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개(桐凯)
【정견망】
지난 8월 26일, 히말라야산맥, 중국과 네팔 국경의 지룽거우(吉隆溝). 한 차례 특대형 빙하 붕괴로 인한 산사태가 거의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들이닥쳤다. 대량의 얼음과 암석, 진흙 모래가 초당 거의 50미터의 속도로 쏟아져 내렸다. 러쒀차오(热索桥)가 유실되었고, 지룽(吉隆) 통상구 세관 청사는 순식간에 집어삼켜졌다. 수십 대의 관광버스와 화물 트럭 역시 들이치는 진흙 물결에 쓸려 내려갔다.
산사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물길을 막아 언색호(자연 댐)를 형성했다. 홍수는 이어서 강 계곡을 따라 남하해 네팔 경내로 진입해 하류의 여러 마을을 집어삼켰다. 이 뉴스를 보고 마음이 매우 아팠으며, 2025년 션윈(神韻) 공연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세인을 구하다(救世人)》였고, 배경은 중국 상하이였다. 거대한 홍수가 도시를 휩쓸어 성난 파도가 상하이의 절반 이상을 부수었다. 바로 이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신불(神佛)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이 큰 겁난을 막아냄으로써 더욱 참혹한 사상자를 피할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프로그램 속에는 음미해 볼 만한 디테일이 하나 있었다. 무대 스크린에 상하이의 도시 풍경이 나타났는데, 화면 속에 매우 눈에 띄는 광고판 하나가 나타났고 그 위에는 ‘티베트 에베레스트(西藏珠峰)’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1인 미디어 진행자 탕하오(唐浩) 역시 8월 말 방송에서 이 부분을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 지룽거우에서 발생한 이 재난을 다시 보면, 장소가 공교롭게도 히말라야 산악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에베레스트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기도 하므로, 무대 위 ‘티베트 에베레스트’라는 글자가 적힌 그 광고판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 당일, 어떠한 조짐도 없었으며 현지 날씨는 맑고 구름이 적었으며 이상 강우도 없었다. 붕하가 붕괴되면서부터 지룽 통상구를 집어삼키기까지 불과 6~7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갑작스러운 모든 것은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토록 큰 재난 앞에서 인간은 매우 보잘것없고 매우 연약하다.
지룽 통상구 세관 청사는 애초 물길이 홍수를 배출하는 필수 통로에 부지를 선정했는데, 일단 상류에서 유입되는 물에 이상이 생기면 무너져 내려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것은 평범한 건축물이 아니라 바로 중공 정권의 상징인데,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모든 것을 영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수년간 중공이 대대적으로 투입해 대외에 ‘인프라 실력’을 과시한 본보기 프로젝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중공에게 있어 이것은 또한 자신들이 오랜 세월 선전해 온 서사였다. 즉, 공산당만 있으면 극복하지 못할 곤란은 없고, 제도만 우수하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빌딩 한 채가 불과 몇 분 사이에 산사태에 의해 뿌리째 뽑혀 주변 27곳의 건축물과 함께 쑥대밭이 되었으며, 지도 위에서 거의 지워져 버렸다.
천재(天災)인가, 인화(人禍)인가?
재난이 발생한 후, 일부 매체들은 중공의 선전에 따라 이번 참사를 기후 변화가 초래한 자연재해로 귀결시키며 어쩔 수 없는 빙하 붕괴로 생긴 연쇄 반응이라고 몰아갔다. 그러나 그 이면의 진상, 즉 중공이 모든 국제 구조를 거부하고 외국인 구조대와 독립 언론이 현장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엄금함으로써 외부인들이 끝내 사고의 전모를 똑똑히 보지 못하게 만든 점은 간과했다.
재난이 발생한 장소가 극도로 민감한 티베트 국경이고 군사 시설, 국경 간 수리(水利) 공정 및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거점과 관련이 있다. 지난 수년간 중공은 가뜩이나 판(plate) 충돌의 핵심 단층대에 위치해 지질 구조가 극도로 취약한 이 지역에서 국경 간 수력발전소, 고압 송전선로 및 통상구 기반시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오랜 세월 누적된 산 폭파와 심부(深部) 굴착은 고산 빙하가 원래 의지하던 산체(山體) 구조의 균형을 한 걸음 한 걸음 깨뜨렸다. 지룽 통상구는 또한 중공 티베트 군구가 남아시아 방향으로 병력을 운반하고 장비를 배치하는 군사 및 민사의 요충지이기도 하여 전략적 지위가 아주 민감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단 상시적인 고강도 공정 시공이 이번 빙하의 붕괴를 유발했음을 인정하게 된다면, 막대한 투자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늘을 이길 수 있다(人定勝天)’는 것과 ‘인프라 광인(狂魔)’이라는 공산당의 주장이 자연법칙 앞에서 완전히 파산했음을 대중 앞에서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중시했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라고 말했다. 인간과 천지는 본래 하나이므로 마땅히 경외하고 순응해야지 정복해서는 안 된다. 옛사람들이 천지를 바라볼 때는 ‘덕(德)’을 중시했다. 하늘에는 천도(天道)가 있고 땅에는 지덕(地德)이 있으며, 인간은 천지 사이에 살면서 자연을 본받고 마음에 경외심을 품어야 비로소 안심하고 입명(立命)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들이 수천 년 동안 천지 자연에 대해 품어온 경외와 소중히 여김이었다.
