가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만 리의 이별’은 현실 속의 먼 이별이기도 하지만, 생명이 고향과 친족, 나아가 진정한 귀착점과 멀리 떨어져 격리된 듯한 느낌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시인은 어찌하여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는가? 어쩌면 그가 골몰하는 것은 눈앞의 득실이나 이별의 슬픔만이 아니라, 더욱 근원적인 생명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답답할 민(悶)’ 자 하나가 흡사 온 곡에 겹겹이 바람 통할 틈 없는 휘장을 드리운 듯하다. 어디서도 해소할 수 없는 수심(愁心)은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밝은 야경을 마주하고서도 여전히 사람을 무겁고 숨 막히게 만든다. 마지막의 “잠시 잠을 청하네(睡些)”라는 두 글자는 평범하고 담담해 보이지만 실은 더욱 깊은 무력감을 드러낸다. 명확히 깨달을 수도 없고 해소할 수도 없으니, 억지로 뱃창에 기대어 일단 눈을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인생에서 뜻을 잃거나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흔히 세속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생명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대법 사부님께서는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에서 이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낱낱이 밝혀주셨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법(法)을 얻기 위해서이며, 또한 자신의 천체(天體)에 있는 중생들을 구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핵심은 바로 법을 얻고 진상을 알며,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있다.
법이 인간 세상을 바로잡는 법정인간(法正人間)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여전히 미혹 속에 깊이 빠져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만약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친다면 잃어버리는 것은 단지 한 번의 기회가 아니라 생명의 진정한 미래일 것이다. 이 어찌 통탄스럽지 않은가? 어찌하여 서둘러 정신을 차리지 못한단 말인가?
한밤중에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순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생명이 어찌하여 인간 세상에 왔으며 또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모든 이가 이 만고에 만나기 힘든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겨 더는 잠에 취해 있지 말고, 더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