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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소설《창우겁》제1장 도를 묻다 (1) 아미산 아래 만개의 등불

신화소설《창우겁》

제1장 도를 묻다(問道) 아미산 아래 만개의 등불

작자:백운비

【정견망 2007년 3월 18일】

우주는 수레바퀴와 같고 일월(日月)은 실북과 같다. 물질이 바뀌고 별도 움직여 삼계 내의 지구는 우주 중에서 이미 몇 차례의 해체와 훼멸을 겪었으며 또 몇 차례나 암암리에 뭇신들이 새로 조합되어 탄생했는지 모른다.

오늘 또 일륜(一輪)의 조화로 또 한 차례 새로운 인류문명이 나타났는데, 하(夏), 상(商), 주(周), 춘추전국, 한(漢), 5대10국,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 중화민국. 중원의 5천년 유구한 역사는 한 막 한 막 왕조를 교체하며 주마등 같이 신주(神州) 대지에 휘황찬란한 천외(天外)의 문명을 펼쳐냈고 마침내 오늘날 붉은 왕조(공산통치)의 말년에 도달했다.

1994년 11월, 사천성 아미산(蛾眉山) 경내

아미산 기슭에 몇 채의 낡은 건물이 있는데 6,70년대 중국의 냄새가 물씬 난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그 시대에 비밀 군사기업이 있었는데 중국이 대외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개혁 개방을 함에 따라 이 기업은 존재할 필요가 없어졌다. 직원들과 기구들은 이미 전부 해산했고 단지 일부 건물만 이 수려한 아미산 속에 남아있다고 한다. 희뿌연 담과 건물은 아미산의 유구하고 문아한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지금은 모 저명한 대 기공사가 빌려 쓰고 있으며 대문에는 <아미산 국제 기공대학>이란 간판을 걸어놓았다.

듣기에 <중국기공(中國氣功)> 등 기공잡지에 수련생을 모집하는 대량의 광고를 내 매일 중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많은 편이며 어린이와 나이 많은 사람도 좀 있는데 근기가 좋은 사람만 뽑아서 등록시킨다고 한다.

이런 식의 기공학교는 당시 중국에서 매우 흔했다.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기공 열조가 90년대에 정점에 도달해 <중국기공> 등 잡지에 오른 유명한 기공만 수백 가지에 달하며 그에 상응한 공법(功法)연구회가 하늘의 별처럼 널려있었다. 이런 기공들은 앞을 다퉈 자칭 불가공, 도가공, 유가공, 기문공(奇門功) 등으로 불렀는데 정말 있을 건 다 있어 눈을 현란하게 하였다.

이 시기 중국대륙에서는 거의 집집마다 기공을 연마하고 기를 채집했으며 매일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공했다. 거리마다 가장 뜨거운 화제는 모 기공대사가 기공보고회를 연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매우 기이한 천상으로서 거의 전 국민이 기공 열풍에 참가했다.

아미산 국제기공대학은 그 시대에 민영으로 설립한 기공학교였다.

이해 11월 가을의 어느날 밤 하늘은 높고 공기가 맑아 온갖 별들이 하늘에 총총했으며 온 집에 불이 환히 켜져 산 아래의 아미시에는 하늘에 가득한 별빛과 등불이 조화를 이뤘다. 산 기슭에 위치한 아미산 국제대학 안에도 불빛이 환했는데 기숙사에서는 때때로 기분 좋게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들은 일심으로 수련하는 젊은이로서 도를 이루겠다는 동지들인데 이따금씩 청춘의 웃음소리가 학생의 숙사에서 터져 나왔고 이 산에 있는 학교는 생기로 충만했다.

그러나 학교 대문 앞의 정원은 매우 고요했으며 오직 가을벌레 소리와 별들이 소근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정원의 단에는 학생 복장을 한 젊은 사람이 산 아래의 많은 불빛을 바라보며 온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육청(陸青)으로 23세이다. 그는 아미산 국제기공대학 신입생으로서 이 학교에서 공부한지 이제 겨우 2개월 가량 되었다. 내일 그는 부득이 학교를 떠나야 했는데 학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공학교 역시 살아남아야 하고 지금은 시장경제 시대인지라 공짜가 없다는 것을 육청도 잘 알고 있었다. 육청은 비록 기공이 신성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도를 구하는 마음은 매우 강렬하여 낯 두껍게 재무과에 가서 학비를 면제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재무과에서는 경비가 부족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변통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육청은 억지로 말을 삼켜야 했다.

