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베이(河北) 대법제자
【정견망 2026년 9월 27일】
진수(眞修)는 사부님께서 전체 수련 과정 중 대법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기본적인 요구사항이다. 이미 1995년에 사부님께서는 《진수(眞修)》라는 제목의 경문을 발표하시어, 제자들이 수련 중 ‘진(眞)’과 ‘불진(不眞)’의 문제를 지적하셨다.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의 수련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책인 《전법륜》 속에서 ‘진수’라는 두 글자를 책에서 가장 현저하고 가장 완전한 위치에 엄숙하게 배치하셨다. 제1강의 첫 글자에 ‘진(眞)’자를 쓰셨고, 제9강의 마지막 글자는 ‘수(修)‘자에 낙점하셨으니, 머리와 꼬리가 맞물려 바로 ‘진수’가 됩니다. ‘진수’의 함의는 책 전체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되어 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토록 ‘진수’를 강조하시는 까닭은 수련하는 인구 중에 가짜 수련, 표면적인 수련, 수련할 줄 모름 등의 현상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깨달았다. 그렇다면 수련자가 ‘진수’의 표준에 도달하게 하려면, 첫째로 ‘가짜 수련’ 속에서 본질적으로 위사위아(爲私爲我·사심과 나를 위함)의 속성을 바꾸지 않고, 사람의 관념을 고수하며, 인심으로 수련을 대하는 등의 문제를 고쳐야 한다. 둘째로 법공부, 연공, 대법 일을 하는 것을 일종의 형식으로 여기면서 수련 과정 중의 인심 제거, 심성 수련, 법에 대한 수련자의 이해와 인식 제고 등을 소홀히 하는 겉치레의 문제를 바꾸어야 한다. 또한 ‘수련할 줄 모름’ 속에서 대세를 따르고 남을 쳐다볼 뿐, 독자적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스스로 곤란을 해결하며 자신만의 수련 길을 걸어가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수’의 함의와 표준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부끄럽게도 근 30년을 수련했으나 진의(眞意)를 깨닫지 못했다. 최근 한 시기 동안 나는 과거의 인식을 모두 내려놓고, 새롭게 사부님의 설법을 진지하게 배우고 읽으면서, 법이 ‘진수’에 대해 요구하는 바와 진수자가 수련 중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점차 조금씩 보게 되었기에 이를 적어 동수들과 교류하며 가르침을 청하고자 한다.
1. 진수자는 온전하고 철저한 수련이어야 하며, 다른 마음이나 목적이 조금도 없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현재는 수련하므로 당신은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하며 일체를 다 내려놓고 오직 수련만 하면 어떤 문제든지 다 해결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다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연공하려 한다면 그것 역시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완전한 연공인도 수련인도 아니며, 아직도 연공을 통해 이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부분이 그 속에 있고, 조그만 마음이 거기에 있으며, 당신은 아직 자신을 완전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캐나다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대법수련은 구우주에서 신우주로 들어가는 생명의 공(功)과 신체 승화의 연화(演化) 프로그램이며, 연화 과정은 지극히 현묘하고 복잡하다. 신우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요구는 매우 엄격하여, 수련자가 반드시 대법 속에서 절대적으로 순수하고 절대적으로 올바르게 닦아낼 것을 요구한다. 수련하고자 하는 사람은 수련의 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바로 “수련하고자 한다면, 그러면 수련하라”(《전법륜》)여야 합니다. 그 어떤 다른 마음이나 목적도 조금이라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속인 중에서 출발하였기에 몇 가지 속인의 마음이 섞여 들어오는 것을 면하기 어렵다. 예컨대 병을 고치고 싶고, 이론을 배우고 싶고, 기능을 얻고 싶고, 조금 높은 것을 추구하여 높은 차원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고, 저차원의 생사윤회에서 벗어나고 싶고, 인생의 온갖 곤경을 해결하고 싶고, 신불(神佛)의 보호를 얻고 싶고…… 등등 온갖 생각을 다 한다. 비록 부처나 도가 되기를 바라는 이와 같은 더 높은 추구를 품는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사람의 기점에 서서 인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가짐이고 사람의 추구이기 때문이다. 수련은 본래 사람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며, 조건도 없고, 대가도 없고, 욕심도 없고, 구하는 바도 없다. 수련의 결과 역시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마음대로 ‘사부님께서 내려주시는’ 것도 아니다. 수련이 자연스럽게 가져오는 것이며, 혹은 우주가 선택한 것이고, 심성이 결정하는 것이다. 수련인의 심성이 어느 차원까지 순수해지면 자연히 그 차원과 융합하게 되며, 심성이 도달하지 못하면 그 어떤 ‘생각’과 ‘구함’도 수련의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우주의 고층에서는 바로 선택일 뿐이다.
