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인터뷰: “견인불굴의 정신”예술전람회 소개: 《견인불굴의 정신》

인터뷰: “견인불굴의 정신”예술전람회 소개: 《견인불굴의 정신》

캐슬린 질리스(Kathleen Gillis)《견인불굴의 정신》유화(구분),32in X 58in (2004)

고화질 사진으로 보실려면 여기 를 클릭하세요

【정견망】편집자의 말:7월15~16일 워싱턴DC 法輪大法협회 주최로 “견인불굴의 정신”이라는 주제의 예술전람회가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하원 의원회관인 레이번 하우스 전시회장에서 정식으로 열렸다. 이번에 전람회에 참가한 작품은 모두 파룬궁 수련생들이 창작한 것으로 그들 중에는 아직도 불법으로 감금되어 감옥에 있는 사람도 있다.

5년의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겪으면서 이 예술가 수련생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세인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인심(人心)이 바르게 잡힌 즐거움, 파룬궁 수련생들이 혹독한 시달림과 피비린내 나는 탄압 하에서 표현해 낸 견인불굴의 꺽을 수 없는 정념, 眞善忍 우주 진리에 대한 끊어버릴 수 없는 추구에서부터 정의는 끝내 사악을 이긴다는 믿음에 이르기까지를 표현해 내고자 하였다.

이 예술가들은 각자 특징이 있으며, 그들은 힘써 전통 회화기법을 이용하여 이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전람회에 참가한 각 화가들의 작품과 이 작품들의 구상, 창작과정 및 사용한 기법 등을 연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다음 인터뷰에서 기자는 정견망 기자인 주칭밍(朱清明)이고, K는 화가인 캐슬린 질리스(Kathleen Gillis)를 말한다.

기자: 당신의 경력을 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K: 저는 계속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나는 과거에 상업목적의 일부 예술작품을 만들었는데 후에 아이가 생긴 후부터 여유 시간을 이용하여 연수를 받았습니다. 그 후 캐나다 오타와 대학에서 시각(視覺)예술(Visual Arts)에 관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학교에서 배운 것은 모두 추상예술의 표현기법이었습니다.

기자: 당신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셨습니까?

K: 예, 저는 12살 때 예술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자: 회화에 그토록 흥미를 갖게 한 계기가 있었나요?

K: 제가 어릴 때 살던 그 작은 마을에서는 볼만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삼촌은 저를 몬트리올에 있는 갤러리에 데리고 갔는데 그곳은 제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기자: 당신은 언제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까?

K: 1998년부터입니다. 저는 오타와(Ottawa) 대학에서 한 부스를 보았는데 그곳의 연공은 저를 끌어 당겼습니다. 대법제자의 에너지와 순정함은 강렬하게 저를 빨아들였고, 그때 나는 신체가 노화되어 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수련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기자: 수련을 하신 후에 당신의 신체 건강은 어떠한 개선이 있었습니까?

K: 정신적으로 제 두뇌와 사유는 더욱 깨끗하고 뚜렷해졌습니다. 신체적인 변화는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하였습니다. 저는 갑상선을 수술하여 반쪽만 남아 있었고 평생 약으로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때 제가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상선 호르몬의 분비가 높아졌으며 더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Kathleen Gillis 《견인불굴의 정신》유화,32in X 58in (2004)

기자: 저는 이번 예술전람회에서 당신이 그린 몇 폭의 그림을 보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견인불굴의 정신》입니다. 이 그림의 배경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 그림을 구상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K: 저는 사이트에서 한 대법제자가 의자에 묶여 있는 사진을 보았으며 그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화면은 제 마음속에서 공명(共鳴)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한 조각상을 보았는데 그것은 어떤 기독교인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자태였습니다. 그 조각상 역시 저를 진동시켰습니다. 이 두 개의 화면이 하나로 융합되어 이 화면을 형성하였습니다. 저는 한 대법제자를 청하여 사진을 몇 장 찍어서 모델로 삼았는데, 그는 바로 중국에서 체포되어 구타당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캐나다 주재 중국대사관에서도 구타당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대사관 사람은 심지어 대사관은 중국영토에 속하므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기자: 이 그림을 그리실 때 가장 어려웠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K: 음, 제일 어려웠던 점은, 일반적으로 말할 때 한 폭의 그림을 절반 그린 후에는 잠깐 내려놓는데, 그러나 이 한 폭의 그림은 제가 그것을 다 완성했다고 느꼈을 때 사실 비로소 시작된 것입니다. 그림의 아래 부분을 그릴 때 초기엔 이 부분의 화면이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부분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 부분을 구상함에 있어서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영감이 곧 떠올랐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마치 마룻바닥에서 나온 듯한 그러한 형상을 가리킵니다.)

화면의 주인공에 대하여 저는 그의 자비와 힘을 충분히 표현해 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손, 그 손을 그린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손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그 손가락 마디의 무늬가 마치 밖으로 발사된 파룬과 같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손의 자비를 그려내고자 시도하였습니다. 이 그림의 배경이 사람들에게 주는 감각은 바로 지하, 동굴 속에 있는 듯한 그낌입니다.

기자: 제가 듣기론 이 그림의 주인공은 원래 류청쥔(柳成軍)이라고 하던데, 대륙에서 TV삽입방송을 하여 박해받아 사망한 대법제자가 맞습니까?

K: 그렇습니다. 바로 그의 사진이 저를 감동시켰는데, 그가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사진입니다.

(계속)

문장발표 : 2004년 8월 6일
문장분류 : 정법뉴스>기타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28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