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7년 말에 법을 얻었으며, 미국 미주리에서 법을 얻었다. 그때 나는 아직 미주리의 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내가 수련의 길에서 동수들의 교류로 인해 굽은 길을 줄이고 더욱 정진하게 된 몇 가지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목적은 우리 사이의 교류가 서로 향상하고 서로 구하는 과정임을 말하고자 함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펜을 들고 자신의 수련 길에서의 이야기를 써서 여러분과 나누고, 우리의 교류가 더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1. 법공부
1998년 3월, 나는 뉴욕 법회에 참가했다. 그것은 내가 처음 참가한 법회였으며, 마음이 비할 바 없이 격동되었고 또한 사존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여러 차례 법공부를 많이 하고, 많이 하고,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나 나는 오성(悟性)이 너무 낮거나 업력이 너무 커서, 어쨌든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법회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어떻게 하는 것이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인가? 얼마나 배워야 많이 배우는 것인가?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 법회에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이전 상태로 돌아갔는데, 내 기억으로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잠시 법공부를 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겨우 십여 분에 불과했다.
우리 지역의 협조인은 그 법회에서 돌아온 후 홍법(洪法)을 강조했기에, 곳곳에서 공법 시연을 하거나 사람들에게 공을 가르쳤다. 이것은 당연히 틀린 것이 아니며, 사부님께서 98년 3월 뉴욕 법회 설법에서 모두가 하기를 바라셨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법공부를 너무 적게 했기 때문에, 비록 따라 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점차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본래 성격이 내향적이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불평을 할 뿐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다지 내켜서 이 홍법 일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당신은 내키지 않으면서 왜 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법을 얻은 후 내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여러 가지 병이 모두 나았기 때문이다. 사부님에 대한 속인적인 감개무량함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태는 몇 달 동안 지속되었다.
1999년 7월에 이르러서야 세인트루이스 수련자들이 한 차례 단체 법공부 교류를 개최했다. 나는 미주리주의 중앙 지역에 살고 있어서 세인트루이스까지 차로 약 2시간이 걸렸기에, 평소에는 그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초청했고 나도 갔다. 지금까지도 나는 기억한다. 교류할 때 한 동수가 자신이 최근 한 달 동안 매일 법을 한 강씩 읽으며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야기했는데,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돌아온 후 나도 그를 따라 매일 법을 한 강씩 배웠다. 내가 다니는 대학의 개학 전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전법륜》을 여러 번 읽었고, 내 마음의 변화가 매우 큰 것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나는 비로소 법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진정으로 알게 되었고, 얼마나 많은 법을 배워야 충분한지 이해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라, 만약 그 교류가 없었고, 그 동수가 매일 법을 한 강씩 읽는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내가 법공부의 중요성을 인식하기까지 얼마나 더 먼 굽은 길 걸었겠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법공부에 써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겠는가?
그 기간 동안 오직 법공부만 하고 싶어 밖에 나가 홍법 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우리 지역의 협조인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매우 명확했다. 나중에 내가 대법과 관련된 일을 다시 할 때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었고, 마치 자신의 일을 하는 듯한 심태로 하는 것이었지, 표면적으로 사람은 하고 있으되 마음속으로는 불만을 품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이 두 가지 방식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
2. 연공
법을 얻은 후, 결가부좌는 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법을 얻고 스스로 결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8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 다리를 틀었을 때 너무나 아팠다. 지금까지도 기억나는데, 처음 결가부좌를 한 그 순간 양 겨드랑이에서 즉시 식은땀이 떨어졌고, 당시 겨우 1~2분 정도 견디다가 다리를 내렸던 것 같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결가부좌가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 나의 업력이 조금 더 컸던 모양이다. 그것은 정말 뼈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기에, 때로는 꼬는 시간이 조금 길기도 하고 때로는 짧기도 했다. 대체로 30분을 넘기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태는 거의 반년 동안 지속되었고, 1999년 2월 로스앤젤레스 법회에 참가할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시애틀에서 온 한 수련자가 자신의 결가부좌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교류에서 매일 결가부좌 시간을 2분 30초씩 늘리고, 줄이지는 않고 늘리기만 하여 빠르게 한 시간을 틀고 앉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나에게 큰 계발이 되었기에, 나는 당시 마음속으로 돌아가면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다시피 제5장 공법의 음악은 한 곡이 약 5분이며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래서 나는 돌아와서 매일 한 부분씩(즉 5분) 늘렸고, 다리가 아무리 아파도 내리지 않았으며, 전날보다 한 부분이 더 지나갈 때까지 내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략 한 달도 되지 않아 나는 한 시간을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다리를 트는 것이 아무리 아프고 참기 힘들어도 나는 줄곧 한 시간씩 가부좌를 했다.
