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미(王舍微)
【정견망】
고인이 천인관계(天人關係)를 표현한 것은 하늘과 땅의 연계를 단절시킨 ‘절지천통(絕地天通)’에서 시작되었으며, 문헌 기록에서는 《상서·여형(尚書·呂刑)》에 처음 보인다.
“이에 중(重)과 려(黎)에게 명하여 땅과 하늘의 통함을 끊으니, 내려와 다스리는 것이 없어졌다(乃命重、黎,絕地天通,罔有降格).”
“소호(少昊)의 말기에 백성과 신(神)이 뒤섞여 뒤죽박죽되어 사물을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욱제(顓頊帝)가 “이에 남정(南正) 중(重)에게 명하여 하늘을 맡아 신(神)을 관장하게 하고, 화정(火正) 려(黎)에게 명해 땅을 맡아 백성을 관장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땅과 하늘이 서로 통하는 도를 끊은 것입니다(《국어·초어하》).”
청대 공자진(龔自珍)의 《정암속집·계임지제태관(定庵續集•癸壬之際胎觀)》에서는 “사람의 초기에 천하는 통했고, 사람은 위로 통해 아침에는 하늘에 오르고 저녁에는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하늘과 사람은 아침에 말을 하면 저녁에 말(응답)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다시피, 상고 시기에는 하늘과 사람, 신과 사람 사이에 격리됨이 없이 같은 공간에서 공존했고 사람은 직접 신과 대화할 수 있었다. 사람과 신의 관계는 “아침에 문의하면, 저녁에는 응답이 있는” 관계였다.
천인관계(天人關係)는 중국 전통문화의 핵심 명제이자, 고대부터 지금까지 선현과 성철(聖哲)들이 인생에서 탐구해 온 가치 취향, 사상적 경로이자 마음의 귀숙처이다. 천인관계에 대한 인식에는 두 가지 맥락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고, 다른 하나는 천인상분(天人相分)이다.
《주역·건(乾)》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대인(大人)이란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그 밝음을 합하고, 사시(四時)와 그 질서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하여, 하늘보다 앞서되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 뒤에 따르되 하늘의 때를 받든다”라고 했다.
노자 《도덕경》에서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했다.
이것은 모두 비교적 초기의 천인합일의 사상을 표현한다.
《장자·제물론 제2》에서는 “천지는 나와 함께 태어났고, 만물은 나와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장자·산목(山木) 제20》에서는 또 공자의 입을 빌려 “사람은 하늘과 하나이다”라 말했고, 나아가 이렇게 설명했다. “무엇을 일러 사람과 하늘이 하나라고 합니까?”
공자가 대답하되, “사람이 있음은 하늘에 의한 것이요, 하늘이 있음 또한 하늘에 의한 것이다. 사람이 하늘이 있을 수 없음은 본성 때문이다. 성인은 편안하게 몸으로 받아들이면 끝을 맞이한다.”
의미인즉, 사람과 하늘이 하나라는 것은 인사(人事)의 변화는 그 어느 것 하나 천도(天道)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 없고, 천도에 변화가 있음은 또한 자연(즉 도)에서 나온 것이며, 사람이 천도를 체인(體認)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가로막혔기 때문이고, 성인은 천도를 체인할 수 있기에 편안하게 자연스러움에 따라 천명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인은 왜 천인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이런 미세한 차이를 지니게 되었을까? 이는 서로 다른 역사 시기에 사람이 처한 경계와 층차가 달랐고, 사람과 우주에 대한 인식의 기점과 가치 취향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늘이라 하는가? 무엇을 사람이라 하는가? 무엇으로 인해 나누어지는가? 어디로 합쳐지는가? 인간과 만물이 생존하는 층면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지구와 해·달·별일 뿐이며, 단지 물질의 분자 층면에서의 구성 형식과 상태일 뿐이다.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 저 멀리 은혜계 이외의 아득한 별하늘이 아니라, 분자, 원자, 중자, 전자 이하의 층층이 미세한 공간에 있으며, 매 층의 미세 입자 위에는 모두 서로 다른 생명 형식이 존재하여, 층층의 하늘 너머 층층의 도의 서로 다른 전현(展現)을 체현하고 있다. 오직 그 경계 속의 생명만이 비로소 그 층차 도의 내함과 표현을 체인하고 인식할 수 있다.
《장자·추수 제17》에서는 “그러므로, 하늘은 안에 있고 사람은 밖에 있으며, 덕은 하늘에 있다고 한다. 무릇 사람의 행실을 알면, 근본은 하늘에 있고 자리는 덕에 있다.”라고 했다.
대체적인 뜻은 이러하다. 하늘은 사람과 만물 내부의 미시적인 층면과 미시적인 공간에 감춰져 있고, 사람의 덕 또한 내면의 미시적인 층면에 체현되며, 사람의 외재적인 표현은 내재적인 도덕 경계의 제약을 받는다. 인간 세상에는 본래 여러 층의 미혹이 존재하기에, 내재한 미시적인 층면에 있는 진아(眞我)는 흔히 육체 층면의 표아(表我) 및 온갖 욕망과 관념의 가로막힘을 받게 된다.