그러므로 수련 중에서 어떤 마음과 목적을 품든 모두 원만의 장애가 된다. 오직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수련으로 나아가며, 속인 속의 눈에 보이는 어떠한 성과도 바라지 않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해서 줄곧 자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고, 줄곧 고생을 겪으며, 줄곧 위로 수련하면서 줄곧 心性(씬씽) 제고를 요구하지만, 도리어 자신의 공은 볼 수 없다.”(《전법륜》)와 같이 해야만 비로소 위로 닦아 올라갈 수 있으며, 진정한 수련이라 칭할 수 있다.
2. 진수자는 죽음에 직면해도 추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음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는 까닭은 사람에게 탐생지심(貪生之心·살기를 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탐(貪)’이라는 글자 하나가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며, 세상에서 이미 얻은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반면 수련인은 마침내 세상을 벗어나야 하는 사람이므로, 본체를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곳은 천국세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대법수련은 육신도 고에너지 물질로 닦아내어 가지고 갈 수 있는데, 그것은 법의 연화 형식이다. 수련에서 닦는 것은 마음이며, 닦아 이루고 못 이루고는 마음을 보는 것이다. 마음에 집착이 없고, 마음에 탐하는념이 없고, 마음에 누(漏)가 없고, 마음이 표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법의 연화와 동화를 얻을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기 싫어하는 것은 사람의 집착이며, 이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일련의 수련 중의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예컨대 박해 속에서 전향(轉向)을 당하고, 병업 속에서 치료를 구하며, 온갖 간난신고 속에서 움츠러들고 전향하는 등, 이렇게 되면 수련의 목적에 도달하기 매우 어렵다.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우리에게 명확히 경고하셨다.
“오늘 당신이 죽음에 직면하여, 그것이 어떤 종류의 죽음 형식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죽음에 직면하여 추호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은 근본적으로 개의치 않는다. 내가 아마 죽은 후에 천국으로 갈 터이니, 그러면 죽음의 일은 정말로 없어지게 될 것이다. 관건은 사람의 마음을 보는데, 우리 대법수련은 곧장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며, 수련은 곧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기타 표현은 모두 가짜이며, 형식은 가짜이다.”
수련 중에서 생사의 마음을 내려놓고, 죽음에 직면해도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법이 대법제자의 심성에 요구하는 하나의 표준이다. 생사의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곧 사람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생사는 사람의 관념이자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신(神)의 눈으로 볼 때, 생명은 불멸하며 진정으로 죽는 것이 아니다. 수련인에게 생사의 마음이 없어졌으니, 사람이오니 벗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생사’라는 이러한 표현 형식은 가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진실하고 장엄한 생명 영원의 태양이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3. 진수자는 어떤 문제를 만나든 모두 자신을 살피며, 자신의 잘못을 찾는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반드시 수련의 중점을 자신의 집착심을 끊임없이 제거하는 데 두고, 이러한 행위를 수련 중의 일종의 상상(常態·일상적인 상태)으로 삼는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먼저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을 찾으며, 설령 이 일이 자신과 상관없거나 심지어 자신이 무고하고 억울하며 모함을 당했을지라도, 반드시 먼저 자신에게 어떤 과오가 있는지, 무슨 빚을 진 적이 있는지, 혹은 자신의 행위나 사고, 출발점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까닭은 이것이 바로 법이 수련인에게 요구하는 표준이자 요구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 이 일이 당신에게 원망이 있든 원망이 없든, 당신은 모두 자신을 찾아라. 그러면 문제를 발견할 것이다. 만약 이 일이 절대적으로 너와 관계가 없고, 너에게 마땅히 가야 할 마음이 없다면, 그러면 이 일은 아주 적게 당신의 신체에 발생할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이 마음이 없다면, 모순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니, 너당신의 수련에 책임을 져야 하므로 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무조건 안으로 찾으며, 예외는 없다.
