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林雨)
【정견망】
한가히 거닐고 한가히 앉아, 남과 나를 다툴 필요 없네.
백 년 광음은 튕기는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니, 무슨 공과(功果)를 이루겠는가.
어제는 갈고(羯鼓)가 꽃을 재촉하더니, 오늘 아침엔 성긴 버들에 까마귀 슬피 우네.
왕(王)·사(謝) 가문의 처마 앞 제비는, 어느 집으로 날아들었는지 알지 못하겠네.
閑行閑坐,不必爭人我。
百歲光陰彈指過,成得甚麼功果。
昨日羯鼓催花,今朝疏柳啼鴉。
王謝堂前燕子,不知飛入誰家。
양신(楊慎)은 자가 용수(用修), 처음 호는 월계(月溪), 나중 호는 승암(升庵), 또 다른 호는 일사씨(逸史氏), 박남산인(博南山人) 등이며, 사천(四川) 신도(新都) 사람이다. 그는 명대의 저명한 문장가로 “명대 삼재자(三才子)”의 첫 번째로 꼽히며, 내각 수보(首輔 역주: 재상에 해당) 양정화(楊廷和)의 아들이기도 하다.
[역주: 명대 삼재자는 흔히 양신(楊愼)과 영락대전 편찬을 주관한 해진(解縉), 시인이자 화가이며 문장가인 서위(徐渭)를 꼽는다.]
양신은 일찍이 《무종실록(武宗實錄)》 편수(編修)에 참여했다. 가정(嘉靖) 3년(1524년), ‘대례의(大禮議)’ 사건에 연루되어 세종(世宗 가정제)의 노여움을 사 곤장을 맞고 파직된 후 운남(雲南) 영창위(永昌衛)로 쫓겨났다. 운남에 머무는 동안, 그는 일찍이 가노(家奴)를 거느리고 심전(尋甸)의 안전(安銓)과 무정(武定)의 봉조문(鳳朝文)의 난을 평정하는 것을 도왔다. 그 후 그는 비록 사천과 운남 등지를 여러 차례 왕복했으나 끝내 사면받지 못하고, 영창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정 38년(1559년), 유배지에서 사망하니 향년 72세였다.
명 목종(穆宗 융경제) 때 양신은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으로 추증되었고, 명 희종(熹宗 천계제) 때는 다시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양신은 평생 저술이 아주 풍부하여, 내용이 경사방지(經史方志), 천문지리, 금석서화(金石書畫), 음악희극, 종교언어, 민속민족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으며, 후세 사람들이 그의 저술을 엮어 《승암집(升庵集)》이라 했다.
이 시 《청평락·이십일사탄사 제5단 남북조 개장사(清平樂·廿一史彈詞第五段說南北朝開場詞)》는 붓끝이 경쾌하고 의온(意蘊)이 깊고 그윽하다. 시인은 언뜻 평범하고 조용해 보이는 언어로 세상 사람들이 중시하는 공명리록(功名利祿)을 가볍게 내려놓았고, 또 백 년 인생을 손가락을 튕기는 짧은 순간 속에 농축해 넣었다. 몇 마디 안 되는 말로 인생의 덧없음, 세상사의 무상함, 그리고 부귀영화의 허환(虛幻)함을 다 써내었으니, 양신의 깊은 문학적 공력과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은 뒤의 통달함을 족히 볼 수 있다.
“한가히 거닐고 한가히 앉아, 남과 나를 다툴 필요 없네.
백 년 광음은 튕기는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니, 무슨 공과(功果)를 이루겠는가.”
여기서 두 ‘한(閑)’이란 글자가 시 전체의 화룡점정이다.
여기서의 ‘한(閑)’은 무슨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소극적으로 세상을 피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툼을 내려놓고 얻음과 잃음을 담담히 보는 심경이다. 걸어도 편안하고 앉아 있어도 조용하며,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너는 높고 나는 낮으며’, ‘너는 맞고 나는 틀리다’는 것 사이에서 시시비비를 다툴 필요가 없다.
사람이 인간 세상에서 일을 할 때 흔히 공명, 지위 또는 이익에 대한 추구를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인(詞人)의 “남과 나를 다툴 필요 없다”는 한마디는 이러한 얽매임을 가볍게 내려놓게 하며, 인생의 부침을 겪은 후의 활달한 심경 또한 드러낸다.
사인(詞人)의 눈에 백 년의 광음이란 단지 손가락을 튕기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일찍이 얼마나 많은 명성, 권세, 재물을 가졌든 간에 인생의 종점에 이르면 모든 세간의 득실은 결국 공적(空寂)으로 돌아간다. 이럴진대 어찌 한때의 고하와 득실 때문에 남과 아귀다툼을 벌인단 말인가?
