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심(云心)
【정견망 2026년 10월 18일】
모든 사물은 저마다 고유한 형체를 가지고 있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마찬가지이다. 사람과 동물, 식물뿐만 아니라 거대한 강과 산천 역시 고유한 생명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서예는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다. 서예에 형체와 생명을 부여하려면 생명의 특성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왕희지(王羲之)는 서예의 진정한 뜻을 깨닫기 위해 전국의 명승지와 대자연을 유람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서예의 대가가 되었다.
위진(魏晉) 시대의 서예 서적인 《필진도(筆陣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일 자 ‘가로획(一)’은 천 리에 펼쳐진 구름(千里陣雲)과 같아 어렴풋하지만 실로 형체가 있고, ‘점(丶)’은 높은 봉우리에서 떨어지는 돌(高峰墜石)과 같아 쾅 하고 부딪히며 떨어지는 듯하다. ‘삐침(丿)’은 코뿔소의 뿔이나 코끼리의 이빨을 잘라낸 듯 강인하고, ‘꺾임(乙)’은 백 균(鈞)의 힘을 가진 활이 발사되는 듯하며, ‘세로획(∣)’은 만년 된 고목의 덩굴(萬歲枯藤)과 같다. ‘파임(乀)’은 무너지는 파도와 뇌성벼락(崩浪雷奔) 같고, ‘갈고리(勹)’는 억센 활의 힘줄 마디 같다.
《필진도》의 저자인 위부인(衛夫人)은 왕희지의 스승이라고 전해진다. 따라서 대자연을 유람하고자 했던 왕희지의 생각은 아마도 위부인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 속에는 공손대농(公孫大娘)의 검무(劍舞)가 가진 정수도 담겨 있는 듯하다.
세상 만물은 모두 통하는 법이다. 외형은 다를지라도 내포(內涵)은 같으며, 똑같이 생명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은 대체로 곧게 뻗어만 있지 않고, 약간 굽어 있으면서도 탄력성을 지닌다.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그들의 형체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 죽고 나면 본래 가지고 있던 활 모양의 곡선(弓形)을 잃어버린다. 나무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산과 물도 마찬가지로 생명의 특성을 나타내는 저마다의 형체를 지니고 있다.
다시 서예로 돌아와서, 진정으로 뛰어난 서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탄력성이다. 역대 서예 명가들의 작품을 보면 모든 서예가 거의 다 이와 같다. 어떤 것은 가파르고, 어떤 것은 완만하게 이어지며, 어떤 것은 중후하고 무게감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만물유령(萬物有靈, 만물에는 영성이 있다)’이라고 말한다. 즉, 물질이라 할지라도 모두 생명으로서의 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물질 생명의 특성을 직접 다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의 형체나마 느낄 수 있다면 그 생명의 면모를 어느 정도나마 체감하게 될 것이다. 만물에는 형체가 있으며, 그 형체의 뒤편에는 바로 생명이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