그러나 수련 중에서 우리는 때때로 여전히 모순 속에서 속인의 이치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밖을 보며 남의 잘못을 탓하며, 또한 모순 속에서 종종 마음이 편치 않고 억울하다고 느낀다. 물론 애당초 수련 중에 있는 사람이기에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는 과정을 거치며 능동적으로 집착을 내려놓고, 다툼을 내려놓으며, 모순을 해소하게 된다.
장기간의 수련 실천 속에서 우리는 찾고 수련하는 이러한 방식을 점차 익숙지 않은 것에서 익숙한 것으로, 피동적인 것에서 능동적인 것으로, 가끔 하던 것에서 항상 하는 것으로, 조건부에서 무조건적인 것으로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성숙시켜 나아간다.
더 나아가 안으로 찾는 것은 억지로 자신을 억누르고 억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성하는 물질 요소가 생명에 가하는 제약과 견인을 능동적으로 벗어던져, 사람의 차원을 벗어나 자신의 본래 경지로 승화해 올라오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어떤 동수는 모순에 부딪히면 절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찾았으며, 심지어 마을의 미치광이가 큰소리로 소리 지르는 것을 들을 때조차 자신은 생각하기를 ‘이 귀에 거슬린 소리를 왜 자꾸 내가 듣게 만드는가’ 하고 자신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가정문제를 처리할 때 자신에게도 큰소리로 고함치던 문제가 있었음을 발견하였고, 자신의 사고 속에 여전히 당문화(黨文化) 속의 사람을 강제하는 악습이 남아 있으므로 급히 제거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그 미치광이가 의외로 더 이상 큰소리로 고함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자신을 찾는 과정은 진정한 착실 수련의 과정이며, 법리에 대한 심오한 이해의 과정이므로, 자신의 사고방식과 사상 구조 상에서 행위의 교정과 바로잡음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러한 나쁜 요소들이 더 이상 자신으로부터 생겨나지 않게 되고, 자신의 정념(正念)이 충만해지며, 길을 바르게 걸어갈 수 있게 된다.
4. 진수자는 언제 어떤 때라도 대법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을 흔들리지 않는다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누구나 법에 대해 기본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법이 사람을 제도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서로 다른 차원에서 수련할 때, 온갖 마난(魔難)과 간섭에 부딪힐 때, 신념을 굳게 지킬 수 있는지, 흔들리지 않고 움츠러들지 않으며 전향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는 수련자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의 시험이 아닐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이 방면의 이치를 이미 아주 명백하게 말씀해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그러나 한 가지가 있는데, 어찌 되었든 간에 당신이 정념정행(正念正行) 한다면 넘기지 못할 관은 없다. 바로 정말로 아주 위험한데 또 문제가 어디에 생겼는지 모를 때에도 정념이 없어서는 안 되며, 어떤 정황이라도 대법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을 동요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때 당신이 설사 이해할 수 없었거나 어떤 일도 잘하지 못했으며 큰 관을 넘기지 못했고, 심지어 인체를 잃고 세상을 떠났다 할지라도, 역시 마찬가지로 원만에 이를 수 있다. (박수) 왜냐하면, 사부는 이번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데, 이는 이번 박해가 당신에게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대 주의하라. 당신이 그때에 갑자기 전향해서 단번에 좋지 않게 변했다면 그럼 당신의 모든 일체는 아마 곧 끝장날 것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정념이 충족해야 하며, 비록 하나의 관을 잘 넘기지 못했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서 동요해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들, 내가 당신들에게 하나의 이치를 이야기하겠다. 이처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오늘날, 어떤 속인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했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신(神)이 될 것이다. 설령 그가 속인이고 수련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박수) 하물며 당신들은 한 일이 그렇게 많고 단지 하나의 관, 두 개의 관 혹은 구세력이 배치한 하나의 큰 난(難)을 넘기지 못한 것뿐이다.”