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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일기: 법을 외우며 느낀 깨달음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할 때, 나는 한 단락씩 외웠다. 두 번을 외운 후에는 소절(小節) 단위로 외웠다. 일곱 번째 외울 때는 강의(講) 단위로 외웠다. 지금은 다시 소절 단위로 외우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한 절의 법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두세 번을 연속으로 외워야 비로소 통과한 것으로 규정했다. 어떤 동수가 나에게 혼자서 법을 외우면 틀린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답했다. “압니다. 스승님께서 보고 계시기에 틀리게 외우면 막혀서 넘어가질 않으며, 그때 틀린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은 법을 외운 지 십여 번이 넘었다. 처음에는 표면의 문자부터 기억했고, 점차 법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다. 법을 외운 횟수가 많아질수록 이해하는 법도 많아졌으며, 예전에 법리적으로 모호했던 부분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명확해졌다. 또한 몇 번은 법에서 나에게 표면 문자를 넘어선 다른 차원이나 더 깊은 내한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를 써서 동수들과 나누고자 한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

“만약 배후 그 공간의 불(佛)ㆍ도(道)ㆍ신(神)이, 당신이 마땅히 제고해야 할 때임을 보았다면 그는 자연히 당신으로 하여금 그 한 경지 중에 존재하는 이치를 알도록 한다. 당신은 갑자기 이 한 구절 말의 또 다른 내포를 알았음을 느낄 것이다.” (《유럽법회설법》)

법을 외우다 제8강 “누가 연공하면 누가 공을 얻는다” 소절에 이르렀다.

“또 전생(轉生)하여 매우 가난한 집에 탁생(托生)했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겪으며 자라서 철이 들었을 때 사부가 왔으나 그는 당연히 알아보지 못한다. 사부가 공능으로 그의 저장된 사유를 열어 놓자 단번에 생각났다. 이 분은 사부님이 아니신가? 사부는 그에게 알려 준다. “이제 됐어, 연마(煉)할 수 있네.” 이렇게 수많은 해를 거쳐서 사부는 그의 것을 그에게 전해 주었다.” 《전법륜》

이 단락의 법이 말하는 표면적인 뜻은 부원신(副元神)이 수련하는 과정에서 겪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러나 내가 “또 전생(轉生)하여 매우 가난한 집에 탁생(托生)했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겪으며…“라는 구절을 외울 때, 갑자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법에서 나에게 보여준 것은, 나의 득법 과정 역시 이러했으며 나는 세세생생 오직 법을 기다려 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처한 차원에서 법의 이 한층 내포를 깨닫고 나니, 법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법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스승님의 무량한 자비를 깊이 체감했다. 나는 눈물이 뺨을 타고 묵묵히 흐르도록 내버려둔 채, 몇 번이고 법을 외우고 또 외웠다. 내심은 감사함으로 가득 찼다.

사돈어른과 함께 손주를 볼 때, 생활 습관이 달라 적응하기 힘들었고 억지로 참아야 했다. 마음속으로 억울하여 자꾸 떠나고 싶고 피하고만 싶었다. 그러다 법을 공부할 때 ‘운유(雲遊, 정처 없이 떠돌아다님)’라는 두 글자가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왔고, 나는 순간 깨달으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석가모니’라는 글자에도 특별한 감정을 느꼈는데, 스승님께서는 내가 과거 불교에서 수련했음을 점화해 주셨다.

“석가모니가 전한 방법은 바로 열반을 말하는 것인데, 사실 석가모니 자신은 고심대법(高深大法)이 있어서 本體(번티)를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전화해 가지고 갈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수련법을 남겨두기 위해 그 자신이 열반했다.” 《전법륜》

이 구절을 볼 때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아려왔다.

