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대법을 실증하면서 실수하고 실수하면서 대법을 실증

우동(宇同)

【정견망】

들어가는 말

사부님께서는 《시드니법회 설법》에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당신을 제도하려고 온 것으로 나는 당신의 그 착해지려는 마음을 제고하여 올라갈 수 있도록 할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2000년 5월 13일, 나는 홀로 천안문 광장으로 가서 북경 ‘중축선’ 위에 앉아 연공하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이 마음을 사부님께 드리는 생신 선물로 바쳤다. 어느덧 26년이 흘러 사부님의 탄신일을 맞이하여, 나는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지난 세월의 수련 과정을 사부님께 보고하고 동수들과 교류하며 사부님께 선물로 드리고자 한다. 사부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션윈 교향악을 들을 때면 감동의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곤 한다. 마치 사부님과 맺었던 서약(誓約)이 보이는 듯했다. 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도하겠다는 서약 말이다. 29년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갓 법을 얻었을 때의 ‘갈증을 느끼듯 법을 탐구하던’ 모습에서 지금의 ‘사부님의 명을 받들고, 자신의 생명보다 법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으로 변했다. 이 모든 변화는 법에서 기원한 것이며, 대법이 나의 언행과 심태, 사고방식을 바꾸어 나의 생명을 대법 안에서 새롭게 해 주었다. 마음속에 남은 것은 오직 두 글자, ‘감은(感恩)’뿐이다.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베풀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정념으로 붙들어 준 동수들에게 감사드린다.

1. 대법을 실증하는 중에 실수(實修)

1997년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사부님의 《정진요지》 〈불성무루(佛性無漏)〉를 읽었다. 거기에는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지만, 그 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멀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열심히 법공부하고, 베껴 쓰고, 법을 외웠다. 당시의 나날은 충실하고 즐거웠으며 이런 날들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인생관도 어느덧 변해 있었다.

1999년 7월 20일, 박해가 하늘을 뒤덮듯 시작되었을 때 나는 정부가 진상을 몰라서 그러는 줄로만 알고 세 차례 북경에 가서 상방(上訪)했고, 천안문 광장에 올라 대법의 아름다움을 증명했다. 마음속은 신성한 사명감으로 가득했다. 돌아온 후 나는 곧 세간의 우월한 직장과 안락한 생활 환경을 잃게 되었다. 회사 상사는 공을 세우는 데 급급해 본보기로 나를 회사의 ‘박해 대상 1호’로 지목해 박해했다.

2002년 4월, 퇴근길에 ‘세뇌반’으로 납치되었다. 사흘 후 전향을 거부하자 곧바로 마삼가(馬三家) 노동교양소로 보내져 불법적으로 3년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노동교양소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스스로 물었다. ‘여기에 무엇을 하러 왔는가?’ 나의 대답은 ‘나는 세상에 신의 길을 찾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세상의 미련이 멀게만 느껴졌으며 친척과 직장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들어온 지 며칠 안 되어 현지 경찰이 나를 심문하며 대법 자료를 누가 주었느냐고 물었다. 세뇌반에서 이미 전향한 수련생들이 내가 주었다고 자백했다는 것이다. 만약 말하지 않으면 즉시 구속되어 요녕성 여자감옥으로 보내질 상황이었다.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역사의 장래에 당신들의 순수하고 올바른 일체는 바로 대궁(大穹)이 성주불파(成住不破)할 수 있는 보증이다.”(《정진요지 3》 〈뉴욕법회에 드리는 축사〉) 기세등등하게 몰아붙이는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대법제자가 성취하는 것은 미래의 신우주인데, 어찌 이미 패괴된 구우주의 이치(理)에 의해 파괴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신우주에 대해 책임져야 하고 동수의 안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거대한 난이 아무리 크더라도 내가 감당하자!’ 나는 그저 “나는 당신들이 대법제자에게 다시 죄를 지어 자신을 망치게 할 수 없으므로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라고만 했다. 그러자 그들은 무언가에 억눌린 듯 기세가 단번에 꺾였고 멋쩍게 몇 마디 내뱉고는 떠나갔다.