바로 처한 경계가 다르기 때문에 천인관계를 논술하는 기점 역시 서로 다른 층차를 지니게 된 것이다. 공자의 학설은 천인 사이에서 사람에게 더 가까운 과도 층면에 서 있고, 장자의 인식은 천인 사이에서 비교적 하늘에 가까운 층면에 처해 있으며, 노자의 도는 도와 자연 사이의 층면에 위치한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인위적인 정의와 구분에 불과한데, 이는 마치 미시적인 세계의 더욱 미시적인 층층의 입자 공간이 층층이 세분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자는 오직 ‘자연’만을 말하며 도를 만물을 만들어내는 이로 여겼다. 통상적인 인식에 따라 ‘자연’은 염담허무(恬淡虛無), 청정무위(淸靜無爲)를 가리키며, 만물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순응하고 인위적인 편집(偏執)을 제거하며, 다투어 물욕을 좇고 정신을 수고롭게 하고 지혜를 소모하는 끝없는 추구를 내려놓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자연 위로 더욱 깊고 미시적인 미시 공간은 또 무엇인가? 온갖 법은 귀종(歸宗)하고 하나로 돌아가니 층층의 도(道)는 모두 우주의 근본 특성이 서로 다른 층차에서 체현된 것이다.
인체 자체는 분자, 원자와 그리고 더욱 미시적인 층층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상 만물 역시 이와 같다. 다시 말해 사람과 하늘은 공간의 물질 구조상에서 하나이다. 사람이 미시적인 공간에서 지닌 복덕(福德)의 많고 적음이 사람이 세상에서 겪는 운명 안배 등 수많은 일에 영향을 미치며; 다른 한편으로 사람의 심념(心念)이 바른가 사악한가 하는 서로 다른 마음가짐 또한 세상만사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표현되거나 특정한 영향을 낳는다. 후세의 유가(儒家) 학자들은 대개 사람의 층면에서 천인관계를 인식하고 사고했다. ‘천인합일’에 대한 기본 인식 방식은 ‘천인합덕(天人合德)’이다.
《순자·천론(天論)》은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운행에는 상도가 있으니, 요(堯)가 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고, 걸(桀)이 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하늘을 사람과 독립된 자연물로 여겨, 이 공간의 천체는 규칙에 따라 운행될 뿐 인간의 도덕 의지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바로 이렇게 거시적인 천체를 자연의 하늘로 보는 천도관(天道觀)의 인식 기점을 바탕으로, 순자는 ‘천인지분(天人之分)을 밝힌다’는 명제를 제기했고, 순자는 하늘과 사람이 있는 곳은 완전히 서로 다른 두 영역이라고 여겼다.
곽점초묘(郭店楚墓)의 죽간(竹簡)에 실린 《궁달이시(窮達以時)》에도 천인상분(天人相分 하늘과 사람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의 관점이 존재하는데, “하늘이 있고 사람이 있으며, 하늘과 사람에는 구분이 있다. 하늘과 사람의 구분을 살피면 행할 바를 알게 된다(有天有人,天人有分。察天人之分,而知所行矣)”라고 했다.
사람이 생존하는 이 물질 공간에서 이러한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미시적인 입자 공간에 존재하는 하늘의 존재와 함의을 분리시켜 봉폐해 버렸으며, 도(道)의 기점에서 이루어지는 사람과 하늘의 연계와 상통을 차단해 버렸다. 이러한 인식 자체는 ‘천인합덕’을 인정하지 않고, ‘무위(無爲)’를 통한 도덕의 승화와 귀진(歸真)이라는 가치 지향을 부정하며, 도에 어긋나 반대로 행하는 ‘유위(有爲)’라는 미끄러져 내려가는 길로 접어든다.
《주역》에서는 최초로 ‘천·지·인’ 삼재(三才)의 도에 대한 사상 인식을 제기했다.
《역전·계사하》에는, “천도(天道)가 있고, 인도(人道)가 있고, 지도(地道)가 있다. 삼재를 겸하여 둘씩 하니 고로 육(六)이다. 육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삼재의 도이다”라고 했다.
《상서·주서·태서(泰誓))》에서도 “천지는 만물의 부모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 세상에서 붉은 티끌 먼지(紅塵) 속 범인(凡人)이 어찌하여 이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유백온(劉伯溫)의 《비전소병가(秘傳燒餅歌)》에서는 이렇게 예시했다.
“말법시기가 되면 만조(萬祖)가 속세에 내려오고 천불(千佛)이 속세에 임하며 하늘의 뭇별들과 아라한들 및 보살들도 이 겁난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에 미래불이 하방(下方)해서 도를 전하시는데 천상천하의 제불(諸佛)제조(諸祖)들이 금선(金線)의 길을 만나지 못하면 이 겁난을 피하기 어렵고 과위가 사라지는데 말후에 81겁에 봉해집니다.”
그 대강의 뜻은 이러하다. 말법(末法)·말겁(末劫)의 최후 시기에 천계의 무수한 불보살, 나한, 도가의 진인(真人) 등, 말하자면 온 하늘의 불도신(佛道神)들이 모두 속세로 내려와 겁난을 겪어야 하는데, 이는 성인이 인간 세상에서 대도(大道)불법(佛法)을 전하시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천상천하의 불·도·신들이 만약 이 불법을 알아보지 못하면 모두 이 겁난을 피하기 어렵고 과위가 깎이게 된다는 것이다. 최후에 성인은 겁난을 넘는 규칙을 정하여 천상과 지상의 만물이 모두 자신의 선악(善惡) 일념(一念)의 선택에 따라 상응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성인은 곧 만왕(萬王)의 왕인 무상왕(無上王)으로, 우주 중의 모든 불·도·신을 제도할 수 있기에, 바로 이 시기에 사람 몸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5천 년의 중국 역사와 문화는 모두 이날을 위해 포석을 깐 것이며, 전체 우주가 형성되고 발전하며 연변한 역사상 가장 휘황찬란한 한 막이 세상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