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林雨)
【정견망】
긴 눈썹, 짧은 눈썹의 버들잎,
짙은 빛깔, 옅은 빛깔의 복숭아꽃.
작은 다리, 작은 주막에서 술을 사고,
새로운 불, 새로운 연기로 차를 끓이네.
長眉短眉柳葉,深色淺色桃花。
小橋小店沽酒,新火新煙煮茶。
양기(楊基)는 자가 맹재(孟載), 호는 미암(眉庵)으로 원말명초(元末明初)의 시인으로 원래 고향은 가주(嘉州)다. 그의 조부가 강좌(江左)에서 관직을 지냈기에 마침내 오중(吳中)에 정착했다. 양기는 고계(高啓), 장우(張羽), 서분(徐賁)과 더불어 ‘오중사걸(吳中四傑)’로 불린다.
원조 말 양기는 일찍이 장사성(張士誠)의 막부에 들어가 승상부(丞相府) 기실(記室)을 지냈으며, 나중에 사직했다. 명조가 건립된 후 그는 형양(滎陽) 지현으로 부임했고, 관직이 거듭 승진하여 산서(山西) 안찰사에 이르렀다. 나중에 모함과 참소를 받아 파직되고 노역을 선고받았으며, 결국 공사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시는 양기의 연작시 《즉경사수(即景四首)》에서 유래했다. 소위 ‘즉경’이란 눈앞의 경치를 마주하고 즉흥적으로 읊는 것을 말한다. 시 전체의 언어는 단순하고 명쾌하며 거의 억지로 공을 들여 다듬은 흔적이 없으면서도 각별한 풍취가 있어, 사람에게 참신하고 자연스러우며 홀가분하고 탈속한 느낌을 준다.
“긴 눈썹, 짧은 눈썹의 버들잎,
짙은 빛깔, 옅은 빛깔의 복숭아꽃.”
이 두 구절을 읽으면 어떤 이들은 혹시 시인이 어휘가 딸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버들잎을 묘사하면서는 오직 길고 짧음만을 말하고, 복숭아꽃을 묘사하면서도 오직 짙고 옅음만을 말했으니, 왜 좀 더 화려한 어휘를 사용하여 수식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버들잎은 없으며, 똑같은 복숭아꽃도 없다. 버들잎은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색깔과 형태, 잎맥 또한 저마다 다르다. 복숭아꽃 역시 색의 짙고 옅음이 다를 뿐만 아니라 꽃잎의 모양과 층위, 자태 역시 마찬가지로 천차만별이다.
만약 화가라면 아마도 매 한 장의 버들잎과 매 한 송이의 복숭아꽃 사이에 있는 차이를 세세하게 구별하겠지만, 시인은 오직 “긴 눈썹, 짧은 눈썹”, “짙은 빛깔, 옅은 빛깔”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몇 마디 어휘로 눈에 가득한 봄소식을 살짝 짚어냈다. 이는 그가 이속의 풍부한 변화를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번거롭고 복잡한 디테일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는 화려한 수식어를 버리고 눈앞의 가장 선명하고 가장 본래적인 특징을 직접 붙잡음으로써 오히려 화면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긴 눈썹, 짧은 눈썹”은 버들잎을 여인의 길고 짧은 눈썹에 비유한 것이고, “짙은 빛깔, 옅은 빛깔”은 복숭아꽃이 짙고 옅은 빛으로 어우러져 어스름하게 피어난 광경을 그려낸 것이다. 시구는 무심해 보이지만 실상은 한 폭의 담백하고 우아한 봄날의 소품(小品)과 같다. 버들잎은 가지각색이고 복숭아꽃은 짙고 옅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면서도 조화롭게 하나로 어우러진다.
“작은 다리, 작은 주막에서 술을 사고,
새로운 불, 새로운 연기로 차를 끓이네.”
작은 다리를 건너 시골 주막에서 술을 사고, 새로 지핀 불이 피어나고 새로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한 주전자 맑은 차가 막 끓어오르고 있다. 몇 안 되는 글자로 고요하고도 생활 기운이 넘쳐흐르는 산야의 풍경을 그려내었다.
‘새로운 불[新火]’은 또한 선명한 계절적 기운을 품고 있다. 옛사람들은 한식에 불을 금했다가 청명이 되면 불을 새로 피웠으므로, ‘새로운 불과 새로운 연기’는 새로 피워 올린 아궁이 불과 밥 짓는 연기일 뿐만 아니라 봄날이 새롭게 바뀌고 만물이 소생함을 암시하기도 한다. 작은 다리와 주막, 좋은 술과 새로운 차가 함께 어우러져 청신하고 명쾌한 봄날의 생활 풍경을 이루어낸다.
관료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대개 신분과 체면, 그리고 각종 번거로운 예법을 따지곤 한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시골 주막의 술 한 잔이건, 새로운 불로 끓여낸 차 한 잔이건 저마다 소박하고도 진실한 맛을 품고 있다. 시인은 단순한 시선으로 만물을 바라보며 또한 탈속하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마주한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자못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번거로운 자잘한 가닥들에 얽매이지 않으면 사물의 본질을 훨씬 더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다.
수련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서로 다른 사람과 서로 다른 일들은 표면적으로야 당연히 천차만별이지만 이러한 차이들은 대개 서로 다른 심성의 외적인 표현일 뿐이다. 직위, 나이, 신분, 성격이나 심지어 생활환경까지도 어느 한 생명을 가늠하는 근본적인 표준이 될 수 없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선량(善良)한지 여부이며, 시시비비를 만났을 때 어떤 선택을 내리는가 하는 것이다.
대법이 생명을 선택하고 제도할 때 마찬가지로 사람의 신분과 지위, 표면적인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생명을 가늠하는 가장 관건적인 척도는 대법과 정법에 대해 품고 있는 태도이다.
번잡한 표상들을 내려놓을 때 문제는 간단해지고, 사물의 진정한 본질 또한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