이어지는 나날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마삼가 노동교양소의 악경(惡警)들은 잠을 재우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사오(邪悟)한 과거의 동수들을 동원해 나를 전향시키려 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전향시킨단 말인가? 나의 혈액과 뼈는 모두 대법이 구성해 준 것인데 내가 어디로 전향한단 말인가?” 그들은 회유책이 통하지 않자 위선의 탈을 벗어 던지고 고문을 시작했다. 잠 안 재우기, 독방 가두기, 추위에 떨게 하기, 매달아 묶기 등을 자행했고 강제 노동을 시켜 자신들의 가외 수입을 챙기려 했다.

나는 사부님의 《정진요지 2》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 설법에 따라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받들어 일체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은 나를 사무실로 데려가 위선적으로 말했다.

“3년 형을 받았는데 하루 일을 안 하면 하루씩 연장될 텐데 언제 나갈 건가! 아이가 저렇게 어린데 당신이 나갈 때면 엄마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오.”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3년, 30년, 300년인들 어떻습니까? 눈 깜짝할 사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나의 생명은 우주와 수명을 같이할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홍음》 〈대각〉의 “입장(立掌)하니 건곤이 진동하고 거대한 부처 하늘에 우뚝 섰노라(立掌乾坤震 橫空立巨佛)”라는 구절과 깊이 융합됨을 느꼈다. 내 몸은 천지에 우뚝 솟아 있었고 노동교양소는 마치 모래알처럼 작고 나약해 보였다.

어느 날 우리는 교양소 밖으로 나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인원 점검을 위해 계속 번호를 부르게 했다. 나는 법을 어긴 죄인이 아니었기에 일도 하지 않았고 번호도 부르지 않았다. 저녁에 돌아오자 악랄한 경찰은 내가 다른 분대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깎았다고 분개하며, 전향한 자들을 시켜 내 팔뚝부터 손까지 밧줄로 살을 파고들 정도로 칭칭 감게 했다. 그리고 두 손을 뒤로 묶어 침대 이층 난간에 매달았는데 발끝만 겨우 땅에 닿아 온몸의 무게가 뒤로 꺾인 어깨에 실렸다.

너무 고통스러워 눈앞이 캄캄해졌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바닥을 적셨으며 기절할 지경이었지만 정신만은 명확했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굴복하면 일을 거부하고 전향을 거부하는 다른 대법제자들도 하나둘씩 이 고문을 당하게 될 것이다. 동수들이 다시는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죽으면 그뿐이다!’ 원래 악랄한 경찰은 밤새 매달아 놓겠다고 호통쳤지만, 내가 생사를 내려놓은 그 일념이 그녀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해체했다. 한 시간 후 그들은 나를 내려주었는데 팔은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고 오른손 약지는 한 달 넘게 감각이 없었다. 그들은 나를 세면장에 가두고 방치했다.

나는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하며 동수가 전해준 《2002년 워싱턴 DC 법회 설법》의 한 단락을 외웠다. “나는 예수가 아니고, 석가모니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진리의 길을 걷고, 과감히 진리를 위해 생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과감히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몸을 바치는 무수한 예수, 석가모니를 창조해 냈다.” 그 힘든 시절 나는 《정진요지 2》의 대부분과 《홍음》을 외우며 견정하게 대법의 존엄을 수호했고 생명이 대법 안에서 새롭게 됨을 느꼈다.

사악의 박해는 날로 심해졌다. 100% ‘전향률’을 달성하기 위해 마삼가 노동교양소는 장사 노동교양소, 용산 노동교양소와 연합해 전향하지 않은 대법제자들을 박해했는데 이를 ‘공견전(攻堅戰)’이라 불렀다. 그들은 나의 두 다리를 최대한 가부좌시킨 뒤 밧줄로 묶고 두 손을 뒤로 묶어 어깨 너머로 다리와 연결해 온몸을 둥글게 말아 묶었다.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층층이 전생(轉生)하시며 중생과 인연을 맺고 우리에게 법을 전해주시기 위해 대궁의 모든 고통을 겪으셨는데 나의 이 작은 고통이 무엇이란 말인가? 앞이 구리 벽이라 해도 뚫고 지나가 이 대법에 동화될 것이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겠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보시고 거대한 고통을 대신 감당해 주시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남겨주셨다. 마치 《전법륜》 제4강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리가 아픈 것이 발작적으로 아프다 말다 하여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는데 위장의 피가 갈색으로 변해 밤새도록 토했다. 다음 날 아침 12시간 반 만에 밧줄을 풀었을 때 내 다리는 걸을 수 없었고 발은 찐빵처럼 부어 큰 슬리퍼를 신어야 했다. 이어 그들은 나를 온종일 난방 파이프에 발끝만 닿게 매달아 놓았다. 그때는 1초가 1년처럼 길게 느껴졌고 매일 밤 초를 세며 견뎠다. 결국 사악은 나에 대한 전향을 포기했다.