​스승님의 홍대한 자비를 느끼다

“과거에 도를 전한 많은 사람, 그는 다만 도제(徒弟) 하나만을 가르칠 수 있었는데, 그가 도제 하나를 지키기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광범위한 것은, 일반인은 감히 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말했듯이,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무수한 법신(法身)이 있는데, 나의 매우 큰 신통법력(神通法力)을 구비하여 아주 큰 신통(神通), 아주 큰 법력(法力)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오늘날 이 일을 하는 것은 우리가 표면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며, 나도 일시적인 생각으로 나와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에게 알려 줄 수 있다. 많은 대각자가 모두 이 일을 주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말법시기에 최후로 한 차례 정법(正法)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이 일이 빗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데, 진정하게 정도(正道)에서 수련하면 누구도 감히 경솔하게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나의 법신이 보호하고 있어 어떠한 위험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전법륜》

이 단락의 법을 외울 때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듯 강한 전율이 일었고, 미세한(微觀) 세포 하나하나가 격동했다. 법의 모든 문장, 모든 글자, 심지어 문장 부호 하나까지 나의 미관 속으로 무겁게 꽂혀 들어갔으며, 무한히 깊고 먼 층층의 내포를 보여주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이었다. 스승님의 홍대한 자비와 법의 위대함, 신성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어떤 말로도 당시의 감정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과거 무신론의 영향을 받아 나의 미관 속에는 무신론의 독소가 남아있었다. 특히 수련 초기에는 무슨 일에 부딪히거나 꿈속에서 첫 한 생각이 법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늘 무언가가 스승님과 법을 백 퍼센트 믿지 못하게 막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 단락의 법은 바로 나의 무신론 독소를 깨뜨려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스승님께서는 모든 밑바탕을 우리에게 밝혀주신 것이었다.

나는 이 단락의 법을 자주, 언제 어디서나 외운다. 스승님께서는 늘 우리 곁에서 제자를 지도하고 보살펴 주고 계신다.

스승님의 점화: 수구(修口)하고, 수의(修意)하라

“수구(修口)” 소절은 세 개의 자연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여러 번 외워 표면 글자에는 매우 익숙했기에 금방 외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무지 외워지지 않았다. 한 글자가 틀리거나, 문장 하나를 빠뜨리기 일쑤였다.

계속해서 외워지지 않자, 나는 안으로 찾아야 할 때임을 알았다. 법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서로 다른 차원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동안 입을 수련하는 수구 방면에서 스스로를 엄격하게 요구하지 못했고, 스승님께서도 여러 번 점화해 주셨다. 나는 법을 외우는 동시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바로잡았다. 말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수련해야 했으며, 마음자리를 향상해야 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법의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수치를 실천하지 못하는가?’ 더 깊이 파고들어 보니, 특정 사람이나 일에 대해 불만이 있었고, 그로 인해 마음의 균형이 깨져 원망을 발설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원망심(怨恨心)이었으며, 시기심(妒嫉心)의 한 가지 표현이었다. 시기심 뒤에는 이익을 탐하는 마음도 숨어있었다. 이 모든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기에 반드시 수련해 버려야 했다. 단지 인식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행해야 했다.

이 소절을 완벽하게 다 외우고 나니 마침 발정념(發正念)할 시간이 되었다.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자 몸 전체가 에너지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과 머리 위에서 파룬(法輪)이 쉼 없이 회전했고, 온몸이 조용해지면서 정념을 멈추고 싶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고만 싶었다.

법을 외우는 과정 자체가 패물(敗物)을 청소하는 과정이다

“청정심(清淨心)” 소절을 외울 때, 까마득한 옛날의 온갖 불쾌했던 잡동사니 일들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방해가 심해 마음을 정결하게 가다듬을 수 없었고, 도무지 청정해지지 않았다. 나는 법이 이러한 패물들을 자극했음을 깨달았다. 그것들은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튀어나왔다는 것은 곧 이 패물들을 청소할 기회가 온 것이므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었다. 법을 외우는 과정 자체가 바로 패물을 청소하는 과정이었기에, 법을 외우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해체하고 배척하며 거부했다.

나는 이번 생에 수많은 불행을 겪었고 업력이 컸기에 오성(悟性)이 그리 좋지 못했다. 처음에는 단지 몸을 건강하게 할 목적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왔기에, 나의 근본적인 집착이 병을 고치고 몸을 건강하게 하려는 데에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법을 외우면서 찾아낸 나의 근본적인 집착은, 다름 아닌 세상 속에서 원만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는 환상이었다. 기점이 줄곧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었기에 향상이 그토록 더뎠던 것이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니, 모든 고난은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닦기 위한 과정이었다.

자비로우신 스승님께서 늘 곁에서 보살펴 주시고 점화해 주시니, 스승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깊이 감사드릴 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