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우겁》 제1장:도를 묻다(3)성자의 자비
작자:백운비
【정견망 2007년 3월 20일】
제1장 도를 묻다 (3)
성자의 자비
육청이 소각사(昭覺寺)에 머문 지 삼일이 되었다.
소각사에 머무는 것은 참 편리했는데, 법을 구하러 왔다는 말을 하자 손님 접대를 맡은 젊은 지객승이 열렬히 환영하며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 육청은 아직 귀의하지 않아 불교거사라고도 할 수 없었지만 지객승은 불교 내부의 거사로 인정해 환대했다. 비용도 하룻밤 투숙에 3위안이고 밥 한 끼에 2위안이었다.
그 스님은 한편으로 육청의 숙박을 등록시키며 한편으로는 그가 이런 젊은 나이에 법을 구하고자하는 불성(佛性)이 있음을 찬탄했다. 마침 육청이 온 시간에 본사의 방장이자 저명한 황교의 활불(活佛) 청정상사(清定上師)가 티베트에서 돌아왔으니 육청이 바로 귀의할 수 있고 불법을 잘 수행하면 장차 반드시 정과를 얻을 거라고 했다.
육청은 기뻐하며 아마 하늘에서 자기를 불쌍히 여겨 마침내 불법과 연분이 닿았나보다고 생각했다.
지객승을 따라 거사가 머무는 곳으로 도착하자 육청은 여기서도 뜻밖에 도를 구하러온 젊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았다. 사방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두 청정상사의 이름을 흠모해 소각사를 찾아와 상사(上師)에게 귀의해 불법을 닦으려 했다. 육청은 단번에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이지 인연이 있으면 천 리밖에서도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직접 만나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 맞구나. 이처럼 재미있고 의기 투합하는 또래들과 함께 있으니 서로 말을 다 나누진 않았어도 육청은 이곳에서 불교와 밀종에 관한 많은 지식을 알게 되었고 시야를 크게 넓혔다.
육청은 소각사의 법물(法物)을 파는 곳에서 청정대사의 법조(法照-그림)를 한 장 청했다. 그림 위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지장보살의 법신상이 있었는데 머리에는 광환이 있었고 왼손에는 밝은 구슬,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장엄하게 연화좌에 앉아 있었다. 사찰 스님들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작년에 청정대사가 현밀통원전(顯密圓通殿)에 천수천안관세음성상(千手千眼觀世音聖像)을 개광할 때 어떤 거사가 찍은 것이라고 하는데 사진을 인화해보니 지장보살 법신상이 나타나 사람들이 떠들썩했다는 것이다. 모두들 청정대사가 지장보살의 화신이라고 여겼다.
이 일은 순식간에 사천성 및 전체 불교계에 퍼져 전국 각지에서 매일 소각사의 청정대사를 배알하러 오는 선남선녀들이 끊이지 않았다. 듣자하니 청정을 스승으로 모신 속가제자가 수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육청은 이에 대해 당연히 몸 둘 바를 몰랐고 청정상사를 신명(神明)으로 모셨다.
다음날 새벽 4시 소각사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리며 절의 스님, 거사와 남녀 신자들을 깨웠다. 이것은 황교 승려들이 늘 행하는 새벽 공부다. 단체로 대전에 올라가 법사(法事)를 거행하며 아울러 <상사송(上師頌)> 등 황교의 대중경전을 외우는데 이 공부는 아무 제한이 없어 모든 방문자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즉, 중생들과 선연(善緣)을 맺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육청도 다른 신자들과 함께 새벽 수업에 참가했다. 그가 보니 상사가 법관(法冠)을 쓰고 가사를 걸친 채 법좌에 단정히 앉아 경전을 읽었고 다른 승려들과 신도들이 따라서 경전을 염송했다. 경전을 읽는 소리가 마치 바다처럼 낭랑했고 곳곳에 향이 감돌아 종교적인 신성함과 신비함이 더욱 두드러졌다.
아침 예불이 끝난 후 육청 등은 일일이 청정상사의 법좌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활불에게 예를 올리며 재물을 바쳤다. 활불 역시 그들을 위해 정수리를 만지며 가지(加持)해주었고 옆에 있던 시자가 그들에게 법명이 적힌 붉은 봉투를 전해주며 그들을 정식 상사의 제자로 대했다.
육청은 마침 빈털터리 신세인지라 돈을 많이 낼 수 없었지만 이를 악물고 붉은 봉투 속에 지폐 삼십 위안을 넣었다. 이는 밀종의 규정이라 파괴할 수 없으며 다른 사형들은 모두 수백, 수천 이상을 넣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덕이 크다고 하니 누구든 공덕을 쌓으려 하지 않겠는가? 육청이 공양을 바칠 때 상사의 눈을 훔쳐보니 그의 몸은 작고 말랐으나 용모는 깨끗하고 자상해 전혀 90대 노인의 노티나 혼미함이 없었다.