하지만 사악한 구세력은 아버지의 부성애를 이용해 면회를 오게 하여 말했다.

“네 남편이 바람이 났다. 더는 널 기다릴 수 없다고 하니 어서 전향서 쓰고 집에 가자.” 당시의 심정은 정말로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百苦一齊降)’였다.

나는 아버지께 말했다.

“정 그렇다면 아이는 저에게 주십시오. 아이는 법을 얻으러 온 아이입니다.”

며칠 후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사람이 극한까지 감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압니다. 내가 감당한 것은 당신보다 수만 배 더하겠지만 나는 견정하게 걸어왔습니다. 지금이 바로 인격을 가장 시험하는 때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는 아버지가 나를 일찍 귀가시키기 위해 지어낸 말이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박해받을 때 나는 ‘생사를 내려놓는다’는 또 다른 함의를 깨달았다.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집착도 내려놓고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육신을 남겨야지 죽음으로 끝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돌아온 후 사부님의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중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보았을 때 정말 뼈에 사무치는 감회를 느꼈다. 사부님의 법은 원용(圓容)하여 비록 당시에는 그 설법을 보지 못했지만 대법을 실증하는 중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층차의 내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노동교양소에 있을 때 사부님의 ‘구세력의 안배를 전면 부정하라’는 설법은 아직 몰랐지만, 사부님의 시

“아득한 길은 이미 끝에 달하고.
자욱한 안개는 점점 흩어지누나;
정념으로 신(神)의 위풍 떨치니,
하늘로 돌아감은 바람이 아니어라.

路漫漫已盡
霧迷迷漸散
正念顯神威
回天不是盼”를 받들어 사악의 처분대로 3년을 다 채워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다. 어서 나가 더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구도해야지 사악에 갇혀 자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이 시를 반복해서 외우니 글자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정념으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튿날 나는 교양소 측에 성명을 썼다. ‘지금부터 단식을 시작한다. 나는 비록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나 나의 진심으로 당신들의 양심을 깨우겠으며 무죄 석방을 요구한다.’ 4개월 반 동안의 야만적인 음식 주입과 주사 고문 등 고통스러운 연마를 거쳐 숨이 끊어질 듯한 상태에서 16개월간 나를 불법 구금했던 마굴을 마침내 뚫고 나왔다.

이 기간에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악랄한 경찰들에 대한 증오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들이 인간성도 없고 구제 불능이니 어서 지옥에나 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즉시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는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사부님은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기를 바라시지 구세력처럼 파멸시키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내가 어찌 사악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비록 대법과 적이 되기를 선택했더라도 나는 그들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여 사람 면에서 최대한 깨어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들은 구원을 기다리는 가장 가련한 중생들이었다. 이 법리를 깨달았을 때 마음은 자비와 따뜻함의 강한 정념으로 가득 찼다. 마삼가 노동교양소는 더 이상 나를 가둘 수 없었다. 나는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경계를 벗어나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에 도달한 것이었다.

노동교양소에서 업혀 나올 때 내 몸무게는 30kg도 안 되었고 걸을 수도 없었으며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속인들에게 대법제자의 몸이 이런 상태임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계속 발정념을 했다. 몸집만 한 파룬이 강렬하게 회전하며 정회전 9번, 역회전 9번을 하며 모든 부적절한 상태를 바로잡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스스로 5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돌아온 후 나는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난 싹처럼 법에 대한 갈망이 극에 달했다. 화장실 갈 때만 책을 내려놓았고 매일 2시간만 자며 졸릴 때는 무릎을 꿇고 책을 보았다. 사흘 만에 사부님께서는 노동교양소에서 맞았던 수백 병의 약물을 모두 피부를 통해 밀어내 주셨는데 말할 수 없이 가려웠다. 한 달 만에 몸무게가 15kg 늘어 40kg대를 회복했다.