만약 그 동수의 교류가 없었다면, 나는 자신이 언제쯤에야 한 시간 동안 걸가부좌를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아는 한 동수는 미국 중부 지역 수련자인데, 여기서 단지 이 동수를 비교의 예로 든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그 동수가 가부좌를 대략 45분 정도 하다가 다리를 내리고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한 번은 내가 왜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 한 번 가정해 보자. 만약 내가 그 시애틀 동수의 교류를 듣지 못했다면, 나도 그와 비슷했거나 심지어 그보다 못했을 수도 있다.
3. 법공부를 많이 하다
내가 박사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밤, 우리 세 명의 동수는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돌아와 우리 대학 캠퍼스 길을 걷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말하는 말투 속에 강한 불만의 감정이 담겨 있었던 것은 기억한다. 틀림없이 어떤 일이 나의 사람 마음(人心)을 건드렸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들었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중 한 동수가 나의 사람 마음이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이것은 나에게 일침을 가했다. 나는 즉시 나의 문제를 보았다.
돌아와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생각해보니, 자신의 사람 마음이 정말 매우 무겁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 마음이 이렇게 무거운가? 역시 자신이 법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를 지적해 준 이 동수에게 감사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해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거의 두 시간씩 법공부를 했다. 특히 졸업 후 우리 가족이 중서부의 한 주로 이사했을 때, 그곳은 수련자가 매우 적어 단체 연공과 단체 법공부 기회가 적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일 두 시간씩 법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기에 한 관 한 관을 넘어설 수 있었다.
4. 교류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12년을 살았다. 이 기간 동안 미국 중부 지역 협조인이 시카고에서 두 차례 미국 중부 각지 협조인 교류회를 조직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시카고까지 차로 9시간 이상 걸리고 600마일이 넘는 거리였지만, 나는 두 번 다 참가했다. 왜일까? 그것은 내가 처음 갔을 때, 모두가 각자 자신의 소감과 체험을 이야기하며 대략 두 시간 동안 교류하고 헤어졌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동수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자신의 수련 이야기와 법리에 대한 인식을 말했다. 그 교류의 장은 매우 좋았으며, 마치 자신이 한 번 씻겨진 것 같았다. 그들이 두 번째로 그런 교류를 다시 개최했을 때 나도 또 갔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씻겨졌다. 이 두 차례의 교류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나로 하여금 어떻게 자신을 잘 수련해야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를 인식하게 해주었다. 사실 이 두 차례 교류에서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비할 바 없는 이로운 점을 얻었다.
내가 나의 이러한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동수들의 교류가 있었기에 비로소 자신이 수많은 굽은 길 줄이고 수련의 길에서 더욱 정진할 수 있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만약 이러한 교류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서야 인식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사부님께서 왜 우리에게 단체 연공, 법공부, 심득 교류를 하게 하셨는지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성격이 매우 내향적이어서 보통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스스로 매우 긴장한다. 평생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지만, 단상에 올라 발표하거나 많은 사람을 면하여 말할 때면 여전히 매우 긴장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교류를 통해 자신이 이로운 점을 얻었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긴장하더라도 교류하러 나가고자 한다. 이 긴장감 자체야말로 내가 수련의 길에서 극복해야 하고 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점차 나도 내가 아는 동수들이나 단체 법공부 후의 교류회에서 나의 수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역시 주도적으로 자신의 수련 체험을 교류하는 법을 배웠다.
후기
이 교류 원고를 쓸 때, 나는 단지 시간 순서에 따라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교류를 듣고 이로운 점을 얻었는지에 대한 경험을 기록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글을 다 쓰고 나서야 나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무량한 지혜가 담긴 순차적인 안배였음을 발견했다. 돌이켜보니 보였다. 처음에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법공부를 가르치셨고,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법공부를 해야 하는지,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 이어서 나에게 어떻게 다리를 트는 통증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결가부좌를 한 시간까지 연마하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로 하여금 나의 법공부가 아직 부족함을 보게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법공부하는 시간은 연공하는 시간보다 적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이미 두 시간 동안 공을 연마할 수 있었으므로, 내가 법공부하는 시간 역시 두 시간이어야 했지 이전의 한 강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내가 졸업 후 간 곳은 비교적 궁벽한 곳이라 수련자가 매우 적었고, 나는 그곳에서 대법제자로서의 책임을 맡아야 했다. 바로 매일 두 시간의 법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기에 비로소 많은 일들을 안정적이고 적절하게 처리해 낼 수 있었는데, 나의 속인 직업 생활도 포함해서이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어떻게 동수들과 교류하고 자신의 수련 체험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함께 향상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제자이므로 오직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해야만 비로소 가장 바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홍음》 〈착실한 수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자 한다.
착실한 수련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
이상은 나의 교류이며, 부당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