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는 수련 과정에서 모두 구세력의 배치를 철저히 부정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떻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 하는가? 나는 최근 수련 과정에서 약간의 체득이 생겨 이를 써서 동수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사존의 한 단락 설법이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제자: 어떻게 하면 비로소 구세력의 배치를 진정하게 타파하여 사(私)로부터 걸어 나와 진정한 정법제자로 될 수 있습니까?
사부: 우주의 과거는 사(私)적인 것으로, 사람을 두고 말하면, 정말로 관건적인 시기에는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정법(正法)을 시작할 때, 일부 신들은 나에게 “당신만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 씁니다”라고 했다. 당신들이 들어도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대법이 육성한, 다른 사람을 위한 정법정각(正法正覺)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하지 않는다면 모든 생명은 역사에 따라 결속된다. 그러므로 한 생명으로서, 일할 때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관용을 표현할 수 있음은, 기점이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 수련자가 자신에게 사(私)적인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면 점차 그것을 극복하라. 인식했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 중에서 또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이 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며, 또한 자신이 이기적인지, 이기적이지 않은지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수련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반대로 늘 자신을 돌이켜보고 안으로 향해 찾을 것이다.”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
사부님의 설법으로부터 나는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 구우주는 위사(為私)한 것이고, 우리의 기점은 위타(為他)한 것다. 그러므로 각 방면의 관(關)을 넘을 때마다 그런 위사(爲私)한 집착심을 닦아버려야 하며, 나아가 위타한 자비심을 닦아내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사존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이고, 또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나는 어머니가 남동생을 편애하는 것을 질투해 겉으로든 속으로든 검은 연기(마음속의 부정적인 생각)를 적지 않게 내뿜었기에 가정은 늘 화목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으로 찾음을 통해, 그것은 자신이 질투심이 있는 것으로 마땅히 닦아버려야 함을 깨달았다. 서서히 질투심을 닦아버린 후 내 마음은 평형을 이뤘다. 나중에는 점차 어머니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남동생은 어려서 학업을 중단하고 고생스레 일하며 돈을 벌어 집안을 부양했으며, 게다가 남동생에게는 부양해야 할 자식이 둘이나 있다. 나와 남편은 모두 학력이 있고 급여를 받기에 남동생보다 삶이 수월한 편이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당연히 남동생을 더 안쓰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마땅히 남동생을 안쓰러워해야 한다. 이렇게 하자 나는 어머니, 남동생과의 관계도 화목해졌다. 질투심을 닦아버리고 자비심을 닦아내어 가정을 화목하게 만들었으며, 가정 방면에서의 구세력 배치를 부정했다.
직장에서, 법을 얻은 초기에는 명리심을 제거하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명리의 교란을 받았고 늘 남보다 뛰어나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늘 마음이 고요하지 못했고, 직장에 돈을 더 벌 수 있는 부수적인 일이 있으면 늘 적극적으로 나서서 했다. 마음은 온통 어떻게 하면 돈을 좀 더 벌고 어떻게 하면 명예를 더 많이 차지하여 하루빨리 승진하고 급여를 올릴까 하는 데만 썼다. 그래서 동료들 사이에서 암투를 벌이는 일도 발생했다. 입으로는 또 “자신은 이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소중한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진상을 알리는 효과도 좋지 않았다.
나중에 대량의 법공부와 착실한 수련을 거쳐 나는 점차 명리를 담담히 보게 되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런 것들은 정말로 쓸모가 없으며, 태어날 때 가져올 수 없고 죽어서도 가져갈 수 없음을 느꼈다. 오직 대법만이 가장 소중하며, 마땅히 법공부와 사람 구하는 데 힘을 더 기울여야 함을 인식했다. 이러한 명리를 담담히 보게 되자, 도리어 직장 동료들이 이익을 위해 암투를 벌이고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는 모습이 매우 가엾게 느껴졌다. 그들이 너무나 힘들고 고되게 살고 있다고 여겨졌다. 지금 나는 직장에서 매우 홀가분하고 매일 업무량도 적어 대량의 법공부 시간이 있으며, 동료들과의 관계도 화목해졌다. 일하면서 순탄치 않은 일을 겪은 동료들은 모두 나를 찾아와 대화하기를 좋아해 동료들에게 진상 알리기도 편리해졌다.
박해를 부정하는 방면에서, 처음에 두려운 마음 때문에 여러 차례 굽은 길을 걸었고 명혜망에 여러 차례 성명을 올려야 했다. 또 나중에 파출소의 교란 속에서 점차 두려운 마음을 닦아버리고 생사를 내려놓았으며, 마침내 경찰을 향한 자비심을 닦아낸 후에야 비로소 구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 오직 사심(私心)을 닦아내야만 자비심을 닦아낼 수 있고, 이렇게 하는 것만이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이다. 그래야만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철저히 부정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