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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세월을 걸어나오다 — 한 베트남 여인의 인생 역전

메이투이(Mai Thủy) 구술, 리위안(李緣) 정리

【정견뉴스】

메이투이가 일하는 네일숍 앞에서. (본인 제공)

질병과 가정의 변고는 나를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나는 운좋게도 생명의 지혜를 여는 열쇠를 찾아내어 인생의 폭풍우를 헤쳐나올 수 있었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단순히 건강을 회복한 것만이 아니라 수련 속에서 내면의 평온과 생명이 돌아갈 곳, 그리고 오래도록 바래지 않는 기쁨을 찾게 된 것이다.

내 이름은 메이투이이며, 올해 49세로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거주하고 있다. 고향은 베트남 냐짱(Nha Trang)이다. 순화(順化)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했다.

단번에 나를 무너뜨린 시련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대학 시절 내 체중은 고작 36킬로그램에 불과할 정도로 마르고 볼품이 없었다. 장질환을 오래 앓은 탓에 음식을 먹어도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늘 허약한 상태였다. 병을 고치기 위해 부모님과 나는 좋은 처방을 찾아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한·양방 치료와 온갖 양생법을 다 시도해 보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2003년, 나는 한 베트남 교포와 결혼해 미국에 정착한 후 네일숍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학 약품에 자주 노출되는 데다 불규칙한 식습관까지 겹치면서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2015년쯤에는 왼쪽 손을 거의 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손에 물건을 1분 이상 들고 있으면 극심한 통증 때문에 내려놓아야 했고, 신체 절반의 근육이 제멋대로 경련을 일으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머리를 감을 때면 5분 정도 고개를 숙였다가도 혼자 힘으로 머리를 들어 올리지 못해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천천히 일으켜 세워야 했다. 평소에 앉았다가 일어설 때도 반드시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심한 현기증이 일어났다.

휴대전화나 컴퓨터, TV 화면을 10분 이상 쳐다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무리해서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하면 어지러움과 구토 등 온갖 불쾌한 증상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1년 동안 일하고 나면 몸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해 베트남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곤 했다. 침술, 주사, 수액, 약물 치료 등 시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체력을 회복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일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잠시 좋아지는가 싶던 병세는 어김없이 다시 도졌고, 나는 또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졌다.

내 병세가 가장 심각했을 때 가정에도 커다란 변고가 닥쳤다.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고 아이는 아빠를 따라갔다. 아이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마음에 나는 무려 4년 동안 괴로움 속에 몸부림쳤다. 그 시기 내 마음은 남편이 우리 모자를 갈라놓았다는 원망으로 가득 찼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무기력했던 세월이었다. 모든 것이 기반을 잃은 듯했고 세상 만물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나는 길고 희망 없는 나날 속에서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냈다.

통증이 심해질수록 육체와 정신은 견디기 힘들 만큼 망가져 갔다. 차라리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을 방법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찾아봐도 마음대로 되는 죽음은 없었다.

네일숍에서 일하는 메이투이의 모습. (본인 제공)

한 편의 기사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2016년 어느 날,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도 몰라 컴퓨터를 켜고 뉴스를 검색했다. 화면을 오래 쳐다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의 ‘베트남인 온라인’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이곳은 해외 베트남인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주류 베트남어 매체 중 하나로 캘리포니아에 본부가 있었다.

화면을 훑어보다 보니 파룬궁(法輪功)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약물의 도움 없이도 이 수련법이 어떻게 심신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지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거의 순간적으로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도 파룬궁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일종의 수련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 알아보지 않았다. 당시 내 생각에 ‘수련’이란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집을 떠나 절에 들어가 수행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마에 시달리다 못해 죽음까지 생각했음에도 달리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하던 그때, 나는 다시 수련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나는 기사 아래 적힌 파룬궁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수련하는 방법을 물었다. 그는 여기서 말하는 ‘수련’이란 출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수(修)’란 자신의 심성을 닦아 좋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버리는 것이고, ‘련(煉)’이란 다섯 가지 세트의 공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 6주 만에 명확해진 신체 호전

파룬궁의 주요 저서인 《전법륜(轉法輪)》을 읽기 전만 해도 내 머리는 늘 묵직하고 팽팽하게 짓눌려 있었다. 왼쪽 얼굴, 어깨, 손의 피하에는 작고 부드러운 혹들이 돋아나 있었고, 신경이 예민해질 때면 그 부위들이 콕콕 쑤셨다.