이들 황교 승려들이 밀종의 경전을 지니고 외우며 일련의 종교의식을 진행하려 했기에 육청 등은 봉투를 받아 급히 법전을 나갔다. 관정을 받은 승려와 거사만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육청 등은 자연히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육청이 홍포를 열어 자기의 법명을 보니 바로 “석지공(釋智空)”이었다.
일찍이 일을 관리하는 스님이 와서 그들을 사무실로 인도하여 불교 전통적으로 제정한 귀의증을 주었다. 이때부터 그들은 정식으로 불교거사로 승인받는다.
육청은 소각사에서 익숙한 종교분위기를 느꼈는데 좀 이상한 것은 오늘 본 일체가 모두 생소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했다. 마치 이 일체가 어느 꿈속에서 나타난 것 같았고 그 꿈속에서 자기와 이런 스님들이 같이 홍포가사를 입고 대중과 함께 오늘과 거의 유사한 법사를 한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이 전생에 승려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어서 육청은 소각사의 대전들을 자세히 참관했다. 대웅보전, 지장전, 미타전, 원통전 등등. 하나하나가 장엄하고 엄숙한 신상(神像)이었으며, 한 마디 한 마디 경건한 불호(佛號)여서 모두 육청의 감각신경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이것은 육청이 처음으로 이런 신성하고 경건한 심태로 절을 참관하러 왔기 때문이다. 마치 일부 것들이 그의 기억 깊은 곳에서 깨어난 것같았고 멀고 먼 시공 속에서 육청의 깊이 잠든 영혼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정오에 육청은 혼자 원통전 밖의 공터에서 경을 읽었는데 제목은 <지장본원경(地藏本願經)>이었다. 육청이 들고 보기만 했는데도 통곡하며 눈물이 흘렀으며 온몸에 솜털이 솟았다.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겠는가? 지장보살의 위대한 마음이 육청을 사로잡았다. 육청은 암암리에 맹세했다. “앞으로 나 육청은 지장보살과 마찬가지로 지옥이 비지 않으면 정각을 이루지 않겠다는 불법을 수행하는 발원을 하여 일체 부모와 중생을 제도할 것이다.”
밤이 되자 자정에 육청은 대웅전 앞 공터에서 가부좌했다.
내일 소각사를 떠나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육청은 더는 소각사를 보지 못할까 서운함이 들었다. 오로지 대웅보전 앞에서 입정에 들어 불문성지(佛門聖地)의 강대한 기장(氣場)을 많이 느끼고 품으려 했다.
자시(子時 밤 11-1시)의 소각사는 정적에 잠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진하는 승려와 거사들이 선정에 들어 가부좌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은 모두 이미 잠에 들었다. 대웅전 앞에 몇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황각수(黃角樹)는 정적 속에 고요했다. 거대한 보산(寶傘) 같이 넓은 잎은 푸른빛을 띠었고 하늘은 씻은 듯이 깊고 푸르며 별만 총총해 만물이 정적에 잠간 불문의 고요한 땅이었다.
육청은 잠시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나 육청이 호흡하는 사이에 하나의 바퀴가 담담한 빛을 내며 가볍게 돌며 육청의 가슴팍으로 다가 왔다. 그것은 번쩍거리며 신성한 빛이 나는 작은 법륜(法輪)이었는데 그 법륜은 육청의 머리로 올라가 갑자기 커지더니 둘레가 한 장이나 되는 큰 법륜으로 변해 위엄 있게 돌다가 실같이 가는 한 갈래의 백색광명을 떨어뜨려 잠든 육청을 빛기둥 속으로 감쌌다.
큰 법륜 위에는 황금색 광명으로 빛나는 한분의 존자(尊者)가 나타났는데 황금색 연화좌 위에 앉아 자비로운 법안(法眼)으로 천지만물을 꿰뚫어 보며 수많은 중생들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각사에 있는 속인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금광은 파도처럼 일파일파 창망한 우주에 퍼졌다. 광명한 바닷 속에서 뭇신들의 원광(圓光)이 해와 달처럼 빛났고 일제히 대웅보전 앞에 모여 법륜 위의 존자에게 정수리를 조아리며 예를 올리며 찬탄했다. 천화(天花)가 비처럼 내려왔고 범음(梵音)이 흘렀으며 단향(檀香)이 널리 퍼졌다.
갑자기 깊이 잠든 육청의 신체에서 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는데 빛이 번쩍이긴 했지만 깊이 잠든 육청의 모습과 똑같았다. 이 빛이 번쩍이는 육청과 소각사의 뭇신들은 함께 공중의 법륜을 향해 절을 올렸다.
자비로운 존자는 황금색의 빛을 뿌리며 지상에 잠든 육청을 주시했다. 성자의 눈빛에는 무궁한 애처로움만이 있었다.
이 순간 망망한 우주는 이 성자의 애처로운 마음이 천지를 가득 메우며 끝없이 충만했다.
발표시간 : 2007년 3월 20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3/20/428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