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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소설 〈창우겁(蒼宇劫)〉제1장 도를 묻다(2) 기연을 놓치다

신화소설 〈창우겁(蒼宇劫)〉 도를 묻다(2) 기연을 놓치다

작자: 백운비

【정견망 2007년 3월 19일】

제1장: 도를 묻다 (2) 기연을 놓치다

11월 황금가을을 뽐내는 아미산의 길옆으로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에 단장이 되어 가을빛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산간의 오솔길을 타고 두 젊은이가 산을 내려오고 있다.

육청(陸靑)과 함께 아미산국제기공대학을 떠나온 사람이 또 한명 있었으니 이름은 쩐따푸(甄大福 견대복)이라 했다. 육청과 차이점이라면 대복은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공대학이라 일컫는 이 대학에서 가르치는 기공공법 역시 무슨 진정한 고층차의 공법이 아니며 현재 사회에 보급되어 있는 일부 공법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여겼다. 거의 다 기를 채집하고, 빛을 채집하며 기침(氣針)요법, 빛치료법, 일파조(一把抓 손으로 단번에 움켜잡는 치료법) 등이었다. 그러므로 현명한 대복은 그곳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고모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홍지(李洪志) 선생님이 광주(廣州)에서 국내에선 마지막 파룬궁 설법전수반을 개최하니 꼭 참석하라고 알려주었다. 견대복은 아미산 국제기공대학에 오기 전에 파룬궁을 수련했다. 하지만 《중국기공》잡지에 실린 신비로운 광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머나먼 산동에서 아미산까지 왔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큰 실망만 안게 되었고 파룬궁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또 고모가 전화로 독촉했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성도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로 가서 이 선생님의 9일 설법반에 참가할 결심을 굳힌 것이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두 젊은이를 이끌어 산 아래로 길을 안내했다. 육청은 견대복과 함께 아미산 길을 걷는다는 자체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육청은 비록 견대복과 마찬가지로 아미산 기공대학 신입생이었으나 서로 잘 몰랐고 서로 다른 학급으로 배치가 되었지만 놀랍게도 동시에 하산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육청이 아미산으로 오기 전 배웠던 공법도 공교롭게도 견대복과 같은 파룬궁이었다. 견대복과 함께 산을 내려오면서 육청은 마음속으로 정말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육청은 대학시절부터 《중국기공》등 기공잡지를 애독했다. 1993년 기공잡지에 실린 파룬궁에 관한 소개를 읽어보았다. 파룬궁의 공법과 원리가 우주의 특성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하는 것이며 우주의 연화(演化)원리에 따라 수련하고 아랫배 부위에서 하나의 파룬을 수련하는데 이 파룬은 매일 24시간을 끊임없이 돌면서 우주 중으로부터 채집한 에너지를 수련자에게 공급해주는 일종의 “법이 사람을 연마하는” 공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육청은 이 공법이 매우 특별하다고 느꼈으며 또 잡지에서 소개한 이홍지 선생님도 대덕(大德)을 지닌 재주가 높은 사부라고 생각했다. 어떤 충동에서인지는 모르나 그때 육청은 이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을 사부님으로 삼고 공법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학교를 다녀야 했으므로 공법을 직접 배울 기연(機緣)이 없었다.

대학시절의 육청은 마침 사상영역이 대폭발을 맞이하는 격변의 시기에 있었다. 전국적으로 거대한 기공열조가 일어났으며 이러한 현상은 마치 열쇄처럼 봉폐되어 있던 육청의 사상을 열어놓았으며 중국고대 수련문화의 보물창고를 열어주었다.

어릴 때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화에만 흠뻑 젖어있던 육청에게 이토록 신기하고 신비한 전통문화는 그야말로 그를 푹 빠지게 만들었다. 육청은 시간만 있으면 도서관에 파묻혀 불, 도, 유가, 예수 관련 서적만 전문적으로 읽었으며 또 남악 형산(南嶽衡山)으로 달려가 도가 용문파(龍門波)의 사부를 모셨다.