육청이 가장 상심한 것은 집안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청은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성의 산촌 어느 마을에 기계를 제조하는 국영기업에 배치되었다. 월급이 115위안 밖에 되지 않았지만 육청은 한마음으로 기공을 수련하려 했기 때문에 물질생활을 최저한도로 낮추어 어렵사리 약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1년이 지나자 보너스를 좀 받았고 또 부모님들이 돈을 좀 보태주어 2천4백 위안의 돈을 모았다.

<중국기공> 잡지에 실린 <아미산 국제기공대학> 수강생 모집광고를 본 육청은 미친 듯이 기뻐했다. 그는 당장 한달 휴가를 얻어 집으로 뛰어갔다. 부모님께 직장을 사직하고 <아미산 국제기공대학>에 가서 깊이 공부하겠다고 청했으나 집안에선 한결같이 반대했다. 가족들은 육청의 퇴직에 동의하지 않았다. 막 대학을 졸업했는데 무슨 기공을 배우러 가는가, 게다가 일도 하지 않겠다니 그야말로 주화입마(走火入魔)이다.

이 기간에 그의 집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고 모순이 심해졌다. 육청은 울면서 고집을 부렸다. 심지어 칼을 배에 갖다 대며 허락해주지 않으면 당장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기세였다. 결국 형과 형수, 누나와 매형 등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하여 육청은 단숨에 아미산에 도착했다. 이 <아미산 국제기공대학>에 아주 어렵게 왔기 때문에 육청은 끝장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사적인 심정이었다.

그러나 2천여위안으로 이곳에서는 단지 두 달밖에 머물 수 없었다.

육청은 매우 한스러워 그저 별빛 하늘 아래서 우는 수밖에 없었다.

어제 누나와 매형이 가족을 대표하여 아미산에 와서 육청을 만났다. 아버지가 직장 상사를 만나서 관대히 용서해줄 것을 청하며 휴가 기간을 초과했다고 해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으니 직장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국영기업에서는 규정상 공장에 가서 마음대로 휴가를 초과한 정황을 설명하지 않으면 직무이탈로 간주해 자동으로 퇴직 당한다.

육청은 매우 한스러웠지만 울면서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으면 정말 무슨 일도 할 수 없구나. 육청은 돌아가면 반드시 돈을 많이 벌어 자기 의지대로 잘 수련해보겠다고 다짐하였다.

누나와 매형이 하산할 때 누나가, 사실은 그들은 이미 학비를 가져왔다고 하며 만약 육청이 정말 아미산에서 기공을 배워야한다면 부친을 대신해 학비를 준 것으로 치겠다고 했다. 만일 육청이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여 무슨 잘못되는 일이 있다면 그들 둘도 살 수 없다고 했다. 육청은 화를 내며, “지금 돈을 주어도 받지 않겠다. 내가 벌어서 학비를 대겠다.”고 말했다.

오늘 밤은 별빛이 현란해 아미산 아래의 모든 집의 등불의 풍경이 그림 같았다.

이 아름다운 밤이 오히려 육청의 아미산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이 생각이 미치자 육청은 창자가 끊어지는듯하여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오래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육청은 눈물을 닦고 천천히 몸을 돌려 정원의 단을 떠나 자기의 숙소로 향하여 고학년 숙사를 지날 때 그 안에서 일부 거만한 고학년들이 열렬히 토론하는 것을 들었다.

“요 몇 년래 나온 기공사가 갈수록 다른 사람보다 한 층차 높대…”

“기공계에 전하는 말이, 이 모든 것이 최후에 최고의 사부가 나오기 위한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데.”

“우리 여기에 있는 층차가 높은 교수님은 총장 선생님을 포함해 단지 나한 층차이며 보살 과위는 없다고 그러던데.”

“그럼 진짜 최후의 최고 층차의 사부는 누굴까?”

“들리는 바에는 그는 만왕지왕(萬王之王)인데 여래불보다 더 높대. 지금의 이런 기공사들은 그분의 신발 끈을 멜 자격도 없다는 거야.”

상심으로 멍해 있던 육청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최고의 사부님은 누구일까? 장래 그분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분을 따라 도를 잘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은 그 최고의 사부가 누군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낙담한 육청은 당장 맥이 빠지고 의기소침했다. 그저 앞으로 어떻게 돈을 모을까 궁리하고 있었으며 다음날 육청은 하산해야 했다.

육청은 자신이 들은 최후 최고의 대사(大師)가 이미 인간세상에서 정식으로 법을 전하신 지 2년이나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얻은 진주를 썩은 생선 눈으로 여겨 수중에 넣은 것을 오히려 암흑 속에 던져놓고 있었다.

아미산 아래의 등잔불은 마치 몽환처럼 희망이 가득한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표시간:2007년 3월 18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3/18/428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