책에서 사전(史前) 문화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사람은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고 배웠는데, 책의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이것이 내 흥미를 자극했다. ‘책에 이렇게 전에 몰랐던 지식이 가득하니, 꼭 끝까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로 그때, 나는 머리가 갑자기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쏙 빼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감각이 너무나 선명해서 내 손으로 자꾸 머리를 만져볼 정도였다.

나는 곧바로 연락처로 전화해 방금 일어난 일을 털어놓았다. 그는 축하를 건네며 《전법륜》을 계속 읽으면서 천천히 깊이 있게 이해해 보라고 조언했다. 곧이어 나는 파룬따파 웹사이트(falundafa.org)에 접속해 연공 동영상을 켜고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공법을 배우는데, 겨우 한 번을 다 마쳤을 때 어깨와 팔의 격심한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건 아마 제가 못 할 것 같아요. 딱 한 번 했는데 아파서 죽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보세요. 당신 몸의 힘줄과 근육들이 오랫동안 긴장된 상태로 굳어 있었는데, 지금 연공을 하는 것은 그것들을 부드럽게 펴주고 경맥을 점차 열어주는 과정이라 처음에는 아픈 겁니다. 몇 번 더 참고 해보면 통증이 서서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의 말에 힘을 얻어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 연공을 했고, 과연 그의 말대로 몇 번 반복하자 통증이 점차 잦아들었다.

닷새 만에 나는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익혔다.

수련을 시작한 지 6주가 지났을 때, 내 몸은 별안간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워졌다. 놀랍고도 기뻐서 집안을 수십 바퀴나 왕복하며 내 발걸음을 거듭 확인했다.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앞에서 파룬궁 행사에 참가한 메이투이. (본인 제공)

기적을 목격하며 인생의 시련을 넘다

왼쪽 손도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에는 이중창이 열세 짝이나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열세 짝의 창문을 단숨에 모두 닦아내었는데,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손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근 2년 동안 일조차 할 수 없었던 내가 이제 혼자 힘으로 집안 청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집안을 서성이며 가슴 벅찬 기쁨을 누렸다.

건강을 되찾은 후 나는 친지를 만나기 위해 베트남으로 향했다. 나의 변화를 목격한 가족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족들의 기억 속 나는 어릴 적부터 늘 병치레를 하던 허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고향에 돌아간 나는 혈색이 맑아졌을 뿐만 아니라 온몸에 활력이 넘쳐났고, 날씨 변화에도 무리 없이 적응하며 정상적으로 걷고 집안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내 변화를 두 눈으로 확인한 가족들은 모두 내가 파룬궁을 하는 것을 지지해주었고, 어머니도 뒤이어 수련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는 다시 네일숍 일을 시작했고 수입도 꽤 짭짤했다. 나중에는 집을 사서 임대를 주며 안정적인 경제적 수입원도 확보했다. 덕분에 과거처럼 장시간 일할 필요가 없어졌고, 주 6일이던 근무일을 주 3~4일로 줄일 수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신비롭게 안배된 것처럼, 나는 마침내 인생의 거센 시련을 지나갔다.

나는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연약한 사람이었다. 미국에 건너온 뒤 나의 생활은 집과 일터를 오가는 단조로운 동선이 전부였고, 운전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사회와의 접촉은 거의 없었으며 주변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했다.

파룬따파(파룬궁)를 수련한 이후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혜택을 입었다. 비록 여전히 혼자 살아가고 있지만, 매일 하루하루가 알차고 행복하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모든 원한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전법륜>>을 읽은 덕분에 나는 삶을 낙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을 다시 얻었다.

2026년 6월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 선 메이투이. (본인 제공)

어떤 인생의 기억들은 너무나 큰 고통을 품고 있기에 사람들은 대개 마음속 깊이 묻어둔 채 타인에게 꺼내놓기를 꺼린다. 나 역시 병마에 찌든 삶, 파탄 난 가정, 절망이 뒤엉켰던 그 세월을 다시 들추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내가 이 이야기를 기꺼이 세상에 나누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파룬따파를 알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여전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곤경에 처한 채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이중으로 겪고 있을 것인가…… 만약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파룬궁 수련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면, 그들 역시 자신만의 삶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고통의 늪에 깊이 빠져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생은 여전히 당신을 향해 새로운 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을.

(에퐄크타임스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