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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속에서 색욕심을 물리치라

대법제자

【정견망】

고인(古人)은 “모든 악 중에서 음란이 으뜸이다(萬惡淫爲首)”라고 말했다.

이 몇 글자는 색욕심이 세속 사람들의 일생에 미치는 심오한 영향을 여실히 드러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마음속 염두의 힘을 무시한 채, 바로 그 일념을 품고 생각을 일으키는 그 찰나의 사이에 한 사람의 운명이 천지개벽할 변화를 겪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감응편례증(感應篇例證)》에는 서생 송불린(宋不吝)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송불린은 약관의 나이에 이미 뛰어난 학식을 드러내어 과거시험을 통해 벼슬길에 오르기를 희망했으나 번번이 낙방하자 그 불공평함에 깊이 탄식했다. 이에 그는 장진인(張眞人)을 초청하여 자신의 운세를 살펴봐 달라고 청했다. 장진인이 하늘에 올라간 후 알게 된바, 그가 공명을 잃고 깎여 나간 원인은 일찍이 숙모를 향해 한 가닥의 사념(邪念)을 품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스쳐 지나간 일념이 그의 인생 궤도를 바꾸어 놓았고, 본래 지녔던 부귀영화는 순식간에 한낱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속인에게 있어 이 이야기는 겉보기에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색욕의 일념(一念)이 복보(福報)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념이 일어나면 천지가 다 안다. 속인이 단지 하나의 음란한 생각을 품었을 뿐인데도 공명이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거늘, 하물며 수련하는 우리로서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색욕심의 위해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지 않는다면, 겉보기에는 무심코 스쳐 지나간 그릇된 일념(一念)이 구세력에게 빌미를 잡혀 우리가 이 수련의 길에서 크게 넘어지게 만들 수 있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일에 만회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그날 낮에 나는 옷을 사러 시내에 나갔는데, 길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옷을 사서 좀 예쁘게 꾸미고 누구(이성 동료)에게 보여줘야지.’ 이것은 어쩌면 구세력이 나에게 강제로 주입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색욕심이며 남을 유혹하려는 마음이고 마땅히 배척해야 할 생각임을 깨닫지 못했다. 당시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이 아주 악독한 눈빛으로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을 향해 웃어주기까지 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사악이 빌미를 잡아 나에게 손을 뻗으려 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이튿날 표면적으로는 동수가 나를 밀고한 것처럼 보였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찰나의 사념(邪念)이 바로 박해를 불러들였다는 것을 뼛속 깊이 명백히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사상이 바르지 않기에 좋지 않은 것을 불러왔다.”(《전법륜》)

사악을 불러들이지 않기 위해, 중생이 우리에게 품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사존께서 더 이상 우리를 위해 탄식하고 눈물 흘리지 않으시도록 반드시 색욕심을 수련인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사관(死關)으로 삼고 조금의 여지도 남김없이 철저히 닦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속인에서 수련을 시작하여 내디딘 첫걸음이 바로 이 관(關)”(《전법륜》)이기 때문이다. 구세력은 우리의 개인 수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 첫 번째 걸음이자 첫 번째 관조차 잘 해내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당연히 손을 거두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색욕의 일념을 철저히 해체하기 위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점은, 속인이든 수련인이든 색욕심은 절대적으로 화근(禍根)이며, 속인에게는 복과 수명을 깎아먹는 것이요 수련인에게는 사악과 마난을 불러들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뼛속에서부터 색욕심을 뿌리 뽑겠다는 용기를 지녀야 하며, 사존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신통으로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것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결연함을 품어야 한다. 평소 모든 시간을 활용해 마음속으로 발정념을 해야 한다.

“일체의 색욕심을 해체하고, 일체의 색욕심을 깡그리 없앤다.”

만약 마음속에 여전히 이 방면에 대한 약간의 집착이나 호감을 남겨두고 여전히 ‘괜찮다, 즐길 만하다’고 여긴다면 그야말로 몹시 어려울 것이다. “당신은 그래도 아주 좋다고 느껴, 당신은 가지기를 좋아하고 당신은 기뻐하는데, 당신이 기뻐할수록 그것이 당신을 더욱 단단히 통제한다.”(《전법륜》)

우리는 속인 사회 속에서 수련하고 있고 가정의 책임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완전히 금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집착심을 내려놓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반드시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작고 얕은 견해이니,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