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희(雲熙)
【정견망】
눈 덮인 북녘 하늘 말 먹이고 돌아오니,
밝은 달빛 아래 수루(戍樓) 사이로 강적(羌笛) 소리 들려오네.
묻노니 매화는 어디로 떨어지는가,
밤새도록 바람에 불려 관산(關山)에 가득하구나.
雪淨胡天牧馬還
月明羌笛戍樓間
借問梅花何處落
風吹一夜滿關山
고적(高適, 704~765년)은 자가 달부(達夫)이고 발해 조(蓨, 지금의 하북성 경현景縣) 사람으로 당대(唐代) 중기의 저명한 변새(邊塞) 시인이다. 그는 안동도호(安東都護) 고간(高侃)의 손자이며 관직은 형부시랑, 산기상시에 이르렀고 발해현후(渤海縣侯)에 봉해져 세상에서는 고상시(高常侍)라 불렸다. 잠삼(岑參)과 병칭해 고잠(高岑)이라 불리며, 또 잠삼, 왕창령(王昌齡), 왕지환(王之渙)과 합쳐 변새의 4대 시인이라 일컫는다. 그의 시는 기세가 웅건하고 필력이 굳세어 성당(盛唐) 특유의 진취적이고 호방한 정신이 넘쳐흐른다.
이 시 《새상청취적(塞上聽吹笛)》은 화면이 생동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 감각이 매우 풍부하여, 마치 그 자체로 한 곡의 유양한 피리 음악인 듯하다. 고인들은 흔히 시사(詩詞)를 음악에 실어 널리 불렀는데, 이 시 또한 노래하고 연주하기에 적합한 운치를 갖추고 있다.
“눈 덮인 북녘 하늘 말 먹이고 돌아오니,
밝은 달빛 아래 수루(戍樓) 사이로 강적(羌笛) 소리 들려오네.”
변새의 대지는 쌓인 눈이 비치어 천지가 온통 맑고 투명하다. 말을 먹이던 사람이 차가운 기운을 밟으며 돌아오니 밤이 이미 깊었다. 밝은 달 아래 수루(戍樓 국경 방어용 누각) 안에서 은은하게 강적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멀고도 청량하다.
한겨울철에도 여전히 말을 먹여야 함은 변방 생활의 고단함을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군대 생활의 일상을 암시한다. 말을 먹이는 거동은 먹이를 찾기 위함이거나 훈련을 위함일 것이며, 아마도 두 가지를 겸했을 가능성이 크다. 변새 지역에서 이 말들은 대부분 군마(軍馬)이며 말을 먹이는 사람은 변방을 지키는 사졸(士卒)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이 한 폭의 귀목도(歸牧圖)는 군대 생활과 긴밀히 연결되어 한층 더 숙연하고 현실적인 의미를 더하게 된다.
“눈 덮인 북녘 하늘”은 예술적 묘사일 뿐만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도 부합한다. 눈은 먼지를 씻어내어 천지를 맑게 만들기 때문이다. 밤이 깊고 고요한데 변새는 거칠고 추우며 소일거리가 없으니, 오직 성을 지키는 병사만이 피리 소리로 고독을 달랜다. 그 한 구절 한 구절의 피리 소리는 정적 속에서 더욱 또렷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묻노니 매화는 어디로 떨어지는가,
밤새도록 바람에 불려 관산에 가득하구나.”
시인이 들은 것은 바로 《매화곡(梅花曲)》이다. 매화라는 의상(意象)을 빌려 무형의 피리 소리를 분분히 떨어지는 꽃잎으로 화하게 하여, 하룻밤 바람 소리 속에 관산에 가득 뿌려지게 했다. 이는 비록 과장이 섞여 있으나 호소력이 매우 풍부하다. 청정하고 광활한 환경 속에서 소리는 마치 더 멀리 전해지는 듯하며, 사람의 마음이 전일(專一)할 때 또한 그와 공명하기가 더 쉽다.
시 전체에 깊은 고독감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매화곡》이 상징하는 것은 추위 속에서 봄을 보는 희망이다. 엄동설한에 만물이 적막하나 오직 매화만이 오연히 피어나 기탁(寄託)과 위안이 된다.
시인은 변방을 지키는 사졸과 마찬가지로 고향을 멀리 떠나 변관(邊關)을 지키고 있다. 그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리움은 일찌감치 피리 소리를 따라 관산을 넘어 멀리 떨어진 고향으로 날아갔다.
오늘날을 돌아보면 사람이 반드시 변새에 처해 있지는 않더라도 마찬가지로 해소하기 어려운 고독을 느낄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가까운 듯하나 실제로는 멀고 교류는 점차 적어지며 마음의 공명은 더욱 얻기 어려워지니, 이 또한 시대가 낳은 적막함이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는 어쩌면 내면의 기탁과 방향이 더욱 필요할 것인바, 사람으로 하여금 어지러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한다. 마치 시 속의 매화가 엄한 추위 속에서 피어나 사람들에게 견지(堅持)와 희망의 계시를 주는 것과 같다.
또한 대부분의 세상 사람은 천상(天上)에서 온 신(神)이다. 법을 얻기 위해 이곳에 왔다. 법을 얻은 사람은 자연히 행운아이다. 그러나 법을 얻지 못한 사람은 오늘날 더욱 고독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일종의 고통과 무력감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다. 이 관건적인 시각에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려 구도받을 유일한 기연(機緣)을 잃지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