(《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수련인이 스승을 믿고 법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정념이며 신념(神念)이고, 어떤 상황 하에서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다. 그것이 표현해 내는 바는 바로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고 법이 어떻게 설해졌는지 그대로 해야 하며,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의문도, 그 어떤 조건도 두어서는 안 되며, 그 어떤 목적도 품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실제 수련 중에서 어떤 마난이나 곤란에 부딪히더라도 그것이 오든 가든,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 표면에 의해 동요되지 않으며, 자신의 처지가 좋고 나쁨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어떠한 목적성도 덧붙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법제자의 정신과 정념은 곧 법을 증거하는 것이고, 곧 대법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신의 상태이며, 수련인이 승화하는 중 진리가 표현해 낸 것이고, 또한 생명 본질의 체현이다. 신념이 존재하면 스승과 함께하는 것이고 법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 반대라면 곧 신의 도리를 등진 것이다. 그러므로 진수 제자는 잠시도 법을 떠나서는 안 된다!
5. 진수자는 성숙한 오도지심(悟道之心)을 가지고 있다
수련의 매 한 걸음 제어와 승화는 모두 법에 대한 바른 깨달음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며, 심오한 실수련의 과정을 기초로 삼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엇이 성숙한 오도지심인가? 사부님께서는 법 속에서 명확한 가르침을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나는 늘 속인의 마음이 나를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는데, 누가 나에게 좋은 말을 한마디 한다고 해서 나는 기뻐하지 않고, 누가 나를 나쁘다고 욕한다 해도 나는 역시 화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 속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심한 心性(씬씽) 교란도 내게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연공인은 모든 이익을 아주 담담하게 보고, 무엇이나 모두 마음에 두지 않을 때만 도를 깨닫는 그 마음이 비로소 성숙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명리(名利)를 억지로 추구하는 마음이 없고, 96명리나 지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때, 당신은 번뇌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심리적 평형을 유지할 수 있다. 무엇이나 다 버릴 수 있다면 자연히 청정해질 것이다.”(《파룬궁》)라고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누구나 마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까닭 없이 당신에게 욕을 퍼붓고 갑자기 함부로 말할 것이며, 어떤 이는 당신의 이간질을 하며 냉소하고 비꼬고, 심지어 모함하고 비방하며 악의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어떤 이는 당신의 재산을 점유하고 이익을 강탈하며 정상적인 업무와 생활을 교란할 것이다.
때로는 신체가 편치 않음을 느낄 것이고 심지어 심각한 병업 현상 등이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수련인에게 발생하는 유일한 목적은 바로 당신의 심성을 단련하고 마연(磨鍊)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온갖 속인의 관념, 속인의 취향을 내려놓게 하고, 이익을 강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고, 상처받기 싫고 체면 잃기 싫으며 기득의 온갖 이익을 잃기 싫어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함으로써, 당신이 수련 중에서 자신을 굳세게 하고 의지를 다져 사람의 차원을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실수련의 과정을 거쳐, 당신의 외형으로 표현되는 바는 화내지 않고, 번뇌하지 않으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무엇이든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며, 당신의 내면에는 평형과 청정한 경지의 상태가 생성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오도지심이 비로소 성숙해지는 것이다.
진수자의 마음가짐에 관하여 현재는 오직 이토록 얕게 인식하고 있을 뿐이며, 아직 깨닫지 못한 심층적인 것들도 더러 있으니, 동수 여러분께서 원만하게 보충해 주시기를 바라며, 옳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