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혜면(慧勉)
【정견망】
명나라 성조(成祖 영락제) 주체(朱棣)의 황후 서(徐)씨는 개국공신인 중산왕(中山王) 서달(徐達)의 장녀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조용히 책읽기를 좋아했고 매우 총명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여제생(女諸生 여자로서 과거에 급제할 만큼 뛰어난 선비란 뜻)’으로 불렀다. 그녀가 어질고 현명하다는 명성이 전해지자 태조 주원장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태조가 특별히 서달을 찾아가 말했다. “짐과 그대는 어려서부터 친분이 두터웠소. 옛부터 군신의 감정이 좋으면 왕왕 통혼을 하는 것이 전례요. 경에게 이렇게 현숙한 딸이 있으니 마침 주체에게 좋은 배필이 될 것이오.” 서달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며 은혜에 감사했다.
이리하여 홍무(洪武) 9년(서기 1376년) 서씨는 연왕(燕王 당시 주체는 지금의 북경 지역을 봉지로 하는 연왕에 봉해졌음)의 비로 간택되었다. 이에 남편을 따라 봉지에 거주했다. 태조의 황후였던 고씨가 며느리인 서씨를 매우 아꼈고 나중에 고황후가 죽은 후 서씨는 고황후를 위해 삼년간 제사를 지내며 육식을 금했다. 서씨는 고황후가 생전에 한 말을 그녀는 일일이 다 기억했다.
나중에 연왕이 군대를 일으켜 남하한 적이 있는데 북경을 비운 사이 건문제(建文帝)의 장수 이경륭(李景隆)이 북경성을 공격했다. 적의 공격으로 성이 위급했지만 북경성을 지키던 병력이 매우 부족했다. 나중에 인종(仁宗)이 되는 주고치(朱高熾 주체의 아들)가 병력을 이끌고 지킬 수밖에 없었다. 무릇 방어에 관한 일은 대부분 모친인 서씨에게 보고하고 명령을 따랐는데 서씨는 여인의 몸임에도 미리 계획을 정해놓은 듯이 일사불란하게 지휘했다. 이경륭이 성을 공격해 상황이 몹시 위급해지자 서씨는 장수와 병졸 및 백성들을 격려해 반드시 성을 사수하도록 했다. 또 그들의 아내들에게도 갑옷을 입고 성위로 올라가게 해 함께 방어전에 참여시켰다. 이리하여 끝내 북경을 보전할 수 있었다.
주체가 황제가 된 후 서씨는 정식 황후로 책봉되었다. 이때 서씨는 남편에게 남북 간에 늘 전쟁이 있었고 장수, 병사 백성들이 매우 지쳤으니 그들이 좀 쉬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또 “지금의 현자들은 모두 고황제(명태조 주원장)께서 남겨놓은 사람들이니 옛 인재들에게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되며 마찬가지로 인자하게 대해야 합니다.”라고 간언했다. 뿐만 아니라 주체에게 고대의 성현인 요순(堯舜) 등을 따라 인자한 정치를 펴도록 권했다. 주체는 이런 제안들을 대다수 받아들였다.
서씨는 비록 일국의 황후지만 친척들에 대한 요구가 엄격해 그들이 함부로 조정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했다. 과거 남동생이었던 증수(增壽)는 주체가 아직 황제가 되기 전에 늘 남경의 정황을 몰래 보고하곤 했다. 나중에 이 일이 건문제 주윤문에게 발각되어 주살되었다. 주체는 즉위 후 증수에게 작위를 내려주려 했으나 서씨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더러 동생에게 작위를 주지 말라고 권했다. 하지만 영락제는 이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증수를 정국공(定國公)에 봉했고 그 아들 경창(景昌)에게 작위를 세습하게 했다. 영락제가 이 일을 알려주자 그녀는 “이것은 결코 제 뜻이 아닙니다.”라며 감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서씨는 황후가 된 후 일심으로 영락제의 정사를 보좌했다. 어느 날 그녀는 주체에게 특별히 말했다. “조정에서 누가 폐하께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됩니까?” 주체는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조정에는 6경이 정무를 책임지고 한림 등의 관원이 정령 방책 따위의 일을 책임지고 있소.”
서황후는 속이 있는 사람이라 6부 대신과 한림 등 사람들의 아내들을 전부 불러 모아 이러한 조정 부인들에게 관복과 돈을 주었다. 그 후 특별히 한 가지 충고를 했다. “당신들은 남편을 모시면서 그들이 잘 먹고 잘 입는 것만 신경 써서야 되겠소? 또한 남편의 사업에 대해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친구의 말이라면 듣는 것도 안 듣는 것도 있지만, 부부간의 말은 온순하게 듣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이 상황을 충분히 이용하여 남편에게 백성을 사랑하도록 권해야 합니다.”
중국 역사상 서씨같이 특별한 방식으로 조정을 보좌하고 남편을 내조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서씨는 정말 현명한 여자다. 그녀는 또 “여헌(女憲)” “여계(女誡)” 등의 자료를 채집하여 “내훈(內訓)” 20편을 지었다. 또 옛 사람의 좋은 말 선행을 분류하여 편집한 《권선서(勸善書)》를 지어 천하에 반포해 백성들을 교육했다.
자료: 《명사(明史). 성조인효서황후전(成祖仁孝徐皇后傳)》
http://www.zhengjian.org/2016/02/07/151014.曆史故事:徐皇後編寫《勸善書》.html