“백 년 광음은 튕기는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니, 무슨 공과(功果)를 이루겠는가.”
이 두 구절은 담담해 보이지만,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은 뒤의 생명에 대한 시인의 질문이다. 인생은 총총히 지나가고, 세상 사람들은 온종일 바쁘게 살아가는데, 최후에는 대체 무엇을 성취했는가? 무엇을 얻었는가? 또 진정으로 무엇을 남겼는가?
많은 사람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아마도 이러한 감회를 품어보았을 것이다. 다만 양신은 지극히 간결한 언어로 이 느낌을 마음속 깊이 파고드는 하나의 물음으로 응축해 냈을 뿐이다.
“어제는 갈고(羯鼓)가 꽃을 재촉하더니, 오늘 아침엔 성긴 버들에 까마귀 슬피 우네.”
‘갈고가 꽃을 재촉한다’는 것은 북소리가 진동하고 온갖 꽃이 만발하는 번화한 광경을 표현한 것이고, ‘성긴 버들에 까마귀 슬피 운다’는 것은 버들가지는 소슬하고 찬 까마귀가 슬피 우는 쇠락한 경치를 나타낸 것이다.
어제는 여전히 북소리 속에서 온갖 꽃이 다투어 피어나더니, 오늘 아침에는 성긴 버들 사이의 몇 마디 까마귀 울음소리만 남았을 뿐이다. 번화함과 쇠락함은 겨우 짧디짧은 하룻밤 차이인 듯하다.
여기서의 ‘어제’와 ‘오늘 아침’은 단지 두 개의 평범한 날들이 아니라, 인생 성쇠(盛衰)의 축소판이다. 어제는 청춘이 한창이고 의기충천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용모는 쇠락해지고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어제는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비단을 두른 듯했으나, 오늘은 아마도 사람이 떠나고 텅 빈 적막만이 감돌 뿐일 것이다.
‘슬피 우는 까마귀’는 화면의 쓸쓸함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쇠락과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인생의 짧음과 무상(無常)함이 이처럼 번화함에서 홀연히 쓸쓸함으로 돌변하는 경치 속에 모두 담겨 있다.
“왕(王)·사(謝) 가문의 처마 앞 제비는, 어느 집으로 날아들었는지 알지 못하겠네.”
이 두 구절은 채우석(劉禹錫)의 《오의항(烏衣巷)》 속 “옛날 왕씨와 사씨 가문의 처마 앞 제비가, 평범한 백성 집으로 날아드는구나”라는 시의 뜻을 차용한 것이다.
왕씨와 사씨 두 가문은 일찍이 동진(東晉)에서 가장 화려한 명문세가(名門世家)였으며, 그들의 저택은 수레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갓을 쓴 귀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니 번화함이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옛날의 저택은 이미 쇠락했고, 일찍이 화려한 저택 처마에 깃들었던 제비는 오늘날 또 어느 집으로 날아들었는지 알 수 없다.
제비는 여전히 해마다 오고 가지만, 옛날의 주인들은 이미 역사 속 먼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는 당시 아무리 화려했다 할지라도 결국 시간을 이겨내지 못한다. 왕조는 교체되고, 가문은 성쇠를 겪으며, 누대(樓臺)는 황폐해지고, 일찍이 안하무인격이던 인물들도 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질 것이다.
전체 작품은 “다툴 필요 없네”에서 “백 년 광음은 튕기는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네”로 이어지고, 다시 “갈고가 꽃을 재촉하네”에서 “성긴 버들에 까마귀 슬피 우네”로 이어져, 마침내 “어느 집으로 날아들었는지 알지 못하겠네”로 질문이 이어진다. 사인은 인생에 대해 격앙되어 논평하는 대신 한가하고 담담한 어조로 공명리록, 성쇠영욕, 그리고 왕조의 흥망을 낱낱이 간파한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인생은 결국 짧고, 세상사는 또한 무상하다. 그러나 인생의 짧음과 무상함을 똑똑히 보는 것이 소침해진다 뜻은 아니며, 생명에 의미가 없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도리어 인생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소중한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며, 자신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깨닫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명예와 이익, 사랑과 원수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생명이 천백 년 동안 기다려온 것은 아마도 모두 오늘을 위함이었을 것이다. 생생세세는 모두 오늘의 문화를 다지고, 자신의 복덕을 쌓았으며, 오늘날 법을 얻고 수련하여 원만으로 향하는 길을 다진 것이다.
대법이 전해지기 시작하니 세상 사람들은 비로소 생명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기회를 얻게 되었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또 마땅히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오늘날 정법(正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깨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아직도 미혹된 길에서 계속 방황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이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인생 앞에서, 아직도 내려놓지 못할 무슨 명리와 득실이며 다툼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