나중에는 또 선종 사찰에 들어가 대학 졸업도 포기하고 승려가 되어서 선종을 수련할 생각도 들었다. 물론, 결국에는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

육청은 정처 없이 떠도는 구름처럼 오직 다른 사람이 수불(修佛)수도(修道)하는 법문이라는 얘기만 들으면 달려가서 그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파룬궁에 대한 육청의 마음 역시 바로 이러하였다. 그는 파룬궁이 다른 기공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졸업 후 육청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련했는데 그때 수련한 법문이 바로 파룬궁이었다. 그는 전문 기공서점에서 우편으로《중국파룬궁》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책에서 가르쳐주는 방식대로 한 동작 한 동작씩 배우기 시작했으며 또 친한 직장동료 한명과 함께 수련했다. 수련하다가 결국 그 친구는 어느 날 이렇게 말하였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파룬은 사부님께서 친히 넣어주셔야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은 수련해낼 수 없다. 우린 사부님의 직접적인 전수를 받지 못했고 파룬도 없으니 만약 우리가 이 수련을 견지한다면 헛되이 수련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리 하여 그 친구는 결국 점차 수련을 중단하게 되었다. 육청 역시 수련에 자신감이 부족하게 되어 오로지 이 선생님을 직접 뵙고 사부님으로 모셔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육청의 기숙사에는 여러 종류의 수많은 기공잡지와 기공서적들로 가득 차있다. 육청의 소망이라면, 어떠한 기공대사를 물론하고 만날 수만 있다면 곧 육청의 복이라고 생각했기에 만약 한명이라도 만나면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육청은 바로 이렇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한편 기공계의 동향에 대해 밀접히 주목하고 있었으며 어떤 기공사라도 부근의 도시에 와서 강습반을 꾸리는가 눈여겨보고 있었다.

이러고 있는 도중 《중국기공》잡지사에서 《아미산 국제기공대학》의 수강생모집광고가 나붙지 않았겠는가, 육청은 부랴부랴 달려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복이 없어 돈이 떨어졌으므로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떨구고 학교를 떠난 것이다.

육청은 견대복과 함께 산을 내려오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견대복은 육청에게 파룬궁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홍지 선생님이 산동에 와서 공을 전하신 신기한 기적들, 9일 학습반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신기한 사건들을 들려주었다. 이 말을 들은 육청은 아주 신기하게 여겼다. 물론 견대복 역시 이 선생님의 학습반에 직접 참가한 적은 없고 그의 고모가 참석했다. 고모는 그에게 파룬궁은 높은 덕을 지닌 대법으로서 천만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정법이라고 알려주면서 꼭 파룬궁을 배우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견대복은 신기함을 추구하는데서 헤어나오지 못해 끝내 아미산으로 왔는데 이를 알게 된 고모는 전화로 그를 심하게 나무라면서 빨리 광주에 가서 이 선생님의 마지막 학습반에 꼭 참석하라고 당부했다.

육청은 그를 매우 부러워했다. 바보처럼 순수한 이 산동 젊은이 견대복이야말로 정말 큰 복이 있다고 생각했다.

견대복이 “육청, 너도 아예 나와 함께 광주에 가서 이 선생님의 설법반에 참석하는 것이 어떠니? 이번은 이 선생님이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개최하는 설법반이니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해!”라고 말했다.

육청은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를 두드리더니 슬픈 미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엔 안 돼, 이것 봐, 내 주머니에 남은 돈으로는 직장에 돌아갈 차비밖에 안 남아.”

견대복은 잠깐 주저하더니 이내 가슴을 두드리며 “괜찮아. 이번 광주행 여비는 내가 지불해줄께. 나중에 돈이 생기면 다시 돌려주면 되잖아? 이런 기회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니까!”라고 말하였다.

육청은 가슴이 뭉클했다. “정말 가슴이 따뜻한 산동 젊은이야!”