그 후 다시 대법을 실증하는 홍류(洪流)에 투입되었다. 자료점을 세우고 나오지 못한 동수들이 함께 제고하도록 협조하며, 사오(邪悟)했던 동수들을 찾아오고 불법 판결을 받은 동수들을 구출하는 일을 했다. 일을 바쁘게 하다 보니 어느덧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마음(人心)이 자라났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어서 구세력이 호시탐탐 수련자의 일사일념을 감시하고 있었고, 결국 나는 다시 사악에게 틈을 보이고 말았다.

2006년 다른 동수와 진상 자료와 《9평》을 배포하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붙잡혔다. 그 동수가 단지 주임에게 붙들리자 내가 주임을 막아 동수를 피신시켰고 나는 다시 파출소로 끌려가 마삼가 노동교양소로 보내져 9개월 반의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6개월 후 사악의 일체 명령과 요구에 협조하지 않고 다시 정념으로 걸어 나왔다.

돌아온 후 생계를 고민해야 했다. 10년간의 박해 속에서 나는 한 달에 240위안의 최저 생계비만 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의 도움 덕에 생활이 아주 곤궁하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에게 준 상처는 매우 컸다. 할머니는 내가 처음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며 한스럽게 별세하셨고, 아버지는 연이은 불안과 생활고로 심장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아버지 사후 석 달 만에 마비되셨고 2년 반 뒤에 별세하셨다. 평화로웠던 4대가 동거하던 한 가정이 몇 년 만에 박해로 산산조각이 났다. 친척과 친구, 이웃들은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연루될까 두려워 멀리했다. 이것이 장쩌민과 공산 사당이 채용한 ‘육체적 소멸, 명예 실추, 경제적 차단’의 박해 수단이었다.

《북미 제1기 법회 설법》에서 “대법을 배우는 자체가 곧 복을 받은 것인데 어째서 잃을 수 있겠는가?! ”라는 구절을 읽었다. 그렇다! 나는 정법 시기의 대법제자이며 가장 복이 있는 생명인데 왜 잃어버려야 하는가? 나는 깊은 고통을 가슴에 묻고 대법의 신성과 아름다움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구세력의 안배를 전면 부정하는 길을 걷기로 했다. 비록 누락이 있다 해도 그것이 사악이 박해할 구실이 될 수는 없으며 나는 대법 안에서 바로잡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새 단지로 이사했다. 그곳은 감시가 덜했고 가택 수색이나 괴롭힘이 없어 안심하고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직장을 잃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금은 어디서든 빛나기 마련이다. 나는 곧 적합한 사업 아이템을 찾아 창업했다. 수중에 돈이 없어 3만 위안을 빌려 시작했지만 첫 달에 10만 위안을 벌어 빚을 갚았다. 나의 원칙은 오직 하나, ‘쩐·싼·런’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이 제자에게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결코 무능력하게 박해받는 사회 최하층의 약자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확고한 마음을 가진 가장 선량하고 존중받아야 할 대법제자이며 중국 사회의 대들보이자 희망임을 보여주려 했다.

대법이 가져다준 복은 나의 노력과 상상을 훨씬 초월했다. 나는 마치 이륙 과정도 없이 바로 비상하는 듯했다. 짧은 4년 만에 아이를 미국의 사립 고등학교로 유학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아이를 중공 통치하의 경직되고 사악한 이념을 주입하는 교육 체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2. 실수 중에 대법을 실증