그러나 중공에 이르러서는 이 경외심이 완전히 전복되었다. 그것은 신(神)을 믿지도 않고 천지도 경외하지 않으며, 주장하는 것은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며, 사람과 싸운다(與天斗、與地斗、與人斗)”이고, 심지어 이를 미화해 ‘그 즐거움이 무궁하다’고 했다. 산을 깎고, 폭파하며, 깊이 파헤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늘과 땅에 맞서 싸우는’ 사상이 가장 직접적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여러 차례 반복된 천재인화(天災人禍)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의 도덕 체계와 생태 체계의 전면적인 붕괴이다.
중공은 오랜 세월 “인간이 하늘을 이긴다(人定勝天)”고 선전하며 마치 인간의 의지가 자연법칙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무신론의 오만한 사상은 바로 가장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지룽 통상구 세관 청사의 철저한 파괴는 바로 이 오만함에 대한 징벌이 아닌가? 겉보기엔 튼튼하고 강력해 보이지만, ‘천멸중공(天滅中共)’의 천의(天意)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 재난에서 네팔 측은 참혹한 대가를 치렀다. 네팔 공식 측이 지속적으로 갱신한 통보에 따르면, 사망자 수가 1천 명을 훨씬 넘었으며 이는 중공 측이 통보한 사망자 수의 수십 배에 달한다.
네팔은 바로 이 국경 간 에너지 전략 속에서 가장 적극적인 협력자 중 하나였다. 수년 동안 네팔 정부는 줄곧 중국 공산당에 호응해 협약을 맺고, 토지를 비준하고, 중국 자본을 들여와 도로를 닦고, 수력발전소를 짓고, 국경 간 전력망을 건설했다. 그 덕분에 거듭해서 중공에 대한 부채 의존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재난이 진정으로 닥쳐왔을 때, 이 ‘우의(友誼)’는 어떠한 보호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오히려 수력발전소, 송전선로, 통상구 건설이 가뜩이나 취약한 이 강 계곡으로 잇달아 진입했기 때문에 더 많은 마을과 더 많은 목숨이 재난의 정면에 노출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중공이란 깡패 정권과 긴밀히 관계를 맺고 가깝게 지내는 자들 역시 똑같이 하늘의 징계와 처벌을 만나게 된다.
위난 속의 희망
당시 위험에 처해 있던 일반인들에게 산사태와 산사태가 닥쳐올 때 건물 안으로 도망치거나, 지붕 기어올라가거나, 차 안에 숨는 등 어느 곳에 있든 화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천재인화 앞에서 누가 살아남고 누가 살아남지 못할지는 마치 명명백백하게 이미 안배가 되어 있는 듯하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역병이 마찬가지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음을 떠올리게 한다. 점점 더 많은 재난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으며, 인류는 재난이 발생하는 시간과 위험 정도를 예측하기 어려운데 그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대미문의 큰 겁난 속에서도 일부 기적이 나타나 우리에게 생명의 희망을 보여주었고 신불(神佛)의 자비로운 보살핌을 느끼게 했다.
홍수가 들이닥치기 10분 전, 네팔 누와코트의 한 중학교 교장이 과감하게 900명의 전체 교사와 학생을 대피시켰다. BBC 보도에 따르면 그날 오전, 교장 라젠드라 다와디는 불과 몇 분 사이에 잇달아 네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통화마다 거대한 홍수가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중 한 학부모는 자기 딸을 미리 데려가기 위해 학교로 직접 달려왔는데, 이 광경은 그로 하여금 사태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닫게 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즉시 전교에 긴급 대피를 명령하여 아이들이 높은 곳으로 뛰어가게 했고, 학생들을 태우러 출발하려던 스쿨버스도 운행을 멈추게 한 뒤 즉시 유턴하여 위험 구역에서 멀어지게 했다. 교사와 학생들이 대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사동과 기숙사동은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닥친 사나운 홍수와 잔해 속에 완전히 집어삼켜졌다. 900명의 생명이 그렇게 재난이 닥치기 직전 마지막 10분 동안 구출될 수 있었다.
이것이 아마도 가장 좋은 설명일 것이다 — 하늘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있어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살 길을 남겨주신다. 하찮은 인간은 영원히 천지와 싸울 수 없다. 산사태와 같은 재해 앞에서 인간은 당연히 정확한 방법을 취해 피난해야 하는데, 가령 최대한 안전한 높은 곳으로 철수하는 것 등이 그렇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 볼 때, 산사태가 인간에게 주는 계시는 매우 많다. 이는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아지고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에 직면해 어디로 도망칠지 궁리할 것이 아니라, 평소 언행과 수양 속에서 자신을 향상시켜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다는 것은 천리(天理)이며, 무신론 조직인 중공을 멀리하고 마음속의 선념(善念)을 지키며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비로소 하늘과 신불의 보호를 얻어 재난을 피하고 평안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