육청은 견대복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복아 고마워, 하지만 정말 안 돼. 내가 만약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직장에선 정말 나를 제명할거야. 부모님께서 화를 내시면 건강을 해치실까 걱정이 돼. 휴, 난 정말 복이 없는 사람인가 봐.”라고 말했다.

견대복은 너무나 아쉽게 생각하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

두 사람은 줄곧 함께 산에서 내려와 성도로 갔으며 성도역에서 육청은 견대복이 남행열차인 광주행 열차를 타고 갈 때까지 배웅해 주었다. 두 사람은 이별의 아쉬움으로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떠나기 전 견대복은 육청에게 파룬 배지를 하나 주었다. 이것은 그의 고모가 견대복에게 준 것인데 지금 견대복이 다시 육청에게 준 것이다. 견대복은 육청이 이 선생님의 가지와 보호 하에 하루빨리 정법을 얻기를 희망했다.

한편 육청의 마음은 우울했다. 남행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떠나면서 점차 시선에서 사라지자 가방을 어깨에 메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오늘 저녁에는 성도의 소각사(昭覺寺)에서 머물고 내일 떠나기로 했다. 아미산 국제기공대학을 떠날 때 학급의 친구들이 꼭 부탁한 것이 있는 즉 바로 성도에 소각사라고 있는데 밀종 황교(黃敎) 도량이니 꼭 가보라고 하였다.

견대복이 그에게 준 파룬 배지를 육청은 와이셔츠에 꽂고는 그의 축복을 마음속에 꼭 담아두었다.

번화한 도시에 흐르는 물결마냥 거침없이 움직이는 인파들을 보며 육청은 갑자기 아미산국제기공대학에 금방 입학하였을 때 하남성에서 온 한 신입생 역시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선생님의 설법반에 직접 참석했다고 한다. 윗 학급에 있는 천목이 열린 학생이 그의 아랫배에서 회전하고 있는 파룬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아미산의 기공을 배운 후 파룬은 당장에서 녹았다고 하며 더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하남성에서 온 그 학생이 스스로 만들어 내보낸 공능은 특히 대단했는데, 비틀비틀하며 고함지르고 울부짖었으며 이를 본 학생들은 모두 부러워하였다. 모두들 그의 근기가 좋다고 했으며 자체 생성 공능이 이렇게 좋다고 하였다. 육청은 그때 자신은 왜 이토록 형편없는가, 나는 왜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만약 나도 이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였다.

육청이 오늘 견대복의 이야기를 듣고 그 허난성의 학생의 표현이 아마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후유, 이렇게 수많은 공법들 중 어느 것이 진정으로 좋은 것이겠는가?

육청은 망연자실했다.

성도역 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매우 시끌벅적하였다. 육청의 평범한 그림자는 인파속으로 파묻혔고 이내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되어 있던 두 젊은이가 어떻게 알겠는가, 어렴풋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쌍의 자비로운 손이 매 한 사람의 인생과 운명을 배치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파룬궁을 수련한 적이 있고 또 장차 필연코 파룬궁을 수련하게 될 두 젊은이를 가을빛이 역력한 이 계절에 동시에 아미산기공대학에서 쫓아냈고 이들에게 여우, 뱀, 족제비, 귀신이 난무하는 그 위험지역을 멀리 벗어나게 했다.

견대복과 헤어진 후 육청은 더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육청이 그때의 상황을 회상하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 기연은 마치도 순간 스쳐가는 것처럼 엇갈리는 순간에 종적을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견대복과 함께 광주로 가지 못했다. 이것은 그의 생명 중에서 거대한 손실이었고 가장 큰 한 차례 기연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또 다시 정법을 스쳐지나가고 말았다.

이로 인해 그가 진정으로 법을 얻는 시간을 다시 뒤로 2년 미루게 하였다. 만약 그때 광주에 가서 파룬궁학습반에 참석하였다면 일체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발표시간:2007년 3월 19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3/19/428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