2014년 8월,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나 역시 이곳에 남아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정말 현실인지 몇 번이고 자문했다. 명혜망, 정견망, 에포크타임스, NTD, 희망의 소리 등 사이트들을 자유롭게 열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담을 넘을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마침내 자유를 얻은 것이다! 자유롭게 수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속에서 정관(靜觀)하시는 사부님의 사진을 볼 때면 밖에서 구박받다 돌아온 아이가 아버지를 다시 만난 듯했다. 억눌렸던 고통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며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미국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은 여전히 ‘나는 신(神)의 길을 찾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이 성신의 길은 구세력이 안배한 감옥에 갇혀 직장과 가족을 잃고 인심을 버리게 강요당하는 길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최대한 속인 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하는 길이다. 수련 환경이 느슨해진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더욱 엄격해진 것임을 안다. 이 소중한 자유는 나만의 것이 아니며 국내에서 여전히 박해받는 수많은 동수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들도 똑같은 자유를 누려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자신을 새로이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온갖 사람마음이 드러났고 몸에 밴 당문화(黨文化)는 너무나 지저분하여 마치 한 번도 수련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질투심, 쟁투심, 원한심, 열등감, 자존심, 승부욕, 과시심, 허영심, 강요하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 호기심, 안일함, 색심(色心), 환희심, 탐욕, 자신을 증명하려는 마음, 남의 눈치를 보는 마음, 건성으로 하는 마음, 서두르는 마음, 부정적 사고, 그리고 강렬한 혈육의 정까지. 수련하지 않는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마음을 발견했을 때 즉시 알아차리고 붙잡아 그것에 끌려가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들이야말로 나를 사람 속에 가둔 자물쇠들이었다. 한 가지 마음을 발견하고 내려놓을 때마다 층층의 법리가 내 마음속에 나타났다. 대법에 동화되어 생명이 승화된 후의 평온한 즐거움을 체험하니 세간의 득실은 미미하게 느껴졌다.

안정을 찾은 후 곧바로 해외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환경에 뛰어들었다. 나는 언론사에서 일하기를 선택했다. 국내에서 대법제자는 언론의 자유가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자료를 배포해야 했다. 해외에는 우리만의 매체가 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제자들 대다수가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오직 법에 대한 정신(正信)으로 밤낮없이 한계를 돌파하며 진상을 전하고 거짓을 폭로했다. 국내 동수들과 하나가 되어 진상 그물을 형성해 다른 공간의 사악을 해체하고 있었다. 동수들이 속인의 우월한 직장을 포기하고 묵묵히 헌신하는 모습에서 빛나는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영광인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언론사에 합류한 첫날 동수에게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노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그 초심을 유지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션윈(神韻) 홍보에도 참여했다. 한번은 쇼핑몰 매표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대법 수련의 엄숙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날 나는 다른 남자 동수와 짝이 되어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를 맡았다. 그런데 그 동수가 10시가 되도록 오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표를 사러 올 인연 있는 사람을 놓칠까 봐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평소 그 동수가 법공부 시간에 자주 늦던 것이 떠올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한참을 기다리다 문득 이것이 내 마음을 닦을 좋은 기회임을 깨달았다. 전화를 하니 에포크타임스 신문을 배달하고 바로 오겠다고 했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신문 배달 후 오면 늦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여기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었다. 동수의 신뢰와 나의 이기심이 즉시 보였다. 동수는 이미 두 사람 몫의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소중한 마음을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가 도착한 12시까지 기다린 후에야 화장실에 갔다. 돌아오니 매표소 앞에 젊은이 두 명이 션윈 예고편을 보고 있었다. 정중히 인사하며 표를 사고 싶은지 물으니 6장을 사고 싶다고 했다. 좌석을 고르는 중 또 두 사람이 와서 4장을 샀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왔고 교대할 동수도 마침 도착해 함께 안내하니 곧바로 5장을 샀다. 불과 10분 사이에 매표소 앞에 줄을 서서 표를 사는 광경이 벌어졌다. 그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며 동수들 모두 큰 격려를 받았다. 나만이 이것이 중생의 구도를 가로막던 나의 사람마음을 제거했기에 사부님께서 문을 열어주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부끄러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재인식(再認識)〉에서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 어떤 상황하에서든지 부닥칠 수 있는 그 어떤 시끄러움과 좋지 않은 일, 나아가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제고만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결어

《전법륜》 제9강 ‘돈오(頓悟)’ 부분을 읽을 때 문득 깨달았다. 오직 위대한 법만이 위대한 수련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 법이 위대한 것인데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위대하다고 말씀하신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아끼시는 마음은 우리가 자신을 아끼는 마음보다 훨씬 크다. 위대하신 사부님,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할 길 없으나 오직 초심을 잊지 않고 사부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아 열심히 노력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감사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