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대법제자
【정견망】
중국 남북조 시기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강병지(江秉之)는 어려서 고아였다. 어린 동생들이 모두 7명이나 있었다. 하지만 강병지는 동생들을 키웠으며 그들을 시집 장가 보내느라 매우 힘이 들었다. 그는 처음에 유목지(劉穆之)의 부하로 있었다. 송나라가 ‘선양’ 받자 강병지는 송의 관리가 되었다.
그는 산음현령(山陰縣令)이 되었다. 당시 산음현은 인구가 3만호에 정사가 성가시며 소송이 많았다. 관아의 대청에는 늘 수백 명이 일 처리를 기다릴 정도였다. 강병지는 복잡한 일을 간단히 처리했으므로 공무가 끝나고 다른 일이 없으면 늘 할 일이 없었다.
원가(元嘉) 12년 임해(臨海)로 전근을 갔는데 행정을 간단히 처리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자신이 받는 녹봉을 모두 친구, 친척, 심지어 적에게 나누어주어 가족들은 늘 가난하게 살았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농사 경영을 좀 하라고 권하자 그는 정색을 했다. “조정의 녹봉을 먹는 사람이 어찌 농민과 이익을 다툰단 말인가.” 그는 관청에 있을 때 책상을 하나 제작했는데 자리를 떠날 때 그 책상을 창고에 남겨 놓으며 가져가지 않았다.
강병지가 직을 떠날 때 재물을 가져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기의 책상조차도 남겨 놓았으니 그의 선행이 보답을 받아 그의 아들도 관리가 되었다.
《송서(宋書) 92권 열전 52 양리(良吏)》
http://www.zhengjian.org/2016/01/24/150667.不與百姓爭利的南北朝好官.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