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열(欣悅)
【정견망】
붉은 길은 용과 뱀처럼 아득하여,
몇천 장(丈)인지 알 수 없네.
산과 물 사이를 들락거리며,
한 번 내려갔다가는 다시 한 번 올라가네.
내 홀로 어찌하여,
저 길과 함께 굽이치고 젖히는가?
赤路如龍蛇,不知幾千丈。
出沒山水間,一下複一上。
伊予獨何爲,與之同俯仰?
추호(鄒浩)는 자가 지완(志完)이며, 사면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온 뒤 주선항(周線巷)의 거처에 정원을 열고 이름을 “도향(道鄉)”이라 지었다. 또한 자호를 도향거사(道鄉居士)라 했으며, 상주(常州) 진릉(晉陵) 사람이다.
북송 인종(仁宗) 가우(嘉祐) 5년에 태어나 휘종(徽宗) 정화(政和) 원년에 졸했으니, 향년 52세였다. 원풍(元豐) 5년 진사(進士)에 급제해, 양주(揚州) 영창부(潁昌府) 교수로 임명되었다. 여공저(呂公著)와 범순인(範純仁)이 군수(郡守)로 있었는데 모두 그를 예우했다. 철종(哲宗) 연간에는 우정언(右正言)이 되어 여러 차례 상소하여 정사를 논하였다. 장돈(章惇)이 홀로 재상이 되어 권세를 부리자, 추호는 글을 올려 그의 불충함을 낱낱이 꾸짖었고, 이로 인해 관직이 삭탈되고 신주(新州)로 안치되었다. 휘종이 즉위하자 다시 우정언이 되었고, 거듭 승진하여 병부시랑이 되었으나 영표(嶺表)로 두 차례 귀양 갔고, 다시 직룡도각(直龍圖閣)이 되었다. 시호는 충(忠)이며, 학자들은 도향선생(道鄉先生)이라 일컬었다. 저서로 《도향집》 40권이 있으며, 《사고총목(四庫總目)》에 실려 세상에 전해진다.
시인의 이력을 보면, 시인은 바른말을 하다가 화를 입어 여러 차례 귀양을 갔으니, 매우 정직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바로 자신이 거듭 귀양을 간 이력 때문에, 길의 험난함과 자신의 인생이 서로 부합함을 느껴 이 시 《영로(詠路)–길을 읊다》를 지었다.
“붉은 길은 용과 뱀처럼 아득하여,
몇천 장(丈)인지 알 수 없네.”
여기서 길의 모양이 용과 뱀처럼 험준하고 구불구불하며, 눈으로 보기에 몇천 장이나 되어 보인다고 썼다. 물론 이것은 시인이 볼 수 있는 거리이다. 주지하다시피 길과 길은 서로 통하여 천 리에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오직 “몇천 장”이라고만 말했으니, 곧 시인이 볼 수 있는 거리일 뿐이다. 이것은 시인이 사실에 입각하여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요,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님을 설명해 준다. 자기가 보는 만큼만 말하고, 문제에 직면해서는 오직 자신이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만 말하니, 시인은 실질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공치사하기를 좋아하고 실질에 맞지 않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공격을 받아, 큰 안목이 없다고 여겨지곤 했다.
“산과 물 사이를 들락거리며,
한 번 내려갔다가는 다시 한 번 올라가네.”
길은 산과 물을 연결하여 한 번 오르고 한 번 내린다. 이것은 사실 바로 자신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일생이 부침을 겪고 서로 다른 곳을 떠돌아다녔음을 말한다. 여기서 산과 물 사이란 시인이 서로 다른 곳으로 귀양 가 떠돌아다녔음을 뜻한다. 게다가 고대의 산과 물 사이란 대개 비교적 외지고 궁벽한 곳을 가리킨다. 귀양을 가는데 어찌 비옥하고 번화한 곳으로 유배를 가겠는가?
“내 홀로 어찌하여,
저 길과 함께 굽이치고 젖히는가?”
여기서는 시인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왜 이 길처럼 부침을 겪는 것인가? 여기서 시인이 묻고 있는 것은 자신의 귀숙(歸宿 돌아갈 곳)이며, 또한 생명의 귀숙을 묻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로 이와 같다. 사람의 일생은 험난하다. 비록 높은 지위에 처해 있을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길까 걱정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운명은 오히려 일마다 생각과 어긋나게 마련이다. 걱정하는 것일수록 도리어 잃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과정이다.
우주 정법에 진상이 드러난다. 창세주(創世主)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진정한 의미는 회귀하는 것이요, 법을 얻은 후의 원만한 회귀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과거의 온갖 마난들은 모두 오늘날의 회귀를 위해 길을 닦은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홍진(紅塵 붉은 먼지 같은 속세)에 미혹되어 있는 우리는, 과연 똑똑히 아는가? 과연 법을 얻고 있는가? 기연이란 일단 놓치고 나서야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겠지만, 그때 가서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